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5월하면 가정의달이요 어린이의달이지만
우리에게는 한일동우회의 정기모임이 있다
내가 1965년말에 한일합섬(이하 한일)합격
통지서를 받고 기뻐했던 시절이 어제같은데
벌서 50년이란 세월이 흘러갔으니 감개무량
하면서 세월도 무상함을 느낀다
위사진은 일본 욱화성(旭化成-이하 아사히)
와다나베(渡邊-아사히=금년78세 동경대 경제
학부 졸업하여 한일과아사히 계약서를 만듬)
씨가 3년전에 이 흑백사진 복사한것을 나에게
주면서 1965년 9월에 찰영했다는 설명이였다
사진 우측에서 고지마(小島-아사히),와다나베,
김한수회장님(金翰壽-한일),관노(菅野-아사히),
타카하시(高橋-아사히),이창순상무(李昌淳-
한일),김성권공장장(金聖權-한일),라구성전무
(羅球星-한일)가있고 배경으로
한전철탑과산의능선 또 라전무가 그늘에 서
있는것을보면 지금 마산공설운동장 옆에 큰
산이 있었는데(그산은 한일 방적1부 매립1m
이상하면서 없앰)한일에서 마산공설운동장
나가는 문 근쳐 하천(당시는 조그만한 도랑이
였음)옆 산자락에서앵글을 잡은것 같다
김한수회장님을 향해 아사히 高橋,菅野,이창순,
김성권님과 얘기하는것이 들릴것같은데•••
우리가 알고있는 20만평 부지에 피크때 3만명
의 종업원을 거느린 세계 굴지의 아크릴합성
섬유공장을 만들었으니 그 포부가 지금 이런
기업이 생겨났으면하는 아쉬움을갖게할뿐이다
당시 허허 벌판에 울타리도없었고 1966초부터
매축과 토목공사로 건물터를 만들고 CK-1(아크
릴섬유 7.5톤/日)생산 공장을건설했다
건설이 한창일때는 공사장인부가 매일1천명이
넘었고 김병두과장(당시)의 토목계획에따라
정식직원으로 입사한 약25명이 4~50명씩
노가다십장이라면서 감독하던 시절이 생각난다
그때 어느날 저녁 신마산 횟집에서 막걸리 한잔
하고 8시30분경 구마산 양덕동 다리근쳐 숙소
까지 시내버스를 기다리다 마산시는 8시이후에
버스가 없다는 것을 모르고 1시간 이상걸었던
추억이 새록새록 따오른다
그래도 우리는 아직 살아있는데 초대 한일의
역사적인물은 저세상으로 모두 가셨고 회사도
문을 닫아버렸지만 ㅠㅠㅠㅠ
부디 "이번 한일동우회 총회때는 우리와 함께
하시고 또 세월호영영들을 극락영생토록 보살펴
주시기를 간절히 바랄뿐입니다"
첫댓글 우연히 저희 누님이 검색중에 본 까페의 이 글을 읽고서 제게 전달하여 반가운 마음에 이렇게 댓글을 남깁니다. 저는 윗글에서 말씀해주신 김성권공장장님(?)의 장손 김준희라고합니다. 이렇게 댓글을 달면서 사랑하는 우리 할아버지를 잠시나마 추억하게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부디 우리 할아버지를 알고...또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모두...김성권님의 좋은 추억만 간직해주시길 바라오며...^^* 모두 행복하시길 빕니다. 감사합니다.
김성권공장장(당시)님과는
일본을 많이 출장을 다녔는데
너무나 일본어를 잘하셔서
일본공항입국수속시 감시원이
일본인으로 오해하여 당신은
저쪽 내국인 line에서라고해
"나는 한국사람이요"하니까
그 사람이 너무죄송하다고
수속을 빨리받도록 안내를
받았던 추억이 떠오르네요!
훌륭한 할아버지를 두셨으니
늘 자랑스런 후손으로 사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