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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력 퇴조에도 미·일 공동패권 꿈꾸는 일본
일본, '격자형 전략구조' 창출, 선봉장 자처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로 '외교대국' 완성
윤석열 무개념에 거대야당의 역할 더 막중
조성렬 북한대학원대학교 초빙교수
지난 4월 10일에 있었던 워싱턴 미·일 정상회담에서 양국은 군사 일체화와 한발 더 나아가 인도·태평양 지역에서의 미·일 공동패권을 추구한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미래를 위한 글로벌 동반자'라는 제목의 미·일 정상 공동성명에서 양국 글로벌 파트너십의 핵심이 ‘미·일 안보조약에 기초한 양국 간 방위·안보협력’이라고 밝혀 군사분야의 공동패권을 지향하고 있음을 분명히 했다. 기시다 총리는 미 의회 연설에서도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우주선에 일본이 동승자가 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며 미·일 글로벌 파트너십을 재확인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11일 백악관에서 열린 3국 정상회담에 앞서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필리핀 대통령(왼쪽),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오른쪽)와 함께 발언하고 있다. 2024.4.11. AP 연합뉴스
이튿날인 4월 11일, 마르코스 주니어 필리핀 대통령이 합류해 개최된 미·일·필리핀 정상회담은 ‘동반자 관계의 새 시대’를 선언했다. 이 자리에서 미국은 일본과 필리핀에 대한 확고한 방위공약을 재확인하고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과 관련해 중국에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또한 중국의 일대일로에 대항하기 위해 대 필리핀 투자프로젝트인 '루손 회랑'을 출범시켰다. 작년 8월 미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담의 데자뷔를 보는 것 같았다.
'팍스 아메리닛폰'의 망령
1980년대 일본이 한창 잘 나가던 시절에 미국 시사주간 타임은 미·일 국제협력관계를 '팍스 아메리닛폰(Pax Amerinippon)'이라고 불렀다. 당시 일본 내에서도 팍스 아메리포니카(Pax Ameripponica), 미·일 바이게모니(Bigemony)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일본인의 자부심은 하늘을 찔렀다. 이 무렵 일본경제가 플라자합의(1985)로 엔고가 막 시작됐지만, 일본 국내총생산(GDP)이 미국의 40%(1980)에서 52%(1990)에 도달할 정도로 여전히 호황을 누리고 있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미야자와 일본 총리는 국제적 공동책임을 강조하면서 걸프전에 자위대를 파견하기로 결정하였다. 1992년 1월 조지 부시 대통령과 미야자와 총리는 정상회담을 갖고 1) 글로벌 파트너십에 기반한 미·일 관계, 2) 주일미군 방위비 분담 확대, 3) 미-일-유럽의 3자 대화 확대를 담은 '도쿄선언'을 발표했다. 일본 정부는 그해 6월 미국의 지지를 받아 전후 최초로 자위대의 해외파견을 허용하는 유엔평화유지활동(PKO) 협력법안을 통과시켰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가운데 오른쪽)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운데 왼쪽) 부부가 10일 백악관에서 열린 국빈 만찬에 참석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양국 정상은 이날 국빈 만찬에 앞서 가진 정상회담에서 양국 군대의 상호운용성을 강화하는 등 국방·안보 분야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2024.04.11. 로이터 연합뉴스
최근 들어서도 미국은 일본의 안보정책 대전환에 맞춰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가졌다. 2015년 4월 아베 총리는 헌법에 반해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인정하는 내각 결의(2014.7.)를 채택한 이듬해에 방미했고, 미국의 지지를 바탕으로 그 해 9월 안보법제를 강행해 통과시켰다. 이번 기시다 총리의 방미도 위헌 시비가 있는 '적기지 반격 능력' 보유를 인정한 내각 결정(2022.12.)으로 3대 안보문서를 발표한 뒤 작년 1월 방미 정상회담에 이어 올해 다시 공식 국빈 방문하게 된 것이다.
