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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땅
홍 성 원
1
땅이 흔들린다. 차고에 늘어선 수십 대의 버스들이 통금이 해제되자마자 저마다 시동을 걸고 새벽 정비를 하고 있다. 첫차는 네 시 반에 떠나는 속초행 급행버스다.
몇 시나 되었을까? 머리맡에 뚫린 보도블록만 한 창구멍은 성에가 두텁게 끼어 묵지(墨紙) 처럼 새까맣다. 왼쪽 어깨가 유난히 서늘해서 두제는 어슴프레한 잠결에 이불자락을 성급히 잡아당긴다. 그러나 당겨진 이불자락은 팽팽하게 힘을 받아 꼼짝도 하지 않는다. 두제는 그제야 자기 엉덩짝에 무언가가 말뚝처럼 꽉 버틴 것을 깨닫는다.
“씨팔 년…….”
어젯밤 열두 시 임박해서 갑자기 찾아든 계집이다. 빵(교도소)에서 형섭이가 여섯 달 만에 풀려 나와, 두제는 어제 모처럼 주머니를 털어 술을 샀다. 여덟 시부터 열 시까지는 재득이와 낙표가 술을 샀고, 그 뒤로는 두제 혼자서 열한 시 반까지 뻐개지게 술을 산 것이다. 그러나 술집을 나올 때까지두 형섭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세 사람은 별로 술이 취하지 않았다. 언젠가 한 번쯤은 그날이 있을 걸로 각오들을 했지만, 형섭 의 너무 빠른 출소에 그들은 어쩌면 두려움을 느꼈는지도 알 수 없다. 그동안 면회 한 번 못 간 것도 그들루서는 커다란 불찰이다. 내일 모레로 미루기만 하다 너무 빨리 형섭의 출소를 맞은 것이다.
낙표와 재득이가 취한 형섭을 끌고 갔고, 두제는 술집 셈을 가리다가 시간이 늦어 이 여인숙에 방을 잡았다. 벌써 이태째 이 터전으로 맴돌고 있었지만 두제가 이 여인숙에 들기는 이번으로 겨우 세 번째다. 두제가 여자를 멀리한다는 것은 이 근처 계집이라면 모르는 여자가 거의 없다. 어디가 고장이 나서 계집을 꺼리는 건 물론 아니다. 노랗다 못해 고추씨로 불리리만큼 두제는 계집 살 돈까지 끔찍이 아꼈던 것이다.
그런데 이 고추씨 두제에게 어떤 계집 하나가 겁 없이 들이닥친 것이다. 방값 선불을 하고 막 옷을 벗고 이불을 둘러쓴 순간이었다. 누군가가 후닥닥 미닫이를 열더니 “아이 춰, 같이 자요” 하며 불문곡직하고* 이불 속으로 기어든 것이다. 계집을 맞아들인 두제의 첫말은 이번에도 역시 “나가” 였다.
“누구야? 나가.”
“싫어요. 못 나가겠어요.”
“쌍것아, 돈이 없다니까!”
“돈 없어두 좋아요.”
“왜 이래 이거? 좋은 말 할 때 어서 꺼지라구!”
계집은 그러나 입을 다물고 갑자기 딴청을 쓰듯 사지에서 쑥 힘을 뽑았다. 흔들고 밀치고 발길로 걷어차도 계집은 죽은 듯이 꼼짝도 하지 않는다. 서너 번 같은 동작을 반복하던 두제는 갑자기 등신이라도 된 듯 계집의 전신을 우두커니 내려다본다. 온갖 계집들을 다 겪어보았지만 이런 능글맞고 숭믈스런* 계집은 두제로서도 처음이다. 막혔던 술기운이 확 터지면서 두제는 그제야 맑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봉창*으로 비쳐든 어슴프레한 달빛 속에 계집의 희멀건 가랑이가 짜릿하게 돋보인 것이다.
새 수법 이다. 유류 파동인가 지랄인가 때문에 요죽은 너나없이 단군 이래의 불경기다. 여인숙의 계집들이라고 이런 불경기에서 제외 됐을 리는 만무하다. 견디다 못한 여인숙 계집들이 이제는 육탄 공세의 새 수법을 개발한 것이다.
계집의 희멀건 가랑이를 바라보자 두제는 불 같은 욕심이 솟구친다. 그러나 뒤미처 덜미를 짚는 것은, 계집에게 쥐어줄 적지 않은 몸값이다. 더구나 그는 방금 나온 술집에서 오늘 벌이인 천육백 원을 고스란히 쑤셔 박았다. 그 위에 다시 계집 몸값까지 치르기에는 오늘 하루의 씀씀이가 두제에 게는 너무나 과중했던 것이다.
“여봐, 삼백 원뿐이야. 내 말 들어? 꼭 삼백 원 남았단 말이야. 그거라두 좋다문 참아주겠지만…… 쌍것아, 대답을 하라구! 이게 누구 약을 올리나?”
계집은 대답 대신 갑자기 몸을 굴려 두제의 물건을 덥석 잡는다. 잔뜩 약이 오른 두제의 물건은 계집의 손길이 닿자 숨이 껌벅 넘어간다. 계집이 두제의 물건을 잡은 건 삼백 원으로도 좋다는 뜻이다. 속이고 속는 아리송한 흥정 끝에 두제는 급기야 계집을 와락 이불 속으로 끌어들였다.
그러나 삼백 원을 주고 산 계집은 두제 못지않은 노랭이였다. 두제는 원래 계집을 사면 하룻밤에 최소한 세 탕은 뛰어야 직성이 풀린다. 첫 탕은 준비운동으로 가볍게 한 번 훑어내고, 둘째 탕은 뻑적지근하게 본격적으로 쏟아놓고, 마지막은 당분간 계집 생각이 안 날 만큼 최후의 한 방울까지 깨끗하게 훑는다는 식인 것이다. 그러나 이 노랭이 계집은 첫 탕을 뛰고 나자 등을 싹 돌려버렸다. 삼백 원을 선불로 쥐어준 것부터가 어쩌면 두제의 큰 실수인지 알 수 없다. 한 번 더 뛰자는 요구에 계집은 안면을 싹 바꾸고 오백 원 아귀를 채우라며 손을 불쑥 내민 것이다. 두제는 아차 하고 마빡을 때렸지만 이제 와서 이백 원 때문에 알짜 진국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세상은 이래서 공짜라는 것이 없는 법이다. 오백 원 아귀를 마저 채우고야 계집은 히히덕거리며 가랑이를 다시 씩씩하게 벌려준 것이다.
여인숙 밖 창틀 밑으로 언 땅을 밟는 발소리가 부산하게 지나간다. 성에가 덕지로 낀 네모진 창으로는 어느 틈에 새벽빛이 부옇게 밝아오고 있다. 팽팽하게 당겨졌던 이불자락이 문득 힘을 풀고 제물에 스스르 늘어진다. 계집이 이쪽으로 몸을 굴리더니 팔꿈치로 두제의 옆구리를 가볍게 쿡쿡 찌르기 시작한다.
“이봐요, 아직 자우? 담배 있음 좀 꺼내놔요.”
담배는 있다. 그러나 두제는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담배도 돈이다. 열 개들이 한 갑에 오십 원씩 하는 ‘명승’은 한 개비에 무려 오 원씩 먹히고 있다. 두제는 벌써 이 년째 이 ‘명승’만을 사서 피운다. 길이가 짧고 개비 수가 열 개여서 이 담배는 우선 양과 숫자에서 낭비가 적다. 술좌석 같은 데서 꺼내놓더라도 이놈은 개비 수가 적어 별로 속이 쓰리지 않은 것이다.
“이봐요, 있어요, 없어요?”
“없어,”
계집은 잠시 말이 없다가 이불을 걷고 부스스 일어나 앉는다. 가려는가 하고 기다렸더니 계집은 자리를 일어나 두제가 벗어놓은 점퍼와 바지를 끌어당긴다. 자는 척하고 누워 있던 두제는 번개처럼 팔을 뻗어 계집의 손등을 모질게 후려친다.
“놔 이년아! 감히 어따!……”
잠이 확 도망간다. 녁살 좋고 숭물스러운 것은 간밤에 겪어서 잘 알고 있었지만, 벗어놓은 옷에 손까지 댈 줄은 생각지도 못한 버르장머리다. 두제의 세찬 위세에 눌렸던지 계집은 놀란 돼지처럼 눈만 뚜리뚜리 굴리고 있다. 계집을 한바탕 아래위로 꼬나본 뒤 두제는 자리를 일어나 주섬주섬 옷을 입는다.
호되게 춥다. 어제 낮에는 버럭버럭 죽처럼 녹았던 길바닥이 지금은 돌처럼 얼어서 된서리가 하얗게 앉아 있다. 길 왼쪽은 이 층으로 지은 거대한 정류장 건물이 불을 환히 밝히고 있다. 바른쪽은 시유지에 무허가로 지은 대폿집·국밥집·여인숙 따위가 처마를 맞대고 가지런히 늘어서 있다. 첫차를 오래전에 떠나보낸 터미널은 손님들이 꾸역꾸역 꾀어들어 새벽부터 제법 활기를 띠고 있다. 눈곱을 달고 나온 구두닦이 학철이패가 어느 틈에 변소 뒤 공터에 타이어를 찢어 모닥불을 피워놓고 있다. 지글지글 끓는 타이어 모닥불은, 불꽃은 탐스럽지만 냄새와 그을음이 고약하다. 밤새 합숙소에서 새우잠을 잤을 그들에게는, 그러나 이 고약한 불도 지옥에서 만난 관세음보살이다. 구두닦이 의자에 다리를 건들대고 올라앉은 채, 학철은 두제를 보자 가래침을 탁 등 뒤로 뱉는다.
“형섭이 형님이 나왔다면서요?”
“응.”
“남숙이 때문에 어떡허죠? 사람은 없는데 찾아내랄 꺼 아닙니까?”
두제는 대답 대신 고개를 홱 돌려버린다. 하긴 어제 술좌석에서도 남숙이 얘기가 없었던 건 아니다. 남숙이 얘기가 나올 때마다 두제와 재득, 낙표 세 사람은 화제를 슬쩍 딴 곳으로 돌렸던 것이다. 그러나 언제까지고 형섭의 입을 막을 수는 없다. 일의 발단을 따지자면, 잘못은 회사 감찰인 우필이라는 작자에게 있다. 그의 우악스런 손찌검 하나로 생각지도 못한 엄청난 사고가 터진 것이다.
길 쪽으로 내뻗은 연탄난로 연통들에서 불그죽죽한 녹물과 함께 하얀 김들이 모락모락 피어 나온다. 정류장 근처에서 제일 먼저 문을 여는 집은, 해장국집과 잡화상과 유료변소와, 약방이다. 해장국은 주로 길 바른쪽의 밥집과 대폿집에서 팔고 있다. 속초행 첫차가 네 시 반에 있으니 이 집들은 최소한 네 시까지는 문을 열어야 된다. 날이 훤하게 밝아오는 무렵이라 해장국집은 제법 손님들로 풍성하다. 이런 시간에 찾아드는 손님들은 대부분이 역 근처에 빌붙어 사는 토박이 떠돌이패들이다. 정비공·차장·구두닦이·짐꾼, 그리고 손 빠른 쌔리 (소매치기)들과, 쌩고(가짜 고학생)·갸바이 (차내 행상)가 대부분인 것이다. 종합터미널이 생기기 전까지는 이 근처 밥집들은 제법 수입이 좋았었다. 열두 개 회사의 그 많은 운전수와 차장, 조과장(조수)들이 모두 이 헐렁한 국밥집에 식권을 끊고 밥을 사 먹은 때문이나. 그러나 종합터미널이 들어서고부터는 그 많은 운수회사 식솔들은 깨끗이 밥집들과 손을 끊었다. 회사에서 고맙게도 합숙소를 따로 시어주어서, 그들은 냄비와 양재기를 사 들고 그들이 손수 밥과 라면을 끓이게 된 것이다. 그러나 갸바이인 두제네패들에게는 아직도 이 술집들이 훌륭한 거래처다. ‘제자리 보기’로 이 정류장에 터를 잡은 그들은 열흘에 한 번씩 셈만 가리면 얼마든지 사인 하나로 단골집에서 외상밥을 먹을 수가 있는 것이다.
“어서 옵쇼!”
문을 밀고 들어서는 두제에게 꼬마 대길이가 고개를 꾸뻑 숙여 보인다. 김이 뿌옇게 술청을 뒤덮어서 대길은 미처 두제의 얼굴을 못 알아본 모양이다.
“낙표 안 왔냐?”
“네, 형님.”
“해장국 빨리.”
“네, 형님.”
난로 근처의 따뜻한 자리는 조과장 한 패가 차지하고 있다. 바닥에는 먼저 다녀간 손님들이 해장국 뼈다귀를 난장판으로 뱉어놓았다. 조과장패들을 힐끗 바라보니 셋은 모르겠고 한 명은 낯이 익다. 갸바이를 탈 없이 잘하자면 무엇보다 조과장들과 잘 사귀어둘 필요가 있다. 두제가 꾸뻑 알는체를 하자 저쪽에서 대뜸 인사말이 온다.
“오래간만이우.”
“예.”
“요즘은 뭘 팔구 있수?”
“좀약입니다.”
“잘 나가요?”
“형편없어요.”
“앞으루 또 자주 만나게 생겼수. 나 오늘부터 광주(廣州) 행 완행을 타게 됐시다.”
“그래요? 반갑습니다. 이거 정말 잘 부탁합니다.”
돈 안 드는 인사라면 두제는 땅바닥에 무릎이라도 꿇을 수 있다. 해장술을 얼근히 걸친 녀석은 두제의 인사를 받자 한마디 당부도 잊지 않는다.
“앞으룬 눈치 봐가며 잘해야 되우. 전처럼 또 눈치 없이 만원버스에서 고래고래 떠들지 말구.”
“그런 염려는 잡아매두십시오. 제가 어디 한두 해 그 장살 했습니까?”
“좌우간 앞으룬 큰소리 안 나가게 피차 조심해서 잘해봅시다.”
“예, 예. 잘 부탁합니다.”
해장국이 왔다. 숟가락을 찔러 국물을 휘저으니 밥티기는 별로 없고 우거지 와 선지만 거무튀튀 하게 떠오른다.
“야, 대길아!”
“네, 형님.”
“이거 다시 말어. 난 선지는 싫다구 하지 않았어?”
“아차, 깜빡 잊어먹었습니다. 이리 주십쇼. 다시 말아 올리죠.”
이 근처 음식점에서 쓰는 육붙이는, 거개가 정체가 모호한 광주리 장사로부터 공급받고 있다. 어디서 오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들은 언제나 어스름한 새벽녘이 아니면 캄캄한 밤에만 물건을 대주고 있다. 언젠가는 재득이가 주인 김 씨에게 고기가 어디서 오느냐고 슬쩍 한 번 물어본 일이 있다. 김 씨는 연필에 침칠을 하다 말고 입귀*로 빙그레 웃으며 말머리를 슬쩍 이렇게 받은 것이다.
