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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0 아! 어머니 원통합니다. 왜 나를 낳으셨습니까? 온 세상이 다 나에게 시비를 걸어오고, 싸움을 걸어옵니다. 나는 아무에게도 빚을 진 일도 없고, 빚을 준 일도 없는데, 모든 사람이 다 나를 저주합니다.
15:11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분명히 너를 강하게 해주고, 네가 복을 누리게 하겠다. 네 원수가 재앙을 당하여 궁지에 빠질 때에, 그가 너를 찾아와서 간청하게 하겠다."
15:12 "누가 쇠 곧 북녘에서 오는 쇠와 놋쇠를 부술 수 있겠느냐?
15:13 유다 백성아, 너희가 나라 구석구석에서 지은 모든 죄 값으로, 너희의 재산과 보물을 아무런 값도 못받는 약탈품으로 원수에게 내주겠다.
15:14 나는 너희를, 너희가 알지도 못하는 땅으로 끌고가서, 너희 원수들을 섬기게 하겠다. 내 분노가 불처럼 타올라 너희를 사를 것이다."
15:15 주님, 주님께서는 저를 아시니, 저를 잊지 말고 돌보아 주십시오. 저를 핍박하는 사람들에게 원수를 갚아 주십시오! 주님께서 진노를 오래 참으시다가 그만, 저를 잡혀 죽게 하시는 일은 없게 하여 주십시오. 제가 주님 때문에 이렇게 수모를 당하는 줄을, 주님께서 알아 주십시오.
15:16 만군의 주 하나님, 저는 주님의 이름으로 불리는 사람입니다. 주님께서 저에게 말씀을 주셨을 때에, 저는 그 말씀을 받아먹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저에게 기쁨이 되었고, 제 마음에 즐거움이 되었습니다.
15:17 저는, 웃으며 떠들어대는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즐거워하지도 않습니다. 주님께서 채우신 분노를 가득 안은 채로, 주님의 손에 붙들려 외롭게 앉아 있습니다.
15:18 어찌하여 저의 고통은 그치지 않습니까? 어찌하여 저의 상처는 낫지 않습니까? 주님께서는, 흐르다가도 마르고 마르다가도 흐르는 여름철의 시냇물처럼, 도무지 믿을 수 없는 분이 되셨습니다.
15:19 "나 주가 말한다. 네가 돌아오면, 내가 너를 다시 맞아들여 나를 섬기게 하겠다. 또 네가 천박한 것을 말하지 않고, 귀한 말을 선포하면, 너는 다시 나의 대변자가 될 것이다. 너에게로 돌아와야 할 사람들은 그들이다. 네가 그들에게 돌아가서는 안 된다.
15:20 내가 너를 튼튼한 놋쇠 성벽으로 만들어서 이 백성과 맞서게 하겠다. 그들이 너에게 맞서서 덤벼들겠지만, 너를 이기지는 못할 것이다.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어서, 너를 도와주고, 너를 구원하여 주겠다. 나 주의 말이다.
15:21 내가 너를 악인들의 손에서도 건져내고, 잔악한 사람들의 손에서도 구하여 내겠다."
◈ 주해
1. 생수의 근원되신 하나님을 버리고 스스로 웅덩이를 파는 유다는 교만함으로 썩은 베띠처럼 쓸모없게 되었다.
1) 에디오피아 사람이 자기 피부색을 바꿀 수 없듯이 그들은 선을 행할 수 없다(13:23)
2) 예레미야는 유다의 교만 때문에 밤낮 눈물을 흘리고, 언약의 약속대로 심판하시는 하나님도 밤낮으로 통곡하신다(14:17).
2. 백성들이 너무나 완악하고 패역하여서 모세와 사무엘이 기도해도 하나님의 마음은 백성들에게 향할 수 없다(렘 15:1).
1) 너무나 고집센 백성들로 인하여 하나님은 더 이상 뜻을 돌이키기에도 지쳤다.
렘 15:6 네가 바로 나를 버린 자다. 나 주의 말이다. 너는 늘 나에게 등을 돌리고 떠나갔다. 나는 이제 너를 불쌍히 여기기에도 지쳤다. 너를 멸망시키려고 내가 손을 들었다.
- 개역: 내가 뜻을 돌이키기에 지쳤음이로다.
-공동번역 렘 15:6 너는 나를 우습게 여겼다...너를 불쌍히 보아 주는 것도 나는 이제 싫증이 났다.
3. 오늘 본문은 심판의 말씀을 전하는 예레미야가 소명의 한계 앞에서 하나님께 탄원하며, 하나님이 그를 일으켜 세우시는 말씀이다.
1) 예레미야는 심판의 말씀을 전하면서 당한 고난을 토로한다.
렘 15:10 아! 어머니 원통합니다. 왜 나를 낳으셨습니까? 온 세상이 다 나에게 시비를 걸어오고, 싸움을 걸어옵니다. 나는 아무에게도 빚을 진 일도 없고, 빚을 준 일도 없는데, 모든 사람이 다 나를 저주합니다.
