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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06월15일(일요일) 환기미술관 탐방일정
탐방지 : 환기미술관
[1992년 개관한 이래 오랜 세월 동안 과거의 김환기와 현재의 관람객이 소통하는 공간 역할을 해온 환기미술관. 2024년2월1일부터 대규모 레노베이션을 시작하면서 장기 휴관에 들어갔었다. 2024년12월6일 재개관전 <영원한 것들: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존재한 것들>을 통해 10개월 만에 다시 관람객 곁으로 돌아왔다.
2025년3월5일까지 이어지는 <영원한 것들: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존재한 것들>은 전 생애에 걸친 예술 여정에서 김환기가 보고, 듣고, 느꼈던 혹은 스쳐 지나갔던 찰나의 순간들을 작품으로 탄생시킨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과정에서 김환기 예술 세계의 화두는 단연 ‘자연’이었다. 그에게 영원불멸한 자연은 절대적인 예술적 영감이자 내면세계를 투영하는 장치였다. 한편 이번 전시의 부제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존재한 것들’은 김환기가 과거 자연에 대해 내린 정의이기도 하다.
1944년 김향안과 결혼하면서 살게 된 성북동 집에서 본 지극히 한국적인 자연 정취부터 프랑스 파리에 머물 당시 아틀리에 주변의 새와 마로니에 나무, 1974년 7월 세상을 떠날 때까지 마지막 예술혼을 불태웠던 뉴욕 스튜디오에서 자연의 본질에 파고들어 ‘점, 선, 면’으로 응축시킨 추상성까지, 해당 전시를 통해 작가가 일생 동안 마주한 자연과 그를 통해 확장해 나간 예술 세계를 감상해 볼 수 있다.
위치 :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40길 63
영업시간 : 10:00~18:00시
정기 휴무 : 월요일
12/31-01/01 휴무
전화번호 : 02-391-7701
관람요금
성인 18,000원
청소년(만 19세 미만) 9,000원
경로(만 65세 이상) 9,000원
보호자 동반한 미취학 아동 : 무료
장애인(복지카드 소지자) : 무료]
탐방코스: [석파정 버스 정류장~환기미술관에서 환기미술관 재개관 특별전 [영원한 것들: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존재한 것들]을 관람~환기미술관 달관 수향산방에서 환기미술관 재개관 특별전 [김환기 - The Duet 듀엣]을 관람~환기미술관 별관에서 [아트판화와 디지털소장품 전시]를 관람~석파정 버스 정류장]
탐방일 : 2025년06월15일(일요일)
날씨 : 구름이 낀 날씨 [서울 종로구 부암동 최저기온 21도C, 최고기온 30도C]
탐방코스 및 탐방 구간별 탐방 소요시간 (총 탐방시간 2시간26분 소요)
12:00~12:10 연신내역에서 3호선을 타고 홍제역으로 가서 홍제역 1번 출구로 나옴 [10분 소요]
12:10~12:18 홍제역 1번 출구에서 유진상가 정류장까지 도보로 이동 [8분, 478m 이동]
12:18~12:30 유진상가 정류장에서 석파정 정류장으로 가는 7018번 버스 승차 대기
12:30~12:41 7018번 버스를 타고 유진상가 정류장에서 석파정 정류장으로 이동 [11분, 7개 정류장 이동]
12:41~12:48 석파정 정류장에서 탐방출발하여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40길 63 번지에 있는 환기미술관까지 도보로 이동 [7분, 371m 이동] [경로(만 65세 이상) 입장요금 : 9,000원]
[환기미술관
한국 현대미술의 풍부한 결실을 실현하기 위한 미술관
환기미술관(관장 박미정)은 수화(樹話) 김환기 선생이 작고한 후 작가의 예술이 갖는 귀중한 가치와 생전에 한국 미술계에 미친 영향을 되새기기 위해 환기재단법인에 의해 1992년 설립되었다.
건축 디자인은 전통 한국건축처럼 땅에 접하는 부위에는 돌이나 벽돌을 쌓는 ‘조적’의 의미를 가진 석재로 했다. 그 위는 판 형태로 표현된 석재, 지붕은 납을 입힌 동판으로 처리해 특색을 더했다. 별관은 외곽의 단과 함께 고압 벽돌을 사용해 본관의 디자인적 특수성에 대비되는 보편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김환기 선생의 작품 전시를 비롯한 다양하고 활발한 기획전시, 행사, 교육프로그램 등을 운영한다. 주요 소장품은 김환기 작품 300여 점이며 김환기 작품 상설 전시와 특별전, 현대미술에 대한 각종 기획전과 행사들이 진행되고 있다.
경복궁에서 출발해 윤동주문학관을 경유, 환기미술관이 있는 부암동길에 도착하면 옛 골목길 사이에 숨어있는 맛집과 카페를 발견하는 즐거움도 느낄 수 있다.]
[“미술관은 내용이다” 환기미술관 부암동 아트프로젝트
[박인권의 전국사립미술관기행]②서울 부암동 환기미술관
2012.11.16. 문화체육관광부 국민소통실
서울 종로구 부암동 수려한 경관의 북악산 자락에 위치한 환기미술관은 지난 1992년 11월 5일 2년여의 공사 끝에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김환기 뉴욕 1963~1974>이란 타이틀로 열린 개관기념전을 필두로 2012년 현재에 이르기까지 약 100회의 전시를 치르며 서울 도심의 대표적인 문화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미술관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이 김환기(1913~1974)의 예술세계를 기리고 그의 예술작품을 보존하고 연구하며 전시하는 기념적 성격의 환기미술관이 세워지기까지에는 우여곡절이 있었다.
수화(樹話) 김환기의 예술세계 기리기 위해 설립된 환기미술관
1987년 파리 국립조형예술센터에서 김환기의 뉴욕시대를 회고하는 전시인 <김환기 뉴욕 10년>전 이 개최됐을 당시 김환기의 미망인인 고 김향안(1916~2004) 여사는 김환기의 전 작품을 유럽의 권위 있는 미술관에 기증하고 싶어 했다.
그러나 고민 끝에 김향안 여사는 생전의 김환기가 그토록 애착을 보인 성북동 화실 ‘수향산방’과 유사한 환경을 갖춘 부암동에 미술관을 건립해 그의 작품을 전시하는 것이 고인의 유지를 보다 더 잘 계승하는 것이라고 판단해 지금의 환기미술관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이처럼 ‘김환기’라는 위대한 한 작가의 예술정신과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설립된 환기미술관은 김환기의 유화를 비롯해 구아슈(비 투명 수채물감), 수채화, 드로잉, 오브제 등 다양한 작품뿐만 아니라 그의 유품과 저서, 편지, 다큐멘터리 사진 등 김환기의 예술과 삶을 조명할 수 있는 방대한 자료를 소장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김환기의 작품에 토대를 둔 기획전시를 꾸준히 열고 있지만 근·현대미술을 두루 소개하며 후진 양성에 역점을 둔 전시도 활발하게 개최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현대미술의 주요 기능으로 부각되고 있는 해외교류 전시프로그램에도 정성을 쏟고 있으며 다채롭고 내실 있는 교육프로그램을 적극개발, 운영함으로써 평생 사회교육기관으로서의 미술관 본연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
다양한 기획전과 특별전, 젊은 예술가 발굴과 교육프로그램 활성화
김환기의 주옥같은 예술세계를 기획전과 특별전을 통해 전파하는 환기미술관 운영의 특징은 크게 네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우선 후학양성에 남다른 애정을 보였던 김환기의 유지를 받들어 잠재력 있는 젊은 예술가들을 발굴하고 소개하는 ‘환기미술관 공모기획전’을 열고 있다. 미술관 개관 초기에는 ‘환기 상’이라는 이름으로 젊은 작가들을 후원하고 전시를 개최해왔으나 문호를 대폭개방하고 수혜의 폭을 확장시키자는 취지아래 ‘공모기획전’으로 지원 방법을 바꿔 진행하고 있다.
두 번째로는 뛰어난 콘텐츠로 잘 알려진 교육전시를 꼽을 수 있다. 전시 관람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관람자 스스로의 예술 활동 참여를 통한 미적 체험과 문화소외 계층을 상대로 한 전시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교육 문화 복지 프로그램을 활발하게 개발, 진행하고 있다.
세 번째는 미술관 건물의 예술적 가치와 뛰어난 공간 분할 기능을 십분 활용한 독창적인 공간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점을 꼽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지역사회와 연계한 지역문화축제로 실시하고 있는 ‘부암동 프로젝트’를 빼놓을 수 없다. 지역에 기반을 둔 지역작가의 작품을 격려하고 그들의 작품세계를 지역주민들과 공유할 목적으로 작가와 관람객을 잇는 다양한 행사를 개최하고 지역주민들에게 양질의 문화예술교육 콘텐츠를 서비스함으로써 지역문화 발전에 기여하고자 하는 것이다. “미술관은 내용”이라는 김향안 여사의 주장을 그대로 실천에 옮기고 있는 셈이다.
2012년 환기미술관 대표 전시
▲환기미술관 부암동 아트프로젝트 : 2012년 3월23일부터 6월17일까지 열린 부암동 아트프로젝트는 환기미술관 소재지인 부암동에 기반을 둔 지역작가들의 작품을 지역주민들과 공유하고 소통함으로써 부암동 일대에 문화예술의 향기를 피우겠다는 취지의 프로젝트다. 미술관에서의 전시뿐 아니라 부암동 일대에 작품을 설치하고 오픈 스튜디오를 마련, 작가와 관람객 간의 만남의 시간을 제공하며 지역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문화예술 체험프로그램도 진행했다.
▲김환기와 한국의 美_점·선·면의 울림 : 지난 10월5일 개막한 환기미술관 개관 20주년 기념 전시로 김환기 작품을 중심으로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목가구와 한국자수박물관 소장 조각보를 함께 선보이고 있다. 김환기 작품과 전통 목가구, 조각보에서 ‘점, 선, 면’이라는 조형언어를 뽑아내 이것이 김환기의 작품세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를 보여주는 전시다. 전시는 12월9일까지 계속된다.
