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 재판’은 계속되고 있다 어느 체제에서나 이데올로기는 ‘비판’이라는 먹이를 먹고산다 권위와 기득권을 지키려 응징하고 모르는 사람들은 돌을 던질 뿐…
1950년대 초 미국에서는 매카시(당시 위스콘신주 상원의원)와 반미국적행위조사위원회의 공산주의자 소탕주의(일명 매카시즘)로 인해 일련의 정치적 공포 분위기가 조성된 바 있고,밀러와 같은 무고한 사람이 공산주의자로 몰려 고발된 적이 있었다.밀러가 이 매카시즘의 소용돌이 속에서 겪었던 뼈아픈 경험은 밀러로 하여금 어떻게 한 사회가 그 사회가 내세우는 이데올로기를 유지·강화하기 위하여 무고한 주민들을 희생시키는 지에 관심을 갖게 하였고,끝내 미국 역사상 가장 끔찍했던 1692년 살렘 마녀 재판이라는 역사 현장을 극의 소재로 삼게 했다.
1692년 매사추세츠주 살렘.뉴잉글랜드의 이 작은 마을의 적막 속에 마녀소동의 울부짖음이 메아리친다.소녀들의 집단적 히스테리가 이 청교도 마을을 휩쓸면서 그 지역에 팽배했던 집단적 위선과 악령 공포증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마녀가 모든 고통의 근원이라는 것을 증명하려는 목사들과 재판관들의 무모한 권위와 탐욕스럽고 서로 헐뜯기 좋아하는 마을 유지들의 무지는 수많은 무고한 마을 사람들을 교수형으로 이끈다.
이 중심에 아름답지만 사악한 17살짜리 소녀 애비게일과 농부요,남편이며 존경받는 시민 존 프록터가 서 있다.
이 극의 중심 플롯을 구성하고 있는 것은 농부 프록터의 진실 밝히기 작업과 이 작업을 막기 위해 벌어지는 두 가지 전략이다.
하나는 애비게일의 이교적이며 연극적인 전략이요 다른 하나는 청교도 신정체제가 펼치는 재판전략이다.
살렘 청교도 사회에서 체제비판적인 인물로 비판받고 있었던 프록터가 마녀의 우두머리로 고발되어 재판정에 서게 된다.
한편으로는 프록터의 사랑을 쟁취하기 위하여 사악한 애비게일이 주도하는 거짓과 연극에 의해,다른 한편으로는 합법적인 권력기구인 법정이 체제 유지를 위하여 꾸미는 보이지 않는 전략에 의해 프록터는 비극의 세계로 빠져든다.
프록터의 부인 엘리자베스를 죽이려는 애비게일의 간악한 음모와 복수가 펼쳐지고,청교도 교리를 미끼로 자유와 인권을 탄압하는 교회와 법정이 거짓 자백을 강요하지만,프록터는 애비게일과 법정의 이 교모한 두 전략에 맞서 항거한다.
애비게일의 거짓과 교회 법정의 불의를 목도한 프록터는 진실을 드러내기 위해 법정에 뛰어든다.애비게일과의 불륜 관계를 폭로하여 스스로 자신의 명예를 가차없이 던져버릴 뿐만 아니라 거짓 고백과 삶 대신 진실과 죽음을 선택한다.
밀러는 이 극에서 17세기 말 청교도 사회의 신정체제와 1950년대 미국 자본주의체제간의 유사성에 주목하여 1692년 청교도 사회를 1952년 미국의 매카시즘과 연결시킨다.프록터를 비극으로 몰아넣는 데는 살렘 지배계층의 사법 통제 이외에도 프록터 부인 엘리자베스에게 해를 가하기 위해 거짓과 마술 연기로 청교도 이데올로기를 철저히 악용한 애비게일도 한 몫을 했다.
그러나 밀러의 관심은 체포와 문책,자백이라는 외견상 매우 합리적으로 보이는 재판의 정규 절차에 의존하지만 실은 불의에 가득찬 청교도 법정의 고발에 더 기울어져 있다.
밀러는 한 사회가 자기 체제의 지배적 교리에 어긋나는 자들을 주변으로 몰아 희생시키는,보이지 않는 정치적 탄압 행위를 체제 비판적인 인물 프록터의 입장에서 혹독하게 비판한다.
밀러는 17세기 살렘의 청교도 지도자들이 악마나 마녀의 존재를 하나의 무기,즉 ‘어느 특정한 교회나 국가에 복종할 수 있도록 어느 시대나 항상 반복적으로 고안되고 사용되어 온 무기’로 이용했을 뿐이며,무지한 마을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이들과 함께 마녀로 지목받은 자들에게 돌을 던진 것일 뿐이라고 냉철하게 진단을 내린다.
청교도 교리나 법에 맞게 행동하면 진실한 사람이며,이 교리에 어긋나면 악마라고 진단하는 독선적 흑백논리는 17세기 살렘이나 1950년대 미국에서 뿐만 아니라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든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항상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다.
이러한 현상은 인간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정치 정부 기업,심지어는 학교 등에 이르는) 사회의 어느 조직에서나 지배층은 자기의 권위와 기득권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자신이 몸담고 있는 체제의 이데올로기를 위협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이는 국제 관계에서도 예외는 아니다.강대국은 자국에 반기를 드는 국가에 대해 무자비하게 응징한다.
최근 우리의 정치사가 이에 대한 살아 있는 증거를 보여주고 있다.군인 독재 정권의 유지를 위해 얼마나 많은 무고한 인사들이 반체제주의자라는 이름아래 희생되었는가.물론 정부 기업 학교 등에서도 많은 예들이 존재한다.체제에 맞서 진실을 말했던 지식인 학생 노동자 시인,학교의 비리에 맞서 싸우는 진실한 교사,잘못된 관행을 깨고 제도 혁신을 시도해보는 참신한 공무원이나 회사원,이들은 모두 부당한 살렘의 법정에 의연히 맞섰던 프록터의 정신적 동지들이다.
◎아서 밀러는 누구인가/사회비판에 심리분석 결합 탁월
대표작 ‘세일즈맨의 죽음’과 마릴린 먼로의 결혼으로 유명한 미국의 극작가 아서 밀러는 1915년 뉴욕에서 태어났다.고등학교를 마칠 무렵 밀어닥친 대공황으로 학업을 지속할 수 없었던 밀러는 2년간 학비를 번 후에야 1934년 미시간 대학에 입학했다.대학 시절 그는 극작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여러번 상을 받을 정도의 극작 실력을 과시했다.‘모든 나의 아들들’(1947)로 뉴욕드라마비평가상을 받았으며,‘세일즈맨의 죽음’(1949)으로 엄청난 국제적 명성을 얻었다.그러나 1950년 초에는 공산주의 연루설로 미국 의회로부터 모욕과 경멸을 받는 고통을 감수해야만 했다.(브뤼셀에서 개막되기로 했던 그의 극 ‘크루서블’〈1953〉의 공연 참가를 저지당했을 뿐만 아니라,1956년에는 의회의 반미국적행위조사위원회에 소환되어 조사받았다) 1956년 마릴린 먼로와 결혼한 후 1961년 이혼했다.9년의 공백 이후 자서전적인 ‘추락 이후’를 가지고 1964년 무대로 되돌아왔으며 그후 최근까지도 극작활동을 계속해 왔다.심리의 심층 분석과 비판적인 사회적 안목을 결합하는데 탁월한 재질을 가진 그는 테네시 윌리엄스와 더불어 2차대전 이후 미국 최고의 극작가로 일컬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