2) 예레미야가 모태에서 선지자로 부름을 받았지만(1:5) 그가 전하는 심판의 말씀에 대하여 온 세상, 모든 백성들이 시비를 걸고 싸움을 걸어왔다. 심지어 예레미야를 저주한다.
4. 예레미야는 장사하는 사람도 아니고 정치인도 아니다. 정치인이라면 시비와 싸움을 이겨서 권력을 쟁취하면 된다.
1) 그러나 예레미야는 모든 백성들을 영적으로 살리고, 하나님께로 인도하고자 하는 선지자인데, 모든 백성이 시비를 걸어오고 저주를 한다는 것은 견딜 수 없는 일이다.
2) 예레미야는 백성들의 교만으로 인하여 밤낮으로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는데, 그 백성들은 도리어 예레미야에게 시비를 걸고 저주를 퍼 붓는다.
3) 어떻게 더 이상 선지자의 사명을 감당할 수가 있겠는가?
5. 저주받는 종의 탄원을 들은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강하게 하고 복주겠다고 약속하신다.
렘 15:11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분명히 너를 강하게 해주고, 네가 복을 누리게 하겠다. 네 원수가 재앙을 당하여 궁지에 빠질 때에, 그가 너를 찾아와서 간청하게 하겠다."
1) 하나님은 예레미야의 말대로 심판을 집행함으로써, 예레미야가 참 선지자임을 증거해 주실 것이다. 그리고 예레미야를 강하게 해 주어 말씀을 전할 힘도 주실 것이다.
2) 예레미야의 말씀이 실현된 것을 본 백성들은 전에는 시비를 걸고 저주했던 예레미야에게 찾아와서 간청하게 하겠다고 하신다.
6. 예레미야의 말씀은 바벨론에 의해 집행된다.
1) 북쪽에서 오는 바벨론 군대가 유다 백성을 부순다!
렘 15:14 나는 너희를, 너희가 알지도 못하는 땅으로 끌고가서, 너희 원수들을 섬기게 하겠다. 내 분노가 불처럼 타올라 너희를 사를 것이다."
2) 긍휼의 하나님은 또한 공의대로 진노하시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분노가 불처럼 타올라서 백성들을 사를 것이다.
7. 예레미야는 자신의 선포를 거부하고 자신을 괴롭힌 자들에게 복수를 청원한다.
1) 하나님이 괴롭힌 자들에게 너무나 관대하여 그들이 자기를 멸망하지 않기를 간구한다.
2) 예레미야가 괴롭힘을 당하고 부끄러움을 당하는 이유는 주님께 순종했기 때문이다.
8. 사명을 감당하기에 한계에 이른 예레미야는 그동안 자신이 사명에 신실했음을 말한다.
렘 15:16 만군의 주 하나님, 저는 주님의 이름으로 불리는 사람입니다. 주님께서 저에게 말씀을 주셨을 때에, 저는 그 말씀을 받아먹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저에게 기쁨이 되었고, 제 마음에 즐거움이 되었습니다.
1) 예레미야는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그대로 받아먹었고, 그 말씀은 예레미야의 기쁨과 즐거움이 되었다.
2) 그가 하나님의 사람이기 때문에 말씀이 그에게 즐거움이자 기쁨이 되었다.
9. 심판의 말씀을 전하고 싶은 선지자(목회자)는 없다. 그러나 보내심을 받은 자는 보낸 자의 말씀을 전해야 한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심판의 말씀을 그대로 전하였다.
1) 그 결과 모든 백성들은 예레미야에게 시비를 걸고 싸움을 걸고 저주함으로 가혹할 정도로 ‘고독의 대가’를 치러야 했다.
2) 예레미야는 그들이 벌인 잔치의 자리에 가지 않았고 오직 주의 손에 붙들려 있었다.
- 이는 주께서 그에게 분노로 채우셨기 때문이다.
3) 주께서 분노로 채우셔야 할 자들은 말씀을 거부하는 백성들인데, 예레미야는 그 진노가 자신에게 쏟아지고 있다고 말한다.
- 충성된 선지자는 주께서 분노를 쏟으시는 백성들과 함께 진노를 당한다.
4) 예수님이 우리가 받을 심판을 같이 받으셨기 때문이다.
10. 예레미야는 이 고난이 언제까지 지속할 것인지 하나님께 묻는다.
렘 15:18 어찌하여 저의 고통은 그치지 않습니까? 어찌하여 저의 상처는 낫지 않습니까? 주님께서는, 흐르다가도 마르고 마르다가도 흐르는 여름철의 시냇물처럼, 도무지 믿을 수 없는 분이 되셨습니다.
1) 예레미야는 하나님께 속았다고 말한다. 생수의 근원이신 주님의 말씀을 받아먹고 전하면 생수로 인한 기쁨이 넘칠 줄 알았는데, 고통이 그치지 않고, 상처가 낫지 않기 때문이다.