“독약 든 거 아니니까 안심하구 먹으라구. 푸줏간에서 제값 주구 고기를 사 쓰다가는 여기서 밥장사 해먹을 놈 한 놈두 없을 께야. 단골이니까 한 가지만 일러두지. 고기 종류는 다 좋은데 선지나 창자는 가급적 안 먹는 게 좋아.”
왜 먹지 말라는지에 대해서는, 김 씨는 끝내 아무 설명도 해주지 않았다. 두제가 선지를 피한 것은 바로 이 말을 듣고 난 후부터다.
해장국이 다시 왔다. 조과장패들이 떠나가자 이번에는 쌔리 일당인 병학이패들이 들이닥친다. 피차 한 터전에서 밥을 벌고 있지만 갸바이와 쌔리패들과는 얼굴이나 겨우 알고 지낼 정도다. 양쪽의 생업이 전혀 달라서, 갸바이패에서 쌔리패들을 은근히 경계하고 멀리하는 때문이다.
“어이 고추씨, 오래간만인 데?”
“말조심해.”
“낼부터는 피차 괴롭게 생겼어.”
“무슨 수작이야?”
“천천히 기다리면 알게 될 꺼야. 까딱하면 이 정류장두 오늘 밤으루 문을 닫을지 모른다구.”
빈속에 뜨거운 국물이 들어가서 두제는 전신으로 비 오듯이 땀을 흘린다. 그러나 그는 콧물을 훌쩍 들이마시고 의아한 눈길로 칼잡이 승남을 돌아본다.
“문을 닫다니 무슨 소리야?”
“닥쳐, 자식아! 주둥이 한번 되게 싸다!”
두제를 향해 하는 말이 아니고, 병학이 승남을 향해 꾸짖는 말이다. 주인 김 씨도 어느 틈에 들었는지 바닥의 뼈다귀를 쓸다 말고 빗자루를 든 채 엉거주춤 허리를 편다.
“아니 그게 무슨 소리야? 이 역을 그럼 닫게 된다는 이야긴가?”
“김 씨두 귀 하나는 되게 밝구려. 농담이오, 농담. 그런 일 없을 테니 안심하슈.”
“농담으루 흘릴 말이 따루 있지, 그건 농담두 아닌 것 같은데?”
“아따 농담이라면 농담인 줄 알지 뭘 그렇게 꼬치꼬치 따지슈? 그런 걱정은 깨끗이 접어두구 여기 얼른 국밥이나 네 그릇 말아주슈.”
“대길아, 국밥 넷!”
“네, 국밥 넷이요!”
무슨 내막인지는 알 수 없으나 놈들은 시치밀 떼듯 태평하게 담배들을 붙여 분다. 두제는 곧 찬물로 입을 가신 후 외상 장부에 사인을 하기 위해 의자를 물리고 천천히 몸을 일으킨다.
2
“야, 형섭아.”
“어……”
“간다, 나.”
“어, 가봐.”
“이거 받아뒤.”
재득은 누워 있는 형섭에게 오백 원권 두 장을 건네준다. 아직도 술기가 덜 가셨는지 형섭의 두 눈은 벌겋게 핏발이 돋아 있다. 두어 번 껌벅이던 형섭이 이불 속에서 팔을 뻗어 말없이 돈을 받는다. 재득이 막 몸을 돌리자 형섭이 생각난 듯 불쑥 묻는다.
“담배 있음 놓구 가.”
재득이 주머니를 뒤적여 구겨진 담뱃갑을 꺼내든다. 주둥이를 북 찢어 개비 수를 확인한 뒤 자기가 먼저 한 개비를 뽑아 물고 나머지를 툭 방바닥으로 떨어뜨린다. 성냥을 쳐서 불을 붙이자 형섭이 부수수 이불을 들치고 일어나 앉는다.
“낙표는 나갔냐?”
“응―.”
“요즘은 뭐냐?”
“난 옷핀이구 그 새끼는 살라민 연고야.”
살라민연고는 원래 형섭의 전문 종목이다. 형섭이 빵에 들어간 사이에 낙표가 그것을 슬쩍 가로챈 모양이다. 그러나 갸바이에게는 물품보다 노선이 더 소중하다. 그냥 떠나기가 민망했던지 재득이 드디어 가방을 내려놓고 자리에 앉는다.
“뭘 좀 먹어야지?”
“생각 없어.”
“우린 아침에 라면 끓였다. 아직 부엌에 두 개 남았어.”
형섭은 그 말에는 대꾸 없이 재득의 얼굴을 가는 눈으로 바라본다. 재득이 후딱 시선을 옮기자 형섭이 그예* 남숙의 행방을 물어온다.
“어딨냐, 남숙이?”
“몰라.”
“나두 눈치루 대강 알아. 너들이 말 안 해두 뭔가 잘못됐다는 건 알구 있다.”
“알면 됐으니까 더 이상 묻지 마라. 자, 난 그럼 가봐야겠다. 물건이 떨어져서 물건 받으러 가는 길이다.”
붙잡을 것으로 알았는데 형섭은 더 이상 말이 없다. 방에서 뒤뜰로 내려선 재득은 잠시 발을 세우고 안채 쪽의 기척을 살핀다. 방세가 석 달째나 밀려 있어서 주인 여편네는 요즘 만나기만 하면 악다구니다. 하긴 하는 일 없이 방세로만 살아가는 그녀에게는 석 달이나 밀린 방세에 악다구니가 나올 법도 하다. 더구나 요즘 딴 방들은 월 육천 원씩 하던 방세를 천 원을 더 올려 칠천 원씩 받고 있다. 천 원이나 손해보는 것도 억울한 판에 석 달씩 이나 방세가 밀렸으니 그녀의 악다구니는 백 번 생각해도 당연한 것이다.
안채 쪽에 아무런 기척이 없자 재득은 드디어 발뒤꿈치를 들고 뒤뜰을 돌아 나간다. 겨우내 햇빛 한 번 안 드는 뒤뜰은 하수도가 얼어터져서 수채물이 번들번들 유리처럼 얼어붙었다. 블록담 모서리의 싯누런 얼음은 누군가가 또 오줌을 내쏟은 때문일 것이다. 순전히 세를 받기 위해 지어놓은 뒷채에는 기다란 일자집에 방만 무려 다섯 개가 된다. 안뜰로 꺾이는 첫째 방에는 연탄가게를 하고 있는 남 씨 내외가 살고 있고, 그다음 방에는 터미널 청소부인 여주댁과 아들이 들어 있고, 그다음은 다시 번데기 행상인 서 씨 형제가 살고 있고, 넷째 방에는 구두 수선공인 홀아비 강 씨가 혼자 살고 있고, 맨 끝인 다섯째 방에 재득과 낙표가 들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다섯 개의 방들 중에 오줌을 담 밑에 내쏟는 버릇은 다섯 집이 모두 공통적이다. 여름에는 지린내가 진동해서 연탄재를 뿌려가며 서로가 은근히 감시를 하지만, 변소가 워낙 멀리 대문 옆에 붙어 있어서, 겨울철에는 남의 눈만 없으면 다섯 방에서 다투듯이 깡통의 오줌을 소리 안 나게 담 밑으로 쏟는 것이다.
“여 봐요!”
재득이 막 안뜰로 들어서자 건넌방 미닫이가 화닥닥 열린다. 쥐도 새도 모르게 빠져나가는 그들을, 오늘만은 주인 여편네가 잠복해서 기다린 것 같다. ‘여봐요’ 소리에 너무 놀라서 재득은 울컥 자기 자신에게 화가 치민다. 도둑질을 하다 들킨 것도 아닌데, 이렇게 맥을 못 쓰고 죽어지낼 필요는 없는 것이다.
“뭡니까, 아주머니?”
“새벽에 방 복덕방에 내놓았수.”
“네?”
“집 세 이젠 필요 없수. 우리 집에서 나가줘야겠어.”
“아주머니……”
“긴말 해봐야 숨만 가쁘니까, 그렇게 알구 짐이나 꾸려놔요.”
“아따, 방세 드리겠습니다. 몇 푼 된다구 우리가 그걸 떼먹겠습니까? 지금 돈 받으러 나가는 길입니다. 오늘 저녁엔 틀림없습니다.”
“아뭇 소리 마시우. 그깐 방세 나 안 받어두 산다구요. 짐 안 싸면 우리가 짐들 대문 밖에 들어내겠수. 그리구 참 방세는 방세지만, 전기세 수돗세하구 똥값은 지금 내줘야겠수.”
“지금은 돈이 없습니다. 그것두 저녁에 드리겠습니다.”
“안 돼요. 시계 끌러요. 불 키구 물 쓰구 변소 썼으면 그런 건 미리미리 가려야 하잖우? 저녁엔 딴 사람이 들어올지도 모르니까 시겔 끄르든가 돈을 내든가 당장 지금 해결해요.”
재득은 잠자코 서서 주인 여편네의 얼굴을 쏘아본다. 핏기 없는 하얀 피부에 잔주름이 거미발처럼 가득히 얽혀 있다. 서울 토박이인 이 여편네는 아무리 독살스러운 말도, 언성 하나 높이지 않는다. 자기 할 말만 야무지게 뱉어놓고, 상대편 사정 따위는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방을 복덕방에 내놓았다는 것도 단순한 엄포만은 아닐 것이다. 사정이 통하지 않을 것을 알자, 재득은 드디어 한 발 뒤로 물러선다.
“얼마죠, 전부?”
“두 달치 이천 원이우.”
“웬 게 그렇게 많습니까?”
“전기세 칠백 원, 물세 이백 원, 그리구 똥값이 백 원이우. 댁들은 그나마 봐줘서 그래요. 쓰레기값은 치지두 않았수.”
자기는 전등 세 개에 텔레비전과 다리미와 전기곤로까지 쓰고 있다. 그러나 그녀의 전기세, 물세 환산법은, 그 사용량이 문제가 아니라, 가구당 차등 없이 똑같이 분배해야 옳다는 주장이다. 언젠가 누가 항의를 제출했더니, 그래도 집주인인 자기 쪽이 어딘가 은근히 손해를 본다는 이야기다. 자기들은 아껴 초저녁에 일찍 잠들을 자지만. 세든 사람들은 무슨 심뽄지 걸핏하면 밤새도록 불을 켜둔 채 잠을 자더라는 불평인 것이다.
“자, 여기 있습니다.”
“얼마유, 그게?”
“천 원입니다.”
“왜 천 원이우?”
“나머진 저녁에 드리겠습니다. 돈이 전부 그것뿐입니다.”
집주인이 드디어 손을 내밀어 나꿔채듯 돈을 받는다. 재득이 후딱 몸을 돌리자 등 뒤로 화닥닥 미닫이 닫히는 소리가 울린다.
재득의 숙소에서 PR사(社)까지는 걸어서 불과 칠팔 분 거리밖에 되지 않는다. 재득은 그러나 구두 밑바닥에 못이 솟아올라서, 그놈을 다시 수선하느라고 구둣방에 들러 약 오 분쯤 시간을 허비했다. 사방으로 쏘다니는 것이 직업이어서 재득은 구두를 사면 잘 신어야 반년이다. 이번 구두는 동대문시장에서 불과 한 달 전에 천 원을 주고 산 것이다. 갸바이는 딴 직업과 달라 몸치레를 함부로 할 수가 없다. 주둥이 하나로 노가리를 까는 직업이어서 몸치레가 허술하면 손님들이 선뜻 이쪽을 믿으려 하지 않는다. 손님들에게 신뢰감을 심어주려면 속이야 비록 걸레를 걸쳤더라도 겉으로는 의젓하게 넥타이도 잡수시고 팔목시계도 걸쳐야 하는 것이다.
골목으로 휘어져 PR사 앞에 도착하자 재득은 턱을 당기고 아랫배에 불끈 힘을 준다. 물건 값으로 마련한 삼천 원 중에서 이럭저럭 뜯긴 것이 어느 틈에 이천오십 원이다. 천 원은 형섭에게, 또 천 원은 주인집 여편네에게, 그리고 마지막 오십 원은 구두 수선차 구둣방에서 뜯긴 것이다.
PR사 사무실은 이 층에 있다. 좁은 층계를 중간쯤 올라가자, 문소리가 삐걱 울리더니 시내에서 뛰고 있는 늙은 윤가가 마주 내려온다. 나이가 오십 줄에 들어선 이 작자는 갸바이패들 중에서도 소문난 떼장이다. 갸바이는 피차 자기 구역이 있어서, 남이 뛰고 있는 구역이나 노선에는 좀처럼 뛰어들지 않는다. 특히 이것은 시내선보다 시외선이 더욱 심하다. 얼마간 회사 측에 세금까지 물고 있는 그들이라, 낯선 작자가 나타나면 눈을 부라리고 때려 쫓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이 윤 영감한테만은 어떤 위협도 통하지 않는다. 이십여 년을 갸바이로만 늙어온 영감이다. 시외선의 ‘제자리 보기’ 들조차도 영감의 욕설과 떼거지에는 손을 못 쓰고 못 본 체하는 것이다.
“안녕하쇼?”
“오래간만이로군.”
“뭐요, 영감은?”
“오늘은 바늘 좀 받아봤어.”
“사람 많아요?”
“없어, 가보라구.”
영감과 엇갈려 층계를 올라온 후 재득은 곧 유리문을 민다.
다섯 평 남짓한 사무실은 언제 보아도 어수선하다. 바른편 창문 앞만 제외하고는 세 벽이 온통 시렁과 진열장으로 빈틈없이 둘러져 있다. 칸칸이 질러진 시렁과 진열장에는 본보기로 내놓은 온갖 물건들이 짙서 정연하게 늘어놓여 있다. 은단·볼펜·병따개·손톱깎기·수첩·지갑·나프탈렌·드라이버·회충약·줄자·파이프·옥편·머리빗·바늘·옷핀·지도·망치·크림·뱀가루·포켓사전·버클·손칼·면도날·소화제…… 그러나 이 많은 물건들은 저마다 독특한 특색을 지니고 있다. 장소, 계절, 이문 등에 따라 수시로 찾는 물건이 이것저것으로 뒤바뀌는 것이다.
“어서 오게.”
“안녕하십니까?”
“재미 어때?”
“그저 그렇습니다.”
줄담배를 피우는 주인 최 씨는 손끝이 언제나 담뱃진으로 샛노랗다. 필터를 앞니로 잘근잘근 씹으며 최 씨는 재득의 움직임을 피로한 눈으로 멍청히 바라보고 있다.
“이거 몇 가께죠?”
“사 가께.”
‘가께’ 란 물건의 이윤 비율을 뜻하는 말이다. 백 원짜리 물건이 사가께라면 그중에 40원은 물건을 파는 갸바이의 몫인 것이다.
