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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의 여왕] 02
1. 동술체육관 (낮)
아침 햇살이 들어오는 낡은 권투체육관의 스케치.
탁탁탁탁 빠르게 줄넘기하는 사람의 발.. 툭툭툭 샌드백 때리는 주먹...
열심히 땀흘리며 운동하는 사람들 속에서 승리가 남자고교생에게 권투자세를 가르쳐주고 있다.
털털해 보이는 차림에 화장기 없는 얼굴. “얌마 쭉쭉 뻗어!”
승리, 남학생 머리 툭 치고 슬쩍 링을 돌아본다.
링에서는 헤드기어를 쓴 두 남자가 붙고 있다. 링 안을 빙글빙글 돌며 서로를 탐색하는 두 남자.
동필은 건들건들 거리며 적극적으로 다가서고 맞은편 남자는 천천히 기회를 기다리고 있다.
약이 올라 더 세게 달려드는 동필을 스윽 피하는 척하다가 강렬한 훅을 날리는 남자....
동필, 붕 날아서 쓰러진다.
상대편 남자, 놀라 헤드기어를 벗는데... 태웅이다.
태웅 : (다가서며) 형, 괜찮아요?
동필 : (노려보다가 벌떡 일어나며) 이 새끼가... 자꾸 열받게 피하기만 하고 그게 권투냐? 엉? (막 두들겨패는데)
관장(소리) : 지금 뭐하는 짓이야?
동필/태웅 : (돌아본다)
관장 : 권투하랬지 누가 쌈박질하랬냐?
동필 : (변명하듯) 아니, 이 자식이 자꾸,
관장 : (말막으며) 시끄러! (태웅 슬쩍 보다가) 다시 해! 제대로들 하란 말야!
동필과 태웅, 관장의 눈치를 보더니 다시 헤드기어를 쓴다.
다시 공이 울리고 동필과 태웅이 주먹을 주고 받는다.
관장,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 있는데, 팔짱 낀 채 옆에서 말하는 관장 딸 승리.
승리 : 득구오빠 스파링 파트너 시키기엔 아깝지 않아요? 동필이오빠보다 훨 나은데?
관장 : (힐끗 보고) 넌 니 할일이나 하지 여기서 뭐해?
승리 : 아빠! 이번 신인왕전에 득구오빠 내보내라니까요?!
관장 : 쟨 아직 멀었다니까?!
승리 : 아씨... 맷집이며 스피드며... 딱 김득군데? 게다가 왼손잡이잖아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동필이 태웅의 허점을 파고 들어 한방 날린다. 쓰러지는 태웅.
관장, “이래두?”하는 시선으로 승리를 본다. 승리, 겸연쩍어하며 웃는다.
2. 탈의실 (낮)
웃통 벗고 락커에서 옷을 꺼내는 태웅. 다시 문 닫고 돌아서는데 승리가 앞에 서 있다.
화들짝 놀라는 태웅!
태웅 : (놀라 얼른 가리며) 너, 너.. 여기서 뭐해?!
승리 : (개의치 않고) 오빠 다 이겨놓고 마지막에 그게 뭐야?
동필이 오빠는 전형적인 인파이터잖아. 스피드로 잡았어야지!!!! 으씨 성질나..
태웅 : (어색하게 웃으며) 승리야 근데 너... 여기가 어딘 줄 알아?
승리 : (별 생각 없는) 응? (하는데)
관장(소리) : 승리 너 이년 당장 나가지 못해?!!!
승리와 태웅 돌아보면, 아랫도리 가린 채 허걱해서 서있는 선수들.
승리 : (화들짝 놀랐다가 괜히 아무렇지 않은척) 별로 볼 것도 없구만...
하면서 휭 후다닥 나가버리고 혀를 쯧쯧 차며 다가오는 관장.
관장 : 도대체 저런 걸 누가 데려가나 몰라....
태웅 : (피식 웃으며 옷 입는데)
관장 : 어디 나가는 길이냐?
태웅 : 충식이 병원에 좀 가보려구요. 다녀오겠습니다. (꾸벅하고 가는데)
관장 : 득구야!
태웅 : (돌아보면)
관장 : 넌 말이야... 너무 생각이 많아. 싸울 땐 이길 생각만 해. 무슨 말인지 알지?
태웅 : 네.
관장 : 그래도 아까 연타 날린 건 좋았다. (웃어주며) ...그렇게 하는거야.
태웅, 씁쓸하게 웃으며 다시 꾸벅하고 나간다.
관장, 태웅의 모습을 걱정스럽게 바라본다.
3. 병원 일각 (낮)
태웅,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있는데 뒤에서 “득구야! 한득구!”하는 소리가 들린다.
태웅, 돌아보면 환자복 차림의 충식이 링거스탠드를 끌며 다가오고 있다.
충식 : 얌마 오늘 퇴원할건데 뭐하러 왔어?
태웅 : (피식 웃더니) 몸은 어때? 괜찮은거야?
충식 : 그럼. 내년 설 쇠기 전에 교통사고 한 번만 더 났으면 좋겠다.
태웅 : 미친놈...
충식 : 보험회사에서 병원비 빼고도 70만원이나 주드라? 오랜만에 울엄마한테 효도 한번 했다.
태웅 : (뭉클하게 보다가 마음 감추고) ....이거 순 나이롱 환자 아냐?
(링거를 툭툭 치며) 나이롱 주제에 이런 건 뭐하러 끌고 다녀?
충식 : (씩 웃으며) 폼 나잖아!
웃으며 툭탁거리는 태웅과 충식.
충식, “저녁에 삼겹살에 소주나 한잔 하자” 하며 가는데 어디선가 갑자기 쨍그랑! 뭔가 깨지는 소리가 들린다.
놀라 돌아보는 태웅과 충식.
보라(소리) : 싫어! 싫어! 정말 싫다구!!!!!
4. 보라의 병실에서 복도까지 (낮)
악을 쓰며 근처에 있는 물건들을 닥치는대로 집어던지는 보라.
간호사들이 쩔쩔 매고 있다.
장박사 : 보라야, 잠깐만 진정하고 내 말 좀 들어봐! 보라야!!!
보라 : 듣기 싫어요! 아무 얘기도 듣고 싶지 않다구요!
장박사 : 보라야!
보라 : 이젠 지겨워. 정말 지긋지긋해. (달달 외듯) 점점 좋아지고 있다, 수술만 하면 건강해진다, 이번 한번만 더 검사해보자!
하라는 대로 다 했지만 15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잖아요!!!
장박사 : (달래듯) 보라야... 그래도 이 검사는 받아야,
보라 : 아아악! 싫어! 싫어! 싫다구요!!! (발광하는데)
장박사 : (곤혹스럽게 보다가) 김회장에게 연락해야지 안되겠구만. (간호사 보며) 진정 좀 시켜봐.
장박사 가고.. 보라에게 다가가 양 팔을 잡는 남자 간호사.
보라 : 뭐, 뭐하는거야! 이 손 놓지 못해?! 이거 못놔!!!
다른 간호사 진정제 들고 보라에게 다가가려고 하는데 발버둥을 쳐서 간호사들을 뿌리쳐내는 보라.
그 와중에 복도 밖으로 링겔병이 튕겨져나가 와장창 깨어진다.
보라, 밖으로 나가서 유리조각을 손에 확 쥔다.
보라 : (피 뚝뚝 흘리는거 개의치 않고) 다가오지마! 다가오면 죽어버릴거야!
간호사 : 보라씨 그거 내려놓으세요!!!!! (한 발 다가서는데)
보라 : 누가 농담하는 줄 알아? 정말로 죽어버릴거야!!!!!!
보라, 정말로 자신의 손목을 그으려고 확 손을 치켜든다.
위기일발의 순간, 이때 갑자기 뒤에서 나타나서 보라의 손목을 나꿔채는 태웅!
보라 : 너,너,너, 뭐야?! 이거 안놔?!!!!!
태웅 : 왜? 놔주면 죽으려고?
보라 : 니가 무슨 상관이야? 이거 놔! (세게 발버둥치며) 놓으란말이야!!!!!!!!!!!
태웅, 갑자기 손을 툭 놔버리고 저만치 나뒹굴어지는 보라. 화가 나서 휙 태웅을 보는데...
태웅 : 미안하다. 그렇게 죽고 싶은데 말려서. (떨어진 링겔 조각 주워주며) 자... 하던 거 마저 계속해라.
보라 : (벙쪄서 보는데)
태웅 : 죽겠다며? (주위 가리키며) 다들 보고 있잖아. 한입으로 두 말하면 안되지. 자, 자.. 얼른 죽어.
보라 : 누, 누가 못 죽을 줄 알고? (자신 없는 태도로 다시 손목 그으려 하는데)
태웅 : (손목 다시 확 잡으며) 그렇게 해서 죽겠어?!
보라 : (멈칫 보면)
태웅 : 진짜로 죽고 싶으면 손목 같은데 긋지 말고 경동맥 그어.
(보라의 목, 머리, 어깨 등을 툭툭툭 치며) 후두동맥이나 측두동맥, 상악동맥, 혹은 관골동맥.
보라 : !!