2) 예레미야가 받는 고통에 즉시 개입하지 않아서 예레미야는 지치고 목이 말랐다.
- 이제는 주의 분노로 인한 고독을 감내할 수 없을 정도다.
11. 하나님은 사명에 충성하다가 지친 예레미야를 다시 사명으로 부르시며 돕겠다고 말씀한다.
렘 15:19 "나 주가 말한다. 네가 돌아오면, 내가 너를 다시 맞아들여 나를 섬기게 하겠다. 또 네가 천박한 것을 말하지 않고, 귀한 말을 선포하면, 너는 다시 나의 대변자가 될 것이다. 너에게로 돌아와야 할 사람들은 그들이다. 네가 그들에게 돌아가서는 안 된다.
1) 백성들의 시비와 저주로 지친 예레미야를 이해하면서도, 하나님은 예레미야가 다시 하나님의 선지자로 돌아와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2) 백성들이 예레미야에게 돌아와야지, 예레미야가 백성들에게 돌아가서는 않된다.
- 아무리 지치고, 억울하고, 고통스러워도 끝까지 하나님 품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한다. 그래서 그 악독한 백성들이 예레미야에게 돌아와야 한다.
12. 예레미야는 순수한 복음, 심판의 말씀을 순수하게 전하여 핍박을 받았다.
1)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을 선포하는 그에게 참된 것과 헛된 것을 섞지 말라고 하신다.
2) “천박한 것을 말하지 않고, 귀한 말을 선포하면”은 “귀한 것에서 헛된 것을 제하면”이 정확한 번역이다.
- 즉 귀한 것에 헛된 것을 “섞지 말라”는 말씀이다.
3) 말씀을 적절히 썩으면 핍박당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비록 시비를 걸어오고, 싸움을 걸어와도 말씀을 썩지 말고, 순전한 복음, 심판의 복음을 계속 전해야 한다.
13. 핍박에도 불구하고 예레미야가 순전한 복음을 그대로 전하면 하나님이 예레미야를 놋쇠 성벽처럼 강하게 세우신다.
렘 15:20 내가 너를 튼튼한 놋쇠 성벽으로 만들어서 이 백성과 맞서게 하겠다. 그들이 너에게 맞서서 덤벼들겠지만, 너를 이기지는 못할 것이다.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어서, 너를 도와주고, 너를 구원하여 주겠다. 나 주의 말이다.
렘 15:21 내가 너를 악인들의 손에서도 건져내고, 잔악한 사람들의 손에서도 구하여 내겠다."
1) 백성들은 여전히 심판의 복음을 전하는 예레미야에게 시비를 걸고 싸움을 걸고, 저주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예레미야를 놋성벽처럼 강하게 하심으로 백성과 맞서게 하신다.
2) 선지자라도 백성들의 시비를 받아주고, 억울함을 당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백성들과 맞서게 하시고, 백성들을 이기게 하신다.
- 백성들의 위협과 공격에서 예레미야를 도와주고 구원하여 주신다.
14.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 복음을 순수하게 전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교만한 사람들은 복음을 전하면 시비를 걸고, 싸움을 건다.
1) 교만한 사람들, 자기 유익을 구하는 이들을 지지하는 거짓 선지자들은 참으로 많다.
2) 그러나 거듭난 사람들의 특징은 듣고 싶은 말씀이 아니라, 들어야 할 말씀을 듣는다.
요 6:67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물으셨다. "너희까지도 떠나가려 하느냐?"
요 6:68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였다. "주님,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겠습니까? 선생님께는 영생의 말씀이 있습니다.
3) 생명이 있는 자는 모든 사람이 주님을 떠나갈 때, 생명을 주는 말씀 때문에 주님 곁에 머무른다.
4) 교회는 하나님의 생명을 주는 복음,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장사됨과 부활의 복음을 전해야 한다(롬 6:4). 사람들이 거부하는 장사복음, 심판의 복음도 증거해야 한다.
15. 바울은 오직 생명(조에)을 주는 복음을 위해 자신을 바쳤다(딤후 1:1, 10-11).
1) 그리고 예레미야처럼 바울 역시 복음을 전하면서 고난과 박해를 받았다(딤후 1:8).
2)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님께 받은 말씀, 복음 외에 어떤 것도 전하지 않았다.
- ...복음을 위탁 받았으니 우리가 이와 같이 말함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요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살전 2:4).