“지난번 옷핀은 재미없던데요? 하루 이십 탕 뛰었는데 여섯 번이나 스꼬지 맞았습니다.”
“바꿔, 그럼.”
“요즘 뭣들 많이 찾아요?”
“지도가 곧잘 나간다더군.”
“이거 말이죠?”
“응.”
재득은 지도를 집어 든다. 세 번이나 접힌 한 장짜리로 앞에는 전국지도, 뒤에는 서울지도가 실려 있다. 재득은 그러나 이런 물건에 선뜻 손길이 가지 않는다. 책이나 옥편이나 지도 따위는 ‘단까’를 잘 쳐야 손이 빠르다. 자기처럼 입담이 없는 사람에게는 설명이 간단한 단순한 물건이 좋은 것이다.
“참, 자네 한광수라고 알지?”
“예, 압니다.”
“그 친구 요즘 못 만났나?”
“안 뵈던 데요.”
“신재만이는?”
“못 봤어요. 왜요?”
“둘 다 물건 해갖구 깨끗하게 십 가께 놨어.”
“그래요?”
십 가께란 외상으로 물건을 가져간 후 어딘가로 깨끗이 날라버린 자들을 말한다. 말하자면 어떤 물건을 통째로 떼어먹어서 십 가께인 것이다.
“자식들 거 너무했군요. 언제 만나면 타일러보죠.”
“외상 내준 게 잘못일세. 자네두 얼른 외상 갚게.”
“갚아야죠. 염려마십쇼.”
문득 도어가 열리고 점원 김 군이 들어선다. 상자 두 개를 들고 들어온 그는 재득을 보자 비키라는 듯 눈짓을 한다. 재득이 한옆으로 비켜서자 김 군은 곧 상자 주둥이를 활짝 연다.
“보십 쇼. 생각보다는 제법 물건이 잘 빠졌습니다.”
“갯수는 다 맞아?”
“예, 일일이 세어서 받았습니다.”
머리빗이다. 머리빗은 전에도 한 번 팔아본 일이 있다. 재득은 곧 허리를 굽혀 봉다리 하나를 집어 든다. 비닐로 씌워진 봉지 속에는 다섯 개의 각기 다른 빗과 손톱깎기·구듯주걱·귀후비개까지 들어있다. 빗 하나를 뽑아 손으로 휘어본 후 재득은 힐끗 김 군을 돌아본다.
“몇 가께야, 이건?”
“삼.”
“짠데, 너무?”
“물건을 봐. 가치가 있어.”
“백 원 받을 껀가?”
“응.”
도어가 다시 벌컥 열리더니 이번에는 우루루 세 명의 사나이가 들어선다. 모두 재득과는 인연이 먼 영등포 시외버스패들이다.
“어서들 오슈.”
“피 봤수다, 최 사장.”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씨팔, 한 차에 한 개 아니면 두 개라구. 정초(正初)라 좀 나갈 줄 알았더니 타는 차마다 스꼬지라니까.”
‘스꼬지’란 차에 올랐다가 물건을 한 개도 못 판 것을 말한다. 갸바이패들에게는 이것처럼 불쾌하고 분통 터지는 일은 없다.
“뭐 였지, 물건이?”
“보슈, 이거요.”
그중 한 명이 가방을 열고 진열대 위로 우수수 물건을 쏟는다. 물건은 신년도 수첩으로 재득의 M역에서는 재미가 썩 좋았던 물건이다. 손님은 주로 휴가를 나왔다가 귀대하는 복쟁이 (군인)들이었다.
“딴 데서는 재미를 봤다던데 어째 거기서만 피를 봤지!”
“그런 거 지금 따져서 뭘 하우. 자, 어서 셈이나 가립시다.”
최 씨가 곧 그들과 어울려 반품들을 세고 있다. 재득은 그러나 남의 일보다 당장 자기 일에 마음이 더 조급하다. 다시 외상을 얻을 일에 그는 선뜻 입이 떨어지지 않는 것이다.
“최 씨, 나 이걸루 정했습니다. 오십 개만 쓰겠습니다.”
“쓰라구.”
재득은 곧 김 군과 어울려 빗 오십 개를 세기 시작한다. 오십 개를 가방에 쑤셔 넣으니 대뜸 가방이 불룩해진다. 가방을 지퍼로 꼭 봉한 후, 재득은 점잖게 김 군을 바라본다.
“대장 좀 가져와.”
“뭐?”
“놀래긴? 다음에 갚겠어. 명절 때라 몇 푼 있던 거 시골집에 홀랑 부쳤다구.”
“안 돼. 외상은. 현재 있는 것만두 이만 원이 넘잖아?”
“미안해, 재득이! 외상이라면 물건 도루 꺼내놓게!”
최 씨다. 그러나 이만한 정도로 순순히 물러설 재득이 아니다. 가방을 후딱 집어 든 재득은 진열대의 최 씨에게 곧바로 다가간다.
“꼼쳐두구 이러는 게 아닙니다. 정말 지금 한 푼두 없어요.”
“글쎄 안 돼. 외상은 인제 하느님 할애비가 와두 못 주겠어. 십 가께 뛴 놈이 몇인 줄 알아? 한 달 새에 벌써 세 놈이라구.”
“이러심 정말 곤란합니다. 일을 나가야 밀린 외상값두 갚을 게 아닙니까?”
부드럽던 최 씨의 눈이 문득 꼬꾸장한* 세모꼴로 변한다. 그러나 이 눈을 마주 보는 재득은, 애원과 원망이 서린 울 것 같은 슬픈 눈이다. 잠시 숨막히는 눈싸움이 계속된 후, 최 씨가 이윽고 슬며시 눈길을 피한다.
“졌네, 내가. 어서 가보게.”
3
“형님.”
약방 앞에서 담배를 붙여 물자 누군가가 낮게 형섭을 부른다.
“어, 학철이구나.”
“어젯밤에 나왔다면서요?”
“응, 넌 재미가 어떠냐?”
“그저 그렇죠 어딜 가시는 길입니까?”
“그냥 나왔어. 참, 너 배차계 이출봉 씨 어디 있는지 모르니?”
“없던가요, 사무실에?”
“없어.”
두 사람은 말을 끊고 약간 떨어져서 터미널로 나란히 들어선다. 통로 바른쪽은 구내매점들이 처마를 맞대고 촘촘히 늘어섰고, 왼쪽은 긴 벽을 따라 행상들이 신년도 달력들을 벽과 길바닥에 어지럽게 늘어놓고 있다.
“누구야, 이거?”
분식집 문이 삐걱 열리더니 고등학교 제복의 학생 한 명이 가방을 든 채 멍하게 형섭을 바라본다. 형섭이 곧 걸음을 멈추고 다가오는 학생에게 서서히 손을 내민다.
“누구라구…… 오래간만이야.”
“언제 나왔어?”
“어젯밤에 .”
“몇 달 살았지?”
“여섯 달이야.”
“빠르군. 엊그제 같은데…….”
“재미는 어때?”
“그저 그래.”
손을 푼 두 사람은 할 말이 없어 멋쩍게 몸을 돌린다.
“가봐 그럼.”
“응―.”
쌩고(가짜 고학생) 길상이다. 고등학교 교복에 책가방을 들었지만 그는 나이가 스물여섯이다. 밑천 안 드는 장사기는 하지만, 쌩고도 아무나 하는 것은 아니다. 턱 밑으로 끊임없이 돋아나는 수염을, 쌩고들은 어리게 보이기 위해 거울 앞에 붙어 앉아 족집게로 매일같이 뽑아야 하는 것이다.
분식점을 지나 통로를 왼쪽으로 꺾어들자 유료변소 입구에 앉은 외팔이 강 씨가 언뜻 보인다. 트랜지스터라디오의 리시버를 귀에 낀 채, 강 씨는 형섭을 보자 한 짝뿐인 팔을 번쩍 쳐든다.
“들었어, 나. 어젯밤에 나왔다면서?”
“예. 여전하시군요?”
“낙표가 아까 들렀었지. 자네두 옛날 그대루군?”
“수고 보십쇼.”
“그래. 또 보세.”
변소 앞을 지나치자 이 층으로 통하는 시멘트 층계가 컴컴하게 앞을 막는다. 말없이 뒤처져 따라오던 학철이가 층계 밑 일터에 다다르자 불쑥 형섭의 팔을 잡는다.
“앉으십쇼. 먼지나 털어드리겠습니다.”
학철이 내주는 둥글의자에 형섭은 말없이 엉덩이를 걸친다.
“어디들 갔어? 진호, 영국이는?”
“영국인 다방, 진호는 차부에 나간 것 같습니다.”
“지난 신정* 땐 꽤들 바빴겠지?”
“우리야 뭐…… 병학이형님들이 짭짤했죠.”
“큰 거 안았나?”
“큰 건 못 하구 잔 걸 많이 따낸 것 같더군요.”
병학은 쌔리다. 명절이 되어 정류장이 봄비면, 이들에겐 바로 황금계절이다. 언젠가는 기록적으로 사백만 원짜리를 따낸 일도 있다. 그러나 무더기가 너무 크면 소문이 좍 돌아서 뜯기는 것도 상당히 많다. 이런 때면 그들은 이곳을 떠나 어딘가에 틀어박혀 열기가 식었을 때 다시 나타난다. 올해는 계속 머물러 있는 것을 보니, 학철의 말처럼 큰 것은 한 건도 없었던 모양이다.
“아니 구두가 왜 이렇게 바싹 말랐죠?”
“아, 그거 여섯 달 동안 안 신어서 그래.”
“구두 아주 버렸습니다. 멀쩡한 걸 왜 안 신었습니까?”
“빵에선 구두 못 신게 됐다구.”
학철이 후딱 솔질을 멈췄다가 그제야 다시 바쁘게 손을 놀린다.
“저한테 하루만 맡겨두십시오. 왁스 먹여서 다시 부드럽게 길들여 놓겠습니 다.”
“그동안엔 뭘 신구?”
“숙소에 헌 구두가 하나 있습니다.”
“괜찮아. 그냥 신겠어.”
모처럼의 호의를 거절해서, 형섭은 미안감을 느낀 듯 학철의 머리털을 손으로 꽉 쥐었다 놓는다. 대수롭지 않은 친절이지만 형섭은 갑자기 묘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모두가 하나같이 찌들게 못사는 친구들이다. 그러나 형섭이 빵에서 나오자, 이들은 저마다 그들 나름의 신경들을 써주고 있다. 낙표는 형섭의 여름옷을 보자 자기 출입복인 점퍼와 바지를 벗어주었고, 재득은 물건값도 없는 주제에 두 번에 걸쳐 비상금 삼천 원을 털어 내놨고, 소문난 노랭이 두제까지도 간밤에는 주머니를 털어 천여 원어치나 소주를 산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친구라도 되지만, 학철은 나이가 처져서 형섭과 친구의 사이는 아니다. 오히려 학철은, 작년 봄철의 그 일을 제외하고는, 형섭에게 음으로 양으로 천대만 받아온 피해자인 것이다:
작년 봄철의 그 일이란 터미널 근처의 구두닦이패들을 모아놓고 형섭이 구청 원초하에 달포*쯤 공부를 가르친 일을 말한다. 그러나 이 일은 겨우 달포를 버티다가, 구청도 자빠지고 아이들도 자빠져서, 처음의 요란한 나팔과는 달리 비웃음만 흠씬 사고는 유야무야하게 풍비박산이 되고 말았다. 하긴 형섭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 일을 시작한 동기부터 가 불순했다.
터미널 건물이 낙성*을 보게 되자, 당국은 버스회사와 합동으로, 환경 정화를 내세우고 역에서 잡상인과 불량배의 일제 소탕령을 내리게 되었다. 여기서 말하는 잡상인이란, 껌팔이, 신문팔이와 멍게장수는 물론이고 무수한 광주리장사들과 형섭 일당인 갸바이패들이다. 형섭은 당국의 소탕령이 전해지자 자구책을 강구하기 위해 며칠 동안 머리를 쥐어짰다. 그들은 여기서 쫓겨나면 당장 갈 곳이 없는 자들이다. 무슨 억지를 쓰더라도 당국의 눈을 피해 이 훌륭한 터미널에 빌붙어야 했던 것이다. 며칠을 끙끙대던 형섭의 머리에 드디어 후딱 기발한 착상이 떠올랐다. 당국에서는 마침 불량배 선도책의 일환으로 정류장 뒤 하천 부지에 구두닦이들과 신문팔이들의 합숙소를 마련해주었다. 블록과 천막포만으로 엉성하게 세운 가건물이지만 침상과 나무의자, 깔개 등이 있어서, 숙소 이외의 딴 용도로도 아주 훌륭히 쓸 수 있는 건물이다. 형섭의 착상은 바로 이 합숙소에 야간학교를 설치하자는 것이다. 아이들을 긁어모아 얼렁뚱땅 글을 가르치는 시늉을 하면, 당국은 그가 갸바이인 것은 알지만 무작정 때려 쫓기는
곤란하리라고 생각한 것이다.
계획은 적중했다. 입 하나로 먹고사는 형섭에게는 아이들 꼬이는 일은 식은 죽 먹기였다. 칠판을 걸고 학용품 몇 푼어치를 좍 돌리자, 아이들은 킬킬 웃으며 너도나도 야간학교로 꾸역꾸역 꾀어든 것이다. 드디어 이 사실은 누군가에 의해 K주간지에 소개되었다. ‘불우청소년에 희망의 등불’ 이라는 제목으로, 큼지막한 사진 두 장과 함께 주간지는 요란스레 쌍나팔을 불어 제낀 것이다. 구청에서 직원이 나타난 것은 바로 이 기사가 나간 그다음 날이다. 금일봉이 날아들고, 학용품이 보내지고, 야간학교는 바야흐로 뻑적지근한 잔치를 맞았다.
형섭은 처음에는 장난기로 이 일을 벌였으나, 하루이틀 시간이 흐르자 묘한 홍분과 열성이 느껴졌다. 이제는 잡상인으로 몰려 쫓겨날 염려는 깨끗이 사라졌다. 그는 어느 틈에 잡상인 갸바이에서 야간학교 설립자이자 교장선생님으로 둔갑한 것이다. 더구나 그의 야간학교에 이때 마침 뜻밖의 진객(珍客)들이 나타났다. 선머슴 같은 차장 아가씨 네댓 명이 공책을 포켓에 깊이 숨기고 구두닦이들 등 뒤로 수줍은 듯이 나타난 것이다. 형섭이 더욱 열을 올린 것은 바로 이들 때문이다. 특히 그는 이들 중에서 얼굴이 뽀얗고 눈이 새까만 깜찍한 아가씨를 하나 만났다. 차장들 중에 이런 물건이 있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귀여운 얼굴이다. 나중에야 이름을 알게 되었지만 그녀가 바로 남숙이다. 남숙은 이들 다섯 명 중에서도 가장 열심히, 그리고 끝까지 학교에 나온 것이다.
