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누의 탄생
한연희
리지는 실제 인물이다 영화로 만들어진 리지의 이야기는 서글프기만 했다 대신 네모반듯한 비누에게
리지의 이름을 붙여주었다 욕실 안에 놓인 리지는 글리세린과 코코베타인이 주성분이다 특별히 영혼 일
그램을 넣었다 그러자 변화무쌍한 리지가 탄생했다
리지는 브리짓이라는 하녀를 좋아했다 브리짓과 리지는 전혀 다른 영혼이었다 리지는 새어머니를 도
끼로 내려쳤다 벌거벗은 채 그랬다 빨간 핏방울이 그녀의 목과 가슴을 적셨을 때 진정 한 인간이 되었다
비누는 리지를 닦는다 피의 이력을 지운다 리지의 성분이 비누를 비누답게 만든다
브리짓은 자신을 더럽힌 주인에게 도끼를 들었다 실패했다 벌거벗은 비누가 대신 죽이자 브리짓은 울
기만 했다 리지는 침착하게 현장을 정리했다 도끼를 닦는 비누, 알리바이를 만드는 비누, 죄를 어루만지면
거품을 일으킨다 이것은 죄가 아니다 이것은 죄가 아니다
잿물과 산비둘기의 피로 이루어진 비누가 있다 글리세린과 코코베타인의 가족인 리지가 있다 그녀에게
는 죄책감이 일 그램도 없다 비누는 재판에서 깨끗함을 인정받는다 브리짓을 떠난 리지는 홀로 살다가 생
을 마감한다 불을 끄면 욕실에서 가끔 피비린내가 난다 리지를 손에 꾸욱 쥔다
한연희
경기 광명 출생. 2016년 〈창비〉 신인상 등단.
시집 2020 『폭설이었다 그다음은』, 2023 『희귀종눈물귀신버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