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춘기
이정숙
유난히 더웠던 여름은 어느새 지나가고, 아침 저녁으론 서늘한 바람이 옷깃을 파고드는 가을이 되었다.
여기 저기 코스모스가 피고, 빨간 사과와 고소한 알밤이 우리를 즐겁게 하는 계절. 이 가을!
그러나, 지금은 내가 가장 싫어하는 계절이 되어버린 이 가을!
나는 바람이 서늘해지고, 해가 짧아 지는 가을이 오면 왠지 우울한 감정에 빠지고 만다.
천고마비의 계절이니 결실의 계절이니 하면서 추석때는 선물도 주고 받으며 분명 감사할 일이 많은 계절이지만
갱년기가 시작되려는건지
나의 가을은 우울이란 감정으로 퇴색되어 있다.
출근해서 퇴근때까지 직원들과 아이들과 부댓길때면 늘 웃으며 때로는 장애아동들에게 재롱도 떨곤 하지만
퇴근차를 타며 해가 짧아진 탓에 어두워진 사방을 느끼면 내 입에서는 "아! 가을 싫어" 라는 소리가 저절로 나오곤 한다.
내 나이 16살 때 가을은 정말 눈부셨는데.....
10 월의 어느 토요일 교회에서 하는 학생 문학의밤에 언니들과 함께 갔었는데 교회 학생들의 음악공연, 성시낭송 등등을 별 감흥없이 듣던 중에
어느 남학생의 서사시 낭송 순서가 되어 음악이 깔리고 그 남학생의 분위기 있는 목소리가 마이크를 통해 들려오던 순간 나는 그 목소리에 빨려들고 말았다.
그 남학생의 낭송이 이어지는 동안 나는 그 작품속 주인공인 공주가 된듯한 착각에 가슴이 얼마나 뛰었던지....
그 옛날에도 지금도 얼굴이나 이름조차 모르는 그 남학생의 서사시를 들은 이후에 나의 사춘기는 시작되었다.
그때의 가을바람은 얼마나 상퀘했던가!
기숙사 앞마당을 뒹굴던 낙엽은 얼마나 낭만적이었던가!
비록 정안인들 만큼은 아니지만 색깔이나마 볼 수 있는 나의 눈에 비친 그 파란 가을하늘은 얼마나 아름다웠던지!
그 날 이후로 나는 틈틈이
짧은 낙서도 해 모으고 아름다운 글들도 베껴서 모으는 자칭 문학을 사랑하고싶은 소녀가 되었다.
틈틈이 썼던 글들로 국어선생님께 인정을 받아
복지단체들에서 주최한 청소년 문예작품 공모전에서 몇편의 입상작품도 내고
국문학 전공까지 꿈꾸었던 그 옛날 그 소녀로 돌아갈 순 없는걸까?
소망원 아이들의 사랑으로 내 마음에 탐스러운 사과를 채우고, 나를 기억하며 염려하는 모든 이들의 기원을 내 마음에 고소한 알밤으로 채워
내게 행복한 제2의 사춘기가 오게할 순 없는걸까?
첫댓글 " 10 월의 어느 토요일 교회에서 하는 학생 문학의밤에 언니들과 함께 갔었는데 교회 학생들의 음악공연, 성시낭송 등등을 별 감흥없이 듣던 중에
어느 남학생의 서사시 낭송 순서가 되어 음악이 깔리고 그 남학생의 분위기 있는 목소리가 마이크를 통해 들려오던 순간 나는 그 목소리에 빨려들고 말았다.
그 남학생의 낭송이 이어지는 동안 나는 그 작품속 주인공인 공주가 된듯한 착각에 가슴이 얼마나 뛰었던지...."
그때의 가을바람은 얼마나 상퀘했던가!
기숙사 앞마당을 뒹굴던 낙엽은 얼마나 낭만적이었던가!
비록 정안인들 만큼은 아니지만 색깔이나마 볼 수 있는 나의 눈에 비친 그 파란 가을하늘은 얼마나 아름다웠던지
가을의 향취 감명깊게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