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설날이 가까이 다가오면서 일상에도 작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바쁜 일상을 잠시 접어두고 고향을 찾고 가족과 친지들이 만나 정을 나누고 회포를 풀 수 있기를 바란다.
나의 오늘 일과는 회장님의 지인들에게 설날 선물을 전달하는 일이다. 가까운 곳에는 승용차로 선물을 돌렸고 멀리 암사동은 전철로 이동하기로 했다.
나의 고향은 진주이고 대학은 진주에 소재한 경상대를 졸업했다.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다가 이제는 모두 일선에서 물러나 은퇴를 했다. 대학을 졸업한 지 40 년을 훌쩍 넘긴 것이다. 아마도 요즘 대학 동창을 만나면 옛 모습이 남아있기는 할지 조금 궁금하다.
그런데 말이다. 서울에서 전철을 타고 가다가 창대형이나 강천중을 만날 수도 있을까.
아마도 그런 우연이 있다면 특별한 일이고 그런 일이 일어났다면 아주 특별한 우연에 틀림이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2.
나이가 들면서 나는 친구들이나 지인과 교류가 많지 않다. 나이가 들고 은퇴하면서 더 교류가 적어진 것에 틀림없다. 물론 사람마다 성격이 다르니 은퇴 후에 더 왕성하게 활동하고 사람들과 더 교류가 많아진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설이 다가오면 기다려지고 반가움이 큰 사람들도 있고 성가시게 생각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모두에게 명절다운 특별함과 동시에 떨어져서 살아가는 가족들이 만나고 특별한 기쁨과 행복을 누리는 명절이고 설날이기를 바라게 된다.
나의 경우는 시골에서 살아왔기에 도쿄에서 생활하는 아들이 한국을 찾지 않으면 그저 조용히 명절을 지내는 편이었다. 그런 내가 요즘은 서울에서 생활하면서 변화가 조금 있었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아침 일찍부터 바쁘게 돌아가기도 하고 저녁 늦은 시간이 되어야 집에 돌아오곤 한다. 이런 일상에 대해 아직은 여유를 찾기가 쉽지 않고 적응이 더 필요할 것이다.
물론 요즘은 사회적으로 혼란스럽고 국가적으로도 뒤숭숭하다. 이런 때일수록 나라에 큰 지성이나 어른의 공백이 더 크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그러니 명절을 앞두고 마음 한구석이 허전하고 쓸쓸하게 느껴진다. 이런 시기에 이런 글이 눈에 들어와서 옮겨본다.
"나라마다 민족의 나침반이 된 천재들이 있다. 일본인 후쿠자와 유키치는 개화 무렵 일본의 방향을 서구화와 민족주의로 잡고 교육에 헌신했었다. 우찌무라 간조는 일본인의 정신적 성장을 추구하고 많은 훌륭한 제자들을 남겼었다.
이어령 교수도 그런 역할을 한 것 같다. 이어령 교수가 대학에서 정년퇴직을 할 무렵의 짧은 소감을 담은 시사잡지를 보고 메모를 해 둔 것이 있다.
[나뭇잎들이 낙엽이 되면 빨리 줄기에서 떨어져야 하듯이 사람도 때가 되면 물러앉아야 해요. 새잎들이 돋는데 혼자만 남아 있는 건 삶이 아니죠. 갈 때 가지 않고 젊은 잎들 사이에 누렇게 말라죽어있는 쭉정이를 보세요.]
그는 아직 윤기가 있을 때 가을바람을 타고 땅에 내려오는 것이 좋다고 했다. 귀중한 철학이었다. 죽음이나 쓸데없는 집착에 적용해도 될 것 같아 그 말을 마음에 새기게 된다."
3.
오늘 나는 전철을 타고 가다가 맞은편에 앉은 낯익은 얼굴을 발견했다. 반가운 얼굴은 언제 만났는지 까마득한 대학 동창이었다.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보는 순간 바로 알아볼 수 있었는데 동창은 멀뚱멀뚱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동창 문도는 세월을 거슬러서 아직도 젊은 얼굴 그대로였기에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지만 나는 많이 늙고 변해버려서 제대로 알아보기 어려웠다는 뜻일게다.
한편으로 우리 대학 동창들 모두가 문도와 같이 세월의 고통 없이 젊고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바라게 된다. 얼핏 보면 남들은 50대쯤으로 생각될 만큼 그렇게 젊게 말이다.
민족의 명절인 설날이 다가오고 있다. 모두들 건강하고 가까운 친지나 가족들이 만나서 즐거움과 행복을 느끼고 나눌 수 있는 설날이 되기를 기도한다.
월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