◈ 나의 묵상
비참한 존재
나는 귀한 것에서 헛된 것을 썩어서 말씀을 전한 자다. 예레미야가 지치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너무나 공감된다. 정치와 사업을 위해서 비난받고, 시비를 걸어오는 것이야 다반사다. 권력을 얻어서 적을 제압하면 통쾌하다. 그러나 목자가 양에게 시비를 당하고, 양을 위해 눈물을 흘리고 있는데, 그 양이 와서 치받는 것은 너무나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것도 이유가 하나님의 말씀을 순수하게 전했기 때문이라니...어쩌란 말인가? 같이 저주하기도 힘들다. 같이 시비하기도 힘들다. 같이 싸우기도 힘들다. 적이라면 저주하고 싸우면 되지만, 복음을 알아 생명을 얻게 해야 할 자와 싸우면, 그 자체가 또 고통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기에 그만 두고 싶은 마음이 이해된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이런 고통 중에서도 말씀을 혼합하지 않고, 썩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사람을 두려워하여, 순수한 복음을 전하지 못한다. 복음을 모르면 모르는 대로 썩어서 전했고, 복음을 알면서도 복음을 거부하는 사람들에게 직면하면 복음을 순전하게 전하지 못한다. 사람을 기쁘게 하려는 마음에 속는다. 하나님도 좋고 사람도 좋으면 좋다는 합리화 속에서 복음을 흐리게 한다. 비성경적인 반박이 종종 있다. 말씀묵상을 왜 강조하냐는 반박도 받는다. 성경적인 반박은 전혀 없다. 모두 자기 기준, 다른 교회 기준이다. 문제는 그런 비진리에 내가 흔들린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음이 드러난다. 사람의 종인지 하나님의 종인지 모르겠다. 생명 목회는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만을 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비방하고, 시비를 걸고, 떠나도 주님의 생명을 받고, 그대로 흘려 보내는 것이어야 한다.
2. 복음을 통하여 생명을 환하게 나타내다.
교만해진 나, 하나님을 이용하는 나, 사람을 두려워하는 나를 하나님이 공의로 심판하심은 순전한 복음을 전하게 하려 함이다. 생명 얻게 하는 복음, 이것을 증거하라고 나를 부르셨는데, 나는 사람들을 기쁘게 하여서 결국 나의 유익을 취하려고 하였다. 놀랍게도 생명 얻게 하는 복음을 전하여 나의 유익을 취하려는 악함이 있다. 목회로 부르신 목적이 교회성장, 보란 듯 목회, 안정된 삶, 풍요로운 삶이 아니라, 생명얻게 하는 복음을 전하여, 생명의 공동체,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기 위함이다. 주님은 다시 생명목회로 돌아오라고 하신다. 그러면 놋성벽처럼 세워주시고 함께 하여 주신다고 말씀하신다.
내가 놋 성벽이 되지 못함은 순전한 복음을 전하는 자로 주께로 돌아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진리가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타협해서 사람들과 충돌하지 않고, 사람들에게 만족을 주고자 했던 빌라도의 마음이 내 안에 있다. 인정하고 자백하며, 십자가로 나아간다. 그 헛된 마음과 옛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는다. 주의 일을 하여 높아지고자 했던 자기주장의지를 십자가에 못 박는다. 육신으로 행한 헌신이 개요 행악자임을 고백한다. 하나님이 불쌍히 여기기에도 싫증이 나게 했다. 중심이 없는 회개와 생명의 교제가 얼마나 많았는가? 주님이 말씀하셔도 소경에 귀읽기였던 자임을 인정하며 십자가의 긍휼과 사랑으로 나아간다. 이 마음을 누가 알고 누가 고치겠는가? 표범이 반점을 바꿀 수 없지만 주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장사복음, 심판의 복음에 아멘한다. 주님이 정하신 방법과 때로 무너뜨리시고, 세우심이 옳다. 감히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복음을 통하여 나갈 수 있는 은총을 주신 것을 감사하며 십자가를 통하여 아버지 집에 거한다. 이 묵상은 나의 의가 아니라 주님이 주신 은혜의 방편이다.
◈ 묵상 기도
주님, 사람들은 완악하고 저는 연약합니다. 완악하고 연약한 제가 생명얻게 하는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맡았습니다. 예레미야도 지치고 힘든 이 길, 저 같은 자가 감히 어찌 가겠습니까? 사소한 반대와 시비에도 마음이 흔들립니다. 그래도 부르신 주님 때문에, 주님의 말씀을 받아 먹습니다. 날마다 주의 말씀을 받아먹음으로 주의 말씀이 내게 기쁨과 즐거움이 되게 하옵소서. 그 생명의 양식으로 놋 성벽처럼 되어 담대히 복음을 전하게 하옵소서. 그리고 그 전에 먼저 하나님을 이용하는 나, 겉으로는 하나님을 위하는척 하면서 하나님을 이용하는 저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듣는 척하면서 듣지 않는 저를 심판하심을 겸손히 받아들여 생명을 얻게 하옵소서. 스스로 나갈 수 없는 이 무덤에서 잠잠히 말씀을 받아 먹게 하옵소서. 유초등부 성경학교를 통하여 주님이 다음세대를 영으로 생명으로 만나 주십시오. 김동환 선교사님의 말씀을 통하여 성령께서 강력하게 말씀하여 주옵소서. 결국은 모든 것이 주님의 뜻과 부르심대로 되어 주님이 영광을 받아 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15:10 아! 어머니 원통합니다. 왜 나를 낳으셨습니까? 온 세상이 다 나에게 시비를 걸어오고, 싸움을 걸어옵니다. 나는 아무에게도 빚을 진 일도 없고, 빚을 준 일도 없는데, 모든 사람이 다 나를 저주합니다.