태웅 : 니가 정말로 죽을 생각이 있다면 그런 델 그어. 알았냐?
보라, 한대 맞은 듯 멍해지는데 태웅, 보라의 손에서 유리조각을 뺏어서 일어난다.
구경꾼들, 태웅과 보라 보며 수군대는데 조용히 가버리는 태웅.
충식, “야, 뭐냐? 뭐라고 한 거야?”하면서 신나서 태웅 쫓아간다.
구경꾼들 하나둘 흩어지는데 그 자리에 계속 멍하게 선 보라. 그러다 뒤에 서 있는 간호사들을 향해 휙 돌아선다.
보라, 피 뚝뚝 흐르는 손을 확 내민다.
간호사들, 의아하게 보면
보라 : (버럭) 피나잖아! 치료 안해줄거야?!!!!!
간호사들 : !!!!!!
5. 보라의 집 앞 (밤)
커다란 고급저택 앞에 승용차가 멈춘다.
기사가 얼른 내려서 뒷좌석 문을 열어주자 도도하게 내리는 보라.
6. 보라의 집 (밤)
보라 들어오는데 순자와 득남이 호들갑스럽게 다가온다.
득남 : 보라야 오늘 치료 받느라 너무너무 힘들었지? (그러다 손에 감은 붕대 보고) 어머머 손은 왜 다친거야?
보라 : 그건 알거 없고, 아줌마, 아빠가 월급 많이 주나봐요?
순자 : 엉?
보라 : (득남의 옷차림을 싸늘하게 훑어보며) 아줌마 월급으로 득남이 이런 옷 사주기엔 좀 벅차지 않나?
득남 : (당황하며) 야! 가, 가정부 딸은 명품입으면 안된다는 법이라도 있니?
보라 : 그런 법은 없지만... 남의 물건을 훔쳐선 안된다는 법은 있지.
(머플러 확 뺏으며) 박득남!!!! 내 물건에 손대지 말라고 했지!!!!!!
득남 : (잽싸게 비는) 보라야 미안해!!!! 너무 이뻐서 잠깐만 해본다는게 그만... 미안해. 정말 미안해!
순자 : 그, 그러니까 득남이 니가 감히 아가씨걸 훔쳤단 말이여? (득남의 등짝 후려치며) 야 이년아 니가 제정신이냐?
보라야 내가 다시 세탁해서 줄테니까 이번만 참아라. (하는데)
보라 : (차가운) 가위 갖다 주세요.
(점프)
싹둑! 가위로 머플러를 잘라버리는 보라.
순자와 득남 질렸다는 표정으로 바라본다.
보라 : (득남 노려보며) 경고하는데, 다신 내 물건에 손대지마.
보라, 자기방으로 올라가버리고 기가 막힌 듯 보는 득남.
순자 : 넌 보라 결벽증 있는 거 알면서 왜 그랬어?
득남 : (찢어진 머플러 만지며) 으이구, 이 비싼 걸.... 이거, 꼬매서 내가 할까?
순자 : (등짝 확 후려치는)
7. 욕실 (밤)
보라, 쓰린 걸 참고 손에 감긴 붕대를 천천히 푼다.
수도꼭지를 틀고 태웅에게 잡힌 손목을 갖다 대는 보라. 하얀 세면대로 핏물이 번져나간다.
이를 꽉 물고 참으며 손목을 씻는 보라. “드럽게 남의 손목을 왜 잡아.. ”
그러다가 문득 태웅이 모습이 떠오른다.
# (2부 4씬)
태웅 : 진짜로 죽고 싶으면 손목 같은데 긋지 말고 경동맥 그어.
보라 : (혼잣말) 재수없어... (손목 씻다가 멈칫) 근데 내가 걔를 어디서 봤더라....?
생각하다가 관두고 다시 계속 손을 씻는다.
8. 대포집 (밤)
길거리에 나와 있는 대포집.
관장, 충식, 태웅이 삼겹살에 소주를 마시고 있다.
충식 : (술잔 땅 내려놓으며) 아씨 울엄마만 아니었음 내가 이렇게 안사는데.
세계 챔피언 되서 관장님 차도 쫙 뽑아주고 동술배타이틀 매치도 만들고,
관장 : (머리 딱 때리며) 얌마! 입은 삐뚤어졌어도 말은 똑바로 해야지. 니가 엄마 땜에 관뒀냐? 실력이 안되니까 관둔거지.
충식 : 어쨌든 제 마음의 고향은 링이라니까요!!! 득구야! 넌 내 맘 알지?
태웅 : 모르겠는데? 정양, 김양, 윤양.. 니네 백화점 아가씨들이 니 마음의 고향 아니었어?
충식 : (고개 주억거리며) 그렇지. 거기도 내 마음의 고향이지. (다들 웃다가)
참 득구야 너 아까 그여자한테 뭐라고 했냐?
태웅 : 어?
충식 : (관장 보며) 아.. 얘가요. 오늘 병원에서 어떤 여자가 죽겠다고 난리를 치는데 팔목 확 잡더니 뭐라뭐라 하더라구요.
그러니까 죽겠다던 여자가 꿀먹은 벙어리마냥 조용해지는 거 있죠?
(술병 찾아서 잔 채워주려하면서) 야 너 폼나더라. 뭐라고 한거야?
관장 : (멈칫 태웅본다)
태웅 : (시선 피한다)
충식 : (술병 흔들어보고) 어? 술이 없잖아? 아줌마!
하면서 충식, 빈병 들고 일어나 안으로 들어가고..
다 알겠다는 표정으로 태웅을 보는 관장. 태웅, 관장의 시선을 외면한다.
관장 : 득구 너... 그 놈 때문에 그랬구나.
태웅 : (보면)
관장 : 죽었다는 니 친구... 그놈 때문에 그런 거 맞지?
태웅 : ...그냥... 누군가 제 눈 앞에서 죽는거... 싫어요. 보고 싶지 않아요.
관장 : (조용히 보다가) ....태웅아.
태웅 : (번뜩 관장 본다)
관장 : 난 지금도 기억한다. 그날이 11월 14일... 김득구가 죽은 날이었지.... 너한테 득구라는 이름을 붙여준 건 나지만...
태웅아, 이젠 그만 니 이름 찾아도 되지 않겠냐?
태웅 : (고개 가로저으며 쓸쓸히 웃는) 그렇게 부르지 마세요. 이젠 그 이름 낯설어요.
관장 : 그만 니 자리로 돌아가. 공부도 다시 시작하고, 대학도 가고... 언제까지 이렇게 살래?
태웅 : (슬프게 웃는) 관장님 전요... 아직도 정규가 살아있을 것만 같아요.
분명히 어딘가에 살아있어서...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며 나타날 것 같아요.
관장 : (가슴 아프게 보는데)
태웅 : 전 지금이 좋아요. (슬픈) 이렇게 살아야... 정규한테 덜 미안해요.
그때 충식이 소주병이랑 고기를 갖고 돌아온다. 분위기 모르고 호들갑 떨며 마시자! 마시자! 하는 충식.
태웅은 말없이 자신의 잔을 비운다.
9. 거리 (밤)
터덜터덜 밤거리를 걸어가는 태웅의 모습.
야자 끝난 고등학생들이 버스에서 우루루 내려 집으로 돌아가고... 그 사이를 걸어가는 태웅의 모습이 쓸쓸하다.
그렇게 걸어가다가 멍하게 밤하늘을 올려다 보는 태웅. 눈에 물기가 어리는데...
뒤에서 갑자기 “태웅아!” 부르는 소리.
태웅, 놀라서 뒤를 돌아보는데... 건너편 버스 정류장에 교복차림을 한 정규가 태웅을 보며 환하게 웃고 있다.
태웅 : (멍하게 중얼거리는) ...저, 정규야.... (쫓아가며) 정규야!!!!!
그때 버스가 확 지나간다. 버스가 지나가면 맞은편 버스 정류장에는 아무도 없다.
태웅, 착잡하다.
10. 보라집 전경 (밤)
김회장(소리) : 병원에서 죽겠다고 난리를 쳤다며?
11. 보라 아빠 서재 (밤)
서재 책상에 앉아 오실장이 내미는 서류들에 열심히 싸인을 하고 있는 김회장. 보라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는다.
김회장 : 덕분에 장박사한테 내가 얼굴을 못들게 됐다.
(마지막 싸인해서 오실장한테 서류 넘기며) 이번 주말에 장박사랑 골프약속 잡아. 선물도 준비하고.
오실장 : 네 알겠습니다. (인사하고 나가고)
보라 : 전 이제 두 번 다시 병원 안갈 거에요. 아빠가 아무리 안된다고 해도 소용없어요.
김회장 : (물끄러미 보다가) 좋아. 병원을 가든 또 죽겠다고 쇼를 하든 니 맘대로해.
보라 : (기가 막힌) 쇼라구요?
김회장 : 다른 사람은 니가 죽는다고 하면 벌벌 떨지 몰라도 나한텐 안통해. (보라 보며) 너, 그렇게 쉽게 죽을 애 아냐.