1985년 플라자 합의 이후 일본경제가 추락하기 시작해 1992년부터 버블경제가 꺼지면서 '잃어버린 10년'이 시작되었다. 이때부터 미·일 공동패권을 의미하는 단어들이 자취를 감췄다. 지금 일본경제는 2010년 중국에 2위의 자리를 내준 데 이어, 2023년 독일에 밀려 4위로 떨어졌다. 국제통화기금(IMF)은 2026년에는 일본이 인도에도 밀려 세계 5위로 추락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처럼 일본이 국력 하강기에 들어섰음에도 불구하고 군사 분야에서 팍스 아메리닛폰의 망령이 되살아나고 있다.
미·일 '새로운 전략적 이니셔티브'
이번 공동성명은 먼저 2022년 12월 발표된 국가안보전략, 국가방위전략, 방위력정비계획 등 안보 3문서에서 밝힌 GDP 2% 방위비 증액과 적기지 반격능력 보유, 또 2025년 3월까지 육·해·공 통합작전사령부를 신설하기로 한 일본 정부의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군사 분야에서 팍스 아메리닛폰을 실현하기 위해 이번 성명에서 밝힌 몇 가지의 ‘새로운 전략적 이니셔티브’이다.
중국 일대일로와 쿼드. 2022.02.07. 연합뉴스
미국·일본·호주·인도 4개국 협의체인 쿼드(Quad) 정상회의. 2022. 5. 24. AP 연합뉴스
첫째, 일본자위대가 통합작전사령부를 신설하고 이에 맞춰 주일미군도 개편해 미·일 군사력의 통합작전능력을 제고하기로 했다. 주한 미군 사령관이 한국군에 대한 작전통제권을 갖고 있는 것과 달리, 자위대와 주일미군은 작전통제권을 독자 행사하면서 협력하는 병립형을 취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양국 군대의 통합작전능력을 높이기 위해 한미연합사와 같은 단일 지휘통제체계로 전환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둘째, 일본의 적기지 반격 능력에 필요한 군사장비 개발과 운용을 위한 협력을 추진하기로 했다. 일본 정부는 이미 반격능력 보유를 위해 방위비를 2027년까지 GDP 2%로 증액하기로 하고, 제1단계로 미국제 공격용 순항미사일 토마호크를 구매하기로 한 바 있다. 이번엔 제2, 3단계로 지대함 탄도미사일의 사거리를 늘리고 극초음속 탄도미사일을 개발하기 위해 미국과 협력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셋째, 일본이 미·영·호 오커스 기둥2(AUKUS pillarⅡ) 선진능력 프로젝트에 참가하기로 하였다. 이 문제는 4월 8일 열린 오커스 국방장관회의에서 이미 일본을 협력국으로 참가하는 것을 고려한다고 밝힌 바 있다. 오커스 기둥1이 핵추진잠수함 분야의 협력이라면, 기둥2는 수중전, 양자기술, 인공지능, 사이버전, 정보 공유, 극초음속미사일, 전자전, 국방혁신 등 8개 분야의 선진능력 기술프로젝트 협력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1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집무실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전화 통화를 하고 있다. 2024.4.17 [대통령실 제공] 연합뉴스
넷째, 일본의 방위장비 이전 3원칙 및 운용지침을 개정해 미·일 공동의 무기 개발·생산을 추진하기로 했다. 1967년 사토 내각에서 ‘무기수출 3원칙’을 제정했다가 1976년 미키 내각에서 이를 확대해 무기수출을 전면 금지시켰다. 그 뒤 조금씩 제한을 완화하다가 2014년 아베 내각에 들어 이 원칙을 폐지하고 ‘방위장비 이전 3원칙’으로 대체했다. 2022년에는 운용지침을 개정해 우크라이나에 대한 방위물자 제공을 허용했는데 이번에 전면 개정키로 한 것이다.