그러나 빨리 더워지는 구들은 빨리 식 게 마련이다. 처음에는 호기심에 의해 킬킬 웃으며 모여든 아이들이, 피곤과 타성·게으름이 되살아나자 하나둘 하품을 물고 벌렁벌렁 자빠지기 시작한 것이다. 헌데 여기에다 더욱 치명타를 입힌 것은 버스회사가 차장들의 학교 출입을 눈을 흘기며 못마땅해 한 것이다. 온종일 차에 흔들린 후 넙치가 되어 돌아온 아이들이 학교에 나가 공분가 뭔가를 배우고부터는, 다음 날 버스 속에서 꾸벅꾸벅 졸기가 일쑤였기 때문이다. 한번 흩어지기 시작한 아이들은 이제는 형섭의 힘으로도 되돌릴 수 없는 봇물이었다. 하루에 한두 명씩 슬금슬금 빠져나가더니 드디어 달포 만에는 학생이라고는 겨우 네 명밖에 남지 않은 것이다.
사태가 이쯤 되자 형섭도 드디어 손을 들었다. 처음엔 몹시 허전했지만 시간이 흐르자 허전한 마음도 메워졌다. 어쩌면 형섭은 애초부터 이렇게 될 것을 알고 있었는지도 알 수 없다. 당국의 소탕령도 해제되었으니 그로서는 뒷맛이 약간 쓰지만 애초의 목적한 바는 십분 달성한 셈인 것이다.
그러나 이 허황한 사건으로 형섭은 또 하나의 아주 귀한 것을 얻고 있었다. 스승과 제자라는 사이에서 그는 어느 틈에 남숙을 사랑하게 된 것이다. 학교는 비록 간판을 내렸지만 그들은 그 뒤로도 걸핏하면 밤에 만났다. 중학교 이 학년을 다니다 말았지만, 남숙은 생긴 그대로 꽤 야물고 다부진 소녀였다. 어디서 귀동냥으로 주워들었는지, 그녀는 노동법 어쩌고 하며 되잖은 소리도 곧잘 지껄였다. 반반한 얼굴에 열아홉이라는 나이치고는, 그녀는 딴 아이들과는 달리 자기 몸 간수도 신통할 만큼 단단했다. 사실 차장들의 놈씨 (사내) 관계는 곁에서 보기에도 한심하고 민망할 정도였다. 어쩌다 합숙소 뒤 개굴창을 가 보면, 그녀들이 담 밖으로 훌훌 던져버린 고무제품이 흡사 대팻밥 처럼 허옇게 널브러져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형섭과 남숙에게도 어느 날 드디어 커다란 사건이 찾아왔다. 이때쯤은 물론 형섭과 남숙은 남남 사이가 아니었다. 형섭이 남숙을 어르고 구슬려서 기어코 여관으로 끌고 가 물고를 낸* 후인 것이다. 두 사람에게 찾아든 사건은 극히 단순했고 우발적인 것이었다. 물건을 팔다가 시비가 붙어 형섭이 눈치 없이 손님의 이빨을 두 대나 부러뜨린 것이다. 이빨 두 대가 나간 상대는 공교롭게도 경찰관의 처남이었다. 아마 상대가 보통 손님이었다면 형섭은 치료비만 물고 ‘현저동 호텔’까지는 안 갔을지도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는 치료비는 치료비대로 에누리 없이 홀랑 물고도 피해자 매부의 고소에 의해 현저동 무료호텔로 날씬하게 쑤셔 박힌 것이다.
호텔에 쑤셔 박힌 형섭을 찾아, 남숙은 넉 달 동안에 무려 여섯 번이나 면회를 왔다. 한 달에 잘해야 하루나 이틀을 쉬는 그녀에겐 이것은 눈물겨운 정성이고 열성이었다. 더구나 그녀는 면회를 올 때마다 건방지게 시키지도 않은 사식(私食)까지 넣고 갔다. 아무리 형섭이 눈을 부라려도 그녀는 쌕쌕 웃으며 자기 고집대로 했던 것이다. 그런데 지난해 시월 하순을 마지막으로, 남숙은 갑자기 발걸음을 뚝 끊었다. 형섭은 불안하고 답답했지만 처박힌 몸이라 앉은뱅이 용쓰듯 엉덩이만 들썩거렸다. 다행히 만기(滿期)가 얼마 안 남아서 그는 그로부터 두 달 후인 바로 어제 풀려나온 것이다.
그러나 막상 나오고 보니, 남숙은 두 달 전에 이미 회사에서도 쫓겨나고 없었다. 회사에 들러 서류를 확인해보니 십 일월 팔 일자로 의원* 사직이 되어 있다. 어떻게 된 거냐고 계원에게 물었더니 계원은 모른다면서 고개만 살레살레 흔들 뿐이다. 그러나 형섭은 그녀의 사직에 뭔가 의혹이 있음을 직감했다. 우선 그에게 가장 큰 의혹은, 그녀가 회사를 그만두고 어디로 갔는가 하는 것이다. 형섭의 만기날짜를 알고 있는 그녀는, 설혹 회사를 그만뒀더라도 지금쯤은 이 근처에서 그를 기다려야 옳은 일이다. 종적도 소식도 없이 이렇게 사라진 것은 그녀에게, 뭔지는 모르지만 어떤 사고가 있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답답한 의문에는 가까운 친구들조차도 왠지 우물우물 입속말만 지껄일 뿐이다. 입이 가벼운 낙표조차도 시무룩한 표정으로 말끝을 잽싸게 말아버린다. 마치 그가 없는 동안에 터미널 전체가 입을 다물기로 약속이나 한 것 같다.
“됐습니다, 형님.”
학철이 드디어 구두를 다 닦고, 구두통을 탁탁 손바닥으로 두들긴다.
“수고했다.”
“언제 한번 불멕끼*를 올려야겠습니다. 가죽이 터져서 약이 제대루 먹혀들지를 않습니다.”
“괜찮아. 신다 보면 자연히 길이 들겠지.”
“자주 좀 들르십시오. 진호하구 영국이두 보구 싶어 하더군요.”
“그래 들를께. 자, 그럼 수고 봐라.”
“예.”
학철과 혜어져 차부 쪽으로 걸어가며 형섭은 언뜻 매표소로 꺾어지는 안내원 권 씨를 본다. 그러나 눈길이 마주쳤는데도 권 씨는 못 본 체하고 재빨리 모퉁이로 사라진다. 이 층으로 올라갈까 차부로 빠질까 하다가 형섭은 이윽고 관리사무실로 발을 옮긴다. 대합실은 한창 손님들이 들이닥쳐 시골 장터처럼 와글와글 법석이다. 대합실을 가로질러 관리실 앞에 도착하자 형섭은 도어를 밀고 재빨리 휙 방 안을 둘러본다.
“어! 나왔군, 자네! 들어와, 어서! 그러지 않아두 올 줄 알았어.”
“여전하시군요. 어디들 갔습니까?”
“않게, 이리. 나두 방금 밖에서 들어왔어. 고생 많았지? 그래두 신수는 꽤 좋은데?”
오 씨가 의자 하나를 들고 난로 앞으로 옮겨놓는다. 형섭은 그러나 의자에 앉는 대신 담배를 뽑아 손톱 위로 톡톡 두들긴다.
“태우시겠습니까?”
“아냐, 방금 태웠어.”
“뭘 좀 알아보러 들렀습니다.”
“뭔데?”
“형님, 혹시 여주선 기사 조상갑 씨 어디루 옮겼는지 모르십니까?”
“조상갑이라, 듣기는 들었는데…… 아, 그 바싹 마른 전라도 친구?”
“예.”
“그 친군 왜?”
“뭘 좀 알아볼 게 있어서요.”
“요즘 통 못 본 것 같아. 배차계루 가보게. 아마 여기서 떴을 께야.”
“배차계에 들렀습니다. 헌데 거기서부 모르겠다구 하더 군요. 출봉 형님을 찾았더니 그 형님두 안 계시구……”
“어, 출봉인 거기 없어. 지난 연말에 원주로 빠졌다구.”
형섭은 잠시 말이 없다가 나갈 것처럼 난로 앞에서 물러선다. 그러나 그는 나가는 대신 다시 오 씨를 살피듯이 바라본다.
“그동안 얼굴들이 꽤 많이 바뀌었더군요. 배차계, 안내계, 매표소 모두 말입니다.”
“응, 자네 들어가구 나서 새 얼굴들이 많이 들어왔지. 영업부 쪽에만 바뀐 게 아니야. 차부는 몇 사람 말구는 거의 전부가 새 얼굴들일세.”
“알겠습니다. 다시 들르죠. 자, 그럼 쉬십시오.”
“그래, 자주 들르게. 언제 대포나 한잔하자구.”
“예, 고맙습니다.”
관리실을 나와 담배를 밟아 끈 후, 형섭은 이윽고 터미널 후문으로 몸을 돌린다. 뭔지는 알 수 없지만 형섭은 오 씨에게도 약간 컴컴한 뒷구석을 느낀다. 해병대 상사 출신인 그 사나이는, 언행은 사내답게 씩씩하지만, 실제로 하는 행동은 약고 치사하고 쩨쩨하기가 한량없다. 약자 앞에서는 거만을 떨며 큰소리를 꽝꽝 치지만, 회사 부장이나 중역들 앞에서는 길들은 샴고양이처럼 온갖 아양을 서슴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그 거만한 사나이가 오늘은 어쩐 셈인지 형섭을 향해 필요 이상으로 아양을 떨고 있다. 형섭은 이 아양에 뭔가 찜찜한 의혹을 느낀다. 얼굴이나 겨우 아는 갸바이에게 그는 절대로 그런 아양을 떨 위인이 아니다. 뭔가 찜찜한 구석이 있어서, 그는 절제 없이 필요 이상의 친절을 보인 것이다.
조과장(조수)들의 합숙소 뒷벽으로 아침 햇살이 따스하게 비쳐든다. 블록벽에는 오줌이 칙칙하게 찌들어 있고, 흰 페인트로 큼지막한 가위 한 개와 ‘짤러!’라는 살벌한 낙서가 씌어 있다. 건물을 돌아 앞뜰로 들어서니 비번의 조과장 한 명이 수돗가에 앉아 빨래를 하고 있다.
형섭이 말없이 그에게 다가가자 조과장이 문득 꽥 소리를 내지른다.
“비켜! 햇빛 가리지 말구!”
“미안합니다.”
형섭이 후딱 한옆으로 비켜서자 조과장이 그제서야 고개를 쳐든다. 고개를 숙여서 잘 몰랐더니 그는 의외로 잘 아는 얼굴이다. 조과장은 상대가 형섭임을 알자 등신이라도 된 듯 벙벙히 말이 없다. 눈을 서너 번 병신스럽게 깜박인 후, 조과장이 이윽고 슬며시 고개를 떨군다.
“오래간만이우.”
“오래간만이오.”
“언제 나왔수?”
“어젯밤이오.”
침묵이 흐른다. 빨래통 속에는 빨랫감 몇 개와 가루비누 거품이 수북이 솟아 있다. 형섭이 문득 무릎을 꺾고 사나이 바로 앞에 엉거주춤 쭈그려 앉는다.
“말 좀 물읍시다!”
“바쁜데 지금……
“듣기만 하슈.”
“난 아무것두 모른다구.”
형섭은 후딱 긴장이 느껴진다. 이제야 임자를 올바로 찾아온 모양이다. 묻지도 않았는데 모른다는 것은 분명히 그에게 뭔가 숨기는 게 있다는 증거다. 잠시 상대편의 이마를 쏘아본 후, 형섭이 드디어 침착하게 입을 연다.
“나 실은 다 알구 왔소. 어떻게 된 내막인지 속시원히 말 좀 해주슈.”
“다 알았으면 고만이지 나한텐 왜 찾아왔수? 몰라요, 난. 그날 난 청주서 잤다구.”
“대체 뭘 모른다는 거요? 그날 여기서 무슨 일이 있었는데?”
“청주서 잔 사람이 여기 일을 어떻게 알우? 가보슈. 난 지금 바쁘다 말이오.”
어딘가 바보스러운 점이 있지만, 그것과 어울려 고집도 황소 같은 사나이다. 형섭은 그의 입을 열기는 불가능한 것임을 깨달았다. 방향을 바꾸기로 결심한 형섭은 슬쩍 딴 질문으로 그의 덜미를 꽉 짚는다.
“모른다면 할 수 없지. 그럼 누가 그 일을 잘 아우?”
“아따, 되게 귀찮게 구네! 난 암것두 모른다니까!”
빨래통을 울컥 떠미는 바람에 거품이 훅 튀어서 형섭의 무릎 위로 철썩 떨어진다. 형섭은 잠시 사나이를 쏘아본 후 무릎을 털고 힘겹게 몸을 일으킨다.
사건 내막은 알 수 없으나 이것으로 의혹의 어떤 실마리는 잡힌 셈이다. 딴 상대를 찾기 위해 형섭은 말없이 조과장 숙소를 벗어난다.
4
엄청나게 번잡하다.
차부에는 지금 완급행을 합쳐 도합 스물세 대의 차들이 시동을 건 채 출발선에 대기하고 있다. 행선지는 서울과 인접 한 의정부·광주는 물론이고, 멀리 경상도의 진주와 삼천포, 그리고 전라도의 끝인 목포, 여수까지 전국적이다.
그러나 차들이 많다고 해서 이 역이 유별나게 번잡하다거나 시끄러운 것은 아니다. 이 역이 유별나게 시끄러운 이유는 그보다 손님들 대부분이 군이나 읍면의 지방 사람들이라는 때문이다. 그들은 우선 번잡한 구내 환경에 현혹되어, 차표를 끊어 손에 쥐고도 자기가 타야 할 차가 어디쯤 있는지 알지를 못한다. 용변이 급해 변소를 가려 해도, 그들은 또 변소를 몰라 엉뚱한 매표소나 정비공장으로 허둥지둥 뛰어다닌다. 이것은 특히 노인네와 아낙네 손님들에게 많은 일로, 안내계 사람들에게는 골치 아픈 두통거리다. 용변이 급해 참을 수가 없게 되면, 그들은 깨끗이 세차해둔 빈 차에 올라가 염치없이 치마를 걷고 후련하게 급한 볼일을 보는 것이다. 헌데 이 위에 또 하나의 더 큰 혼잡은, 이들이 양손에 잔뜩 들고 온 엄청나게 많은 수하물이다. 특히 이것은 추수 때나 김장 때가 되면 드넓은 역 구내를 완전히 수하물 하치장처럼 만들어버린다. 보따리는 가지각색이다. 감·대추·밤 따위의 과일, 찹쌀·팥·들깨 따위의 곡식, 생강·고추·마늘 따위의 양념, 멸치·굴비·미역 따위의 헤물, 벌꿀·참기름·술 따위의 병들, 간장·된장·고추장 따위의 항아리…… 심지어 부글부글 끓어 넘치는 갈치젓·곤쟁이젓 같은 젓갈류까지 차 안에 그득히 실려 있는 것이다.