15:11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분명히 너를 강하게 해주고, 네가 복을 누리게 하겠다. 네 원수가 재앙을 당하여 궁지에 빠질 때에, 그가 너를 찾아와서 간청하게 하겠다."
15:12 "누가 쇠 곧 북녘에서 오는 쇠와 놋쇠를 부술 수 있겠느냐?
15:13 유다 백성아, 너희가 나라 구석구석에서 지은 모든 죄 값으로, 너희의 재산과 보물을 아무런 값도 못받는 약탈품으로 원수에게 내주겠다.
15:14 나는 너희를, 너희가 알지도 못하는 땅으로 끌고가서, 너희 원수들을 섬기게 하겠다. 내 분노가 불처럼 타올라 너희를 사를 것이다."
15:15 주님, 주님께서는 저를 아시니, 저를 잊지 말고 돌보아 주십시오. 저를 핍박하는 사람들에게 원수를 갚아 주십시오! 주님께서 진노를 오래 참으시다가 그만, 저를 잡혀 죽게 하시는 일은 없게 하여 주십시오. 제가 주님 때문에 이렇게 수모를 당하는 줄을, 주님께서 알아 주십시오.
15:16 만군의 주 하나님, 저는 주님의 이름으로 불리는 사람입니다. 주님께서 저에게 말씀을 주셨을 때에, 저는 그 말씀을 받아먹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저에게 기쁨이 되었고, 제 마음에 즐거움이 되었습니다.
15:17 저는, 웃으며 떠들어대는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즐거워하지도 않습니다. 주님께서 채우신 분노를 가득 안은 채로, 주님의 손에 붙들려 외롭게 앉아 있습니다.
15:18 어찌하여 저의 고통은 그치지 않습니까? 어찌하여 저의 상처는 낫지 않습니까? 주님께서는, 흐르다가도 마르고 마르다가도 흐르는 여름철의 시냇물처럼, 도무지 믿을 수 없는 분이 되셨습니다.
15:19 "나 주가 말한다. 네가 돌아오면, 내가 너를 다시 맞아들여 나를 섬기게 하겠다. 또 네가 천박한 것을 말하지 않고, 귀한 말을 선포하면, 너는 다시 나의 대변자가 될 것이다. 너에게로 돌아와야 할 사람들은 그들이다. 네가 그들에게 돌아가서는 안 된다.
15:20 내가 너를 튼튼한 놋쇠 성벽으로 만들어서 이 백성과 맞서게 하겠다. 그들이 너에게 맞서서 덤벼들겠지만, 너를 이기지는 못할 것이다.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어서, 너를 도와주고, 너를 구원하여 주겠다. 나 주의 말이다.
15:21 내가 너를 악인들의 손에서도 건져내고, 잔악한 사람들의 손에서도 구하여 내겠다."
◈ 주해
1. 생수의 근원되신 하나님을 버리고 스스로 웅덩이를 파는 유다는 교만함으로 썩은 베띠처럼 쓸모없게 되었다.
1) 에디오피아 사람이 자기 피부색을 바꿀 수 없듯이 그들은 선을 행할 수 없다(13:23)
2) 예레미야는 유다의 교만 때문에 밤낮 눈물을 흘리고, 언약의 약속대로 심판하시는 하나님도 밤낮으로 통곡하신다(14:17).
2. 백성들이 너무나 완악하고 패역하여서 모세와 사무엘이 기도해도 하나님의 마음은 백성들에게 향할 수 없다(렘 15:1).
1) 너무나 고집센 백성들로 인하여 하나님은 더 이상 뜻을 돌이키기에도 지쳤다.
렘 15:6 네가 바로 나를 버린 자다. 나 주의 말이다. 너는 늘 나에게 등을 돌리고 떠나갔다. 나는 이제 너를 불쌍히 여기기에도 지쳤다. 너를 멸망시키려고 내가 손을 들었다.
- 개역: 내가 뜻을 돌이키기에 지쳤음이로다.
-공동번역 렘 15:6 너는 나를 우습게 여겼다...너를 불쌍히 보아 주는 것도 나는 이제 싫증이 났다.
3. 오늘 본문은 심판의 말씀을 전하는 예레미야가 소명의 한계 앞에서 하나님께 탄원하며, 하나님이 그를 일으켜 세우시는 말씀이다.
1) 예레미야는 심판의 말씀을 전하면서 당한 고난을 토로한다.
렘 15:10 아! 어머니 원통합니다. 왜 나를 낳으셨습니까? 온 세상이 다 나에게 시비를 걸어오고, 싸움을 걸어옵니다. 나는 아무에게도 빚을 진 일도 없고, 빚을 준 일도 없는데, 모든 사람이 다 나를 저주합니다.