다섯째, '외교·방위 2+2 회의'에서 미국의 확대억제 강화를 위한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이는 작년 4월 한미 워싱턴선언에서 '한미 핵협의그룹(NCG)'을 창설해 운용하고 있는 것과 비슷한 방식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미·일 3국의 핵협의그룹으로 확대될지는 아직 단언하기 어렵다.
격자형 전략구조 vs 미·일 주도의 허브-스포크 관계
전후 미국은 전 세계에서 공산주의의 발호를 막기 위한 '지역통합전략'을 채택했다. 이 전략에 따라 냉전이 시작된 1940년대 후반부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중앙조약기구(CENTO), 동남아조약기구(SEATO) 등 지역 집단방위기구를 잇달아 창설했지만, 동아시아에서는 예외였다. 일본과의 과거사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고, 국가 간 국력 격차가 컸으며 무엇보다 일본의 일국평화주의로 인해 지역 집단방위기구의 창설이 쉽지 않았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가운데)이 18일 미국 메릴랜드주 캠프 데이비드에서 한미일 정상 공동기자회견을 마치고 함께 걸어가면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어깨에 팔을 올려놓고 있다. 2023.8.18. AFP 연합뉴스
이러한 사정 때문에 전후 미국의 동아시아전략은 허브-스포크(hub and spokes) 구조를 띠고 있었다. 이는 미국을 중심축으로 해서 각 동맹국들이 바큇살처럼 미국과 각각 연결하는 구조이다. 이와 같은 '중심축과 바큇살' 모델은 미국이 개별 동맹국들을 일방적으로 보호해 주고 미국의 동맹국끼리는 서로 느슨하게 제휴하는 구조였다. 빅터 차가 한일관계를 '적대적 제휴: 한미일 삼각 안보체제'(1999)라고 부른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하지만 중국의 군사 굴기와 미·일 군사 일체화에 따라 이러한 허브-스포크 구조가 전환의 시점을 맞이하고 있다. 미국은 중국의 군사 굴기에 맞서 새롭게 '통합억제전략(integrated deterrence strategy)'을 추진하고 있다. 이 전략에 따라 아시아·태평양에서 인도·태평양으로 전환한 지역안보구조를 미·일 주도로 새롭게 짜고 있다. 새로운 지역안보구조는 중국이나 북한이 말하는 '동아시아판 나토'와는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커트 캠벨 미 국무부 부장관은 "지역을 하나의 커다란 집단방위기구로 묶는 '나토식 안보'는 아시아에 맞지 않는다"고 밝히면서, 미국과의 양자동맹을 근간으로 역내 국가들을 서로 교차하는 여러 개의 소다자 협의체로 묶는 것이 미국의 안보구상이라고 밝히고 있다. 램 이매뉴얼 주일 미 대사는 이러한 미국의 안보구상에 대해 '격자형 전략구조(lattice-like strategic architecture)'라고 불렀고, 커트 캠벨 미 국무부 부장관도 이 개념에 동의했다.
미국을 중심축으로 한국, 일본, 필리핀, 호주 등이 연결된 구조에서 미·일이 중심이 된 미·일·호·인 4개국 안보협의체(쿼드), 한·미·일 안보협의체, 미·일·필 안보협의체, 그밖에 역외 국가로 이뤄진 미·영·호 안보동맹(오커스)으로 바뀌고 있다. 즉, 새로운 인도·태평양의 안보 구조는 형식에서는 '격자형'이지만, 내용으로는 미·일이 주도하는 허브-스포크 관계로 전환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4일 도쿄 총리관저에서 굳은 표정으로 취재진의 질문을 듣고 있다. 이날 일본 집권 자민당은 '비자금 스캔들'에 연루된 소속 의원 39명을 징계하기로 결정했다. 2024.04.05.AFP 연합뉴스
외교 무개념, 거대 야당의 힘으로 바꿔야
최근 일본 내의 우경화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조선인 위안부의 강제연행 사실을 부정하고 식민지 근대화론을 담은 왜곡 교과서들이 잇달아 검정을 통과했다. 또한 지난 4월 21일 기시다 총리는 취임 이래 줄곧 야스쿠니 신사에 직접 참배하지는 않는 대신에 총리 명의로 공물을 봉납했고, 기시다 내각에서 요시타카 경제재정담당상과 다수의 여야 국회의원들이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 등 침략의 역사를 부정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미국 방문을 마치고 돌아온 기시다 총리는 4월 17일 미·일 정상회담의 성과를 한국에게 설명한다며 윤석열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필 일본이 독도영유권을 주장한 ‘외교청서’를 발표한 다음 날이다. 통화에서 윤 대통령은 기시다에게 일본 측의 독도 도발에 대해서는 한마디로 못한 채, 오히려 북핵과 한·미·일 안보협력만 언급하는 등 국제정세 변화에는 무개념한 태도를 보여주었다.
