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과 관련해 정말 너무도 많은 찬사와 감동의 글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한국에 이렇게 많은 문장가들이 존재했을까 또는 한국인들의 문장력이 정말 남다르다는 느낌을 받는 것은 저 혼자만의 일이 아닐 것입니다. 한국인들이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소식에 전율을 느낀 것은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특히 대표적인 것은 바로 한국어일 것입니다. 한글날 바로 다음날인 10월 10일 그 엄청난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2024년 10월 10일은 전날 한글날에 이어 연이은 대한민국 한글의 가치를 진정으로 인정받은 그런 날로 영원히 기억되고 축하받을 것입니다.
1446년 음력 9월 10일 훈민정음이 반포됐습니다. 한글이 공식적으로 이 땅에 태어난 것입니다. 지금부터 578년전 한글이 탄생한 이후에 그 위대함이 2024년 10월 10일 전세계적으로 인정받게 된 것 아닙니까. 노벨상은 여러 분야에서 그 해 세계를 위한 보편타당한 행복과 발전과 인류애를 위해 노력하고 그 능력이 인정된 사람들을 골라 그 가운데 가장 혁혁한 공로가 있는 인물에게 주어지는 상입니다. 노벨상의 태동 이유 등은 차치하고 현존하는 세계의 상 가운데 가장 권위가 있고 가장 객관적인 잣대로 엄선된 상대적으로 흠결이 극소화된 그런 상이라는데 재론의 여지가 없을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문학상은 그 글이 쓰여진 그 언어에도 대단한 관심과 존경심이 표현되는 그런 상입니다. 물론 노벨상을 심사하는 스웨덴 한림원에서는 영어나 유럽권 언어로 번역된 책을 읽고 판단했겠지만 말입니다. 그래도 그들이 읽은 작품에는 그 작품을 쓴 작가의 언어적 혼이 짙게 담겨 있는 것은 두말할 필요조차 없는 것입니다. 그들은 작가의 글 솜씨와 접근하는 방식 그리고 언어적 서술 형식 그리고 작가의 작품에 임하는 정신세계 등을 놓고 작품성을 평가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내린 결론은 2024년 노벨 문학상의 최적격자는 한국의 한강이라고 판단한 것입니다. 그 결과 스웨덴 한림원은 한강 작가를 선택한 원인으로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 생의 연약함을 드러낸 강렬한 시적 산문이라고 선정 이유를 밝힌 것입니다. 한국에 존재하는 역사적 트라우마에 대한 작가의 접근 방식이나 그 잔혹함과 야만성을 바라보는 작가의 판단과 그 트라우마를 표현하는 기법과 방식에 더욱 관심을 가졌다는 표현으로 해석됩니다. 스웨덴 한림원은 그리 간단한 조직이 아닙니다.관계자는 2000년 고 김대중 대통령이 평화상을 받을 당시에도 한국의 요상한 단체들이 김대중에게 평화상을 줘서는 절대로 안된다는 투서를 대규모로 받았다고 폭로하기도 했습니다.
한국어는 그동안 소멸될 극한 위기에도 여러번 놓여있었습니다. 세종대왕 당시에도 얼마나 많은 학자들이 한글 제정에 반대했습니까. 중국의 한자에 함몰된 학자들은 자신들의 목숨을 내놓겠다며 저항했습니다. 하지만 세종과 집현적 학자들의 의지로 탄생시켰고 그 이후 천대를 받았지만 생명을 이어갔습니다. 조선시대 당시 한국어로 작품을 만든 허균 같은 인물이 정말 대단하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한글 소멸의 결정적 계기는 바로 일제 강점기때였습니다. 학교에서 한글 대신 일본어를 가르쳤습니다. 지금 80대 이상은 어린 시절 한글을 배우지 못하고 일본어로 교육받았습니다. 어릴때 각인된 언어가 평생을 좌우하는 것을 감안하면 그 시대사람들의 정신세계에 일본어가 차지하는 비율이 상당할 것입니다. 아마도 한국의 독립이 많이 늦어졌을 경우 한글은 아마 사라지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소멸될 위기의 언어로 세계에서 가장 권위있는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는 것은 정말 저같은 졸필로는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한강 작가의 이번 노벨 문학상은 한국내에서가 아닌 해외 특히 문학과 문화의 선진국이라는 유럽 등지에서 인정을 해준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한국은 지금 국내적으로 아주 혼란한 시절을 지내고 있습니다. 정치적 리더급들을 포함한 정치적 갈등은 말할 것도 없고 세대갈등과 남녀 갈등 그리고 모든 면에서 양극화가 이뤄진 상황속에 사소한 것도 대단한 갈등으로 포장되는 현실입니다. 한국이 지구상에서 가장 먼저 소멸되는 국가가 될 것이라는 것은 이제 뉴스감도 되지 않습니다. 초저출산에다가 초고령화로 인해 사회 시스템이 근본적으로 무너지는 그런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정치 사회적 리더들은 오로지 자신들의 위치선점과 기득권 장악에만 관심을 가지고 국민들의 가진 그 외롭고 지친 육신을 바라보고 챙길 여유조차 갖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 암울한 현실속에 멀리 스웨덴 한림원에서 날아온 소식은 한국인들의 꺼져가는 영혼에 죽비를 내리치고 스스로를 자중자애하라는 천둥소리처럼 작동하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습니다. 예전 독립이후 엽전이 별것 하겠어 하던 그 자조적인 사회분위기속으로 다시 되돌아가려는 사회풍조에 너희 나라는 왜 그러냐 왜 그렇게 멋지고 대단한 문학과 문화가 존재하는데 왜 그렇게 스스로를 학대하면서 살아가느냐는 질타를 해 오고 있는 것으로 받아드려집니다. 한국내에서 설마 한국인이 노벨 문학상을 받겠어 그리고 상대적으로 어리고 여성인 한강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받는다는 생각조차도 못한 현실에 폭풍같은 힘으로 상황을 반전시킨 대 역전드라마를 연출하게 한 것입니다.
물론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소식에 폄하하는 글을 올리고 조롱하는 말을 하는 무리들도 존재합니다. 하지만 큰강에는 오물도 버리는 세력도 있습니다. 작은 개천에는 그런 행위가 오염의 강도를 다소 높일 수 있지만 도도하게 흐르는 큰 강에는 조그만 오물투척행위는 별 것이 아닙니다. 그냥 가만히 있으면 자신의 위치가 불안하고 시기심의 강도도 극에 달하는 인간무리들이 어디나 당연히 존재합니다. 하지만 그런 행위는 오히려 큰 강의 존재를 더욱 깊게 인식하고 높이 평가하는 계기를 만들어 줄 것입니다.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에 이렇게 많은 분들이 자축해주는 이런 분위기가 참 좋습니다. 너무 좋은 글로 너무 수준높은 문체로 즐거워하는 모습을 저는 솔직히 태어나 처음 경험하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졸필이지만 도도한 축하의 물결속에 그냥 한 번 더 끼어보고 싶어 다시 글을 올립니다.
2024년 10월 14일 화야산방에서 정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