보라 : (웃더니 야멸차게) 그래요. 맞아요. 저, 쇼했어요. 제가 죽긴 왜 죽어요? 전요 아빠 돌아가시기 전엔 절대 안죽을거에요.
두고두고 아빠 괴롭히면서 오래오래 살 거에요.
김회장 : (보라 쏘아보다가) 너랑 긴 얘기하기 피곤하고..... (남자 사진 척 내밀며) 내일 당장 선봐!!
보라 : 뭐라구요?
김회장 : 우리나라에서 최고로 좋다는 의대, 수석으로 졸업한 의사야. 돈은 많지 않지만 가풍있는 집안이다.
너한테는 차고 넘치는 상대야.
보라 : (버럭) 아빠!!!
김회장 : (말자르며 싸늘한) 싫단 말 해봤자 소용없어. 약속 잡아놨으니까 무조건 나가. 알겠냐?!
보라 : (노려보는 표정)
12. 호텔 커피숍 (낮)
맞선 보는 보라.
보라 : (싸늘한) 의사니까 더 잘 알겠죠? 중증 근무력증이 어떤 병인지.
마담뚜가 보라 옆에 앉았고 맞은편에는 서건우가 앉아 있다.
마담뚜 : (허걱해서) 보라양, 그런 얘기는 나중에 천천히 해도,
보라 : (개의치 않고) 어릴 땐 스무살도 넘기지 못할 거라고 했는데 스물 두 살이 됐으니 제가 좀 오래 버티긴 했죠.
제가 생각보다 질긴 데가 있거든요.
건우 : (재밌다는 표정)
보라 : 아시다시피 이병은 완치라는게 없잖아요? 툭하면 병원에 실려가서 주사맞다 나오는 게 일이고,
어떨 땐 눈꺼풀이 주저앉아서 못 봐줄 지경일 때도 많아요. 안검하수 증상, 아시죠?
마담뚜 : (안되겠는지 얼른 나서며) 그래도 보라양이랑 결혼하면 장가 정말 잘 가는거에요.
대원그룹은 이제 준재벌이잖아요. 백화점 유통업에서 머잖아 호텔업까지 확장할 계획인데다,
보라 : (가로채며) 그건 그냥 폼이구요... (건우 보며 빈정대는) 우리 아빠 사채업부터 시작한 거 모르죠?
사채에 고리대금, 거기다 돈세탁! 그게 원래 우리아빠 전문이에요.
보아하니 돈이 궁한 분처럼은 안보이는데 이래도 저랑 결혼하실래요? (확 일어나며) 얘기 다 했으니까 전 이만.
보라, 핑 나가버린다.
마담뚜, 당황한 표정이고 건우는 픽 웃으며 보라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건우 : (혼잣말하는) 재밌는 여자네....?
13. 백화점 몽타주 (낮)
- 명품매장을 휩쓸며 쇼핑하는 보라. 기사가 쇼핑백을 잔뜩 들고 따라오고 있다.
- 가방매장에서 디피되어 있는 가방들을 보며 손가락으로 탁탁 지목하는 보라.
점원들이 신나게 가방을 쇼핑백에 담는다.
- 옷들을 입어보는 보라. 기사가 든 짐이 더 늘어나고..
- 귀금속 매장. 보라, 심드렁한 눈으로 커다란 물방울 다이아 세트를 고른다.
14. 구두매장 (낮)
충식(소리) :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십쇼!!
커다란 유리구두가 조명을 받으며 전시되어있는 구두매장.
충식이 여자손님 뒤통수에 꾸벅 인사하고 돌아서면 태웅은 유리 구두 만지며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충식을 본다.
태웅 : 너 퇴원하자마자 너무 무리하는거 아냐? 어제도 늦게까지 술마시고..
충식 : 걱정마. (구두주걱을 펜싱하듯 휘둘러보이며) 쌩쌩하잖아? (씩 웃고) 난 괜찮으니까 그만 가봐.
태웅 : (피식 웃으며) 알았다 임마. (가려다가) 아참 이거 받아라. (봉투 내미는)
충식 : 이게 뭐냐?
태웅 : 보험금 받은거 어머니 다 드렸다며. 이걸로 보약이라도 한 재 사먹어.
충식 : 야! 니가 무슨 돈이 있다고...
태웅 : 나 간다! (돌아서가는데)
충식 : 득구야?!
태웅 : (돌아보면)
충식 : (척 끌어안으며) 고맙다!
충식, 태웅 몰래 주머니에 슬쩍 봉투를 다시 밀어넣는다. 태웅, 아무것도 모르고 웃으며 가고...
흐뭇한 표정으로 태웅의 뒷모습 바라보는 충식.
이때 옆매장 직원이 묻는다.
여직원 : 친구야? 디게 잘생겼다!!!
충식 : 하여간 여자들은 남자 낯짝만 보고 사나... (질투에 불타서) 쟤, 유, 유부남이야 유부남! 애가 셋이나 돼! 이래도 좋아!!!
여자, 설마하는 표정인데 매장안으로 휙 들어오는 여자손님.
충식, “어서오십쇼!” 하는데 들어온 여자는 보라. 선글라스 끼고 있어서 못알아보는.
15. 백화점 일각 (낮)
태웅 에스컬레이터 타고 내려가다가 문득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는데 봉투가 딸려나온다.
태웅 : 이 자식...! (되돌아 뛰어가는)
16. 구두매장 (낮)
충식, 신발 신겨주려고 소파에 앉은 보라의 발목을 잡아주는데
멈칫! 확 보는 보라.
보라 : 지금 어딜 만지는거야?
하며 발을 확 빼내는데 그러다가 모르고 충식의 얼굴을 걷어차고 만다.
뺨 감싸쥐고 나뒹구는 충식. 구두 장식 때문에 얼굴에서 피가 난다.
충식 : 소, 손님?!
태웅 : (보고 뛰어들어온다) 충식아! 괜찮아?
충식 : 아, 아니.. 난 그냥 구두 신겨준 것 뿐인데...
보라 : 당신이 내 발목 만졌잖아? 드럽게 어딜 만져!
태웅 : (보라 확 보며) 이것봐요 아가씨...!! (하다가) 어? 너는...? (보라라는거 알아보는데)
보라 : 나 그냥 안넘어갈 거야. 당장 올라가서 컴플레인 걸거라구!
보라, 나가려고 하는데 다급한 충식이 얼른 보라를 막는다.
충식 : 소, 손님! 제가 사과드리겠습니다. 전 정말 다른 뜻이 있어서 그런게 아니구요.... (하는데)
보라 : 비켜!
보라, 충식 밀치고 가는데 보라의 손목을 확 나꿔채는 태웅.
보라 : (잡힌 손목 보며 파르르) 이, 이거 못놔?
태웅 : 사과하고 있잖아! 그럼 받아줘야하는거 아냐?
보라 : 이게 진짜?!
하며 태웅을 확 밀치는데 태웅 뒤로 쓰러지면서 유리구두가 와장창 깨어진다.
놀라서 모여드는 사람들. 백화점 매니저들도 달려온다.
매니저 : 무슨 일이야?!
충식 : (반색하며) 아니, 이 여자분이 제가 발목 만졌다고 시비 걸면서 말이죠... (하는데)
매니저 : (보라보더니 휘둥그레) 아, 아가씨?!
태웅/충식 : (의아하게 보는 표정)
17. 사무실 앞 (낮)
문이 열리고 보라가 당당하게 걸어나온다. 그 뒤로 줄줄이 따라나오는 백화점 임직원들.
보라 : 직원 교육 좀 똑바로 시키세요. 알았어요?
매니저 :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보라, 씩씩대며 사무실 앞에 서 있는 충식과 태웅 앞을 지나쳐 가다가 문득 걸음을 멈춘다.
보라 : (확 태웅 보며) 너! 병원에서 주제넘게 까불던 애 맞지?
태웅 : (놀라 보는데)
보라 :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남 일에 끼어들지마. 알았어?!
보라, 가버리고 충식과 태웅 멍하게 뒷모습 바라보는데 다가오는 매니저.
매니저 : (충식보며 이를 갈며) 회장님 따님도 못알아보고 이런 실례를 범하다니.. 자네 쫌 있다가 보세.
하더니 얼른 보라를 따라간다.
직원들 다들 줄줄이 보라를 따라가고 충식과 태웅만 남는다.
충식 : (얼굴의 상처 시린 듯 찡그리며) 쳇 드러워서.. 회장 딸이라고 마빡에 써붙였냐? 내가 무슨 재주로 알아봐?
태웅 : (보라 멀어진 쪽 보는데)
충식 : 야 근데 쟤가 병원에서 죽는다고 난리쳤던 애였냐? 인상 확 다르네..?
태웅 : (멈칫 하다가 충식 보며) 야, 너한테 미안해서 어쩌냐? 괜히 나땜에 일이 더 커진 것 같다?
충식 : (대수롭지 않게) 아, 괜찮아. 괜찮아.... 설마 짜르기야 하겠어?
태웅 : (보는데)
18. 체육관 (낮)
충식 : (비통하다) .....짤렸다.....!!!
태웅, 봉걸레를 들고 바닥을 닦다가 당황해서 충식을 바라본다.
태웅 : 뭐야? 왜?! 그 여자애 때문에?