프랑스 국가 문화훈장 수훈에 빛나는 박미정 관장
프랑스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1999년 환기미술관 큐레이터로 입사한 뒤 2004년 1월 환기미술관 관장에 오른 박미정 관장은 이화여대 조소과 졸업 후 파리8대학에서 조형예술학과 학사, 석사, 박사를 취득한 전형적인 프랑스 통이다. 전공분야는 현대 서양미술사 중 ‘미국추상표현주의 미술’이며 큐레이터 시절 탁월한 전시기획력과 풍부한 유럽미술 인맥을 인정받아 관장에 부임하는 등 파격적인 승진으로 화제가 됐었다.
2007년 한국박물관협회 선정 <젊은 박물관인상>을 수상한데 이어 2009년 프랑스 국가 문화훈장인 <슈발리에 장>을 수훈하는 영예를 안았다. <슈발리에 장>은 프랑스 정부가 예술과 문학 분야에 대한 공헌과 문화보급에 기여한 노력을 인정하는 문화훈장으로 기사작위와 동등한 의미가 부여된다.
열림과 닫힘, 직선과 곡선이 어우러진 환기미술관 건물
환기미술관은 지상 3층 규모의 본관과 별관, 김환기의 성북동 화실 이름을 그대로 딴 수향산방 등 3개동으로 구성돼 있다. 김환기가 뉴욕에서 활동하던 시절 친분이 두터웠던 재미건축가 우규승이 설계했다. 김환기가 좋아했던 산과 달, 구름, 바위, 나무와 같은 자연과 어우러지고 건물 곳곳에서 한국적인 정서를 느낄 수 있도록 지어졌다.
실제로 1994년에 ‘김수근 건축상’을 수상함으로써 미술관 건물의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부드러운 곡선이 두드러져 자연미가 빼어난 본관은 건물 전체를 관통하는 중앙홀을 중심으로 각 층마다 다양한 유형의 전시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또 각각의 공간들은 건물 외부의 산책로와 맞물려 있다. 건물 1층은 중앙홀과 반달 모양의 전시실로 이뤄져 있다. 2~3층은 네모꼴 전시실로 구성돼 공간의 독립성을 강조했으며 각 전시실의 중심 공간을 둥근 고리 모양으로 서로 교차되게 설계함으로써 관람객이 작품 감상의 동선을 선택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 특징이다.
3개의 전시실과 함께 관장실, 학예실, 관리실, 수장고 등이 위치해 있다. 본관 주변의 야외공간에는 다양한 조각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지하와 지상 2층 규모의 별관은 본관 건립 1년 뒤인 1993년 11월에 완공됐다. 별관 1층에 있는 아트 숍에서는 김환기 작품에서 차용한 모티브를 중심으로 제작한 아트 상품들을 판매한다. 카페테리아도 별관 1층에서 만날 수 있다.
별관 2층은 기획전시실로 활용하고 있으며 개방된 형태의 지하층은 주차장이다. 별관 건물 앞에는 미술관 정원도 꾸며져 있다.
1997년 11월에 준공된 수향산방은 김환기가 생전에 구상한 아틀리에 모양으로 디자인됐으며 지하와 지상 2층으로 구성돼 있다. 주로 강의실로 사용되고 있다.
특성화된 환기미술관 교육프로그램
환기미술관 교육프로그램 콘텐츠의 특징은 ‘특성화’와 ‘관람객 맞춤형’, ‘지역사회 문화예술발전’, 세 단어로 요약할 수 있다. 1992년 개관 이래 김환기의 예술과 작품세계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를 바탕으로 양질의 기획전시와 연계한 교육프로그램을 꾸준히 시행하고 있다.
먼저 1993년부터 운영하고 있는 ‘환기미술관 미술포럼’을 내세울 수 있다. <환기미술관 미술포럼>은 관람객들이 한국의 근·현대 미술사를 쉽고 흥미롭게 접근할 수 있는 자리라는 평가를 굳혔다. 또 초중고 교사대상 공개강좌인 <미술을 모르면 미래가 없다>, 공교육의 활성화에 초점을 맞춘 <학교에서 행방불명된 미술교육 찾기 과정>, 지역주민을 위한 <이달의 영화> 상영 등의 프로그램을 통해 지속적인 문화예술교육에 힘을 쏟고 있다.
뿐만 아니라 <어린이 미술캠프>와 함께 온 가족이 즐길 수 있는 <엄마랑 아이랑>, 정부의 예술교육 활성화 방침에 발맞춘 <미술관 속으로 떠나는 직업여행>, <인문학 특강> 등 창의예술체험프로그램도 시행하고 있다. 아울러 환기미술관의 주요 소장품과 연계한 특별기획전을 매년 4~5회 씩 개최하고 있으며 연구프로젝트와 출판사업 등에도 매진하고 있다.
미술관 대표작 - 꿈 속의 고향섬을 그린 ‘달밤의섬’
한국추상미술 1세대의 선두주자 김환기가 46살이던 1959년, 캔버스에 유채로 그린 작품으로 환기미술관의 대표소장품이다. 1962년 3월 김환기가 자신이 쓴 <고향의 봄>에서 “내 고향은 전남 기좌도(箕佐島). 고향 우리 집 문간에서 나서면 바다 건너 동쪽으로 목포 유달산이 보인다. 목포항에서 백마력 똑딱선을 타고 호수 같은 바다를 건너서 두 시간이면 닿는 섬이다. 그저 꿈같은 섬이요, 꿈 속 같은 내 고향”이라고 노래한 바로 그 섬을 그린 작품이다.
이 작품은 생전의 김환기가 1963년 제7회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출품했을 정도로 애지중지한 것으로 작가가 즐겨 그린 산월(山月) 풍경 중에서도 백미로 꼽힌다. 둥근 달과 구름, 출렁이는 바다, 산봉우리와 숲 등을 극도로 단순하고 절제된 방식으로 표현해냈다. 김환기의 산월 풍경 작품에 어김없이 나타나는 푸른색은 ‘생명성’의 상징이다.
▶관람 안내
환기미술관은 지상 3층 규모의 본관과 지하 및 지상 2층의 별관, 강의실로 주로 사용되는 수향산방 등 3개동으로 이뤄져 있다.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3번 출구에서 연계버스(G선 초록버스 7022, 1020, 7212)를 타고 부암동주민센터에서 하차하면 된다.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 교보빌딩 앞에서도 연계버스(G선 초록버스 1020, 7212)를 타고 부암동주민센터까지 갈 수 있다. 부암동주민센터에서 북악스카이웨이 입구 쪽으로 걸어서 2분 거리에 있다. <사진·자료 제공=환기미술관>
◆ 박인권(문화칼럼니스트)
온라인 미술 매거진 ‘아트 뮤지엄’ 편집주간. 스포츠서울 미술담당 기자, 문화부장 등을 거쳐 P.I.K. 문화연구소장으로 재직 중이다.다. 한국사립미술관협회에서 발행하는 온라인 미술 매거진 ‘아트 뮤지엄’ 편집주간도 맡고 있다. 저서로는 ‘시와 사랑에 빠진 그림’, ‘미술 전시홍보, 이렇게 한다’ 등 다수가 있다.]
[천건희의 산책길㊸] 환기미술관, ‘미술관 일기’로 예술적 소통 그리고 이음
천건희 기자
이모작뉴스 기사 입력 2022.07.18. 16:55, 수정 2022.07.19. 10:56
개관 30주년 기념전 ‘미술관 일기’, 본관에서 7월 31일까지 전시
전시 ‘우리끼리의 얘기’는 올해 연말까지 달관에서 이어져
[이모작뉴스 천건희 기자] 환기미술관이 개관 30주년을 맞았다. 개관 30주년 기념전 <미술관 일기>를 지난 7월 3일 관람했다. 환기미술관은 1992년 추상미술의 거장 수화(樹話) 김환기(1913~1974)의 부인 김향안(1916~2004) 여사가 김환기 화백을 기리고, 현대미술 발전에 공헌하고자 건축가 우규승의 설계로 부암동에 설립한 미술관이다.
환기미술관은 본관, 별관, 달관(수향산방)으로 이루어져 있다. <미술관 일기> 전시가 이루어지는 본관에 들어서면 김환기 화백과 김향안 여사가 파리에서 찍은 흑백 사진이 맞이해준다. 사진 앞에는 김향안 여사가 1988년부터 1992년까지 손으로 쓴 일기장이 전시되어 있다. <미술관 일기>는 지난 30년간 환기미술관에서 이루어진 200여회 전시 중 주요 전시를 아카이브 자료와 실제 작품들을 전시하여 미술관의 역사를 보여준다. 김환기 화백의 작품 외 환기재단 작가와 역대 프리환기(Prix Whanki) 수상작도 함께 전시되어 있다.
휴대폰으로 전시 리플릿의 QR코드를 찍으면 전시 안내를 들을 수 있는데, 도슨트의 설명과 함께 작품별로 시민 참여자의 감상이 녹음되어 있어 새로웠다. ‘함께 만드는 뮤지엄’ 행사의 하나로 진행된 「모두의 소장품: 들리는 전시 <뮤지엄 보이스>」가 바로 그것이다. 어린이, 시각장애인, 지역 주민, 노인 등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해 작품 감상을 감상평이나 연주 등 각자의 방식으로 음성 콘텐츠로 만들었다. 모든 사람에게 경험으로서의 예술을 제공하는 베리어프리(barrier free) 뮤지엄의 실천이 느껴져 좋았다. <뮤지엄 보이스 맵>은 환기미술관의 내외부가 일러스트로 이해하기 쉽게 만들어져 환기미술관 실내 뿐 아니라 야외의 많은 작품들을 놓치지 않고 관람할 수 있다.
환기미술관은 김환기 화백의 큰 작품 크기에 맞는 높은 천장과 자연채광, 한가운데 중정으로 관람객에게 시원하고 여유로운 느낌을 준다. ‘매화와 항아리’,‘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등 관람객이 선정한 환기미술품의 인기 소장품들을 직접 관람할 수 있음은 큰 감동이다. 김환기 화백 작품을 모티브로 김향안 여사가 프랑스 장인에게 의뢰해서 만들었다는 비트라유(유리에 그림을 그린 색유리)의 선들은 여전히 멋지다.