2) 예레미야가 모태에서 선지자로 부름을 받았지만(1:5) 그가 전하는 심판의 말씀에 대하여 온 세상, 모든 백성들이 시비를 걸고 싸움을 걸어왔다. 심지어 예레미야를 저주한다.
4. 예레미야는 장사하는 사람도 아니고 정치인도 아니다. 정치인이라면 시비와 싸움을 이겨서 권력을 쟁취하면 된다.
1) 그러나 예레미야는 모든 백성들을 영적으로 살리고, 하나님께로 인도하고자 하는 선지자인데, 모든 백성이 시비를 걸어오고 저주를 한다는 것은 견딜 수 없는 일이다.
2) 예레미야는 백성들의 교만으로 인하여 밤낮으로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는데, 그 백성들은 도리어 예레미야에게 시비를 걸고 저주를 퍼 붓는다.
3) 어떻게 더 이상 선지자의 사명을 감당할 수가 있겠는가?
5. 저주받는 종의 탄원을 들은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강하게 하고 복주겠다고 약속하신다.
렘 15:11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분명히 너를 강하게 해주고, 네가 복을 누리게 하겠다. 네 원수가 재앙을 당하여 궁지에 빠질 때에, 그가 너를 찾아와서 간청하게 하겠다."
1) 하나님은 예레미야의 말대로 심판을 집행함으로써, 예레미야가 참 선지자임을 증거해 주실 것이다. 그리고 예레미야를 강하게 해 주어 말씀을 전할 힘도 주실 것이다.
2) 예레미야의 말씀이 실현된 것을 본 백성들은 전에는 시비를 걸고 저주했던 예레미야에게 찾아와서 간청하게 하겠다고 하신다.
6. 예레미야의 말씀은 바벨론에 의해 집행된다.
1) 북쪽에서 오는 바벨론 군대가 유다 백성을 부순다!
렘 15:14 나는 너희를, 너희가 알지도 못하는 땅으로 끌고가서, 너희 원수들을 섬기게 하겠다. 내 분노가 불처럼 타올라 너희를 사를 것이다."
2) 긍휼의 하나님은 또한 공의대로 진노하시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분노가 불처럼 타올라서 백성들을 사를 것이다.
7. 예레미야는 자신의 선포를 거부하고 자신을 괴롭힌 자들에게 복수를 청원한다.
1) 하나님이 괴롭힌 자들에게 너무나 관대하여 그들이 자기를 멸망하지 않기를 간구한다.
2) 예레미야가 괴롭힘을 당하고 부끄러움을 당하는 이유는 주님께 순종했기 때문이다.
8. 사명을 감당하기에 한계에 이른 예레미야는 그동안 자신이 사명에 신실했음을 말한다.
렘 15:16 만군의 주 하나님, 저는 주님의 이름으로 불리는 사람입니다. 주님께서 저에게 말씀을 주셨을 때에, 저는 그 말씀을 받아먹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저에게 기쁨이 되었고, 제 마음에 즐거움이 되었습니다.
1) 예레미야는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그대로 받아먹었고, 그 말씀은 예레미야의 기쁨과 즐거움이 되었다.
2) 그가 하나님의 사람이기 때문에 말씀이 그에게 즐거움이자 기쁨이 되었다.
9. 심판의 말씀을 전하고 싶은 선지자(목회자)는 없다. 그러나 보내심을 받은 자는 보낸 자의 말씀을 전해야 한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심판의 말씀을 그대로 전하였다.
1) 그 결과 모든 백성들은 예레미야에게 시비를 걸고 싸움을 걸고 저주함으로 가혹할 정도로 ‘고독의 대가’를 치러야 했다.
2) 예레미야는 그들이 벌인 잔치의 자리에 가지 않았고 오직 주의 손에 붙들려 있었다.
- 이는 주께서 그에게 분노로 채우셨기 때문이다.
3) 주께서 분노로 채우셔야 할 자들은 말씀을 거부하는 백성들인데, 예레미야는 그 진노가 자신에게 쏟아지고 있다고 말한다.
- 충성된 선지자는 주께서 분노를 쏟으시는 백성들과 함께 진노를 당한다.
4) 예수님이 우리가 받을 심판을 같이 받으셨기 때문이다.
10. 예레미야는 이 고난이 언제까지 지속할 것인지 하나님께 묻는다.
렘 15:18 어찌하여 저의 고통은 그치지 않습니까? 어찌하여 저의 상처는 낫지 않습니까? 주님께서는, 흐르다가도 마르고 마르다가도 흐르는 여름철의 시냇물처럼, 도무지 믿을 수 없는 분이 되셨습니다.
1) 예레미야는 하나님께 속았다고 말한다. 생수의 근원이신 주님의 말씀을 받아먹고 전하면 생수로 인한 기쁨이 넘칠 줄 알았는데, 고통이 그치지 않고, 상처가 낫지 않기 때문이다.