그러나 두제네 갸바이패들에게는 이 번잡이 오히려 고마운 현상이다. 그들은 손가방 하나만 든 고속버스 손님들에게는 흥미가 없다. 그쪽의 손님들은 갸바이가 파는 물건들은 거들떠도 보지 않는다. 아니, 이미 그들의 집에는 갸바이가 팔고 있는 물건들은 최고급 외제로 세트째 준비되어 있다. 이곳의 가난하고 시끄러운 손님들만이 값이 싸고 그럴듯해서 갸바이 물건들을 덥석 덥석 사주는 것이다.
담배를 지그시 밟아 끈 두제가 이윽고 호기 있게 포천행 버스 위로 가볍게 뛰어오른다. 출발 오 분 전을 남겨둔 차 안에는 손님들이 무료한 표정으로 점 잖게 앉아 있다. 시동이 걸려 있는 좁직한 운전석에는, 운전수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엔진 덮개 앞에 가방을 내려놓고 두제는 차장을 향해 고개를 까딱 숙여 보인다.
“미안!”
차장은 냉랭한 표정으로 아무 대꾸도 하지 않는다. 늘 당하는 냉대여서 두제는 그러나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이다. 턱을 쳐들고 뱃살에 험을 준 후 두제는 이윽고 바늘쌈지 하나를 머리 위로 번쩍 쳐든다.
“번잡한 차중에 대단히 죄송합니다. 여기 어느 가정에서나 일상생활에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는 바늘 한 쌈 가지고 몇 말씀 드리겠습니다. 에ㅡ 바늘, 하시게 되면 일반 시중을 통하여 너무나도 잘 아시기 때문에 상세한 말씀 드리지 않고 본 품의 특징과 가격만 간단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종전에 사용하시던 바늘은 대부분이 녹이 슬고 끝이 말려서 못 쓰는 폐단이 있습니다만, 본 제품 인천제침은 특수강철에다가 이십칠 종의 특수철을 배합하여 만든 완전 백 푸로의 스텐레스제품이기 때문에 절대로 녹이 슬지 않고 휘거나 부러질 염려가 없다는 것입니다. 가격에 있어선 일반 시중에서 이불 꼬매는 대바늘 하나에 십 원씩 판매되고 있습니다만 본 좌석에서는 대바늘 두 개, 중바늘 다섯 개, 수를 놓을 수 있는 소바늘 다섯 개, 도합 열두 개의 바늘에……”
“야! 시끄러 !”
두제는 후딱 말을 끊고 좌석 중간쯤의 군인 두 명을 바라본다. 두 명 모두 술이 취해서 얼굴이 시뻘건 연시빛이다. 모자를 삐딱하게 꼭지 뒤로 제껴 쓰고 두 군인은 담배를 꼬나문 채 손을 홰홰 내젓고 있다.
“죄송합니다만, 군인아저씨. 잠깐만 좀 봐주십시오!”
“시끄러! 떨지 말라구! 군인이 바늘을 뭐에 쓰라는 이야기가?”
“아저씨들 쓰라는 게 아닙니다. 잠깐만 좀 조용히 해주십시오.”
“야 차장, 뭐하는 거가? 저거 얼른 밖으루 끌어내려!”
“저거?”
“그래 저거다!”
“×새끼 정말!…….”
“뭐야? 야, 뭐라구? ×이 어재? 야, 너 지금 뭐라구 했냐?”
“×까네! × 이라구 했다! 배때낄 콱!……”
“왜 이래요, 모두? 내려요 어서! 손님이 싫다면 내려가야 하잖아요?”
차장이다. 두제는 가방을 집어 들며 차장의 손을 확 뿌리친다. 성질 같아서는 복쟁이 두 놈을 떡이 되도록 패주고 싶다. 그러나 명색이 손님인데 섣불리 손을 대면 자기만 손해다. 등 뒤로 왁자한 욕지거리를 들으며 두제는 느릿느릿 버스에서 내려간다.
재수 없는 날이다.
오후 두 시가 가까워 오는데, 겨우 물건은 육백 원어치를 팔았을 뿐이다. 일이 안되려고 그러는지 오늘은 잘 나가던 말도 중간에서 자꾸 막힌다. 그것도 딴 물건에 막힌 것이 아니고 골백번은 더 팔아온 은단 선전에서 말이 막혔다. ‘찌라시’ (광고지)를 돌리고 막 물건을 꺼내 든 순간인데 갑자기 첫 말이 안 나와서 입속으로 우물대다가 망신만 사고 허등지둥 차를 내린 것이다.
하긴 일을 하다 보면, 일이 되게 하기 싫을 때가 있다. 갑자기 매사에 짜증이 나고, 일은 일대로 죽을 쑤는 때가 있는 것이다. 이런 때면 남들은 일을 때려 엎고, 안 가던 극장을 들락거리거나 술을 실컷 퍼 마시거나 한다. 특히 낙표 같은 놈은 단골 갈보집에 틀어박혀, 몇 달씩 걸려 애써 모은 돈을, 닷새나 열흘 만에 고스란히 날리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두제는 아무리 일에 싫증이 느껴져도 남들처럼 일을 때려엎고 쉬어본 일이 없다. 싫증난다고 일을 쉬다가는 평생 뛰어봐야 그 모양 그 꼴이다. 낙표·상필이·형섭이·재득이가 그래서 늘 찌든 궁상들을 떨고 있다. 낙표는 갈보집, 상필이는 군것질, 형섭이는 연애 자금으로 돈을 모두 날리고 있다. 재득이 하나가 야무진 편이지만 그는 걸핏하면 시골 고향으로 돈을 부친다. 의리도 좋고 고향도 좋지만 두제는 재득이 하는 짓도 어딘가 못마땅하다. 자기 먼저 살아야 의리도 살고 집안도 살지, 제 밑도 못 가리는 궁상에서는 의리고 정안이
고 말짱 다 헛일인 것이다.
광주(廣州) 행 버스 앞을 지나치려니 낙표가 차 안을 누비며 막 찌라시를 돌리고 있다. 낙표가 지금 팔고 있는 물건은 전에 형섭이가 도맡아 팔던 튜브에 든 연고의 일종이다. 이놈은 값이 이백 원씩 하고 이윤은 무려 팔 가께나 된다. 말하자면 튜브 한 개를 팔면 이익이 무려 백육십 원이 떨어지는 폭리인 것이다. 그러나 이윤이 이렇게 많은 만큼, 물건 팔기가 보통으로 힘든 게 아니다. 웬만한 배짱과 입심이 아니면 이놈은 아예 이빨도 안 들어간다. ‘단까’ (선전 연설)도 이 물건은 딴 상품과는 달리 걸직하고* 번지르르한 일사천리의 ‘노블단까’ (고상한 선전)여야 한다. 중간에 한마디만 빼딱해도 이놈은 의심을 사서 손님들이 깡그리 고개를 돌려버린다. 결국 각 정류장마다 수많은 갸바이가 있지만 이 물건을 제대로 팔 놈은 한 역에 겨우 한 두 놈에 불과한 것이다.
이 역에서는 지금 낙표가 팔고 있지만, 옛날 형섭의 솜씨에 비하면 그는 역시 어딘가 엉성하다. 형섭은 갸바이들 중에서는 유일하게 대학물을 먹은 놈이다. 더더구나 그는 고등학교와 대학 시절에 줄곧 학교 대표로 뽑혀 웅변을 해온 녀석이다. 목소리·표정·배짱·손짓 등, 그놈을 따라가려면 낙표는 아직 새파란 어린애인 것이다. 그러나 낙표가 어린애라고 하지만, 두제 자기는 낙표에게 비하면 역시 또 어린애다. 이윤이 많은 물건이어서 두제도 기회만 있으면 저 물건을 꼭 한 번 팔고 싶다. 형섭은 감히 흉내낼 수 없더라도, 낙표라면 두제도한 번쯤 그어 대볼 용기가 생기는 것이다.
지금 두제가 발을 세운 것도, 실은 그러한 이유에서다. 물건에는 저마다 그 물건에 맞는 단까의 대본이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저런 요란한 물건은 대본만 봐서는 분위기가 쉽게 잡히지 않는다. 실제로 누군가가 떠드는 걸 봐야 어렴픗이 윤곽이 잡혀 실용단계까지 활용할 수가 있는 것이다.
낙표가 드디어 찌라시를 다 돌리고 가방에서 약을 꺼내 왼손으로 높이 쳐든다.
“차내에 계신 손님 여러분, 대단히 죄송합니다. 협소한 차내 불편한 점 많으실 텐데 잠시 몇 말씀 올리겠으니 너그럽게 이해해주십시오.
아마 여성 여러분들께서는 잘 알고 계시겠습니다만, 이번에 미국 듀발본포와 기술제휴를 맺고, 시내 동대문구 제기동에다 김일화학공업사라고 하는 회사를 창립하여, 보건사회부 75호 허가를 받아 여러분께 첫선을 보이게 되는, 우리 피부에 바르고 쓸 수 있는 연고 하나 소개 하겠습니다.
물론 시내 유명약국에는 상당히 많은 연고들이 시판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 보여드리는 본 연고는 천연 특수미용소인 스츄아민이 함유되어 있으며, 살을 뚫고 들어가서 균을 죽이는 살라산 침투제가 함유되어 있기 때문에 거친 피부와 기미, 여드름은 물론이고 심한 화장독이나 마른버짐 따위는 단 일 회만 사용하셔도 깨끗하게 낫는다는 것 입니다.
그러나 이상은 여자분들이 본 연고를 미용크림으로 사용하시는 경우이고 다음은 본 연고의 임상적 약효에 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무좀과 습진으로 고생하시는 분들 주무시기 전에 옥수에다가 소금을 적당히 타셔가지고 그 발을 깨끗이 닦아가지고 이삼 차례 골고루 이 연고를 발라주십시오. 십 년 묵은 무좀과 습진들 정말 거짓말처럼 깨끗하게 떨어져나갑니다.
다음은 지난여름에 수영을 갔다 오신 후 현재까지 귀에서 고름이 흐르고 욱신욱신 쑤시는 분들, 주무시기 전에 연고 찍으셔가지고 아픈 귀에 넣고 다음 날 아침에 빼어보십시오. 누런 고름이 뭉텡이로 빠지고 귓속이 날아갈 것처럼 시원해지실 것입니다.
다음은 또 충치와 풍치로 잠도 못 주무시고 고생하시는 분들, 솜에다 이 연고 찍으셔가지고 아픈 이에 지그시 십 분 정도만 물고 계십시오. 십 분 후 다시 빼어보시면 솜덩이에 균이 죽어서 시커멓게 묻어 나올 것입니다.
만일 제 말을 못 믿으시겠으면 차중에 계신 아무 분이라도 당장 제 앞으로 나오십시오. 제가 여기서 그분에게는 무료로 치료를 해드리겠습니다.
자, 그러면 이와 같이 훌륭한 약이 값은 대체 얼마 받을 것이냐. 시중에선 현재 이와 같은 6그람짜리 쥬부에 약효야 있건 없건 최하가 백오십 원씩 받습니다. 그러나 본 연고는 국민 여러분께 널리 선전하고 보급하자는 의미로, 요 5그람의 세 배가 넘는 이 10그람짜리 대형 한 통에다 원가의 반에도 못 미치는 단돈 이백 원에 모시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선전기간 동안뿐입니다. 선전기간이 지나고 본 연고가 일제히 전국에서 시판되는 경우, 적어도 이 대형한 통에는 오백 원 안 주고는 못 사실 것입니다.
그러나 손님들 중에는 값이 너무 싸기 때문에 오히려 저를 의심하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3그람짜리 작은 연고에도 백오십 원씩 하는 판에, 어째서 그 훌륭한 연고는 10그람에 겨우 이백 원을 받느냐고 말입니다. 그렇게 값이 싼 걸 보니 혹시 가짜가 아니냐, 엉터리가 아니냐고 말입니다. 당연합니다. 거울같이 맑은 세상에 물론 가짜라면 큰일입니다. 그러나 안심하십시오. 여기서는 절대로 가짜를 팔 수가 없습니다. 만일 본 상품이 가짜라면 저는 제때에 법에 걸립니다. 약사법 제26조 1항을 보면 이런 법조문이 있습니다. ‘가짜 의약품을 제조하거나 취급하는 자는 10만원 이상의 벌금형에 5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한다……’
전 그래서 여러분들의 의심을 덜어드리기 위해, 여기 이렇게 제조허가증 사본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이 사본은 보건사회부 장관님이 허가하신 원본을 그대로 복사한 것입니다. 자, 여길 보십시오. 상품명 살라민연고, 제조허가번호 75호, 품목허가번호 29호, 포장등록번호 84호, 이만하면 아마 여러분들도 본 연고가 가짜가 아니란 건 충분하게 아셨으리라 믿습니다.
협소한 차중에서 지루한 시간 대단히 감사합니다. 자, 그럼 차 안이 번잡하오니 필요하신 분은 좌석에서 저에게 신호만 해주십시오.
기미·여드름·주근깨·화장독·마른버짐·무좀·습진·태독·삔 데·베인 데·불에 딘 데·귀 아픈 데·충치·풍치·빨지·뾰루지·…….”
단까가 끝났다. 두제는 차 옆을 떠나며 고개를 빼고 차 안을 들여다본다. 그렇게 열심히 ‘구라’*를 쳤는데도 어느 한 사람 물건을 청하는 손님이 없다. 약아진 세상이다. 이제는 구라나 입심만 가지고는 좀체 손님을 휘어잡기 어렵다. 구라나 단까도 중요하지만 현품 자체가 더 손님에겐 중요하게 된 것이다.
차 네댓 대를 건성우로 지나친 뒤 두제는 울적한 기분으로 차부에서 대합실로 어슬렁어슬렁 들어선다. 손님이 어찌나 붐비는지 발짝을 제대로 옮길 수가 없다. 벽 쪽을 따라 층계까지 걸어간 후, 두제는 그러나 갑자기 발을 세운다. 층계 모퉁이의 십사 호 잡화상에 주인 김 씨가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고개를 빼고 행방을 찾으니 잔돈이라도 바꾸러 갔는지, 그는 의외에도 통로 맞은편 빵가게 앞에 우뚝 서 있다. 몸으로 가려진 두제의 왼손이 문득 상점으로 뻗어 인삼주 한 병을 덥석 잡는다. 술병을 재빨리 품속으로 숨긴 뒤, 두제는 태연하게 차부로 되잡아 빠져 나간다.