별관은 관람객이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는 공간으로 <환기미술관 즐겨찾기>와 <뮤지엄 타임캡슐:미래로 향한 뮤지엄>이 열리고 있다. 30년 동안 미술관을 찾은 관람객들이 쓴 방명록의 서로 다른 필체가 작품화되어 전시되어 있다. 디지털 콘텐츠를 활용해 김환기 화백처럼 나만의 패턴을 만들어 커다란 스크린 위로 띄울 수도 있다. 뮤지엄 타임캡슐은 관람객과 함께 공유하며 미래 뮤지엄으로 나아가려는 환기미술관의 뜻이 느껴졌다.
수향산방 입구로 가는 길 건물 벽에는 김환기 화백의 미술관 건립 마음이 담긴 일기가 적혀 있다.
재미난 생각을 했다.
우리 집(서울 서교동) 공지에
4층 집을 짓고 두 층은 우리가 쓰고
두 층은 사설 미술관을 하자고.
음악 학생, 무명 음악가로 하여금
연주회도 하고
그림엽서 출판도 하고.....
1965년 1월 17일. 김환기 일기
달관 2층 수향산방에는 <우리끼리의 얘기, 환기미술관이 건립되기까지>가 전시되고 있다. 수향산방은 성북구에 있었던 부부의 옛집 이름으로 김환기 화백의 호 수화와 김향안 여사의 이름에서 한 자 씩을 넣었다. 김환기 화백과 김향안 여사가 남긴 기록을 바탕으로 실제 환기미술관이 건립되기까지의 여정을 보여준다. 김향안 여사는 1989년부터 1994년까지의 환기미술관 건립에 대한 기록이 담긴 책 『환기미술관을 세우면서-우리끼리의 얘기』를 미술관 개관 2년 뒤인 1994년에 펴냈다.
“미술관은 내용이다.
아무리 아름다운 집을 지었어도 그 안에 담긴 내용이 관람자의 마음을 울리지 못할 때
그 미술관은 아무것도 아니다.
미술관 일기는 이렇게 시작되어 계승자들에 의해서 계속 이어질 것이다”
절판되었던 귀한 기록이 환기미술관 30주년을 맞이하여 2022년도 개정판 『미술관 일기』로 발간되었다.
수향산방에는 김환기 화백과 김향안 여사가 함께 행복한 꿈을 꾸었던 뉴욕 스튜디오가 재현되었고 물감과 붓 등의 유품도 전시되어 있다. 김향안 여사의 ‘미술관 일기’를 영상으로 재해석한 영상이 계속 흘러나온다. 서로에 대한 예술적 지지와 존경의 마음을 엮어간 일화들과 문구들은 언제 보아도 가슴 뭉클하고 감동이다.
사람들이 와서 모두 미술관을 즐기니 나도 흐뭇하다
더 재미나게 즐길 수 있는 일을 자꾸 생각해 내고 싶다
나는 미술관 일기를 계속한다.
나만의 기록이 될 수도 있고 만인의 기록이 될 수도 있으니까
/ 김향안
환기미술관은 예술가가 남긴 훌륭한 예술세계가 시간과 더불어 우리 문화유산으로 역사에 남는다는 김향안 여사의 마음과 헌신이 담겨 있는 곳이다. 환기미술관의 ‘예술로써 소통하는 사회로의 꿈’의 미래 비전을 응원하는 마음이다.
본관과 별관에서의 전시인 <미술관 일기>와 <뮤지엄 타임캡슐>은 7월 31일까지 운영되고, 달관 전시 <우리끼리의 얘기>는 2022년 연말까지 이어진다.
환기미술관 관람 덕분에 부암동 나들이로 ‘윤동주 문학관’과 ‘더숲 초소책방’을 둘러봄은 덤이다. 윤동주 문학관은 윤동주 시인의 발자취와 생애를 기리기 위해 버려진 있던 청운수도가압장의 물탱크를 새로 단장하여 2012년 개관했다. 서시가 적힌 전망 좋은 윤동주 시인의 언덕도 바로 뒤에 있다. 인왕산길을 오르면 ‘더숲 초소책방’을 만난다. 이곳도 윤동주 문학관처럼 재생공간이다. 청와대 방호 목적으로 건축되어 경찰초소로 이용되어온 건물을 되살린 북카페이다. 새로 구입한 『미술관 일기』를 전망 좋은 곳에서 읽는 호사를 누린다.
집에 오는 내내 김환기 화백의 글이 마음에 남는다.
사람은 혼자만이 재미있게 살 수 없는 것이다.
서로 어울리고 사람을 사람으로 알아보고
가시울타리도 걷어치우고 살 수 있지 않을까/ 김환기]
[십만 개의 푸른 점 우주에서 춤추네 환기미술관
글 양인숙 전 리라아트고등학교 교사 | 그림 박지숙 서울교육대학교 미술교육대학 교수
한국교육신문 기사 등록 2023.03.06. 10:30:30
별의 영향이라는 ‘influence’에서 유행성 감기 ‘influenza’가 탄생했다. 건배라는 뜻의 ‘mazeltov’는 ‘좋은 별자리’라는 히브리어에서, 고려하다라는 ‘consider’는 ‘행성과 함께’라는 뜻이란다. 옛사람들은 별에서 무수한 영감을 얻었나 보다.
머리 위의 은하수를 ‘밤의 등뼈’라고 멋지게 이름 붙인 !쿵족(!Kung San people: 느낌표를 앞에 붙이는 감성적 민족)도, ‘하늘을 덮은 가죽의 무수히 많은 구멍을 통해 쏟아지는 불꽃이 별’이라고 상상한 칼 세이건도 밤하늘 애호가 반열에서 빠질 수 없다.
그리움으로 우주를 만든 남자
우리에게도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별을 사랑한 남자가 있다. 그는 키가 크다. 190cm가 넘는다. 부인과 함께 찍은 사진은 그들의 트레이드마크이다. 부인이 가슴팍 정도에서 팔짱을 끼고 파리를 걷는 사진이다.
전남 신안군에서 지주의 아들로 태어났다. 늘 육지가 그리워, 하도 목을 빼고 육지를 바라봐서 키가 커졌단다. 그가 니혼대학 예술학부에 입학한 것은 1933년이었다. 부친의 반대가 심해 ‘수영을 해 부친 몰래 목포 가는 배를 타고 밀항’을 했단다.
예술에 목말라 바다를 건넌 것이다. 사실 처음에는 그림보다 문학에 이끌려 입학을 결심했다. 후일 문학과 미술을 아우르는 전천후 예술인으로서의 조짐은 이미 그때부터였다. 당대 한국문학을 들었다 놨다 하던 문학인들과는 니혼대 시절부터 절친이다. 작품에 내재한 서정성과 예술적 깊이는 그의 DNA와 친우들이 이루어낸 합작품이었다.
수화(樹話) 김환기. 그는 일명 ‘버리는 자(者)’, ‘떠돌이’였으며, ‘끝없는 창조자’였다. 부와 명성을 버리고 오직 그리기 위해 일본으로, 파리로, 뉴욕으로 떠돌았다. 추상적 표현과 재료에 대한 탐구를 거듭하였다. 파피에마셰·발묵기법·전면점묘 등으로 특유의 예술세계를 쌓아나갔다.
그는 ‘향수병’을 앓았다. “나는 외롭지 않다. 나는 별들과 함께 있기에”라는 자조는 “나는 너무나 외롭다. 너무 멀리 있다”라는 절규처럼 다가온다. 화폭을 채워간 그리움이 천개·만개·십만 개, 우주의 탄생이었다. 그는 이토록 아름다운 ‘Universe, 우주(1971)’가 세계인이 사랑하는 우주로 탄생할 줄 미리 알았을까?
세상 떠나기 한 달 전 일기에는 ‘일하다가 내가 종신수임을 깨닫곤 한다. 늦기는 했지만, 자신은 만만’이라 쓰여 있다. 기꺼이 예술의 감옥에 자신을 유폐시켰던 그가 떠난 후, 부인은 상파울루에서 회고전(1975)을 열었다.
젊은 작가 발굴을 위한 재단도 설립했다. 1992년에는 서울 성북구 부암동에 ‘환기미술관’을 개관하여 어느덧 30여 년에 이르렀다.
작대기로 땅바닥에 그린 그림이 시작이었다
‘자주 말하고 꿈꾸면 실현된다’는데. 환기와 향안이 땅바닥에 쭈그려 앉아 작대기로 그린 그림이 이곳의 시작이었다. 환기는 늘 “나는 이런 미술관을 지었으면 좋겠어”라고 이야기하였다. 향안은 잊지 않았다. 그녀는 절대로 잊지 않을 사람이다.
환기와 향안의 삶은 전생에 자웅동체가 아니었나 싶을 만큼 전설적이다. 스물셋 어린 나이에 시인 이상과 결혼한 동림. 신혼이 끝나기도 전에 일본으로 건너간 남편은 폐결핵으로 사망하였다. 여기까지 보면 이후 펼쳐질 그녀의 삶이 매우 고단하리라 짐작된다. 홀로 지내던 동림은 1944년 아이가 셋인 환기와 결혼하려 한다.
친정의 거센 반대, 여기는 신파. 그러나 동림은 자신의 성을 환기와 같은 김 씨로, 환기의 호인 향안으로 개명하며 결혼에 이른다. 반전의 서막이다. 동림에게 자신의 호를 헌납한 환기는 이후 수화라는 호를 사용하였다.
향안은 환기가 그림에만 전념하도록 모든 일을 처리하였다. 이화여대 영문과 재원이었던 그녀는 평소 파리로 가고 싶어 했던 환기를 위해 미리 프랑스어를 공부하였다. “내가 먼저 나가볼게”라며 환기보다 일 년 먼저 파리로 건너가 환기의 파리 정착을 위해 뛰어다녔다.
당시는 아직 6.25전쟁의 상흔이 가시지 않은 폐허뿐인, 무려 1956년이었다. “아내는 먹을 것이 있든 없든 항상 깨끗하고 명랑하다. 아내는 낙천가다. 나는 생활에 있어서나 그림에 있어서나 아내의 비판을 정직하게 듣는다.” 지독한 해피앤딩이다!