2) 예레미야가 받는 고통에 즉시 개입하지 않아서 예레미야는 지치고 목이 말랐다.
- 이제는 주의 분노로 인한 고독을 감내할 수 없을 정도다.
11. 하나님은 사명에 충성하다가 지친 예레미야를 다시 사명으로 부르시며 돕겠다고 말씀한다.
렘 15:19 "나 주가 말한다. 네가 돌아오면, 내가 너를 다시 맞아들여 나를 섬기게 하겠다. 또 네가 천박한 것을 말하지 않고, 귀한 말을 선포하면, 너는 다시 나의 대변자가 될 것이다. 너에게로 돌아와야 할 사람들은 그들이다. 네가 그들에게 돌아가서는 안 된다.
1) 백성들의 시비와 저주로 지친 예레미야를 이해하면서도, 하나님은 예레미야가 다시 하나님의 선지자로 돌아와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2) 백성들이 예레미야에게 돌아와야지, 예레미야가 백성들에게 돌아가서는 않된다.
- 아무리 지치고, 억울하고, 고통스러워도 끝까지 하나님 품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한다. 그래서 그 악독한 백성들이 예레미야에게 돌아와야 한다.
12. 예레미야는 순수한 복음, 심판의 말씀을 순수하게 전하여 핍박을 받았다.
1)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을 선포하는 그에게 참된 것과 헛된 것을 섞지 말라고 하신다.
2) “천박한 것을 말하지 않고, 귀한 말을 선포하면”은 “귀한 것에서 헛된 것을 제하면”이 정확한 번역이다.
- 즉 귀한 것에 헛된 것을 “섞지 말라”는 말씀이다.
3) 말씀을 적절히 썩으면 핍박당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비록 시비를 걸어오고, 싸움을 걸어와도 말씀을 썩지 말고, 순전한 복음, 심판의 복음을 계속 전해야 한다.
13. 핍박에도 불구하고 예레미야가 순전한 복음을 그대로 전하면 하나님이 예레미야를 놋쇠 성벽처럼 강하게 세우신다.
렘 15:20 내가 너를 튼튼한 놋쇠 성벽으로 만들어서 이 백성과 맞서게 하겠다. 그들이 너에게 맞서서 덤벼들겠지만, 너를 이기지는 못할 것이다.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어서, 너를 도와주고, 너를 구원하여 주겠다. 나 주의 말이다.
렘 15:21 내가 너를 악인들의 손에서도 건져내고, 잔악한 사람들의 손에서도 구하여 내겠다."
1) 백성들은 여전히 심판의 복음을 전하는 예레미야에게 시비를 걸고 싸움을 걸고, 저주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예레미야를 놋성벽처럼 강하게 하심으로 백성과 맞서게 하신다.
2) 선지자라도 백성들의 시비를 받아주고, 억울함을 당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백성들과 맞서게 하시고, 백성들을 이기게 하신다.
- 백성들의 위협과 공격에서 예레미야를 도와주고 구원하여 주신다.
14.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 복음을 순수하게 전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교만한 사람들은 복음을 전하면 시비를 걸고, 싸움을 건다.
1) 교만한 사람들, 자기 유익을 구하는 이들을 지지하는 거짓 선지자들은 참으로 많다.
2) 그러나 거듭난 사람들의 특징은 듣고 싶은 말씀이 아니라, 들어야 할 말씀을 듣는다.
요 6:67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물으셨다. "너희까지도 떠나가려 하느냐?"
요 6:68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였다. "주님,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겠습니까? 선생님께는 영생의 말씀이 있습니다.
3) 생명이 있는 자는 모든 사람이 주님을 떠나갈 때, 생명을 주는 말씀 때문에 주님 곁에 머무른다.
4) 교회는 하나님의 생명을 주는 복음,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장사됨과 부활의 복음을 전해야 한다(롬 6:4). 사람들이 거부하는 장사복음, 심판의 복음도 증거해야 한다.
15. 바울은 오직 생명(조에)을 주는 복음을 위해 자신을 바쳤다(딤후 1:1, 10-11).
1) 그리고 예레미야처럼 바울 역시 복음을 전하면서 고난과 박해를 받았다(딤후 1:8).
2)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님께 받은 말씀, 복음 외에 어떤 것도 전하지 않았다.
- ...복음을 위탁 받았으니 우리가 이와 같이 말함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요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살전 2:4).
