경상일보[시를 읽는 아침]시(時)는 뱀이 되어-정일근
시(時)는 뱀이 되어
ㅡ정일근
시는 뱀이 되어 스쳐간다
예언을 담은 단 한 문장
은유가 되어 휙 지나간다
그건 찰나보다 더 짧은 일
깊은 꿈 속으로 사유의 틈새로
뱀이 번쩍하며 지나갈 때
재빠르게 잡아야 하느니!
(……)
접신(接神)하지 못한다면 끝이다
뱀은 지나가고 나면 그뿐
아무것도 기억할 수 없다
시가 나를 스쳐 지나간다
스쳐 지나간 저쪽에서 내 시는
?의 똬리를 틀고 있다, 나는
쓰여지지 않은 시의 주인일 뿐
휘파람 불며 뱀을 부른다
* 자동서기현상이라는 것이 있다. 잠자는 순간 영혼이 불러 주는 대로 받아 적는 일을 말한다. 이러한 순간은 “찰나보다 더 짧은” 데서 온다. 오른손잡이니, 왼손잡이니 다툴 겨를조차 없다. 받아 적지 못하면 “깊은 꿈속으로 사유의 틈새” 로 여운만 남기고 꼬리를 감춰버리기 때문이다. 시의 배열이 마치 뱀이 지나가는 형상이다. 물고기는 물살에 떠내려가지 않기 위해 한쪽 눈을 뜨고 자듯이, 시인은 영감(靈感)을 놓치지 않으려 한쪽 눈을 뜨고 잔다. 밤마다 화농으로 제 눈을 지지는 이, 누가 시인을 아름답다고 했던가. 낮에는 전, 후생의 사유가 사색의 길이라서 느리게 살아야하고, 밤에는 영감이 지나칠까 “재빠르게 잡아야 하느니!” 뱀이 뜨거운 화인을 손바닥이나 팔뚝에 휘갈길 때 받지 못하면 착한 아침이 왔을 땐 이미 “물음표로 똬리를 틀고” 있을 뿐이니,(영혼의 순도(純度))여! 오늘 밤 다시 오라, 휘파람으로 부를 수밖에. 엄계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