미술관 설계를 맡은 우규승은 건축의 축과 계곡의 방향을 일치시켰다. 공간의 흐름을 골짜기와 화해시킬 방법도 고민했다. 건물들 사이의 공간도 중요했다. 미술관은 건물과 공간이 함께 어우러지는 협업이므로. 산·달·구름·바위·나무는 무대배경이었다. 북한산성과 인왕산 등의 원경을 도입하면서도 벽을 동서로 배치하여 적절한 절제와 차단을 잊지 않았다.
미술관의 품격과 자연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잦은 이유이다. 세계적인 미술관을 소개한 저스틴 헨더슨(Justin Henderson)의 <Museum Architecture(미술관건축)>에 실리기도 하였다. 당시 한국 건축가의 작품으로는 유일하여 건축가들도 즐겨 찾는 명소가 되었다.
쪽마루 나무 한쪽도 그림의 결과 맞추어
건축가의 의도대로 환기미술관은 주변의 건물에 비해 돋보이려 하지 않는다. 인왕산을 바라보며 부암동 골목과 잘 어울려 예전부터 그곳이 터전인 듯 자리한다. 소박한 부암동은 미술관 품은 예술동네가 되었다. 게다가 평일에는 어찌나 고즈넉한지 마치 미술관을 통째로 빌린 듯 할 때가 자주 있다. 입구에서 정원을 지나면 본관과 별관, 수향산방(수화와 향안, 기념관) 세 채의 건물로 이루어진다.
본관 내부에 들어서면 단조롭지 않은 변화의 느낌과 전시장의 높은 층고에서 오는 시원함이 밖에서 펼친 감탄사를 다시 터지게 한다. 오! 여기 좀 봐! ‘쪽마루의 나무 한쪽도 그림의 결과 맞추려’ 했다니, 정성의 갸륵함과 들인 공이 알게 모르게 관람객에게 전해지는 것 일게다.
한국의 산월 모티브에서, 1960년대 추상적 작품, 이후의 전면점화 등 환기의 작품 300여 점 앞에서 설렘과 두근거림을 누를 수 없다. 물론 ‘Universe, 우주’에 빠져 오랜 시간을 유영하다(이건 너무 고상한 단어이다, 그냥 끝없이 중심으로 빨려들어 허우적거리다, 휴우~) 문득 지구로 귀환하기도 몇 번이다.
환기미술관에는 캔버스 위에 유화와 종이 위의 유화, 콜라주·과슈·데생·오브제 등 김환기의 뉴욕시대 대표작 1,000여 점과 생활유품·자료, 재단 작가들 작품까지 2,500여 점이 모셔져 있다. 향안은 미술관이 살아 움직이고 숨을 쉬길 바랐다.
특히 “시각적인 것과 음악적인 것, 시가 읊어져야 한다”며. 환기의 전 생애를 구현하려는 예술가적 풍모마저 느껴진다. 그녀의 이번 생은 다만 한 사람을 위해 불러내어진 듯하다. 진실로 추앙이란 이런 것이지 싶다.
예술적 감성과 지식을 아이들과 함께
환기미술관의 살아있는 활기는 아이들 교육에서 더욱 돋보인다. 환기는 평소 아이들 예술교육에 관심이 컸다. 때문인지 수향산방에서 이루어지는 교육프로그램이 끊이지 않는다. 환기의 그림 이야기를 통한 예술이해 키우기를 기조로 진행된 ‘해와 달과 별들의 이야기’전은 교과서에 소개된 환기의 작품을 전시하여 아이들에게 원작감상의 기회와 함께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활동으로 꾸준히 진행되어왔다.
이 행사는 미술을 다른 교과와 확장 연계하는 진정한 융합의 모범이 되기도 하였다. 2022년에는 서울특별시 뮤지엄 페스티벌에 참여, 예술적 감성과 지식을 함께 향유할 수 있는 기회로 학부모와 아이들의 큰 호응을 받았다. 또 아트트리(ARTree) ‘사유공간 창작노트’, 어린이 아카데미 ‘아트띵크(ARThink)’ 등 미취학아동부터 초·중·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전시해설과 ‘뮤지엄보이스’ 등 성인대상의 다양한 교육이 진행되어왔다.
환기미술관 30주년이었던 2022년에는 기념전 ‘미술관 일기’가 열렸다. 전시는 미술관에 방점을 찍어 지난 30년의 여정을 담아내었다. 그의 전 생애를 영상·사진 등으로 볼 수 있는 소중한 전시였다. 다국적 예술가들을 발굴하고 지원하는 사업 ‘Prix 환기’의 수상작들과 관람객이 선정한 인기 소장품들로 그간 환기를 사랑해온 관객을 향한 감사의 마음을 담아내었다. 수향산방에서 진행된 ‘우리끼리의 얘기, 환기미술관이 건립되기까지’에서는 이토록 멋진 미술관이 기나긴 사랑의 시간이 이룩한 성채임을 들려주었다.
사전적 의미의 공명은 ‘물체의 고유 진동수와 일치하는 파동이 물체를 통과할 때 물체의 진동이 커지는 현상’을 말한다. 환기의 예술은 향안이라는 사랑을 통과하여 크나큰 진동으로 공명하며 세상에 퍼져 가고 있다. “지금 뉴욕은 바람이 불고 추워요. 그러나 봄이에요.” 환기는 외로움 속에서 봄을 기다렸었나 보다. 그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김환기(金煥基)
김환기(金煥基, 1913년 4월 3일(음력 2월 27일)~1974년 7월 25일)는 대한민국의 서양화가이다.
그의 작품은 한국의 미술품 경매의 신기록을 쓰고 있다.
생애
본관은 김해(金海)이며 호는 수화(樹話)이고, 1913년2월27일 전라남도 신안군 기좌도(이후 안좌도로 이름이 바뀌다)에서 김상현씨의 1남 4녀 중 넷째로 출생했다.
1936년 일본 니혼 대학 미술학부를 마치고 도쿄에서 개인전을 개최하였다. 1946년-1949년 사이에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교수를 역임하고 신사실파전(新寫實派展)에 출품했다. 여러 차례 국전 심사위원으로 활약하고 1952년 홍익대 미술학부 교수, 1954년에 예술원 회원이 되었다. 1956년 프랑스로 건너가 파리 엠베지트 화랑을 위시하여 1957년 파리·니스·브뤼셀 등에서 계속 개인전을 가졌다. 1959년 귀국하여 홍익대 교수·초대 예술원 회원·한국미술협회 이사장을 역임하였다. 1963년 제7회 상파울로 비엔날레 한국 대표로 참가하게 되어 브라질로 갔고, 동 국제전의 명예상을 받았으며, 그곳 현대미술관에 작품이 소장되었다. 1964년 이후 부인인 수필가 김향안(金鄕岸, 본명 변동림)과 함께 미국에 체류하며 작품 활동 중 1974년7월25일에 62세로 타계했다.
2015년 김환기의 1971년작 작품 <19-Ⅶ-71#209>은 서울옥션 홍콩 경매서 한화 47억 2100만원 (3100만 홍콩달러)에 낙찰되었고, 이로써 이전의 최고가로 남아있던 박수근의 <빨래터>를 제치고 국내 작가 미술품 경매 중 최고가를 기록했다.
2019년 11월 23일 김환기의 1971년작 작품<Universe 5-IV-71#200>은 크리스티 홍콩 경매서 한화 132억 3600만원 (8800만 홍콩달러)에 낙찰되었고, 한국 미술품 중 최초로 한화 100억을 넘긴 작품이 되었다.
한국의 서양화가로 한국 근현대미술사를 대표하는 거장으로 서구 모더니즘을 한국화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초창기 추상미술의 선구자였고, 프랑스와 미국에서 활동하며 한국미술의 국제화를 이끌었다. 김환기는 추상 계열에서 벗어나 구상을 추구하면서도 오히려 조형수단의 자율적인 표현을 추구했다. 또한 사실적인 표현보다는 면, 선, 형태, 색체, 리듬 등으로 대상을 조형적으로 새롭게 표현했다.
작품 활동
전후 14회의 개인전을 국내외에서 가졌고, 1970년 한국일보사 주최 한국미술대상전(韓國美術大賞展)에서 대상을 받았다. 작품경향은 초기의 기하학적인 추상에서 출발하여 동양적인 관조(觀照)와 아취(雅趣)를 근간으로 한 반추상(半抽象)의 세계를 보이다가 도미(渡美) 후에는 완전히 추상화풍으로 전환하여 옵티컬한 양식의 새로운 사조(思潮)를 받아들이고 있음을 보인다.
그의 대표 작품으로 〈론도〉,〈산〉, 〈산월(山月)〉, 〈야상곡(夜想曲)〉,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등이 있다. 그의 작품 중 〈론도〉는 대한민국의 등록문화재 제535호로 등록되기도 하였다.
학력
안좌공립보통학교 졸업
중동중학교 중퇴
도쿄 긴조중학교 졸업
니혼 대학 미술학과 졸업
가족 관계
배우자 : 김향안(金鄕岸, 1916년 ~ 2004년)
장녀 : 김영숙(金英淑, 1933년 ~ )
첫째 사위 : 윤형근(尹亨根, 1928년 ~ 2007년)
차녀 : 김금자(金金子, 1936년 ~ )
삼녀 : 김정인(金貞寅, 1938년 ~ )
아들 : 김화영(金和瑛, 1955년 ~ )]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한경비즈니스 기사 입력2010.03.17. 오후 2:30
글 : 화가 최선호
나는 수화 김환기(樹話 金煥基,1913~1974)의 그림이 좋다. 그의 푸른색 점박이 그림이 좋고, 그의 예술가적 삶도 좋다. 세상엔 화가가 많다.
피카소나 마티스 같이 살아서 명예와 부를 한꺼번에 거머쥔 대가가 있는가 하면, 살아서 단 한 점도 못 팔거나, 혹은 하나밖에 팔지 못한 불행한 빈센트 반 고흐 같은 이도 있다.
서민의 삶을 따뜻하게 그려낸 박수근은 미군 부대에서 초상화를 그리며 생계를 이어 갔고, 이중섭은 부두에서 막일을 하며 그림을 그리다가 재료비가 없으면 담뱃갑 은박지에 송곳으로 꿈과 희망을 그리기도 하였다.
수화는 어려서 유복한 부모 아래 동경 유학도 다녀오고, 성장하여서는 한국전쟁 후 어려운 시절에도 파리에 갈 만큼 호사를 누렸다.