감쪽같다. 오늘같이 재수 없는 날은 이런 짓도 어쩔 수가 없다. 그날 벌이가 신통치 않은 만큼 딴 짓으로라도 보충을 해야 한다. 벌이가 없다고 빈손으로 들어가 봤자 아무도 알아줄 사람 없으며 춥고 배고픈 건 자기 혼자뿐인 것이다.
5
어둡다. 터미널에는 이미 불들이 밝혀졌고, 장거리 차들은 한 대도 보이지 않는다. 사오백 리 이상의 장거리 차는 이미 막차까지 깨끗하게 떠버린 것이다.
의정부에 나갔다가 방금 돌아온 재득은, 차부를 막 벗어나자 눈앞이 아뜩한 현기증을 느낀다. 그러나 그는 이 현기증에 별로 이렇다 할 신경을 쓰지 않는다. 병으로 오는 현기증이 아니고 허기로 오는 현기증이기 때문이다.
장사가 유별히 재미있는 날은 밥 먹는 것도 곧잘 잊는다. 오늘이 바로 그런 날로서, 재득은 오늘 무려 이천팔백 원의 수입을 올렸다. 이윤이 좀 박하기는 했지만, 빗은 분명히 물건이 썩 좋았다. 오전 중엔 한 봉에 백 원씩 팔다가, 너무나 잘 나가는 바람에 눈 딱 감고 값을 백오십 원으로 올려 받았다. 그런데 오십 원을 올려 받는데도 물건은 올라탄 차마다 기막힌 ‘아다리’ *였다. 이런 날 밥 한 끼 굶는 것쯤은, 오히려 재득 쪽에서 황송해할 지경인 것이다.
허청대는 다리를 바쁘게 옮겨 재득은 드디어 평택집 앞에 발을 세운다.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서니 주인 김 씨가 한 손을 훌쩍 들어 보인다. 점잖은 김 씨가 손을 드는 것을 보니 뭔가 그에게 일이 있는 모양이다. 재득은 곧 밥상들을 돌아 김 씨 바로 옆에 무너지듯이 털썩 앉는다.
“뭡니까?”
“왜 그래, 안색이?”
“점심을 굶었더니 사지에서 쑥 맥살이 빠지는군요.”
“사람 참! ……밥만은 제때에 찾아 먹어야지.”
말을 마친 주인 김 씨가 곧 품 안에서 편지 한 통을 꺼내 준다.
“두 시쯤 왔네. 차부루 나가봤더니 오늘은 밖으루 돌았다더군.”
방을 자주 옮기는 탓으로, 재득은 편지를 띄울 때면 늘 평택집 주소를 이용한다. 밥을 단골로 먹고 있기 때문에 그쪽이 훨씬 자기 소재가 확실하기 때문이다.
편지는 예측한 대로 시골집에서 올라온 것이다. 연필로 씌어진 발신인을 보니 이번에도 역시 여편네 이름이다. 봉투를 뜯어 내용을 읽어가자, 재득은 자신도 모르게 손을 가볍게 떨기 시작한다.
재득이 드디어 편지를 다 읽고, 편지지를 접어 안주머니에 푹 찌른다. 묵묵히 재득을 바라보던 김 씨가, 눈치가 이상했던지 조심스레 입을 연다.
“안 좋은 편진가?”
“그저 그래요.”
“누구야, 그 조옥심이란 여자?”
“사촌누입니다.”
김 씨는 대답이 석연치 않았지만 더 이상 묻지 않고 자리를 뜬다. 마침 국밥이 도착해서 재득은 천천히 숟가락을 집어 든다.
재득이 결혼해서 마누라가 있다는 것은 그만이 아는 숨은 비밀이다. 친구들은 모두 총각인데 자기만 결혼했다는 것이 그는 왠지 부끄러웠다. 공연히 친구들의 놀림감만 될 것 같아 그는 이 사실을 깨끗하게 숨겨온 것이다. 그러나 마누라의 오늘 편지를 보니, 그는 더 이상 숨길 것도 없게 되었다. 견디다 못한 마누라가 드디어 남의 집에 식모살이를 가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토록 허기지던 재득의 배 속이, 편지를 읽고 나자 돌덩이라도 삼킨 듯 더부룩하다. 밥을 퍼 넣는 재득의 손은 어느 틈에 완전히 기계적이다. 이유도 없는 막연한 분노가 갑자기 재득의 멱통*을 사정없이 죄어 붙인다. 그는 어째서 자기 신세가 이토록 고달픈지 알 수가 없다. 온갖 발버둥을 다 쳐봤는데도 언제나 그에게는 허기와 고달픔과 절망만이 남겨질 뿐이다. 여편네의 이번 출분(出奔)* 만 해도 그로서는 빚까지 내어가며 최선을 다한 것이다. 하긴 일의 발단을 따지자면, 삼 년 전에 겁 없이 시작한 ‘닭 똥구멍 바라보기’로부터 따져야 옳다.
제대 후 재득은 고향에 돌아가자 농사일을 때려 엎고 은행 돈을 빌려 대대적으로 양계를 시작했다. 농사일은 평생을 해봐야 제 털 뽑아 제 구멍에 박는 것이다. 뻔한 골패짝에 반발을 느낀 재득은, 여벌 모가지 걸어놓고 한바탕 씩씩하게 발버둥을 쳐보기로 했던 것이다. 신문과 방송에는 성공담도 숱하게 많다. 그러나 그것은 수백 명의 사람들 중 특출나게 아다리가 맞은 한두 사람의 이야기다. 닭은, 낳으라는 알은 안 낳고 재득에게 빚과 한숨과 절망만을 낳아주었다. 사료값은 오르고, 알값은 똥값이고 닭은 닭대로 병에 걸려 하루에 수십 마리씩 바지게*로 죽어 나간 것이다.
은행에 잡혔던 집과 논밭은 장마철에 검불 떠내려가듯 재득의 눈앞에서 손을 흔들고 떠내려갔다. 그러나 빚은 은행뿐 아니라 대추나무에 연 걸리듯 마을 안 이웃들에게도 삼십여만 원이 빡빡하게 깔려있었다. 집도 절도 없는 재득 부부는 이제는 죽으려야 죽을 수도 없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재득이 밤중에 고향에서 튄 것은 바로 이런 무렵이다. 어차피 그는 마을에 있어 봤자 삼십만 원 빚 때문에 평생을 살아도 밝은 빛은 보기 힘들다. 부부가 다 튀면 죽일 놈 소리가 나을 것 같아, 재득은 아내를 볼모로 남겨둔 채 자기 혼자만 야간도주를 한 것이다.
고향에서 튄 지 석 달 만에 재득은 드디어 정류장에 터를 잡았다. 재득은 부지런히 벌었다. 형섭이나 낙표처럼 그는 입담이 걸지 못하다. 그러나 착실하고 꼼꼼한 성격이라 재득은 허리띠를 졸라매고 매달매달 꼬박꼬박 몇 푼의 돈을 고향으로 부칠 수 있었다. 아내 역시 고향에서 놀고 지낸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평범한 여자였다. 예쁠 것도 없고 자랑할 것도 없는 말 없고 부지런한 보통의 시골 여자였다. 빚 삼십만 원에 볼모로 잡힌 그녀는 남의 집 밭과 논에서 뼈가 녹아나게 삯일을 했다. 그러나 그들의 안팎의 노력은 삼십만 원의 이자가리는 데도 빡빡하게 힘이 부쳤다. 고향에 있으나 밖으로 나오나 재득의 삼십만 원 빚은 여전히 한 푼도 줄지 않았다. 재득은 드디어 지난 연말 자기가 여기서 빚을 내보기로 작정했다. 급한 대로 오만 원만 마련이 되면, 저들에게 사정을 하여 이 난국을 적당히 때워 넘겨볼 작정에서였다. 외상물건을 쓰고, 친구에게 빌리고 하여, 재득은 이럭저럭 오만 원을 마련해 시골로 부쳤다. 방세 석 달치 밀린 것도 낙표에게는 전혀 잘못이 없다. 반반씩 부담키로 된 낙표 몫의 방세를 재득이 낙표 양해하에 임시로 입체해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 도착한 아내의 편지는 모든 희망을 산산이 때려 부쉈다. 고향에 부쳐진 오만 원은 수많은 빚쟁이들 사이에서 ‘손에 붙은 밥풀’이 되었다. 사정 한마디 건네기도 전에 그 돈은 빚쟁이들 사이에서 흔적도 없이 깨끗하게 잦아버린 것이다. 아내는 드디어 견디다 못해 자기도 고향을 뜨겠다고 했다. 이 말은 이미 아내로부터 오래전에 나온 말이다. 이래도 저래도 고달프기는 마찬가지니까 차라리 서울로 올라가 당신 곁에서 식모살이라도 하겠다는 이야기다. 행선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그러나 재득의 답장이 오면 즉시 행선지를 정해 뜨겠다는 얘기였다. 뜨게 되면 다시 연락을 주마 하고 아내는 어디서 주워들었는지 ‘사랑하는 당신의 아내’라는 말로 편지 끝을 멋지게 맺은 것이다.
“아니 왜 그래?”
재득의 뚝배기에 음식이 반이나 남은 것을 보고, 김 씨가 의아한 눈길로 재득의 얼굴을 빤히 쳐다본다. 재득은 그러나 실쭉 웃고는 아무 말 없이 의자에서 일어선다.
“장부 주십쇼.”
“점심두 굶었다며 왜 벌써 숟갈을 놓나?”
“속이 좀 안 좋군요.”
“먹은 게 있어야 속이 안 좋지?”
“실은 낮에 찰떡을 몇 개 사 먹었어요.”
사인을 하고 장부책을 돌려준 후 재득은 곧 가방을 집어 든다. 그러나 그가 몸을 돌리자 김 씨가 문득 나직하게 입을 연다.
“재득이……”
“예?”
“오늘 안 되겠나?…….”
“뭘 말입니까?”
“낮에 물건을 좀 들여놨네. 돈이 안 되면 할 수 없구…….”
재득은 퍼뜩 정신이 든다. 벌써 열흘치 밥값이 다 찬 것이다.
“깜박 잊었군요. 모두 얼마죠?”
“삼천백 원일세.”
재득은 곧 주머니를 뒤적여 돈 이천 원을 꺼내 든다.
“모두 이거뿐입니다. 나머지 천백 원은 내일 다시 채워드리죠.”
“고맙네. 백 원은 놔두게…….”
“자, 그럼 가보겠습니다.”
“잘 가게.”
평택집을 나와 찬 공기를 마시자 재득은 그제야 정신이 약간 맑아진다. 밖은 이미 어둠이 짙어 상점들의 불빛이 휘황하다. 여인숙을 지나 담배가게 앞에 다다르자 재득은 오십 원을 주고 남대문 한 갑을 받아 든다. 평택집에 밥값 이천 원을 물었으니 재득의 주머니는 다시 아침처럼 빈틸터리다. 문득 재득의 침침한 눈앞에 주인집 여편네의 파랗게 독 오른 얼굴이 떠오른다. 저녁에 주마고 약속을 했는데 재득에겐 오늘도 역시 빈손밖에는 들고 갈 것이 없다. 담배를 뽑아 불을 당겨 물자, 재득은 갑자기 걸음을 재촉한다.
시계포 앞이다.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서자 주인 안 씨가 돋보기를 후딱 머리 위로 치올린다.
“어서 오우. 웬일이우?”
“안녕하십니까?”
“나 좀 있으면 다 끝나니까 거기 좀 앉아 기다리시우.”
말이 좋아서 시계포지, 점포 안은 불과 한 평이 될까 말까하다. 그러나 이 초라한 점포가 재득이네패들에게는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거래처다. 주인 안 씨는 시계 수리만 하는 것이 아니라, 물건을 잡고 돈을 빌려주는, 일테면 허가 없는 간이전당포의 주인 노릇까지 겸하고 있는 것이다.
“다 됐수. 뭐유?”
이거 좀 맡아주십시오.”
“왜? 고장인가?”
“아닙니다. 돈이 좀 급해서요.”
“옛날 그거지?”
안 씨는 시계를 받아 들자 볼 필요도 없다는 듯 손금고 속으로 철커덕 떨어뜨린다. 금고 자물쇠를 단단히 채운 후, 안 씨는 즉시 돈 이천 원을 세어서 건네준다.
“이거면 되 겠수?”
“천 원이 더 있어야 되겠습니다.”
“찾을 때 공연히 힘들 테니까 웬만험 그걸루 참으시우.”
“부탁입니다. 천 원만 더 주십시오.”
안 씨가 다시 안주머니에서 천 원을 껴내 재득에게 건네준다.
“그래 언제까지 맡겨둘 꺼유?”
“곧 찾겠습니다.”
“빨리 찾으슈. 요즘은 물건 맡기구 꽁무니 마는 게 유행이야. 궤짝으루 시계만 하나 가득이우. 이자는 말 안 해두 잘 아시겠지?”
“압니다. 그럼 수고 보십시오.”
“잘 가우.“
시계포를 도망치듯 나온 재득은, 시계가 벗겨진 헛헛한 왼손을 바지 주머니에 꾹 지른다. 시계는 갸바이패들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이다. 차들의 출발시간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그들은 시계가 있어야 손님이 가장 많은 때를 골라 차에 오를 수가 있는 것이다.
“재득아!”
과일가게 앞을 지나치자 누군가가 문득 재득을 부른다. 발을 세우고 뒤를 돌아보니 라이터 행상인 꺽다리 덕배다. 덕배가 가까이 다가오며 빠른 말씨로 입을 연다.
“너 얼른 집에 가봐라. 너들 방에 딴 사람이 들었다더라.”
“뭐라구?”
“상필이를 방금 골목에서 만났어. 주인집 여편네가 너들 짐들 홈빡 마당으로 끌어 냈다더라.”
“알았다.”
말을 마친 재득은 후딱 몸을 돌려 숙소를 향해 뛰기 시작한다. 방을 내놨다는 말은 아침에 들었지만 이렇게 번개처럼 손을 쓰리라곤 미처 몰랐다. 당장 방을 내쫓겼으니 어디로 가야 할지 막연하다. 더구나 낙표는 방세를 내고도 공연히 자기 때문에 날벼락을 맞은 셈이다. 어두운 골목길로 급히 뛰어들며 재득은 자기 발밑이 움푹움푹 꺼지는 듯한 절망을 느낀다.
드디어 집 앞이다. 대문을 밀고 집으로 들어서니, 덕배의 말과는 달리 넓은 집 안이 쥐 죽은 듯 괴괴하다. 그러나 네댓 발짝 걸어가던 재득은 자신도 모르게 우뚝 그 자리에 멈춰 선다. 누군가가 컴컴한 어둠 속에서 그를 선뜻 막아섰기 때문이다.
“나다, 재득아.”
낙표다. 재득은 갑자기 말이 막혀 낙표의 얼굴을 얼빠진 듯 바라본다.
“뭘 하냐, 여기서?”
“짐 챙기구 있어.”
“어딨냐, 여편네는?”