충식 : (풀이 죽어서) 성깔이 보통 아닌가봐. 걔 비위 건드려서 짤린 직원들이 쫙 깔렸단다.
에고.. 울엄마한테는 뭐라고 하냐... (하는데)
태웅 : (걸레 탁 놓으며 옷을 걸친다)
충식 : (멀뚱보며) 야 얘기 듣다말고 어디가?
태웅 : 나 때문이잖아. 내가 해결할테니까 넌 걱정하지마.
충식 : 야, 됐어! ...아 됐다니까!!!! (쫓아나가며) 득구야!
부리나케 나가는 태웅.
그때 승리가 먹을거 사가지고 들어오다가 나가는 태웅을 본다.
승리 : 오빠 어디가?! 오빠!!!! (태웅 그냥 나가버리고) 아이씨.. 통닭사왔는데..
충식 : (승리 보며 헤벌죽) 승리야... 너 점점 이뻐진다?
승리 : (티껍게 보며) 오빠, 나한테 관심끄랬지? (통닭 안기며) 이거나 먹어.
승리, 흥 가버리고 충식 머리 긁적인다. “기집애 디게 튕기네.”
19. 보라집 마당 (낮)
보라가 나서는데 앞을 가로막는 보디가드들.
보라 : 뭐하는 짓들이야? 비켜.
보디가드 : 회장님 명령입니다. 당분간 외출금집니다.
보라 : 뭐? 난 그런 얘기 들은 적 없어. (막 나가려고) 비켜!
하는데 보디가드, 보라를 탁 막는다.
보라, “이것들이!!!”하면서 손으로 때리지만 끄덕없다.
보라, “두고 봐, 너희들!”하더니 핑 돌아서 집으로 들어간다.
20. 득남이 방 (낮)
득남, 노래 흥얼거리며 엎드려서 매니큐어 바르고 있는데 쾅쾅쾅 문을 두드리는 소리.
나가보면 보라다!
득남 : 니가 왠일이냐? (하는데)
보라 : (팔찌 풀어 척 내밀며) 너... 이거 갖고 싶어했지?
득남 : (휘둥그레지며 팔찌를 잡으려고 한다)
보라 : (탁 가로채며) 그 전에 니가 나 좀 도와줘야겠다.
득남 : !!
21. 대문 앞 (낮)
반짝반짝 빛나는 보라의 팔찌를 차고 걸어가는 득남.
보디가드들 삼엄한 눈초리로 서 있는데 음료수 담은 쟁반 들고 활짝 웃으며 다가오는 득남.
득남 : 고생 많으시죠. 이것 좀 들고 하세요~
애교 잔뜩 섞어 보디가드들 혼을 홀랑 빼놓는 득남.
나무 뒤에 숨어서 짬을 보던 보라, 슬금슬금 후다닥 마당을 가로질러 도망을 친다.
22. 집 앞 (낮)
씩씩대며 보라의 집 앞에 도착한 태웅. 보라의 집을 확인하듯 올려다본다.
태웅, 벨을 누르려고 하는데 갑자기 문이 열리면서 보라가 뛰쳐나온다.
놀라는 두 사람.
보라 : (놀라서) 너, 너는....!!!
태웅 : (기다렸다는 듯) 너 마침 잘나왔다. 너 말이야.. (하는데)
보라 : (말 자르고 다짜고짜) 너 운전할 줄 아니?
태웅 : 뭐?
보라 : (뒤돌아보더니 다급하게) 운전할 줄 아냐구 묻잖아!
태웅 : 그, 그래. 그건 왜?
보라 : 잘됐네. 받아.
보라, 키를 태웅에게 확 던지고는 차 쪽으로 빠르게 다가간다.
황당한 태웅.
보라 : 안오고 뭐해? 빨리 운전해야지!!!
태웅 : (벙찐) 야, 지금 뭐하자는 거야? 난 너한테 할 얘기가 있어서 온 거거든?
보라 : (초조해서 버럭) 차 타고 얘기하면 되잖아. 어서?!!!
보라, 냉큼 뒷좌석으로 올라탄다. 태웅, 어이없다는 듯 보다가 운전석으로 올라탄다.
보라와 태웅이 탄 차 붕- 출발하는데 뒤늦게 쫓아나오는 보디가드들. 놓쳤다. 낭패한 표정.
23. 차 안 (낮)
태웅이 운전을 하면서 따지듯 말하고 보라는 뒷자리에 앉아서 시큰둥하게 듣고 있다.
태웅 : 화를 낼거면 차라리 나한테 내고 충식이는 복직 시켜줘. 따지고 보면 충식이가 그렇게 잘 못한 거 아니잖아?
그리고 걔, 너 때문에 다친 거 알지? 잘못했다고 정중하게 사과해 알았어?
보라 : (창 밖만 본다)
태웅 : 내 말 듣고 있는 거야?
보라 : (건성으로) 알았어. 알았으니까 일단 운전이나 해. 강남 가는 길은 알지?
태웅, 도저히 안되겠네... 하는 표정을 짓더니 핸들을 팍 꺽는다. 도로변에 끽 급정거하는 보라의 차!
보라, 악-하고 비명을 지르면서 앞쪽으로 몸이 팍 쏠린다.
태웅 : (어이없다는 듯 돌아보며) 너 진짜 웃기는 애구나?
지금 누가 누구한테 이래라 저래라 명령하는 거야? 내가 니 운전기사냐?
보라 : (노려보다가) 좋아... 니 친구 복직시켜주면 되는거지?
태웅 : (보면)
보라 : 사과는 모르겠고, 거기 도착하면 내가 백화점에 전화해줄게. 그러니까 우선 운전이나 해.
태웅 : ....정말이야?
보라 : 그렇다니까?
보라, 룸미러에 비친 태웅을 도도하게 노려보는데...
태웅, 반신반의 하는 표정으로 보다가 시동을 다시 건다.
24. 김회장 사무실 (낮)
왔다갔다하며 오실장과 이야기하는 김회장.
김회장 : ....왜 일들을 그따위로 하는거야. 컨설팅 회사에서 보낸 CI 자료들 내일까지 무조건 검토하고 브리핑 준비하라고 해.
그리고 오늘 당장 재경부 차관보랑 저녁 약속 잡아. 콜금리 인상된다는 소문이 사실인지 알아봐야겠어.
하는데 똑똑 소리가 나고 비서가 들어온다.
김회장 : 무슨 일이야?
비서 : (난감한) 저.. 보라아가씨가 사라졌답니다.
김회장 : 뭐야?
25. 호텔 파티장 앞 (밤)
고급 외제 승용차들이 줄줄이 서고 화려하게 치장한 사람들이 차에서 내려 파티장 안으로 속속 들어간다.
그 사이... 차에서 보라가 내린다.
보라, 태웅은 신경도 안쓰고 파티장으로 직행하는데 얼른 쫓아가 앞을 막는 태웅.
태웅 : 야! 너 그냥 가면 어떡해?
보라 : 나 바쁘거든? 좀 비켜줄래? (가려는데)
태웅 : (다시 확 막으며) 차안에서 한 얘기랑 다르잖아? (전화기 꺼내주며) 자, 빨리 백화점에 전화부터해. (하는데)
보라 : (피식 웃으며) 보기보다 순진하네? 내가 정말로 니말 들어줄줄 알았어?
태웅을 확 밀치고 잽싸게 안으로 들어가버리는 보라.
태웅 얼른 쫓아가는데 양복 입은 사내들이 앞을 확 가로막는다.
남자 : 초대장 보여주시죠.
태웅 : (앞에 가는 보라 가리키며) 저 쟤랑 할 얘기가 있거든요? 잠깐이면 돼요.
밀치고 따라 들어가려하는데 더 세게 앞을 가로막는 남자들.
남자 : (단호한) 초대장 없인 못들어갑니다.
보라, 난감해하는 태웅을 힐끗 보더니 약올리듯 웃으며 유유히 사라진다. 열받는 태웅.
26. 파티장 (밤)
화려한 조명, 화려한 차림새의 사람들로 가득찬 파티장.
보라가 들어서자 남자들의 시선이 집중된다.
도도하게 시선 받으며 걸어가는 보라. 몇 몇 남자들이 설레어 아는체를 하고...
예닐곱 명 쯤 몰려 앉아있는 테이블에 끼어있는 은지. 옆에 앉은 여자애가 은지를 툭 치며 턱짓을 한다.
보라 보고 재수없다는 눈빛으로 보는 은지.
보라가 테이블로 다가오자 남자들은 열광적으로 반긴다. 앞다퉈 일어나 반기며 의자도 빼주고 난리다.
은지 : (보라와 눈마주치자 괜히 친한 척) 어머 보라야 그 옷 어디서 샀니?
보라 : (약올리듯 웃으며) 왜? 너도 사려고? 니가 입기엔 너무 작지 않을까?
은지 : 뭐, 뭐야?
이때 어떤 남자가 보라에게 춤을 추자고 한다. 보라, 일어서고 은지는 분해서 원샷한다.
27. 파티장 근처 일각 (밤)
태웅, 파티장 입구를 쳐다보며 보라를 기다리다가 흘낏 시계를 본다.