초창기부터 줄곧 수화의 작품 소재가 된 달과 조선백자항아리, 여인과 꽃, 산과 하늘 그림은 아직도 여전히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가슴 속에 따뜻하게 다가오는 사실적 그림도 좋지만, 나는 그의 뉴욕시절 별처럼 빛나고 이성처럼 냉철한 점점(點點) 추상화가 좋다.
그가 즐겨 쓴 푸른색은 조선청화백자의 푸른빛 같기도 하고, 아라비아 사막을 건너는 대상의 별 빛 같기도 하다. 빈센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처럼, 수화는 무수한 점으로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를 그려내었다. 그것은 “... 내가 그리는 선(線), 하늘 끝에 더 갔을까.
내가 찍은 점(點). 저 총총히 빛나는 별만큼이나 했을까. 눈을 감으면 환히 보이는 무지개보다 더 환해지는 우리 강산(江山)...”이었다. 푸른색 점은 마치 이슬람 사원의 푸른색 타일이 점점이 박힌 것같이 신비롭고 이채롭다.
수화에게 뉴욕은 ‘무미건조한 고층건물의 도시’였고, 고국에 대한 향수가 깊어질수록 화폭위에 푸른 점은 짙어만 갔다. 점은 흩어지고 다시 모이고, 겹쳐지고 쌓여서 십 수만 개의 점이 되고, 또 다시 점과 색이 모이고, 색과 점이 흩어지고, 다시 모이고 흩어지기를 수만 번, 뉴욕에서의 10년은 환기만의 독특한 조형세계를 완성하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그의 점은 깊고 푸른 하늘의 별이 되었다.
예술가의 길
김환기는 1913년 2월 27일, 전라남도 신안군 안좌면 읍동리에서 부유한 지주의 아들로 태어났다. 고향에서 초등학교를 마치고 서울 중동중학에 들어갔으나 중퇴하고 고향으로 내려왔다가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의 니시기시로(錦城) 중학을 나왔다.
1936년 니혼(日本)대학 예술학원 미술과를 졸업하고 일본에서 활동하다가 1940년 서울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고, 1944년 5월, 요절한 시인이자 소설가인 이상(李箱,1910 ~1937)의 부인이였던 김향안(金鄕岸·본명 변동림,1916~2004)과 결혼하였다. 훗날 김향안은 수화의 예술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김환기와 김향안은 하나였다.
수화는 1956년 프랑스로 건너가기 전까지 향토색 짙은 고향의 산과 마을, 달과 항아리, 나목(裸木) 꽃과 여인 등 한국적 정서를 화폭에 담았고, 프랑스 시절에도 줄곧 한국적 정서를 놓지 않았다.
1959년 귀국 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초대 학장이 되어 후학을 가르치며 바쁜 나날을 보내다가, 1963년 10월, 브라질 ‘상파울로 비엔날레’에 한국작가로 선정되어 그의 예술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
처음 계획은 비엔날레 참가 후 귀국길에 뉴욕을 거쳐 오기로 하였으나, 비엔날레에 걸린 자기의 그림을 남들과 비교해 보고 “...단지 나는 시골(한국)에 살았다”고 탄식하고 작품세계의 진부함과 한국의 좁은 세상에서 벗어나 뉴욕이라는 큰 세상으로 나가기를 결심한다.
수화의 뉴욕행은 구상에서 추상으로, 타인에서 자아로, 풍요에서 가난으로, ‘더불어’에서 ‘외로이’로 모든 것이 바뀌었다. 뉴욕이라는 낮선 도시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외롭고 힘든 예술가의 길은 이미 시작되었다.
뉴욕일기
뉴욕은 거대한 회색도시다. 바쁘고 분주하다. 모든 것이 낯설고 삭막하다. 수화는 뉴욕 생활을 “...오후 3시 30분. 오늘은 어두워서 일이 안 돼요. 눈 뒤에 비가 오나봐.
못 견디게 그리워지는 시간-조국이라는 게, 고향이라는 게, 내 예술과 우리 서울과는 분리할 수 없을 것 같애... 내 그림 좋아요. 이제까지의 것은 하나도 안 좋아. 이제부터의 그림이 좋아. 저 정리된 단순한 구도, 저 미묘한 푸른 빛깔. 이것이 나만이 할 수 있는 세계이며 일 일거야.....(1963년 12월 12일)”라고 적고 있다.
뉴욕에 온 지 두 달도 못 된 시점의 일기인데 고국에 대한 향수와 그리움이 절절하다. 수화가 이처럼 그리는 고국을 끝내 돌아가지 못하고 뉴욕에서 생을 마감하기까지는 무려 10년이라는 긴 세월이 놓여 있었다.
만일 당시 수화가 다시는 못 보는 고국이라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그 때의 심경이 어떠하였을까. 수화는 사랑하는 조국의 하늘과 별, 산과 나무를 생각하면서 안타까운 삶을 마감하기 직전까지 고통스럽게, 때로는 기쁘게, 때로는 슬프게, 하지만 줄기차게 점을 찍고, 그리고 또 그렸다.
“아침부터 백설(白雪)이 분분(粉粉).....종일 그림 그리다. 점화(點畵)가 성공할 것 같다. 미술은 하나의 질서다. (1965년 1월 2일)”
“점점(點點) 주제로 100호 시작하다. 종일 눈보라가 날린다. (1969년 2월 26일)“
“마산에서, 편지의 구절에, 이른 아침부터 뻐꾸기가 울어댄다 했다. 뻐꾸기 노래를 생각하며 종일 푸른 점을 찍었다. 앞바다 돗 섬에 보리가 누렇다한다. 생각나는 것이 많다. (1970년 6월 23일)” 그의 뉴욕일기다.
자신의 발견
수화는 고집스럽게 자기 색을 주장하였다. 1967년 10월 13일자 일기에는 “봄내 (뉴욕타임스)신문지에 그리던 일 중에서 나는 나를 발견하다. 내 재산은 오직 ‘자신(自信)’뿐이었으나 갈수록 막막한 고생이었다.
이제 이 자신이 똑바로 섰다. 한눈 팔지 말고 나는 내 일을 밀고 나가자. 그 길밖에 없다. 이 순간부터 막막한 생각이 무너지고 진실로 희망으로 가득 차다”라고 하여, 뉴욕 온 지 거의 1년이 되었을 무렵 비참하게 무너지는 자신을 보게 된다.
그때, 아무도 도와줄 수 없기에 수화는 스스로를 격려하고 마음을 가다듬으면서 새로운 의지를 불태운다. 뉴욕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예술은 절박한 상태에서 만들어 진다”고 고뇌하던 수화에게는 진정한 시련의 첫 걸음이었다.
수화의 외로운 자신과의 싸움은 1970년 새해가 되자 절정에 다다른다. “외로운 것을 견디어야 하나보다. 내 예술만을 생각하기로 하자.” 아무리 마음을 다독여도 삶의 고단함과 작업의 외로움은 금방 풀릴 것 같지 않았다.
그해 1월 12일 일기에는 “고생하며 예술을 지속한다는 것은 예술로 살 수 있는 날이 있을 것을 믿기 때문이다. 고생이 무서워 예술을 정지하고, 살기 위해 딴 일을 하다가 다시 예술로 정진이 될 것일까” 라고 썼다.
수화로서는 물감 살 돈도 걱정이 되는 듯, 살기 위해 다른 일을 생각해야 할 만큼, 사뭇 비장함마저 든다. 뉴욕생활이 만 7년째니 삶이 팍팍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별 빛 같은 추상
그런 가운데 서울 한국일보주최 「한국미술대상전」에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를 출품하여 대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게 된다. 이를 계기로 수화의 추상세계가 국내화단에 큰 파장을 몰고 온다.
대가로서의 역량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신선한 충격이었다. 작품의 제목은 김광섭의 시 ‘저녁에’서의 마지막 구절에서 따온 것으로, 푸른색의 점들이 빼곡하게 박혀 밤하늘에 빛나는 별 빛 같은 추상을 그린 것이다.
‘저렇게 많은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 밤이 깊을수록 /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 이렇게 정다운 / 너 하나 나 하나는 / 어디서 무엇이 되어 / 다시 만나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시인과 화가의 만남은 자연스러웠다. 일찍이 당나라 시인 왕유(王維)는 “시(詩) 가운데 그림이 있고, 그림 가운데 시가 있다(詩中有畵 畵中有詩)” 라고 하여 시와 화의 경계를 허물었는데, 수화는 서울 성북동 시절 ‘성북동 비둘기’라는 시로 잘 알려진 시인 김광섭과 가까이 지낸 인연이 있다.
1969년에 발표된 이 시는 간단하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삶의 깊이와 정신의 넓이가 배어난다. 수화는 외로운 뉴욕에서의 작업을 밤하늘 뭇별을 헤는 마음으로 점을 찍었다. 그 점은 빛이 되었다.
영원속의 별
1974년 정월 들어 수화의 건강은 급격히 나빠진다. 2년 전부터 전에 없이 허리가 아프고, 머리가 늘 무겁기만 하더니, “벌서 며칠인가 머리가 무겁기만 하다.
몸이 무겁기만 하다. 견디어 살아가겠는데 아무런 생각도 안 난다”고 술회한다. 73년 5월 18일, 단 한 개 남은 앞니 한 개를 뽑고, 7월 19일에는 아랫니 두 개 남은 것 마저 뽑아 몹시 고통스러웠다는데, 수화의 건강은 하루가 다르게 나빠졌다. 왜 그렇게 건강이 안 좋아졌을까.
추측컨대, 무리한 작업과 유화물감 희석제로 쓰이는 향긋한 송진 같은 냄새가 나는 터펜타인(Turpentine)이 원인인 듯하다. 이 기름은 냄새는 그다지 나쁘지 않지만 몸에는 치명적인 독성이 있어 환기를 잘 해야 되는데, 수화의 아틀리에 작업환경이 그리 좋지 않다면 몸에 독성이 쌓일 여지가 충분했으리라.
수화의 점화(點畵)는 캔버스를 반드시 누이고 작업해야 물감이 흐르지 않고 부드럽게 스며드는데, 그렇게 작업하다 보면 독한 기름 냄새를 고스란히 들이마시게 된다.