윤석열 대통령의 외교 무개념은 최근 미·일 주도의 인·태 질서 재편 움직임과 관련해 몇 가지 우려를 낳고 있다. 지난 4월 9일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는 "일본에 추가해 독특한 강점을 갖고 있는 한국, 캐나다, 뉴질랜드의 오커스 필러2 참가를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의 오커스 필러2 참가 제안이 들어올 것으로 보이는 만큼 충분한 사전검토가 필요하다. 미·일 핵협의그룹 문제가 결정되지 않았지만, 향후 한·미·일 핵협의그룹 창설 문제가 대두될 가능성도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4일(현지시간) 워싱턴 DC 백악관 집무실에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통화하고 있다. 이날 바이든 대통령은 네타냐후 총리에게 민간인 보호를 위한 즉각적인 휴전을 촉구했다. 2024.04.05. 로이터 연합뉴스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윤석열 정부가 유엔사 회원국으로 일본의 참가를 허용할 가능성이다. 미국은 중국을 군사적으로 견제하기 위한 지역통합사령부 차원에서 유엔사 재활성화를 추진하고 있다. 만역 일본이 유엔사 회원국으로 참여하면, 미·일 주도의 지역안보구조는 내용적으로 완성된다. 일본이 유엔사 회원국이 되면, 한·일 사이에 방문군지위협정(VFA) 성격의 ‘상호접근협정(RAA)이 체결돼 자위대가 합법적으로 한반도에 들어올 수 있게 된다. 한반도 유사시 후방지원 명분으로 한·일 상호군수지원협정(ACSA)도 재추진될 위험성이 있다.
또 다른 우려사항은 윤석열 정부가 일본의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을 지지할 가능성이다. 이번 미·일 정상 공동성명에서도 미국은 일본의 상임이사국 진출을 지지했다. 제 기능을 못하고 있는 유엔 및 유엔 안보리를 개혁해야 한다는 점에는 동의할 수 있지만, 개혁의 결과가 일본의 상임이사국 진출이 돼서는 안 된다. 중국,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로 실현되기 쉽지 않다고 해도, 한국 정부가 동의해 주는 것 자체가 스스로 일본에 아시아 외교의 주도권을 넘기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최근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 변화에 대해 윤석열 정부는 중국의 군사적 굴기와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하는 한·미·일 3각 안보협력과 이를 위한 한·일 과거사 봉합이라는 좁은 시각에서 수동적으로 끌려가고 있다. 하지만 미·일 주도로 전개되는 지역안보구조 형성과 같은 '소다자 안보기구'에 불가피하게 동참하더라도 실질적인 군사협력은 좀 더 넓고, 장기적인 시각에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한국이 미·일 주도의 지역 군사협력에 끌려가면, 북·중·러와의 관계를 회복할 기회를 영영 놓칠 수 있다. 윤석열의 무개념 외교를 막을 책임은 이에 거대 야당의 어깨에 실려 있다.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16일 도쿄 일본 총리관저 인근의 렌가테이에서 맥주잔을 맞들고 있다. 2023.3.16 일본 총리실 페이스북 계정
출처 : '팍스 아메리닛폰'과 윤석열의 외교 무개념 < 민들레 광장 < 기사본문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mindl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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