태웅 : 아주 밤을 새는구나.. 밤을 새..
그러다 문득 파티장을 보는데 입구를 지키던 남자들이 커피마시며 잡담하고 있다.
태웅, 틈을 타서 잽싸게 안으로 들어가버린다.
28. 파티장 일각 (밤)
요란한 파티장으로 들어서는 태웅. 파티장의 분위기에 조금 질린 듯한 표정이다.
그러다 곧 정신 차리고 보라를 찾으려 주위를 둘러보는 태웅.
29. 파티장 일각 (밤)
춤추던 보라, 플로어에서 나와 자리로 돌아온다. 목 마른 듯 맥주를 마시려는데..
한 싸가지없게 생긴 남자애가 보라에게 말을 건다.
싸가지 : 너 맘에 든다. 이름이 뭐야?
보라 : (무시하고 맥주만 마신다)
싸가지 : 튕기시겠다? 하긴 너무 쉬우면 매력이 없지. (친구들 돌아보며 영어로) 오늘, 내가 얘 확실히 꼬신다!
외국인도 섞여있는 싸가지의 친구들, 왁자하게 웃으며 영어로 잘 해보라고 한마디씩 던지는데...
은지가 끼어든다.
은지 : (싸가지보며) 근데 쟤, 너랑 수준이 안맞는데 괜찮겠어?
보라 : (확 보면)
은지 : 쟤네 아빠가 무슨 재주로 돈을 벌어 재벌행세를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원래 뒷골목 출신이래. 사채업자였다던가?
싸가지 : 오호~ 한마디로 벼락부자의 따님이라 이거지?
(보라 옆으로 확 자리 바꾸며) 야 안되겠다. 너 나한테 시집와라. 진짜 재벌 되게 해줄게.
싸가지, 은근슬쩍 보라의 어깨에 팔을 얹는데...
보라, 마시던 맥주를 싸가지에게 확 붓는다.
싸가지 : 야! 너 뭐하는 짓이야?!
보라 : 사채업자면 어떻고 재벌이면 어떤데? 니네집 돈이나 우리집 돈이나 드러운건 마찬가지야. 입닥치고 잘 쓰기나 해.
싸가지 : 뭐야?! 이 기집애가?
하며 벌떡 일어나는데 친구들이 잡고 말린다.
분해서 막 영어로 친구들에게 말하는 싸가지. “저런 기집애는 버릇을 고쳐줘야해.” “왜 그래 여자잖아” 등등 떠드는데...
같이 있던 외국남자애가 보라한테 말한다.
외국애 : (영어) 미안합니다. 친구가 술이 좀 과해서 그러니까 이해해줘요.
은지 : (영어) 그래봤자 소용없어요. 쟨 영어 한마디도 못해요.
싸가지 : 하! 요즘 세상에 영어도 못하는 애가 있냐? (욕 섞인 영어로 빈정대는) 야이 재수없는 기집애야
도도한 척 해봤자 소용없어. 너 같은 기집애들 뻔할 뻔자인거 내가 다 알아.
보라 : (분해서 부들부들 노려본다)
싸가지 : 왜, 번역이라도 해줄까?! (하는데)
태웅(소리) : 거, 텍사스사투리 영 귀에 거슬리네.
보라와 사람들, 일제히 돌아보면 보라 뒤에 서있는 태웅.
태웅 : (유창한 영어로) 서부 어디 촌구석에서 영어 좀 배웠나본데 그렇게 잘난척할만한 실력은 아니지 않아?
(싸가지가 한 영어 고대로 흉내내고) 그렇게 말하면 뉴욕 사는 애들이 알아먹겠어? (제대로 된 발음을 보여준다)
싸가지 : (당황하며) 너, 넌 뭔데 끼어들고 난리야?
태웅 : 저요? 전.. (보라 가리키며) 이 아가씨 운전기삽니다. (보라 보며) 아가씨 가시죠.
보라 : (뜨악하게 보는데)
태웅 : 어서요?!
보라, 못이기는 척 일어나고 태웅은 싱긋 웃어주고 나간다.
분해하는 싸가지와 멍한 은지.
30. 파티장 앞 일각 (밤)
보라차가 서 있고 차를 향해 빠른 걸음으로 걸어나오며 이야기하는 보라와 태웅.
태웅 : 너 진짜 한심하다. 저런 애들을 친구라고 사귀냐?
보라 : (휙 보며) 누가 친구랬어? 너, 영어는 좀 하는 것 같긴 한데 뭐하러 끼어들고 난리야? 니가 도와주지 않아도 되는 자리였어.
보라 차 앞에 대기하고 있던 호텔 직원이 보라를 보고 차 키를 건네주려고 다가온다.
보라 : 대리 불러 주세요. (하는데)
태웅 : (차 키를 확 가로챈다)
보라 : 야! 뭐하는 거야?!
태웅 : (빙긋 웃으며) 우리, 아직 얘기 다 안끝났잖아. 안그래? (뒷좌석 문 열어주며) 자, 타시죠? 아.가.씨!
보라, 분해서 노려보다가 뒷자리로 가서 문을 쾅 닫고 탄다.
31. 차 안 (밤)
보라 : (휙 주변 보고) 지금 어디 가는 거야?
태웅 : 어디긴? 니네 집이지. 아무래도 너랑은 말이 안통하는거 같으니까 너희 아버지 만나서 직접 얘기해야겠다.
보라 : 뭐야? 내가 언제 우리집가자고 그랬어? 당장 차돌려!
태웅 : (운전만 한다)
보라 : 야! 당장 차 돌리라니까?!
그때 경찰들이 경찰차로 길을 막고 검문을 하고 있다. 경찰의 제지로 차를 세우는 태웅.
경찰1 : (번호판 확인하더니) 두 분, 잠시 차에서 내리시죠.
태웅 : 네?! 무슨일인데요?
경찰1 : 도난차량으로 신고된 차입니다. 경찰서로 같이 가주셔야겠습니다.
태웅/보라 : 뭐요? / 뭐라구요?
32. 보라집 거실 / 경찰서 (밤)
전화를 받고 있는 김회장. 순자와 득남, 뒤에서 걱정되는 듯 수군대고 있다.
김회장 : (싸늘하게)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
보라 : 몰라서 물어요? 세상에 어떤 아빠가 자기딸이 차 가져갔다고 신고를 해요?
도난신고, 당장 취소해주세요. 아빠가 하기싫으면 오실장아저씨라도 보내든가!!
김회장 : 내가 왜?!
보라 : 아빠!!!
김회장 : 맞선자리에서 망신 떤 것도 모자라서 애비 말 거역하고 기어코 밖엘 나가? 못된 것 같으니라구...
니가 경찰서에서 밤을 새든 말든 난 모른다. 니 알아서 해.
하고는 전화 팍 끊어버린다. 김회장, 분이 안풀리는지 씩씩대는데.
순자 : (끼어드는) ....회장님.. 그래도 보라아가씨 몸도 성치 않은데...
김회장 : 됐어. 지가 자초한 일이야. 내버려둬!!!
하더니 서재로 확 들어가버린다.
득남, 순자, 남아서 걱정스런 표정.
33. 유치장 (밤)
여자유치장에 앉아있는 보라, 분한 표정이다.
칸막이를 사이에 두고 남자유치장에 웅크리고 있던 태웅이 힐끗 보라 쪽을 본다.
태웅 : 너.. 나한테 미안하지도 않냐? 너야 니 잘못으로 들어와 앉아있지만 난 이게 뭐냐?
보라 : (도도하게) 그러게 누가 따라다니래?
태웅 : (픽 웃는다. 그러다) 근데 너, 아까 그 파티는 왜 갔어? 그런거 별로 좋아할 애로는 안보이던데?
보라 : 너 웃긴다? 니가 날 언제 봤다고?
태웅 : 병원에서. 생각 안나?
보라 : (표정!)
태웅 : 병원에선 왜 그런거야? ..왜 죽으려 한거냐구.
보라 : (툭) 너무 힘들어서. 너무 힘들고... 너무 슬프고 외로워서.
태웅 : (어?! 하는 느낌으로 보는데)
보라 : (휙 보며 시니컬하게 웃는) 이런 대답 듣고 싶었을텐데 미안해서 어쩌나? 나, 쇼한건데.
태웅 : 뭐?
보라 : 한국말 못알아들어? 정말로 죽을 생각 따윈 없었단 얘기야.
태웅, 어이없다는 듯 보라 쪽을 보는데.. 갑자기 문이 철컹 열린다.
놀라 보면,
경찰 : 둘 다 나와!
보라/태웅 : (표정!)
경찰 : (귀찮다는 듯) 사정 뻔한 거 같아서 보내주는 거야. 알았어?
34. 경찰서 앞 거리 (밤)
보라와 태웅이 경찰서에서 나온다.
보라, 태웅 쳐다보지도 않고 먼저 핑 가버리는데 태웅 걱정스럽게 본다.
태웅 : 너 어디 가는거야?
보라 : (대꾸하지 않고 그냥 막 걸어간다)
태웅 : 집에 가는거 아니지?
보라 : 상관마.