“나갔다, 아까.”
“어디루?”
“모르겠어.”
재득이 드디어 고개를 떨구고 자기 발밑을 허탈하게 둘러본다. 옷과 이불·밥상은 물론이고 양재기·냄비·간장병까지 땅바닥에 굴러있다. 허리를 굽혀 양재기 하나를 집어 들며, 재득은 낙표를 외면한 채 들릴 둥 말 둥 입을 연다.
“허, 씨팔…… 미안하다, 낙표야…….”
6
“두제 있냐?”
“엉, 누구야?”
두제는 힐끗 낙표를 바라본 후 곧 팔을 뻗어 미닫이를 드륵연다. 문밖에는 뜻밖에도 차부 행상인 완규와 호준이가 우뚝 서 있다.
“뭐야, 어떻게 왔어?”
“나오나, 빨리 .”
“어디루? 무슨 일인데?”
“상필이 병학이가 기다리구 있어. 낙표 너두 같이 가자.”
“말을 하라구, 무슨 일인지. 지금 몇 신데 어디루 가자는 거야?”
“차부에서 지금 난리가 났어. 가보면 알 테니까 빨리 나와.”
“아따 거 되게 비싸네. 말을 해봐, 개새끼이!”
완규가 드디어 무릎을 꺾고 미닫이 문지방에 엉덩이를 결친다.
“회사 새끼들이 내일부터 터미널 출입을 막겠다는 거야. 회사 방침이 그렇게 됐다면서 낼부터는 아무도 터미널 안으로 들이지 않을 꺼래.”
“또 지랄이군, × 새끼들. 그 새끼들 심심하면 그런다니까.”
“아니야, 이번엔 옛날하군 달라. ‘잡상인 출입 엄금’이라는 팻말까지 벽에다 땅땅 뚜드려 박구 있어”
“지금 말이가?”
“쌔끼들 오늘 낮에 준비해둔 모양이야. 밤중에 슬쩍 팻말을 박아놓구 내일부터 본격적으루 우릴 싹 쓸어버릴 계획인 것 같아.”
“이렇게 되면 약속이 틀리잖아? 우린 그럼 지난번에 초 쳤다구 그 고생들 했냐?”
“그러니까 어서 가보자는 거야. 약속이 틀렸으니 따질 건 따져야 될 꺼 아냐.”
“가자, 낙표야.”
“응―.”
두 사람은 곧 자리를 일어나 전등을 끄고 방을 나온다. 마당을 거쳐 집 밖으로 나오자 이번에는 낙표가 완규에게 입을 연다.
“애들 그래 어디들 모여 있냐?”
“배차계.”
“누구누구 모였어?”
“병학이·상필이·승남이·덕배·필복이·성 택이·태진이·상목이…… 좌우간 모두 열둘인가 열셋이야.”
“형섭인 안 보이던?”
“없어, 형섭인.”
침묵이 흐른다. 네 사람의 발소리가 잠시 요란하게 골목길을 울린다. 그러나 그들은 입을 다문 채 저마다 머릿속으로 형섭을 생각하고 있다.
단순한 사고라고 하기에는 ‘그 일’은 너무나 형섭에게 미안했다. 만일 그 일만 아니었다면 그들은 이런 경우 제일 먼저 형섭을 찾아갔을 것이다. 말빤찌* 좋고 배짱이 두둑해서 오늘 같은 이런 경우에는 형섭이 가장 적격인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따지러 가고 있는 그 약속은, 공교롭게도 형섭이 애인인 남숙을 희생시키고 얻어낸 것이었다. 그들은 지금 이 사실이 형섭에게 알려질까 두려워하고 있다. 형섭이 가장 적격이라는 것은 알지만, 그들은 이래서 오히려 형섭의 출현을 겁내고 있는 것이다.
“형섭인 참 어딜 갔지?”
“몰라. 낮에 잠깐 보이더니 그 뒤룬 아무두 본 사람이 없어.”
“차라리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탁 깨놓구 얘길 하는 건데…….”
“미쳤다구, 너두. 그걸 어떻게 우리 입으루 얘기하냐? 차라리 걔한텐 모르는 게 좋아. 알아봤자 괜히 오장육부만 뒤집힐 뿐이야.”
“우필이 그 새낄 때려죽여야 돼. 그 새끼 때문에 엉뚱하게 터진 일 아니가?”
“남숙이 그것두 잘못했다구. 구구루 자빠져 있지 지가 뭐라구 앞장서서……”
“귀 아프다, 새끼들아! 입 닥치구 작작들 지껄여!”
낙표다. 낙표는 그때 일은, 입에 올리기도 부끄럽다. 그 일에는 엄밀히 말해서 아무에게도 잘못이 없다. 잘못은 오직 그들 전부가 이곳에 빌붙어 살고 있다는 데 있을 뿐이다. 이곳에 붙어 있기 싫은 자는 깨끗이 손을 털고 떠나면 그만이다. 그러나 떠나지 못할 바에야, 더 이상 그 일을 떠들 필요가 없는 일이다. 좀더 이곳에 빌붙어 있기 위해, 그들은 할 수 없이 그 일에 동원되었기 때문이다.
골목길을 빠져 택시 주차장 앞을 지난 뒤 일행은 드디어 차부 정문 앞에 다다른다. 열한 시가 지난 깊은 밤이어서 정문에는 이미 큰 철문이 닫혀 있다. 그러나 정문은 닫아걸더라도 직원들의 출입 때문에 쪽문은 늘 자정까지 열어둔다. 일행은 곧 낙표를 선두로 차례차례 차부로 들어선다.
휑뎅그레한 넓은 차부에는 차가 한 대도 보이지 않는다. 배차계 한 곳만 불이 환할 뿐 주위는 썰렁한 어둠에 묻혀 있다. 배차계 창문으로 넘어다보니 방 안에는 이십여 명의 사람들이 빼곡히 서서 웅성대고 있다. 낙표가 막 문을 밀고 들어서자, 안에서 고함이 울리고 사람들이 욱욱 문 쪽으로 떠밀린다.
“나가라구, 나가! 이럼 얘기가 안 된다!”
“달면 삼키구 쓰면 뱉기요? 약속이 다르잖소!”
“글쎄 우리는 모르는 일이야. 할 말이 있음 내일 하자구.”
“정말 너무들 하십니다. 사람 괄세마십시오.”
“뭣들 하는 거야, 나가라는데! 이럼 정말 경찰을 부르겠어!”
“부르슈, 얼마든지. 우린 겁날 거 하나 없수다!”
이쪽은 잡상인 패거리고 저쪽은 회사 관리실 직원들이다. 마주 서서 고함을 치는 두 사람은 갸바이 상필과 관리실장 이두현이다. 낙표가 곧 사람들을 헤집고 두 사람 옆으로 바쁘게 다가간다. 상필의 어깨를 훅 떼밑며 낙표가 이윽고 두 사람 사이로 재빨리 끼어든다.
“상필아, 좀 비켜서라. 형님, 나하고 얘기 좀 합시다.”
“좋아, 자네하구 상대할 테니 나머진 모두 밖을 내보내게.”
“알겠습니다. 내보내죠. 야 상필아, 잠깐만 나가 있어.”
상필이 곧 낙표 말을 좇아 동료들 쪽으로 몸을 돌린다. 낙표는 그동안 이 씨의 팔을 잡고 옆방인 배차계 숙직실로 재빨리 끌고 들어간다.
“형님, 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몰라, 나두.”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됐죠.”
“자, 우선 이리루 앉게.”
한 간 남짓한 좁은 방에는 창 밑으로 덩그렇게 목침대 하나가 놓여있을 뿐이다. 낙표가 엉거주춤 침대 위로 걸터앉자 이번에˙는 이 씨가 먼저 나직하게 입을 연다.
“왜들 이러는지 모르겠어. 난 위에서 시키는 대루만 했을 뿐이야.”
“형님, 우릴 정말 깡그리 내몰 작정인가요?”
“그런 것 같아.”
“왜 또 그러죠?”
“회사 중역들이 결정한 일인데 그걸 낸들 어떻게 아나?”
“이러심 정말 곤란합니다. 우릴 몰아내는 이유는 뭡니까?”
“손님들 사이에 좋지 않은 평판이 돌구 있어, 시끄럽구 지저분하구 돈을 자꾸 털린다는 거야.”
“그거야 옛날부터 늘 듣는 얘기 아닙니까? 그런 이유루 우릴 내몬다면 그건 정말 섭섭한 일입니다.”
“섭섭해두 할 수 없네. 회사가 이미 방침을 세웠으니까.”
낙표는 잠시 말을 끊고 혀로 천천히 입술을 핥는다. 회사 방침이 굳어졌다면 이제는 한 가지 방법밖에 없다. 꺼내기도 싫은 부끄러운 얘기지만, 옛날 그 일을 들출밖에 도리가 없는 것이다.
“허지만 전번에 박 상무님께서 우리한테 직접 약속하신 게 있지 않습니까?”
“있지.”
“그 약속은 그럼 어떻게 되는 거죠?”
“모르겠네, 난.”
“형님께서 모르다뇨? 형님두 그때 우리를 찾아오지 않았습니까?”
“그때하구 지금하군 사정이 달라. 손이 딸리구 일이 급해서 그땐 불가피하게 자네들을 부른 거야.”
“말씀 아주 자알하십니다. 그러니까 지금은 우리가 필요 없다, 그 말씀인가요?”
대꾸가 없다. 낙표는 그러나 쉴 틈을 주지 않고 재차 날카롭게 다그친다.
“우린 그때 장난삼아 차장아이들을 때려잡은 게 아닙니다. 상무님이 오셔서 사정을 하시길래 분명히 약속을 받구 회사 일에 협조를 한 겁니다.”
“허지만 그날 자네들한테는 짓궂은 장난기두 없지 않았어.”
“장난기요? 천만에요! 난 그날 그 꼴 보구 잠 한숨 못 잤습니다, 우리가 꼭 남숙이 다리를 분질러 놓은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아니었나, 그럼?”
“농담이라두 그런 말 마십시오. 하늘이 훤히 내려다보십니다.”
“좌우간 그 남숙이라는 계집애 지독한 독종이었어.”
“형님, 이러지 마십시오. 형님 앞이니까 바른말입니다만 우리두 내심으루는 모두 그 애들 편이었습니다. 팔이 안으루 굽는다구 걔들 솔직히 차장질한 죄밖에 더 있습니까? 시집두 안 간 새파란 년들을 옷을 홀랑 벗기다니 말이나 되는 얘깁니까?”
“홀랑은 아닐세.”
“× ×하구 젖통은 안 벗겼다 그 말입니까?”
“그럼 옷 벗긴 거나 항의할 일이지 대합실루 몰려가서 왁왁 떠드는 건 무슨 짓이야?” 저들 요구조건 다 들어줬다가는 회사 아주 거덜나게?”
“그 얘긴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습니다. 형님, 저한테' 약속 하나 해 주십시오.”
“무슨 약속?”
“내일 어디 다방 같은 데서 박 상무님 잠깐 만나보게 해주십시오.”
“안 돼, 그건.”
“왜요?”
이 씨가 담배를 뽑아 물고 잠시 주위에서 성냥을 찾는다. 낙표가 선반에서 성냥갑을 찾아주자 이 씨가 불을 당긴 후 담배연기를 길게 내뿜는다.
“내가 말한다구 나갈 사람두 아니지만 그 사람 만나봐두 별 신통한 수 없을걸세.”
“수가 있는지 없는지는 저한테 맡기십시오. 잠깐이라두 좋으니까 만나보게만 해주십시오.”
“옛날 약속을 따져볼 모양인데 그건 공연한 헛수고야. 자네들은 그때 큰 실수를 저질렀어. 입으루 덜렁 내뱉은 약속이 이제 와서 무슨 소용인가?”
“입으루 내뱉은 건 약속이 아닌가요?”
“그런 약속 안 했다면 고만이지 자네가 무슨 수루 따지구 들 꺼야?”
그렇다. 도리가 없다. 그러나 낙표는 박 상무와의 약속이 그렇게 간단히는 파기되지 않으리라고 믿고 있다. 대단한 약속이라면 모르지만 그 약속은 터미널 구내에 잡상인의 출입을 허용한다는 하찮은 내용인 것이다.
“자, 이제 그만 가보게. 나두 이젠 들어가 자야겠어.”
낙표가 고개를 까딱하더니 미련 없이 몸을 일으킨다.
“오늘은 형님한테 제가 깨끗하게 둘렸습니다. 허지만 내일은 쉽게 물러서지 않을 껩니다.”
“아, 잠깐만 기다리게. 자네한테 뭐 하나 물어볼 게 있네.”
“말씀하십시오.”
“남숙이 애인인 형섭이라는 사람이 어제 저녁에 나왔다면서?”
“예”
그 사람 지금 어디 있나?”
“모릅니다.”
“만나면 내가 보잔다구 하게. 꼭 만나서 전할 말이 있으니까.”
“알겠습니다.”
“자, 그럼 살펴 가게.”
“편히 쉬십시오.”
7
하늘에 별이 총총하다.
택시 한 대가 고개턱을 넘어 무서운 속도로 비탈길을 달려 내려간다. 삼십 분 간격으로 배차되는 버스는 끊어진 지 벌써 오래전이다. 시계가 없어 잘은 모르지만 아마 통금을 십여 분쯤 남겨둔 것 같다. 형섭은 담배를 블록에 비벼 끄고 불쑥 몸을 일으킨다. 주위는 산중턱의 넓은 공터로, 블록·구들장·벽돌 따위들이 무더기무더기 쌓여 있다. 산 중턱이라고 말했지만 주위에는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볼 수가 없다. 불도저가 산을 훤하게 까뭉개서 황토와 돌무더기만이 시뻘겋게 널브러져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산 중턱은 황토뿐이지만, 약간만 밑으로 내려가면 십 평 안팎의 정착민 집들이 도로를 중심으로 하여 진드기 엉겨 붙듯 다닥다닥 밀집해 있다.
가운데 뻥 하게 터진 공터는 아마 정착촌의 시장 부지로 남겨둔 땅일 것이다. 제방 저쪽으로 우뚝우뚝 솟은 건물들은 이곳의 유명한 한일합작 공장지대다. 사방이 짙은 어둠 속에 묻혀 있는데, 그곳만이 야간작업차 고촉광 불빛들이 휘황하게 밝혀져 있다.
문득 형섭의 등 뒤로부터 발소리와 말소리가 다가온다. 사람을 지루하게 기다리던 형섭은 언뜻 긴장을 느끼고 블록 무더기를 넘겨다 본다. 집이라곤 겨우 두 채밖에 없는 이곳에, 찾아올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그가 기다리던 장주옥이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오는 사람은 혼자가 아니고 하나로 엉겨 붙은 남녀 한 쌍이다. 걸음을 재촉하여 점점 형섭에게 가까이 오더니, 두 사람은 공교롭게도 형섭이 서 있는 바로 이웃의 블록 사이에 멈춰 선다. 그곳은 블록 무더기가 사람의 키높이로 빙 둘러쌓여 있는 곳이다. 사태가 우습게 발전된 것을 깨닫고, 형섭은 하회*를 보자는 듯 다시 조용히 땅으로 내려앉는다.