수화가 그린 대부분의 대작을 허리를 구부리고 몇 시간 씩 혹은 몇 일 씩 계속 작업해야 하다 보면 허리에 무리를 주어 좋을 리가 없다. 실제로 그의 뉴욕작업사진은 허리에 무리가 가는 자세로 작업하고 있어 이를 잘 설명해 주고 있다.
1974년 7월, “죽을 날을 걱정하던” 수화는 급기야 병원에 입원하고, 디스크 수술을 기다리면서 생의 마지막이 된 7월 11일, 일기에는 내일이 빨리 오기를 기다리며, “지금 나는 아무런 겁도 안 난다. 평안한 마음이다”라고 적었다.
해가 환히 든 다음날 수술을 받고 회복 중 침대에서 떨어져 뇌일혈로 의식을 잃고 12일 동안 인공호흡으로 연명하다가, 1974년 7월 25일 오전 9시 40분 영원속의 별이 되었다.
수화가 평소 “나는 뭐 죽어서 묻히는 것은 아무데 묻혀도 괜찮아...” 했던 그 말을 좇아, 그가 즐기던 산 언덕 “아, 이런데 누워서 쉬었으면 좋겠다”고 하던 뉴욕 허드슨 강변 북쪽 뉴저지 주의 산마루에 묻혔다.
살아서 그렇게 그리워하던 고국의 하늘을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글·사진 최선호(화가)]
[국내 회화 경매가 톱10 독식… ‘김환기 천하’
문화일보 기사 입력 2024-09-27 11:42
업데이트 2024-09-27 13:28
박동미
‘푸른색 점묘’ 78억원에 낙찰
韓 미술품 사상 세번째 고가
김환기(1913∼1974) 화백의 1971년 전면 점화가 약 78억 원에 팔렸다. 한국 미술품 사상 세 번째로 높은 가격에 낙찰된 것으로, 앞선 두 작품 역시 김 화백의 것이다. 이로써, 한국 회화 경매 최고가 1위부터 10위를 모두 김 화백의 작품이 차지했다. 10개 작품의 낙찰 총액은 약 700억 원에 달한다.
크리스티 코리아는 26일 오후 홍콩 더 헨더슨 크리스티 홍콩 본사에서 열린 ‘20·21세기 이브닝 경매’에서 김 화백의 ‘9-XII-71 #216’이 4600만 홍콩달러(약 78억2000만 원)에 낙찰됐다고 27일 밝혔다. 수수료 포함 가격은 약 95억5600만 원에 이른다.
낙찰된 작품은 가로 251㎝, 세로 127㎝ 크기로 다양한 푸른 색조로 구성된 점들이 반원형 소용돌이 패턴으로 뻗어 나가는 형태이다. 크리스티 홍콩에 따르면 이 작품은 지난 20년간 한 개인이 소장했으며, 경매에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또한, 지난 2019년 132억 원에 낙찰돼 한국 미술품 최고가를 기록한 ‘우주’(05-IV-71 #200)와 비슷한 시기에 그려진 것이어서 더욱 주목을 받았다. 이학준 크리스티 코리아 대표도 “1970년대 초 푸른색 전면 점화가 20점 미만이어서 희소성도 매우 높은 작품”이라고 평했다.
이번 낙찰로 한국 회화 중 고가로 팔린 작품 1∼10위(고미술품 제외)가 모두 김 화백의 작품이 됐다. 고미술품 ‘백자청화오조룡문호(70억 원)’와 ‘백자 달항아리(59억6500만 원)’를 순위에 넣어도 10위 안에 김 화백의 작품이 8개나 된다. ‘우주’ 다음으로 비싼 작품은 ‘3-II-72 #220’(85억3000만 원)이며, 1971년 ‘무제’(72억 원·4위) 등이 뒤를 잇는다. 크리스티안 알부 크리스티 홍콩 20·21세기 미술 대표는 “김환기의 정신적, 기술적 성숙함의 최고조를 보여주는 명작”이라고 극찬했다.
한국 추상미술의 대가로 꼽히는 김 화백은 일본에서 유학하며 추상미술 사조를 익혔고, 1937년 귀국해 한국 최초의 추상화가로 활동했다. 50세에 뉴욕으로 건너가 실험을 이어갔으며, 만년에 점·선·면으로 조형 공간을 완성하는 전면 점화에 도달했다. 자연과 인간에 대한 사유를 담은 전면 점화는 그를 세계적 작가의 반열에 올렸다.
한편, 이날 경매에서는 추상화가 이성자의 ‘숨겨진 나무의 기억들’이 800만 홍콩달러(13억5900만 원)에 팔려 작가의 최고가를 경신했다. 125년 만에 시장에 나와 화제가 된 클로드 모네의 ‘수련’은 2억 홍콩달러(339억9700만 원), 반 고흐의 ‘정박한 배’는 2억1500만 홍콩달러(365억4700만 원)에 각각 낙찰됐다.
박동미 기자]
[한국 미술경매 최고가 1위~10위를 기록한 화가 김환기
글 : 도상 ・ 2024. 9. 30. 17:43
김환기(1913~1974)는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로서, 20세기 한국 미술계에서 가장 뛰어난 작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의 작품은 한국예술종합학교의 한국예술연구소 설문조사와 여러 미술 관련 조사에서 항상 1위 자리를 차지하며, 그 위상은 미술 시장에서도 확고히 자리 잡고 있습니다.
최근 홍콩에서 열린 크리스티 경매에서 김환기의 전면 점화 ‘9-XII-71 #216’이 78억1940만 원에 낙찰되며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 작품은 1971년에 제작된 것으로, 크기는 가로 251cm, 세로 127cm에 달하며, 반원형 소용돌이 패턴으로 뻗어나가는 독특한 형태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번 경매에서의 낙찰가는 수수료를 포함하면 약 95억5564만 원에 이르며, 이는 한국 현대미술 작품 중 세 번째로 높은 가격입니다.
김환기의 전면 점화 ‘9-XII-71 #216’ 작품은 2019년 홍콩 경매에서 132억 원에 낙찰된 ‘우주’와 2018년 서울옥션 홍콩 경매에서 85억3000만 원에 낙찰된 ‘3-II-72 #220’에 이어 세 번째로 비싼 작품으로 기록되었습니다. 특히 2019년 경매에서 약 132억원에 낙찰된 그의 작품 ‘우주’는 한국 현대미술 경매 최고가 작품 중 하나로, 김환기의 작품이 한국 현대미술 경매 최고가 1위부터 10위까지 모두 김환기의 작품으로 채워져 있는 상황입니다. 이는 그의 작품이 얼마나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김환기의 예술은 단순한 시각적 요소를 넘어, 감정과 사유를 자극하는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의 작품을 통해 우리는 한국 현대미술의 발전과 그가 남긴 유산을 되새길 수 있으며, 그의 독창적인 세계에 빠져보는 것은 미술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큰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김환기의 예술은 그 자체로 하나의 우주를 이루고 있으며, 그의 작품을 통해 우리는 색채와 형태, 그리고 그 너머에 있는 감정과 사유를 탐구할 수 있습니다.]
[한국 미술품 경매 최고가, 132억 원 김환기 ‘우주’ 비하인드 스토리
기자명 임언영 기자
여성조선 기사 입력 2022.11.04. 08:00
지난 2019년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 132억 원에 낙찰되며 한국 미술품 경매 최고가 기록을 남긴 작품. 한국 추상미술의 거장 김환기의 그림 중 가장 규모가 큰 작품인 ‘우주’가 일반인에 공개돼 화제다. 입이 떡 벌어지는 그림 값부터 가짜 낙찰자 소동까지, 유명세를 제대로 타고 있는 작품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취재했다.
그림이 흥미진진한 이유 중 하나. 한 폭의 그림이 영화 또는 소설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어서다. 지난 7월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개관 이후 두 번째 전시인 김환기展 <畵中抒歌: 환기의 노래, 그림이 되다>를 열고 있는 S2A에는 흥미로운 그림이 한 점 걸려 있다. 바로 1971년에 완성된 김환기의 ‘우주 Universe 05-Ⅳ-71 #200’이다. S2A 갤러리를 운영하고 있는 글로벌세아그룹의 김웅기 회장이 이 작품의 소유자로, 지난 2019년 작품 소장 이후 처음으로 일반인에게 공개하는 것이다.
김환기 예술 세계의 정수 가장 큰 규모의 전면점화 ‘우주’
먼저 작품 이야기부터. ‘우주’는 김환기 예술 세계의 정수를 보여주는 전면점화다. 유일하게 두 폭이 합쳐져 한 작품을 이루는 형태로, 작가의 작업 중 가장 큰 규모다. 유화 물감과 서예 붓을 활용한 독특한 작품 제작 방식은 수묵화의 발묵 기법을 떠올리게 하는데, 이는 작품에 무한한 깊이감과 웅장한 공간감을 선사한다.
작품 완성 초기에는 이 두 폭의 화폭이 ‘남과 여’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했다. 대립되면서도 조화를 이루는 해와 달, 빛과 그림자, 음과 양 등과 같이 두 패널의 작품은 서로를 끌어당김으로써 질서와 균형의 합일을 만들고 비로소 하나의 우주가 된다는 의미다.
이 작품이 희소성을 갖는 요소는 또 있다. 동심원들이 모여 소용돌이 패턴을 만들어내는 몇 안 되는 전면점화라는 점, 그리고 김환기가 자신의 일기에 작품의 시작부터 완료까지의 제작 과정을 기록한 유일한 작품이라는 점이다.
한국전쟁 당시 부산 피난 시절부터 김환기와 인연을 맺은 주치의이자 절친한 친구였던 김마태(마태 김정준) 박사가 작품을 구매, 47년간 소장했다. 작품 규모가 너무 커서 자택 거실에 걸 수 없어 잠시 구매를 고민했다는 에피소드도 있다. 훗날 작품 앞에서 촬영한 사진을 보면, 두 폭의 그림이 가로로 결려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2004년까지 김마태 박사 자택에 걸려 있었고, 같은 해 8월 환기미술관에 장기 대여했다. 이후 2019년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 작품이 출품됐고, 132억에 낙찰되며 한국 미술사를 새로 쓰게 됐다.