태웅 : (안되겠다는 듯 쫓아가며) ....그럼 어디 갈데는 있어? ...갈데 있음 말해. 기왕 기사노릇 시작한 거 어디든 데려다 줄테니까.
보라 : (휙 보며 시니컬하게 웃는) 너 정말 끈질기구나? 도대체 이러는 이유가 뭐야?
태웅 : 그냥 왠지 너.. 위태로워 보여.
보라 : 뭐가 어쩌고 어째? (하하하 웃고) 너 나한테 반했지? 그치? 근데 어쩌니? 난 너 같은애 전혀 관심없는데?
태웅 : ...너 왜 그렇게 살아?
보라 : (덜컹하는 느낌) 뭐..?
태웅 : 그렇게 센척, 강한척, 아무렇지 않은 척 살면... 너 행복해?
보라 : (표정!)
태웅 : 가끔은 솔직해지는것도 좋다? 뭐, 나한테 그러라는 얘긴 아냐.
널 가장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 누군가 한 명은 있을거 아냐. 그럼 니가 덜 힘들지 않을까?
태웅, 돌아서서 가고.. 멍하게 선 보라.
태웅, 걸어가는데..
보라(소리) : .......잠깐만.
태웅 : (멈칫 돌아보면)
보라 : (눈빛 흔들리는) 너... 정말 나 어디든 데려다 줄 수 있어?
35-1. 국도 (새벽)
동터 오는 새벽. 바닷가 국도를 달려가는 보라의 차.
35. 바닷가 한적한 곳 (낮)
한적한 바닷가 일각에 도착한 보라의 차.
보라와 태웅이 차에서 내린다.
보라 : (싸늘한) 따라올 것 없어. 금방 올테니까.
보라, 핑하니 돌아서서 바닷가 옆에 연결된 산길로 들어간다.
태웅, 의아하게 보라를 보다가 보라가 올라간 산쪽의 아찔한 낭떠러지를 보고 안색이 변한다.
36. 산길 (낮)
보라의 뒤를 밟는 태웅.
보라, 산길을 따라 올라간다. 꼭대기 낭떠러지 가까이 다가가고..
태웅, 긴장해서 멈칫 튀어나가려고 하는데... 보라가 걸음을 멈춘다.
보면... 한 무덤 앞에 선 보라.
감잡은 태웅,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태웅, 보라의 슬픈 얼굴을 측은하게 보다가 돌아서는데... 뭔가를 보고 얼굴이 밝아진다.
길가에 은방울꽃이 피어있다.
37. 무덤 앞 (낮)
은방울꽃으로 연결되면... 무덤 앞에 선 보라. 무덤가에도 은방울꽃이 많이 피어있다.
보라 : .....내가 너무 오랜만에 왔지? 미안해.... 이렇게 여기에 혼자 내버려둬서...
(슬프게 웃으며) 그러게 누가 먼저 죽으래? 누가 나만 남겨놓고 그렇게.... (말 잇지 못하고 애써 눈물 꾹 참는)
미안해... 정말 미안해. 근데... 나도 힘들었다? 너무너무 힘들고 외로웠어. 그러니까 서운해하지마....
38. 바닷가 (낮)
태웅이 차에 기대서 기다리고 있는데 보라가 다가온다.
보라 : ...돌아가자.. (하며 차로 가려하는데)
태웅 : (슥 은방울꽃을 건넨다) 은방울꽃이야. 너희 어머님 무덤가에 많이 피어있더라.
보라 : (멈칫 의아하게 보며) 뭐?
태웅 : 아버지는 살아계시니까... 어머니가 돌아가신거 맞지?
보라 : (표정!)
태웅 : ...너... 이 꽃 꽃말이 뭔지 아니?
보라 : (보면)
태웅 : 틀림없이 행복해집니다. (보라 보며) ....너희 어머니... 니가 와줘서 틀림없이 행복하셨을거야.
하며 조용히 웃는데 보라, 은방울꽃 멍하게 보다가 갑자기 후두둑 눈물이 떨어진다.
태웅, 어?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하는데 쌓였던 눈물이 터져나오는 걸 참기 힘든 보라. 주저 앉아 엉엉 울어버리고 만다.
멍하게 바라보기만 하는 태웅.
39. 마당 (낮)
김회장, 걱정스러운 듯 마당을 서성이고 있는데 문 밖에 차가 도착하는 소리가 들린다.
김회장, 보면 보라가 타고 나간 차다.
얼굴이 밝아지는 김회장. 그러다 차에서 내리는 태웅을 보고 얼굴이 굳어진다.
40. 보라의 집 앞 (낮)
태웅, 보라에게 차 키를 건네준다.
어색하게 머뭇거리는 보라와 태웅.
태웅 : (멋적게 웃다가) 그럼 나 갈게. 잘 있어라. (하고 돌아서는데)
보라 : 저, 저기...!
태웅 : (돌아보며) 응? 왜....?
보라 : 어...어 그게.... (망설이다가 잘 안들리게) 고마워..
하는 순간 갑자기 대문이 열린다. 보디가드들과 함께 나온 김회장의 굳은 얼굴.
보라 : 아, 아빠..?!
김회장 : (보라 노려보며 보디가드들에게 말하는) 둘 다 데려와!
41. 김회장 서재 (낮)
짝! 태웅의 뺨을 때리는 김회장.
보라, 아빠!!! 하며 달려드는데 보디가드들이 확 잡는다.
김회장 : 쟤가 누구 딸인 줄은 알았을 테고.... 말해봐. 돈 때문이냐?
보라 : 아빠 지금 무슨 소리 하는거에요?
김회장 : 내가 너같은 놈들 잘 알지. 여자 하나 꼬셔서 팔자 고칠 생각이나 하는 버러지같은 것들. 말해봐, 내 말이 맞지?
보라 : (몸부림치며) 아빠! 미쳤어요? 진짜 왜 그래요?!
김회장 : (보디가드들에게) 당장 데리고 나가! 어서!
보라, “이거 놔!!”하면서 보디가드들에 의해서 질질 끌려나가고 태웅과 김회장만 남는다.
김회장, 책상으로 가서 지갑에서 수표를 꺼내 오더니 태웅 앞에 확 뿌린다.
김회장 : 가져가. 그리고 다신 내 딸 근처에 얼씬도 하지마.
태웅 : (수표를 내려다본다)
김회장 : 왜.... 모자라서 그래?
태웅 : (차갑게 웃으며) 모자라면.. 더 주시려구요?
김회장 : (태웅과 팽팽하게 마주보다가) 좋아. 그런 식이라면 얘기하기 편하지.
(책상으로 돌아가며) 얼만지 말해봐. 얼마면 되겠어? (하는데)
태웅 : 늘 이런 식으로 사십니까?
김회장 : (휙 돌아본다)
태웅 : 따님한테도 늘 이런 식으로 하시나 보죠?
김회장 : 이 자식이...?! (하며 한 대 칠 것처럼 다가서는데)
태웅 : (노려보며) 따님, 오늘 어머니 무덤에 갔었습니다.
김회장 : 뭐, 뭐야..?!
태웅 : 전, 따님을 사모님 무덤에 데려다줬을 뿐, 아무 상관없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자식이 어머니 그리워하는게 그렇게 잘못된 일입니까? (문 쾅 닫고 나가버린다)
김회장 : (멍하게 있다가) ...무덤에 갔다고? (바르르 뺨 떨리며 일그러지는)
42. 거리 몽타주
태웅이 쓸쓸하게 거리를 걷는 모습들.
43. 포장 마차 (밤)
포장마차들 늘어선 거리를 걷는 태웅... 쓸쓸한 표정으로 아줌마들을 본다.
일하느라 분주한 아줌마들의 얼굴, 얼굴들.
포장마차에서 일하는 한 아줌마의 모습에 엄마의 얼굴이 겹쳐진다.
# 인서트 포장마차에서 일하던 엄마의 모습.
태웅, 그 포장마차로 들어간다.
아줌마 : (지쳐서 멍하게 있다가 반색하며) 어서 오세요. 뭘 드릴까?
태웅 : ....국수.. 주세요.
아줌마 : 아이고 어쩌나.. 국수가 삶은지 오래되서 좀 불었는데..
태웅 : 괜찮아요. 그냥 주세요.
아줌마 : (준비하며 웃는) 총각, 국수 엄청 좋아하는가부다?
태웅 : (엄마 생각나서 슬픈) ...네 좋아해요. 많이 좋아해요.
아줌마를 보는 태웅의 표정이 애잔하다.
44. 보라집 전경 (밤)
김회장(소리) : 너 도대체 거기 간 이유가 뭐야?
45. 보라방 (밤)
팽팽하게 노려보며 대치하고 있는 보라와 김회장.
김회장 : 내가 분명히 말했었지? 쓸데없는 짓 하지 말라고. 근데 니가 거길 왜 가?! 나한테 말도 없이 거길 왜 가냐구?!
보라 : (빈정대는) 제가 마치 못갈데라도 간 것처럼 말씀하시네요. 동생이 오빠 무덤 간게 그렇게 잘못인가요?