◈ 나의 묵상
비참한 존재
나는 귀한 것에서 헛된 것을 썩어서 말씀을 전한 자다. 예레미야가 지치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너무나 공감된다. 정치와 사업을 위해서 비난받고, 시비를 걸어오는 것이야 다반사다. 권력을 얻어서 적을 제압하면 통쾌하다. 그러나 목자가 양에게 시비를 당하고, 양을 위해 눈물을 흘리고 있는데, 그 양이 와서 치받는 것은 너무나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것도 이유가 하나님의 말씀을 순수하게 전했기 때문이라니...어쩌란 말인가? 같이 저주하기도 힘들다. 같이 시비하기도 힘들다. 같이 싸우기도 힘들다. 적이라면 저주하고 싸우면 되지만, 복음을 알아 생명을 얻게 해야 할 자와 싸우면, 그 자체가 또 고통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기에 그만 두고 싶은 마음이 이해된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이런 고통 중에서도 말씀을 혼합하지 않고, 썩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사람을 두려워하여, 순수한 복음을 전하지 못한다. 복음을 모르면 모르는 대로 썩어서 전했고, 복음을 알면서도 복음을 거부하는 사람들에게 직면하면 복음을 순전하게 전하지 못한다. 사람을 기쁘게 하려는 마음에 속는다. 하나님도 좋고 사람도 좋으면 좋다는 합리화 속에서 복음을 흐리게 한다. 비성경적인 반박이 종종 있다. 말씀묵상을 왜 강조하냐는 반박도 받는다. 성경적인 반박은 전혀 없다. 모두 자기 기준, 다른 교회 기준이다. 문제는 그런 비진리에 내가 흔들린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음이 드러난다. 사람의 종인지 하나님의 종인지 모르겠다. 생명 목회는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만을 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비방하고, 시비를 걸고, 떠나도 주님의 생명을 받고, 그대로 흘려 보내는 것이어야 한다.
2. 복음을 통하여 생명을 환하게 나타내다.
교만해진 나, 하나님을 이용하는 나, 사람을 두려워하는 나를 하나님이 공의로 심판하심은 순전한 복음을 전하게 하려 함이다. 생명 얻게 하는 복음, 이것을 증거하라고 나를 부르셨는데, 나는 사람들을 기쁘게 하여서 결국 나의 유익을 취하려고 하였다. 놀랍게도 생명 얻게 하는 복음을 전하여 나의 유익을 취하려는 악함이 있다. 목회로 부르신 목적이 교회성장, 보란 듯 목회, 안정된 삶, 풍요로운 삶이 아니라, 생명얻게 하는 복음을 전하여, 생명의 공동체,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기 위함이다. 주님은 다시 생명목회로 돌아오라고 하신다. 그러면 놋성벽처럼 세워주시고 함께 하여 주신다고 말씀하신다.
내가 놋 성벽이 되지 못함은 순전한 복음을 전하는 자로 주께로 돌아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진리가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타협해서 사람들과 충돌하지 않고, 사람들에게 만족을 주고자 했던 빌라도의 마음이 내 안에 있다. 인정하고 자백하며, 십자가로 나아간다. 그 헛된 마음과 옛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는다. 주의 일을 하여 높아지고자 했던 자기주장의지를 십자가에 못 박는다. 육신으로 행한 헌신이 개요 행악자임을 고백한다. 하나님이 불쌍히 여기기에도 싫증이 나게 했다. 중심이 없는 회개와 생명의 교제가 얼마나 많았는가? 주님이 말씀하셔도 소경에 귀읽기였던 자임을 인정하며 십자가의 긍휼과 사랑으로 나아간다. 이 마음을 누가 알고 누가 고치겠는가? 표범이 반점을 바꿀 수 없지만 주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장사복음, 심판의 복음에 아멘한다. 주님이 정하신 방법과 때로 무너뜨리시고, 세우심이 옳다. 감히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복음을 통하여 나갈 수 있는 은총을 주신 것을 감사하며 십자가를 통하여 아버지 집에 거한다. 이 묵상은 나의 의가 아니라 주님이 주신 은혜의 방편이다.
◈ 묵상 기도
주님, 사람들은 완악하고 저는 연약합니다. 완악하고 연약한 제가 생명얻게 하는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맡았습니다. 예레미야도 지치고 힘든 이 길, 저 같은 자가 감히 어찌 가겠습니까? 사소한 반대와 시비에도 마음이 흔들립니다. 그래도 부르신 주님 때문에, 주님의 말씀을 받아 먹습니다. 날마다 주의 말씀을 받아먹음으로 주의 말씀이 내게 기쁨과 즐거움이 되게 하옵소서. 그 생명의 양식으로 놋 성벽처럼 되어 담대히 복음을 전하게 하옵소서. 그리고 그 전에 먼저 하나님을 이용하는 나, 겉으로는 하나님을 위하는척 하면서 하나님을 이용하는 저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듣는 척하면서 듣지 않는 저를 심판하심을 겸손히 받아들여 생명을 얻게 하옵소서. 스스로 나갈 수 없는 이 무덤에서 잠잠히 말씀을 받아 먹게 하옵소서. 유초등부 성경학교를 통하여 주님이 다음세대를 영으로 생명으로 만나 주십시오. 김동환 선교사님의 말씀을 통하여 성령께서 강력하게 말씀하여 주옵소서. 결국은 모든 것이 주님의 뜻과 부르심대로 되어 주님이 영광을 받아 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