‘최종 낙찰 금액 132억, 낙찰자는 한국인’
2019년 홍콩 크리스티에서 일어난 일은?
이 작품이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 오르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2019년 11월 23일, 이 대작이 과연 누구의 손에 낙찰되느냐는 미술계 초미의 관심사였다. 역시나 경합은 치열했다. 57억 원에 시작된 낙찰가는 결국 132억 원에 낙찰됐다. 구매 수수료까지 합치면 153억 5000만 원이다.
당시 낙찰자가 누군지에 대한 추측이 무성했는데, 언론 보도를 통해 한 20대 재벌 3세가 등장한다. 송승헌 전 동원건설 회장의 장손이자 당시 M컨템포러리 아트센터의 수석큐레이터로 활동하던 송자호 씨(현 피카프로젝트 대표)다. 경매가 끝난 뒤 언론사 기자들에게 ‘긴급 속보’라는 제목이 붙은 한 통의 제보 메일이 왔는데 그 안에는 “한국인이 최종 구매자. 이름은 송자호 큐레이터. 구매 목적은 송씨 개인의 수집용”이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것이 몇몇 보도를 통해 알려졌고, 고가의 그림을 구입한 재력가에 걸그룹 출신의 연예인과 연인 사이라는 개인사까지 알려지면서 순식간에 화제의 인물로 떠올랐다.
당시 그는 ‘우주’의 낙찰자 자격으로 몇몇 매체를 통해 짧은 인터뷰를 진행하기도 했다. “대답하기 애매하다”는 말로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아 미술계를 들끓게 했다. 급기야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느냐”는 말로 사실상 낙찰자임을 시인했다는 보도도 등장했다. 이런 해프닝을 두고 홍콩 크리스티 측은 ‘오보’라는 입장을 밝혔지만, 그렇다고 소장자를 정확하게 밝히지도 않아 궁금증만 키웠다.
그 무성했던 소문의 진실이 3년의 시간이 지나고서야 세상에 드러나게 됐다. 김환기 ‘우주’의 최종 낙찰자는 송자호 대표가 아닌 글로벌세아그룹 김웅기 회장이었다.
‘미술품 공유’ 실천하는 세계 200대 컬렉터
S2A 통해 작품 선보일 것
“그림을 모으기 시작한 지는 좀 됐다. 어느 순간 내가 모은 그림들을 혼자 보는 것보다는 같이, 좋아하시는 분들과 공유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가졌다.”
김웅기 회장이 본인의 자택에 걸려 있던 ‘우주’ 작품을 밖으로 끄집어내 일반 대중에게 공유하기로 마음먹은 데는 이런 배경이 있었다. 10월 13일, 김환기 전시가 열리고 S2A에서 직접 만난 김웅기 회장은 ‘우주’ 작품을 구입하던 당시의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전했다.
“‘우주’가 크리스티 경매에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고, 대한민국 국보 같은 작품이 외국으로 나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했다”면서 “지인(갤러리현대 박명자 회장)이 응찰하라고 권하셔서 고민 끝에 참여했고, 경합도 많이 했다”고 전했다.
김 회장은 “낙찰 직후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제 작품을 해외로 내보내지 않아도 되겠구나’라는 안도감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흥분된 마음으로 응찰을 권한 박명자 회장과 통화해 기쁨을 나눈 순간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고 전했다.
김 회장은 지난 2000년부터 본격적으로 미술품 컬렉팅에 뛰어들었다. 컬렉터로서의 시간이 길지는 않지만, 최근 미국의 미술 잡지 <아트뉴스>가 선정한 ‘세계 200대 컬렉터’에 한국인으로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과 함께 이름을 올릴 정도로 파워 인물로 손꼽힌다.
한편 S2A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에는 김 회장의 ‘미술품 공유’에 뜻을 함께한 12명의 컬렉터들이 김환기의 작품을 무상으로 대여해줬다. 백자 달항아리의 아름다움을 처음 알아본 1950년대 작품부터 파리, 동경, 뉴욕 시절의 작품까지 17점을 만나볼 수 있다. 12월 21일까지 진행되는 전시는 많은 사람들이 감상할 수 있도록 무료로 진행된다. ]
[김환기 붉은점화 ‘3-II-72 #220’ 2018년 현재 한국미술품 최고가…85억원 낙찰
중앙일보 기사 입력 2018.05.27 18:11, 업데이트 2018.05.27 18:21
이지영 기자
추상미술 선구자인 김환기(1913~1974)가 1972년 그린 붉은색 전면점화가 낙찰가 85억원을 넘어서면서 국내 미술품 경매 최고가 기록을 다시 썼다.
27일 ‘3-II-72 #220’은 홍콩 완차이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열린 서울옥션 제25회 홍콩세일에서 85억2996만원(6200만 홍콩달러)에 최종 낙찰됐다. 18%인 구매 수수료는 포함되지 않은 가격이다.
국내외 미술계 관심이 쏠렸던 낙찰가 기준 100억 원 돌파는 무산됐다.
직전 최고가는 지난해 4월 케이옥션 서울경매에서 김환기 푸른색 전면점화 ‘고요 5-IV-73 #310’(1973)이 기록한 65억5000만원이었다.
김환기는 이번 경매를 통해 13개월 만에 자체 기록을 다시 경신했다.
2015년 10월 서울옥션 홍콩경매에서 47억2000만원에 팔린 푸른색 전면점화 ‘19-Ⅶ-71 #209’를 시작으로 김환기 작품은 지난 3년간 6차례 연속 최고가 기록을 써왔다.
이번 경매로 이중섭 ‘소’에 잠깐 한자리를 내줬던 국내 미술품 경매가 1~6위가 다시 김환기 작품으로 채워지게 됐다.
‘3-II-72 #220’은 김환기 작품 세계가 절정에 이르렀다 평가받는 미국 뉴욕 시절의 전면점화 중 하나다.
세로 254㎝, 가로 202㎝ 대형 면포 위에서 수많은 붉은색 점이 엇갈리는 사선 방향으로 패턴을 이루고 있다. 상단에는 푸른색 점들이 작은 삼각형을 이루며 가미된 것이 특징이다.
‘3-II-72 #220’은 투명한 진홍빛 색조라 화려하면서도 진중한 느낌이다.
작품의 경매 시작가부터 직전 최고가보다 크게 높았음에도 낙찰된 것은, 추상미술 선구자라는 작가의 미술사적 지위에다 희소한 색조도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다.
김환기 전면점화 대다수는 푸른 색조로, 지금까지 파악된 붉은색 전면점화는 넉 점 정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환기 일기에도 ‘3-II-72 #220’ 작업 과정이 꼼꼼히 기록돼 있다.
작가는 1970년 1월 30일 낮에 목재를 사와 틀을 만들었고, 2월 1일 밤 틀에 면포를 매어 그림을 그릴 준비를 마쳤다.
작가는 이틀 뒤 작업을 시작하면서 “진종일 비. 100×80 시작. #220 Rose Matar”라고 썼다. ‘Rose Matar’는 유화 물감 중 로즈매더 색을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작업은 같은 달 9일 마무리됐다.
이 작품 뒤쪽에는 ‘3-II-72 #220’과 ‘whanki New york’이라고 적혀 있다.]
[한국 추상회화의 거장 김환기(1913~1974)가 1971년 그린 푸른색 전면 점화 ‘9-XII71 #216′가 2024.9.26. 열린 크리스티 홍콩 이브닝 경매에서 78억1940만원(4600만 홍콩달러·수수료 제외)에 낙찰됐다.
한국 미술품 경매 사상 셋째로 높은 가격이다.
2019년 크리스티 홍콩 경매에서 153억원에 낙찰돼 한국 미술품 최고가를 기록한 김환기의 푸른색 전면 점화 ‘우주(05-IV-71 #200)’와
2018년 5월 서울옥션 홍콩 경매에서 85억3000만원에 낙찰된 김환기의 붉은색 전면 점화 ‘3-II-72 #220′에 이어 셋째로 비싼 한국 미술품이 됐다.
‘점면점화’는 캔버스 면(面) 전체를 점으로 찍는 화법을 뜻하는데, 그의 푸른색 전면점화는 세계에 20점 정도로 희소성이 높다.
푸른 전면점화 ‘9-XII-71 #216’(1971)는 가로 251cm, 세로 127m 크기의 작품으로 상단 중앙부를 원점原點 삼아 반원형 소용돌이 패턴으로 뻗어나가는 작품이다.
김환기 화백의 푸른 색은 동양의 정신성에 기초해 고향의 푸른 바다와 푸른 하늘에서 영감을 받은, 그의 가장 상징적인 색이다
소용돌이 패턴은 깊이감과 확장성을 만들어낸다.
화폭에 바다와 하늘, 무한한 공간을 담아냈다.]
12:48~13:40 환기미술관 본관에서 [영원한 것들: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존재한 것들]을 관람
[<영원한 것들: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존재하는 것들>展에서는 김환기 작가가 작품 활동을 하며 보고 듣고 느꼈던 순간들을 담은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으며, 유화를 비롯해 드로잉, 오브제 등 총 130여 점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1944년, 김환기 작가가 김향안 여사와 결혼하면서 살게 된 “꽃이 피고 숲이 있고 단풍이 들고 새가 울던(김환기, 1953)” 성북동 247-1번지 집은 한국의 아름다운 자연 정취를 품은 곳이었다. 그는 그곳에 거주하며 한국적인 미감과 문학적인 서정성을 더해 작품을 완성했다. 그렇게 김환기 작가는 산과 달, 꽃, 새 등을 그렸으며, 나무와 나무 아래에 놓여있는 둥근 항아리를 그렸다.
“조각달이건 만월이건 동창에 달이 뜨면 그만 고국 생각이 간절해진다.
아, 보고 싶은 사람이며 그 산천들”
(김환기, 1959)
김환기 작가는 프랑스 파리의 ‘다싸스 아틀리에(Rue d’Assas Atelier)’와 ‘생루이 아틀리에(Île Saint-Louis Atelier)’에서 지내며, 새소리를 듣고 마로니에 나무를 보며 한국을 떠올렸다. 그는 그곳에서 한국의 전통과 민족문화를 자연의 추상적인 언어와 융합시켜 그의 독창적인 예술철학을 만들었다. 이로써 ‘시(詩)정신’이라는 예술철학을 정립했다.