김회장 : 넌 왜 항상 그렇게 니 멋대로야?! 어차피 죽어버린 거, 니가 거기 가서 뭘 어쩌자는거야?!
보라 : 안죽었을 수도 있잖아요.
김회장 : 뭐..?!
보라 : 내가 6살 때 죽었다던 엄마도 살아있는데 오빠라고 살아있지 말란 법 없잖아요.
김회장 : (표정)
보라 : (울면서) 무덤에 왜 갔냐구요? 그래요. 보고 싶어서 갔어요.
너무 보고 싶어서, 혼자 거기 누워 있을게 너무너무 가슴 아파서... 그래서 갔어요. 그게 그렇게 화가 나세요?
김회장 : (참담한 표정으로 눈을 감는데)
보라 : (울면서 노려보는) .....아빠가 죽인거에요.
김회장 : (번쩍 눈뜨고 보면)
보라 : 오빠.... 아빠가 죽인거나 마찬가지라구요!
하는데 김회장, 철썩!!! 보라의 뺨을 때린다.
김회장 : (부들거리는) ...못된 것 같으니라구..
보라 : (뺨 감싸쥐고 놀라본다)
김회장 : 그래.. 내가 죽였다. 내가 죽였어. 이 말이 그렇게 듣고 싶더냐?
보라 : (울며 노려보는)
김회장 : 나가. 너 같은 딸.. 이젠 필요 없어. 나가!!!!! 다신 내 눈 앞에 나타나지마.
뺨 감싸쥐고 원망섞인 눈으로 바라보던 보라, 문을 쾅 열고 나가버린다.
46. 거실에서 김회장 서재까지 (밤)
순자, 득남, 오실장이 서 있다.
순자 : 회장님 왜 저렇게 화가 나셨데요?
오실장 : 글쎄요? 난들 아나....
이때 갑자기 보라가 우당탕탕 계단을 내려온다.
득남 : 보라야?!
하는데 확 나가버리는 보라.
세 사람, 어리둥절한데 김회장이 나온다.
김회장 : 오실장!!! 당장 보라 갈 만한 학교 알아봐. 미국이든 일본이든 어디든 상관없어.
같이 갈 간호사 구해서 일주일 안에 떠날 수 있게 준비해.
그리고, 득남이 너도 따라가. 혹시라도 보라가 허튼 짓 하면 당장 나한테 보고하도록해!!
세사람 어리둥절한데 서재로 들어가 문을 꽝 닫아버리는 김회장. 씁쓸하고 참담한 표정이다.
47. 거리 (밤)
보라, 울면서 거리를 달리다가 숨이 찬지 우뚝 자리에 멈춰선다. 보라의 눈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흐른다.
주위 사람들, 보라를 힐끔거리며 지나가지만 보라는 멍하니 서있다. 어딜 가야할 지 모르겠는 느낌....
외롭고 슬픈 보라의 얼굴.
48. 엄마 집 앞 (밤)
한 아담한 단독주택 앞. 골목 귀퉁이에서 보라가 멍하게 집을 올려다보고 있다.
그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난다. 얼른 골목으로 몸을 숨기는 보라. 슬쩍 고개를 내밀어보는데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고운 인상의 아줌마가 나와 두리번거린다.
아줌마를 본 보라의 눈에 눈물이 맺힌다.
보라 : (글썽해져서) ....엄마....
하며 나서려고 하는데 갑자기 승용차 한 대가 달려와 엄마 앞에 멈춘다.
멈칫하는 보라.
중학생으로 보이는 남매가 차에서 내려 “엄마!” 하며 달려가 안긴다.
엄마의 남편과 아이들.. 단란해보이는 네 가족을 보고 얼굴이 굳어지는 보라. 얼굴에 분노가 느껴지는데...
가족들과 함께 집으로 들어가려던 엄마, 뭔가 느껴지는 듯 보라가 서있는 쪽을 휙 돌아본다.
보라, 당황해서 돌아선다.
엄마, 약간 굳은 표정으로 “당신 먼저 들어가요.... 난 수퍼 좀 다녀올게요”하며 가족들을 먼저 들여보낸다.
보라, 당황해서 빠른 걸음으로 돌아서서 걷는데 뒤에 쫓아와서 서는 엄마.
보라엄마 : ...보라야!
보라 : (멈칫하며 눈커지는)
보라엄마 : 보라... 맞지? 그렇지?
보라 : (돌아선다)
보라엄마 : (팍 눈물고이며) ... 이게 얼마만이니? 우리 보라.. 정말 보고 싶었는데.. (하며 뺨을 만질 듯 손을 내미는데)
보라 : (팍 쳐낸다)
보라엄마 : (멈칫 놀라 보는데)
보라 : 보고 싶어서 왔을 거라고 착각하지마. 다른 남자 쫓아서 남편하고 자식버리고 나간 사람...
얼마나 잘 사는지, 얼마나 행복하게 사는지 확인하고 싶어서 온 거야.
보라엄마 : (슬프게 바라본다) 보라야.. 엄마가 밉구나... 그래, 밉겠지... 엄마가 무슨 자격으로 너한테,
보라 : (버럭) 엄마라고 하지마!
보라엄마 : !
보라 : (싸늘한) 나한테 엄마는 없어. 우리 엄만 내가 여섯 살 때 죽었어. 그리고 죽은 줄 알았던 엄마가 살아있다는 걸 알았을 때,
엄마는 내 마음 속에서 영원히 죽었어. ..... 그러니까.... 당신은 내 엄마 아냐.
보라엄마 : (눈물 흘리는)
보라 : (싸늘하게 웃어주며) 행복해보이네... 다행이야. 내가 마음껏 미워할 수 있게 행복해서. 다신 안올거야.
(하고 휙 돌아서는데)
보라엄마 : 몸은 괜찮니?
보라 : (멈칫)
보라엄마 : (울먹이며) 괜찮은 거지? 보라야, 너 잘 지내고 있는 거지?
보라의 눈에 눈물이 확 고인다. 보라, 입술 꽉 깨물고 도망치듯 멀어져간다.
49. 보라집 전경 (낮)
50. 보라 방 (낮)
보라가 짐을 싸고 있는데 옆에서 거들고 있는 득남.
득남 : (힐끗 보라 눈치 살피며)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지금이라도 회장님한테 잘못했다고 비는게 어때?
(주저하며) 나는 상관없는데... 니가 말도 안통하는 외국에서 혹시 아프기라도 하면... 그렇잖아..
보라 : (말없이 짐만 싼다)
득남 : (혼자 궁시렁대는) 아씨 미치겠네.. 회장님은 왜 나보고 따라가라그래..
보라 : 걱정마. 넌 안데리고 갈테니까.
득남 : (반색하며) 정말?
보라 : (싸늘하게) 이제 그만 됐으니까 넌 나가서 니 일이나 봐.
득남, 정말 그래도 되나 싶은 얼굴로 보라를 보다가 방을 나간다.
보라, 옷가지들을 챙기다가 무덤에 갔을때 입었던 옷을 만지는데.... 그 옷 주머니에서 시든 은방울꽃들이 나온다.
보라, 은방울꽃을 만지며 뭔가 곰곰이 생각에 잠긴다.
51. 체육관 앞 일각 (낮)
체육관에서 태웅이 나온다. 두리번거리던 태웅, 멈칫한다.
보면 보라가 기다리고 있다.
태웅 : 여긴 어떻게.....
보라 : (명랑한) 니 친구한테 물어봤어. 너 이름이 득구라며? 한득구. (피식 웃으며) 디게 촌스럽다.
태웅 : ...무슨 일로 온거야?
보라 : 사실은.... (망설이다가) 너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왔어.
태웅 : (본다?)
보라 : (대수롭지 않게) 아빠 대신 내가 사과할게. 미안해.
태웅 : (표정)
보라 : (씁쓸한) ...왠지 이 말은 하고 떠나야할 것 같았어. ....정말 미안해.
태웅 : (멈칫 보고) 떠나다니... 어디.... 가?
보라 : (끄덕) 응.
태웅 : ....어디..?
보라 : (담담한) 멀리. 아주 멀리 갈거야.
태웅 : (표정)
보라 : (짐짓 웃으며) 그럼 나 갈게. 잘 있어. (돌아서간다)
태웅 : (멍하게 바라보는데)
보라 : 아참! (차 타려다 말고 돌아보며) 그 꽃 말이야..
태웅 : (보면)
보라 : 은방울꽃. 꽃말이 뭐랬지?
태웅 : (멍하게 중얼거리는) 틀림없이 행복해집니다.
보라 : 틀림없이 행복해집니다....? (씩 웃으며) 멋진 말이야.
보라, 승용차를 타고 떠나고 태웅은 뭔가 불안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그때 체육관에 오던 승리가 두 사람이 헤어지는 모습을 본다.
52. 체육관 (낮)
태웅이 체육관으로 들어온다. 승리 괜히 글러브 같은거 정리하는 척 하고 있다.
태웅 : 내가 정리할테니까 이리 줘. (물건들을 정리하는데)
승리 : (옆에서 미적거리다가 괜히 관심없는 척 하며) ....아까 그 여자.. 누구야?
태웅 : 응? (보면)
승리 : 이쁘게 생겼던데... 오빠 그런 여자도 알아?
태웅 : 어 그냥 어떻게 알게 됐어..
태웅, 짐 챙겨들고 들어가고 왠지 찜찜한 느낌으로 바라보는 승리.
53. 태웅의 방 (밤)
태웅이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 뒤척이는 태웅.
# 인서트-꿈. 정규가 웃으며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웃어주는 정규의 얼굴.
태웅 : (악몽에 시달리는) 가지마 정규야... 안돼 가지마... 정규야! 정규야!!!!
태웅, 벌떡 일어난다. 식은땀으로 온통 젖어 있다.
54. 체육관 앞 일각 (밤)
잠이 오지 않는 듯 서성이는 태웅. 왠지 생각이 많은 표정이다.
# (2부 51씬)
보라 : 멀리 아주 멀리 갈거야..
왠지 불안한 느낌으로 생각하던 태웅... 생각을 털어내려는 듯 머리를 흔든다.
태웅, 착잡하게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55. 보라 방 (밤)
밤하늘에서 연결되면.. 창가에 서서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 보라. 뭔가 결심한 듯한 표정이다.
56. 보라 집 앞 (낮)
트렁크에 보라의 짐을 싣는 기사.
득남과 순자, 보라와 작별 인사를 하고 있다.
순자 : 미국 가서도 끼니 거르지 말고 잘 챙겨먹고 약도 꼬박꼬박 챙겨먹어.
득남 : 괜히 외국애들이랑 연애하지 말고.
순자 : 쓸데없는 소리하고 있어. (득남이 쥐어박는데)
보라 : (싸늘하게) 근데 득남이 너, 머리에 그 핀은 뭐야?
득남 : 이거? 야! 이건 니거 아냐! 진짜야?! (하는데)
보라 : 누가 내거랬어? 촌스럽다 이거지. (자기 머리에 꽂은 핀 뽑아서 끼워주며) 흠... 이제 좀 낫네.
득남 : (어리둥절한데)
순자 : 에휴.. 그나저나 득남이라도 같이 가야하는거 아냐?
보라 : 됐어요. (보라답지 않은) ...득남이도 가버리면.... 아줌마가 외롭잖아.
순자/득남 : (표정!)
보라 : (다시 쌩하게) 저 갈게요. (득남 보며) 잘있어.
보라, 차를 타고 떠나고...
멍하게 서로 마주보는 득남과 순자.
득남 : 쟤 좀 이상한 거 같지 않아요?
순자 : 그러게. 다신 안볼 사람처럼 왜 저러냐.
57. 김회장 사무실 (낮)
김회장에게 보고 하는 오실장.
오실장 : ....오후 3시 비행깁니다. 우선은 어학연수 코스를 밟을 수 있게 준비하긴 했는데... 정말 이렇게 보내셔도 되겠습니까?
김회장 : (멈칫 하다가) ....나가봐.
오실장, 더 말 못하고 그냥 나간다.
김회장, 착잡한 표정인데 전화가 온다.
김회장 : 여보세요?
보라(소리) : 아빠 저에요.
김회장 : (표정)
58. 보라 차 안/김회장 사무실 (낮)
차 타고 가며 전화하는 보라.
보라 : 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전화는 해야할 거 같아서요.
김회장 : 도착하면 다시 전화해. (끊으려고하는데)
보라(소리) : 아빠...!
김회장 : (다시 전화기 대면)
보라 : 혹시 은방울꽃 본적 있어요? 진짜 이쁘던데... 아빠 그 꽃 꽃말이 뭔지 모르죠?
김회장 : .....
보라 : (글썽해져서) ...틀림없이 행복해집니다.
김회장 : (표정!)
보라(소리) : 아빠... 행복하세요.
김회장 : 보라야?! (하는데 전화가 뚝 끊긴다) 보라야? 보라야?!
59. 보라 차 안 (낮)
전화 끊고 후... 숨을 고르는 보라.
보라 : 아저씨 잠깐 차 좀 세워주실래요?
60. 김회장 사무실 (낮)
뭔가 느낌이 이상한 듯 불안하게 생각하는 김회장. 그러다 안되겠는지 인터폰을 누른다.
김회장 : 오후 약속 전부 취소하고 차 준비 시켜. 공항에 다녀와야겠어.
김회장, 벌떡 일어나 옷을 입는데 문이 벌컥 열리고 오실장이 뛰어들어온다.
오실장 : 회장님, 크, 큰일 났습니다!
김회장 : (돌아보면)
오실장 : 아가씨가 없어졌답니다!
김회장 : (덜컹하는!)
61. 복도 (낮)
비서진들 데리고 빠르게 걸어가며 말하는 김회장.
김회장 : 우선 경찰에 연락하고 갈만한 곳 샅샅이 뒤져봐. 인근 종합병원 응급실도 다 뒤져보고.
오실장 : 네 알겠습니다.
김회장 : 아 그리고... (멈칫 선다) 저번에 보라가 데려왔던 그 녀석.... 백화점 직원중에 친구가 있다고 했지? 그 쪽도 알아봐.
62. 체육관 (낮)
태웅이 샌드백 때리다 말고 어두운 표정으로 생각에 잠겨 있는데 동료가 툭친다.
동료 : 득구야, 누가 너 찾아왔다!
태웅, 문쪽을 바라보면 기사가 태웅을 알아보고 다급한 표정으로 달려온다.
기사 : 혹시 우리 아가씨 여기 안왔나요?
태웅 : !! 며칠 전에 왔었잖아요.
기사 : (답답한) 아니 오늘 말이에요 오늘. 오늘은 안왔어요?
태웅 : (확 잡으며) 왜 그래요? 무슨 일 있어요?
기사 : (난감해하다가) 오늘 미국으로 가기로 했는데 공항 가는 길에 없어져버렸어요!
태웅 : (표정!)
기사 : 혹시 우리 아가씨가 갔을 만한 곳 모르죠? 아씨,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거야? (가고)
태웅, 멍해진다. 그러다 문득,
# (2부 36씬) 무덤가에 서있던 보라.
태웅, 얼굴 표정이 확 바뀌면서 황급히 달려 나간다.
63. 몽타주
- 정신없이 달리는 태웅의 모습과 보라의 교차.
# (2부 4씬)
보라 : 누가 농담하는 줄 알아? 정말로 죽어버릴거야!!
# (2부 33씬)
보라 : 너무 힘들어서. 너무 힘들고 너무 슬프고.. 너무 외로워서.
# (2부 51씬)
보라 : 멀리... 아주 멀리 갈거야.
# (2부 51씬)
보라 : 사실은 너한테 미안하단 말 하러 왔어.
# (1부 47씬)
정규 : 미안해. 실은 이 말 하고 싶어서 온거야.
- 미친 듯 달려가던 태웅, 택시를 잡아탄다.
- 택시 안.
태웅, 불안하고 초조해서 미칠 지경이다. 태웅의 얼굴 위로.
보라(소리) : 미안해.
정규(소리) : 미안하다 태웅아.. 미안해.
보라(소리) : 미안해 정말 미안해.
정규(소리) : 미안하다 태웅아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 창 밖 보며 초조하고 괴로운 태웅... 미칠 것 같다.
태웅 : (다급한) 아저씨 좀 더 빨리 갈 수 없나요?
- 바닷가를 따라 달리는 택시.
64. 무덤가 (낮)
엄마 무덤 앞에 은방울꽃이 놓여진다. 슬프게 무덤을 바라보고 선 보라.
보라 : 오빠... 거기서 행복해?
글썽한 보라의 얼굴.
보라(소리) : 나도 이제... 행복해지고 싶어.
65. 몽타주
바닷가에 택시가 멈추고 뛰어내리는 태웅.
태웅, 보라가 올라갔던 절벽을 향해 미친듯이 달린다.
태웅의 얼굴위로 교차되는 플래시백.
# (1부 69씬)
태웅 정규의 죽음을 알고 울부짖는 모습.
# (1부 47씬)
정규 : 니가 정 그렇게 나랑 친구가 되고 싶다면 못해줄 것도 없지. 좋아. 친구해줄게.
# (1부 51씬)
정규 : 내가 일등해도 우린 친구지?
# (1부 50씬)
정규와 태웅 사진찍는 모습.
미친 듯이 달려가는 태웅의 모습 위로,
정규(소리) : 미안하다 태웅아...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달려가던 태웅, 저만치 멀리 보라가 위태롭게 서있는 걸 본다.
태웅 : (멍한) ...안돼!!!
66. 낭떠러지 (낮)
낭떠러지에 눈을 감고 선 보라. 조용히 눈을 뜬다.
결심한 듯, 심호흡을 하고 몸을 날리는데 누군가 뒤에서 확 끌어안는다!
헉 놀라서 돌아보는 보라. 태웅이다!
보라, 움찔 놀라는데 더욱 세게 끌어안는 태웅.
태웅 : (후두둑 눈물 떨어뜨리며) ...죽지마...
보라 : !!!
태웅 : (운다) 제발... 죽지마...!
태웅에게 안긴 채 멍하게 있던 보라의 눈에서 눈물이 뚝 떨어진다. 2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