“무엇을 찾고 있는 것일까. 아름다운 세계(자연)가 아닐까”
(김환기, 1959)
김환기 작가는 작고하기 전 10여 년을 뉴욕 스튜디오에서 머무르며 마지막 예술혼을 불태웠다. 그는 한국의 전통적인 정서를 기반으로 자연의 본질에 파고 들어 ‘점(點), 선(線), 면(面)’으로 응축된 추상성에 다가갔다. 그의 생애를 관통해 사유하던 예술세계의 화두는 자연이었다. 영원토록 그대로인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존재한 것들(김환기, 1960)”이었던 것이다.
“미술은 철학도 미학도 아니다.
하늘, 바다, 산, 바위처럼 있는 거다.
꽃의 개념이 생기기 전, 꽃이란 이름이 있기 전을 생각해보다.
막연한 추상일 뿐이다.”
(김환기, 1973)
김환기 작가에게 변하지 않는 자연은 그에게 예술적 영감이 되어, ‘시詩정신’을 통해 순수 조형 요소인 ‘점(點), 선(線), 공간(空間)’으로 완성되었다. 인위적인 것을 더하지 않고 순수 본연의 것을 창조해 그의 작품에서는 자연 그대로의 숭고함을 느낄 수 있다. 이번 전시를 통해 그의 작품에 깃든 ‘자연 그대로 스스로 존재하는 것들’에 대해 통찰해 보기를 추천한다.]
[환기미술관 재개관 특별전] 영원한 것들: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존재한 것들
전시기간 : 2024. 12. 06 - 2025. 07. 27.
관람시간 : 화 - 일요일 10:00 ~ 18:00
(매주 월요일, 1월 1일, 설날연휴 휴관)
통합관람권 : 성인 18,000원,
청소년, 경로 : 9,000원
보호자 동반 미취학아동 : 무료
* 도슨트 : 매주 목요일 오후 2시 1회 진행
환기미술관은 1992년 개관 이래 한국미술의 거장, 김환기 예술의 집약체인 의미 있는 공간이자 과거의 김환기와 현재의 관람객이 만나는 감동의 순간들이 축적된 예술의 공간으로 존재해왔다. 2024년, 대규모 미술관 리노베이션을 진행하여 미술관에 담긴 역사는 그대로 지키고 노후화된 시설을 개보수한 환기미술관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잇는 역사를 다시 이어가고자 김환기의 예술철학을 담은 전시 《영원한 것들: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존재한 것들(이하 영원한 것들)》로 다시 관람객과 만난다.
《영원한 것들》은 김환기의 전 생애(1913-1974)에 걸친 예술 여정 속에서 그가 보고, 듣고, 느꼈던 혹은 스쳐 지나갔던 찰나의 순간순간들이 작품으로 탄생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김환기의 삶 속에서 꽃피웠던 예술세계를 관조하는 더없이 다사롭고 다감한 이야기이다.
김환기가 김향안과 결혼(1944년)하면서 살게 된 ‘성북동집 247-1’에서 보았던 “꽃이 피고 숲이 있고 단풍이 들고 새가 울던(김환기, 1953)” 한국의 아름다운 자연 정취는 그의 예술세계에 한국적인 미감과 문학적인 서정성을 더해주었다. 그렇게 김환기는 산과 달을 그리고 꽃과 새를 그렸으며, 나무와 나무 아래 놓여있는 둥근 항아리를 그렸다.
프랑스 파리의 ‘다싸스 아틀리에(Rue d’Assas Atelier)’와 ‘생루이 아틀리에(Île Saint-Louis Atelier)’에서도 김환기는 여전히 새 소리를 듣고 마로니에 나무를 보며 한국을 떠올렸다. “조각달이건 만월이건 동창에 달이 뜨면 그만 고국 생각이 간절해진다. 아, 보고 싶은 사람이며 그 산천들(김환기, 1959)”을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여전히 항아리와 새를 그린(김환기, 1956)” 그는 바로 이곳에서 한국의 전통과 민족문화라는 키워드에 자연의 추상언어를 융합시킨 독창적인 ‘시詩정신’이라는 예술철학의 정립을 이루어낸다.
그렇다면 김환기가 마지막 예술혼을 불태웠던 ‘뉴욕 스튜디오(셔먼 스퀘어 스튜디오 Sherman Square Studio, N.Y)’는 김환기의 예술세계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을까. 김환기는 1974년 7월, 작고할 때까지 십여 년 이곳에서 창작활동에 매진했다. ‘뉴욕 스튜디오’에서의 김환기는 한국의 자연과 전통기물에 내재한 정서를 주제로 점차 구상성을 덜어내고, 자연의 본질에 파고들어 ‘점, 선, 면’으로 응축된 추상성을 찾아갔다. 이 과정에서 김환기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꼈을까.
무엇을 찾고 있는 것일까. 아름다운 세계(자연)가 아닐까. -김환기, 1968-
김환기가 전 생애를 관통해 사유하던 예술세계의 화두는 자연이었다. 영원토록 그대로인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존재한 것들(김환기, 1960)”이었다.
미술은 철학도 미학도 아니다.
하늘, 바다, 산, 바위처럼 있는 거다.
꽃의 개념이 생기기 전, 꽃이란 이름이 있기 전을 생각해 보다.
막연한 추상일 뿐이다.
-김환기, 1973 -
김환기에게 영원불멸한 자연은 그에게 절대적인 예술적 영감이자 동반자였으며, 그의 내면세계를 투영하는 장치였다. ‘시詩정신’을 관통해 순수 조형 요소인 ‘점點, 선線, 공간空間’으로 완성된 김환기의 서정적 추상 세계인 ‘전면점화全面點畵’에서 ‘숭고함’이 느껴지는 이유도 인위적인 더함 없이 김환기의 순수한 본연의 예술정신이 발현되기 때문이다.]
13:40~14:30 환기미술관 달관 수향산방에서 환기미술관 재개관 특별전 [김환기 - The Duet 듀엣]을 관람
[김환기 - The Duet 듀엣
환기미술관 재개관 특별전
전시기간 : 2024.12.06.~2025.07.27.
《김환기, The Duet 듀엣》은 ‘2024년 환기미술관 재개관’을 기념하며, 환기미술관 설립자 김향안의 미술관 설립에 담긴 그녀의 철학과 그 안에 담고자 했던 김환기의 예술세계를 재조망해 보는 전시입니다.
김환기의 예술적 동반자로서 계속 함께 걷던 ‘듀엣’의 여정에서 홀로 서게 된 김향안. ‘사람은 가고 여기 그의 예술은 남은’ 시간을 마주한 김향안은 십 수년의 고된 노력 끝에 ‘물이 흐르는 좋은 터’에 환기미술관을 짓게 됩니다.
전시 타이틀 ‘듀엣’은 1974년 김환기가 세상을 떠나기 얼마 전 ‘해가 드는’ 좋은 날 완성한 깊고 그윽한 푸른빛의 점화의 제목이기도 합니다. ‘듀엣’의 의미는 김환기가 꿈꾸고 노래하던 예술세계와의 ‘듀엣’, 김환기와 김향안의 예술적 동행으로서의 ‘듀엣’ 그리고 김향안이 환기미술관으로 엮어준 ‘듀엣’으로 연결됩니다.
김환기의 예술이 시간 위를 계속 흐르고, 이야기를 실은 시간들이 모여 환기미술관이라는 공간을 이루어 냈습니다. 서른 해를 넘기며 우리들의 교감이 더해지고 성장하여 오늘에 이른 환기미술관에서 여러분과 함께 걷는 ‘지금의 시간’, 김환기와 환기미술관 그리고 여러분과의 듀엣이 모두에게 의미 있는 위로와 메세지를 전하게 되길 바랍니다.]
[환기미술관 달관에서 진행되는 환기미술관 재개관 특별전〈KIM Whanki, The Duet 듀엣〉
환기미술관 달관에서 진행되는 〈KIM Whanki, The Duet 듀엣〉은 2024년 미술관 재개관을 기념해 김환기 작가의 예술 생애 전반을 타임라인으로 연출한 전시다. 김환기 작가가 세상을 떠나기 전 완성한 깊고 그윽한 푸른 빛의 〈Duet 듀엣〉을 시작으로, 그가 작고한 뒤 아내 김향안 여사가 그를 기념하기 위한 환기미술관을 개관하는 순간까지 아울러 볼 수 있다. 그의 꿈과 예술세계를 반영한 작품부터 환기미술관이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을 감상하며 그의 예술 작품이 주는 감동을 느껴 보길 바란다.]
[달관 수향산방은 'The Duet'이라는 제목으로 20점 정도의 작품을 전시하는 아담한 공간이고 작품은 사진촬영은 일부 작품만 가능하다.
회화, 사진, 도자 접시, 자화상 등이 전시되어 있다.]
14:30~15:00 환기미술관 별관에서 [아트판화와 디지털소장품 전시]를 관람
[환기미술관 별관에서 진행되는 환기미술관 재개관 특별전 [아트판화와 디지털 소장품]
별관에서는 환기미술관 아트 판화 20여 점과 프리즈 서울 2023에서 선보였던 김환기 작가의 작품을 미디어 아트로 표현한 디지털 소장품을 감상할 수 있다. 또한 박재성, 버스데이, 안마노, Jason Kim 작가들의 작품들도 감상할 수 있으니 함께 둘러볼 수 있다.]
[별관은 티켓 발권을 하는 공간인데 2층에서 아트판화와 디지털 소장품을 구경하고 구입할 수도 있다. 사진촬영도 가능하다.]
15:00~15:07 석파정 버스 정류장으로 회귀하여 탐방 완료
15:07~15:15 석파정 버스 정류장에서 불광역.불광1동주민센터 정류장으로 가는 7022번 버스 승차 대기
15:15~15:30 7022번 버스를 타고 석파정 버스 정류장에서 불광역.불광1동주민센터 정류장으로 이동 [15분, 9개 정류장 이동]
15:30~15:40 불광역에서 구산역으로 가는 6호선 전철 승차 대기
15:40~15:46 6호선을 타고 불광역에서 구산역으로 이동 [6분 소요]
환기미술관 위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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