엄청나게 성급한 남녀들이다. 하긴 이곳까지 올라오면서 열이 오를 대로 올랐는지 모른다. 침묵이 길다고 생각했더니 그들은 어느 틈에 숨을 헉헉 몰아쉬고 있다. 둘 무두 사귄 지가 오래된 듯 말은 한마디도 주고받지 않는다. 한겨울의 확 터진 산 중턱에서, 그들은 추위도 모르는 듯 대뜸 옷을 벗고 그 짓부터 해치우고 있다.
반년간을 빵 속에서 처리 못한 욕망이, 형섭에게 드디어 홧홧하게 치밀어 오른다. 주위가 쥐 죽은 듯 적막해서 그들의 모든 동작들이 손에 잡힐 듯 선명하게 들려온다. 그러나 형섭은 욕망과 더불어, 그들의 몸 위로 블록을 와르르 밀어뜨리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이쪽을 모르고 하는 짓이긴 하지만 그들의 황홀한 잔치가 조롱과 야유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드디어 행위가 끝났는지 ‘까이’ (여자) 목소리가 또렷 하게 밤공기를 울린다.
“아잇 추워! 유는 안 추워?”
‘놈씨’ (사내)는 바지라도 끌어올리는지 아무런 대꾸가 없다. 까이가 다시 드높은 소리로 거침없이 입을 연다.
“나 낼부터 야근이야. 올 테문 낼부턴 낮에 오라구.”
“가야지, 물론. 낮에는 할망구두 아뭇 소리 안 하겠지?”
“낮에 오는 건 상관없어. 명자두 마침 낮번이니까.”
“추워? 아직 두?”
“아니, 괜찮아.”
두 사람이 이윽고 저벅저벅 공터를 벗어나 길 위로 올라간다. 어렴풋이 예측했지만 목소리를 들어보니 까이는 틀림없는 장주옥이다. 잠시 길 위에 서 있던 두 사람은 시간이 늦었다는 듯 즉시 몸을 돌려 위아래로 헤어진다.
주옥의 숙소는 바로 코앞이다. 사방이 온통 벌겋게 파헤쳐진 황토밭인데, 주옥의 숙소만은 검은 점처럼 공터에 덜렁 남아 있다. 수십 년은 됐음 직한 그 낡은 초가집은 아마 이 산 중턱에 원래부터 있었던 집인 것 같다. 딴 것은 모두 도저가 밀어붙였지만 그 집은 사람이 살아서 도저도 그냥 내버려둔 모양이다.
주옥이 드디어 초가집에 다다라 판자로 만든 찌그러진 대문을 요란스레 흔들어 댄다.
“할머니! 저예요, 할머니! 대문 좀 따주세요!”
쥐죽은 듯 고요하던 집 안에서 주인 노파가 방문을 열고 소리를 치며 마주 나온다.
“문짝 떨어져! 그만 좀 흔들어!”
“미안해요, 할머니!”
노파가 드디어 대문을 딴 후 한옆으로 비켜서서 주옥을 맞는다. 그러나 주옥이 자기 앞으로 지나치자 노파가 문득 험악하게 입을 연다.
“누구야, 그놈은?”
“그놈이라뇨?”
“사내들 자꾸 끌어들일래문 내 집에서 당장 나가! 난 그런 꼴 못 본다구. 여기가 네년들 유곽인 줄 알아?”
“아니 누굴 끌어들인다는 거예요? 난 지금 혼자잖아요?”
“웬 젊은 놈이 찾아왔길래 내가 욕을 해서 쫓아 보냈어. 누구야, 그놈은? 이번에두 또 사촌오래빈가?”
“대체 누가 왔다는 거예요? 난 아무도 못 만났어요.”
그때다. 대문이 삐걱 열리더니 형섭이 성큼 집 안으로 들어선다. 그는 노파 쪽은 거들떠도 보지 않고 주옥에게 곧장 다가가 장승처럼 우뚝 멈취 선다.
“나야, 주옥이……
“어머나!”
“잘 있었어?”
“어떻게 여긴?”
“자세한 얘긴 나중에 하지. 자, 어서 방문이나 따라구.”
주옥이 그제야 정신이 든 듯 후딱 몸을 돌려, 자기 방문의 자물쇠를 딴다. 형섭이 이번에는 노파를 돌아보고 으르렁거리듯 사납게 입을 연다.
“자슈, 할머니두. 난 진짜 사촌오빠요.”
노파가 홱 몸을 돌리더니 방 안으로 들어가 부서져라고 방문을 닫는다. 주옥이 곧 석유등에 불을 컨 후 아랫목의 이불을 치우고 형섭이 들어오기를 우두커니 기다린다.
방은 천장이 낮고 동굴 속처럼 냉기가 썰렁하다. 신문지로 바른 천장과 벽은 찌들고 바래서 누르끼리한 한약봉지 색깔이다. 형섭이 엉거주춤 방 안으로 들어서자 주옥이 부리나케 이불자락을 그에게 밀어 준다.
“이 위로 앉으세요. 불을 못 때서 냉돌이에요.”
자리를 잡고 마주 앉은 두 사람은 잠시 멍하게 입들을 다물고 말이 없다. 벽에 걸린 석유등에서는 새까만 그을음이 천장을 향해 수직으로 피어오르고 있다. 형섭이 이윽고 담뱃갑을 꺼내 들며 주옥의 통통한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본다.
“석유등 본 지두 오래됐군. 여긴 전기가 안 들어오나?
“네, 이 집만 안 들어와요.”
“이 집 할망구 왜 그렇게 거칠구 사나워? 성질 아주 고약하겠더군.”
“원래가 그래요.”
그런데 왜 이런 집에 방을 구했냐는 말은 하나마나한 질문이다. 주옥이 이곳에 방을 구한 이유는 오로지 딴 집들보다 방세가 싸기 때문일 것이다.
“거기선 언제 나오셨어요?”
주옥이다.
“어제……”
“어떻게 제가 여기 있다는 걸 아셨죠?”
“혼났어, 찾느라구. 아마 네 시간은 헤맸을 거야. 원주선 타는 손광자를 만났어. 추옥이가 나가는 공장 이름을 대주더군.”
“광자 아직 거기 있어요?”
“응.”
다시 침묵이다. 비스듬히 무릎을 꿇고 앉은 주옥은, 아까 그 짓 할 때 묻어 온 듯, 기다란 옆머리에 검불 하나가 매달려 있다. 그러나 지금의 그녀에게는 아까의 헐떡이던 표정은 터럭만큼도 찾아볼 수 없다. 두 손을 양 다리 밑에 꼭 끼우고, 주옥은 작은 입술을 뾰죽하게 다물고 있다.
“회산 언제 고만뒀어?”
“두 달 됐어요.”
“그럼 그 일 터지구 곧장 회사에서 쫓겨났군?”
“네.”
“나 실은 그 일 때문에 여기까지 찾아온 거야. 우선 사람 하나 찾아야겠어. 주옥인 남숙이가 어디 있는지 알구 있겠지?”
“몰라요. 회사 고만두구 딱 한 번 병원에서 만났어요. 걔 있는 덴 아무두 몰라요. 두 번째 들렀을 땐 병원에서 벌써 퇴원하구 없었어요.
“좋아. 그럼 어떻게 된 일인지 처음부터 차근차근 얘길 해줘.”
“모르세요, 통?”
“몰라, 사방에 붙잡구 물어봐두 모두 비실비실 날 피하려는 눈치뿐이야. 내가 주옥일 찾아온 건 바루 그 얘길 듣구 싶어서야.”
주옥이 고개를 꼿꼿이 쳐들고 형섭의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본다. 불빛을 맞받은 그녀의 두 눈에 이윽고 번쩍번쩍하는 분노의 빛이 되살아난다. 형섭이 묵묵히 말하기를 기다리자 주옥이 즉시 침착하게 입을 연다.
“지난해 시월, 스무사흗날이에요…… 우린 크날 일들을 끝내구 합숙소에 모여서 막 잠자리를 깔구 있었어요. 철원 막차까지 시마이*한 때라 시간은 아마 열두 시 반쯤 됐을 꺼예요.
감찰들이 들이닥쳤어요. 전에두 가끔 그런 일이 있었지만 그날은 웬일인지 감찰들 눈이 이상했어요. 정감찰(正監察) 두 명에 조감찰(助監察) 세 명까지 우 몰려와서 눈알을 희번덕거리더니* 대뜸 우리더러 숙소 밖으루 나가라는 거예요. 잠들을 자려든 판이어서 우리는 모두 잠옷 아니면 내복 바람이었어요. 허지만 뭔가 낌새가 이상해서 우린 순순히 하라는 대루 몰려 나갔어요. 잠깐이면 끝나겠지 생각허구, 더럽구 치사해두 모두들 끽소리 없이 묵묵히 참은 거예요.
얼마를 지나자 문이 열리더니 감찰들이 우릴 다시 숙소 안으로 부르더군요. 헌데 안으루 불러놓구는 감찰들은 우릴 다시 세면장으로 몰아넣었어요. 뭘 하려나 하구 기다리구 있자, 이번엔 다섯 명씩 조를 짜서 끌구 갔어요. 육 호실 큰 방으로 다섯 명을 몰아넣구 이제는 하나하나 몸 뒤짐을 하자는 수작이에요. 헌데 들어갔다 풀려나온 아이들이 모두 얼굴들이 백지장처럼 질려 있었어요. 어떤 아이는 무슨 짓을 당했는지 눈에 글썽글썽 눈물까지 솟아올랐구요. 아이들이 쑥쑥 줄어들더니 기어쿠 남숙이 차례가 되었어요. 뭔가 불안하구 떨리긴 했지만 우린 태연하게 육 호실루 들어갔어요. 헌데 들어가서 감찰들을 둘러보니 그중에 뜻밖에두 조과장들 감찰인 박우필이 끼어 있더군요. 우리들 몸 뒤짐에 사내 감찰이 끼어들기는 그때가 처음이에요. 우리들 몸 뒤짐은 그때까지 줄곧 오계순이 아니면 천수자가 맡아서 했거든요. 좌우간 우리를 일자루 세워놓구 천수자가 대뜸 옷을 벗으라구 호령을 하더군요. 우린 처음엔 옷 벗으라는 말이 무슨 소린지 몰랐어요. 그때까진 우린 몸 뒤짐을 받아두, 옷 위를 더듬기나 했지만 벗어본 일은 없었어요. 더구나 그때는 바로 우리 앞에 남자 감찰까지 앉아 있었구, 내복 한 장들만 걸친 처지여서 그것을 벗으면 우린 그대루 알몸이었어요. 벗으라는 소리가 무슨 소린가 싶어, 우리는 눈이 뚱그래서 그냥 꼿꼿이 서 있기만 했던 거예요.
그런데 우리가 등신처럼 서 있자니 별안간 오계순이가 내 뺨따귈 번개처럼 후려치더군요. 얼마나 호되게 후려 때렸는지 난 그때 눈앞이 아찔했어요. 허지만 난 얻어맞구두 화가 빠락 치밀었어요. 잘못두 없는데 왜 사람을 치느냐구, 난 두 눈을 딱 부릅뜬 채 오가 년한테 사정없이 덤볐어요. 허지만 오가 년은 눈 하나 깜짝 않구 날 또 한 번 후려쳤지요. 죄가 없으면 벗을 일이지 왜 안 벗구 잔소리가 많으냐는 거예요. 안 벗는 년은 죄가 있는 년이니까, 기어쿠 옷을 벗겨서 진짜 도둑년을 찾아내구야 말겠다는 거예요. 분하구 원통한 건 한이 없지만 이렇게 되니 안 벗을 도리가 없더군요. 차장 년 된 게 잘못이다, 생각하구 우린 기어쿠 꾸물꾸물 옷들을 벗기 시작했어요. 헌데 옷들을 다 벗은 줄 알았더니 누가 아직도 안 벗은 모양이에요. 누군가 하구 돌아보니 바루 맨 끝 쪽에 서 있는 남숙이었어요. 오가 년 천가 년 두 년들이 이번엔 대뜸 남숙일 쥐어뜯기 시작하더군요. 넌 뭔데 안 벗느냐면서, 안 벗음 강제루라두 벗기겠다구 덤벼든 거예요.“
형섭의 눈빛이 이상했던지 주옥은 잠시 말을 중단한다. 그러나 형섭은 고개를 끄덕이며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빙그레 웃어 보인다.
“괜찮아. 그래서?…….”
“그러자 남숙인 눈을 까뒤집구 미친 듯이 소릴 쳤어요. 난 못 벗는다, 인권유린이다, 저리 비켜라며 사생결단으루 발버둥을 친 거예요.”
“그래 안 벗었나?”
“아마 우필이만 없었으면 걘 기어쿠 안 벗어을 꺼예요……”
“그럼?……”
“우필이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두 년들을 거들어 옷을 북북 쥐어뜯기 시작했어요.”
“좋아, 그래서?”
“그래서 남숙인 꽥 소릴 지르더니 입에 거품을 가득 물구는 그대루 쭉 뻗어버렸어요.”
“알겠어, 고만해…….”
추위 때문인지 분노 때문인지 형섭은 갑자기 몸이 덜덜 떨려온다. 이를 악물고 참으려 해도 한 번 떨린 몸은 좀처럼 진정되지 않는다. 고개를 들어 주옥을 바라보니 그녀도 역시 부들부들 몸을 떨고 있다. 그녀가 떠는 것을 바라보자 형섭은 약간 떨림이 진정된다. 담배를 뽑아 불을 붙여 물고 형섭이 다시 주옥을 바라본다.
“그래 다음은 어떻게 됐어?”
“다음 날 남숙이가 회사루 박 상무를 찾아갔어요.”
“상무는 왜?”
“당한 게 너무 원통해서 따지기 위해 찾아갔던 거예요.”
“그런데?”
“허탕이에요.”
물론이다. 허탕일밖에 없다. 차장과 상무라니 말도 안 되는 상대인 것이다.
“파업은 그래 어떻게 터졌어?”
“남숙인 그 일을 당한 후룬 사람이 홱 달라졌어요. 꼭 무슨 일을 저지를 사람같이 눈에 벌겋게 핏발이 서 있었어요. 파업은 남숙이가 박 상무한테 다녀온 후 곧바루 시작되었어요. 모두 마흔두 명이 합숙소에 모여서 문을 처닫구 꼼짝두 안 한 거예요. 회사에선 곧 기겁들을 해서 문을 부수구 우릴 강제루 끌어내었어요. 허지만 우린 차부까지 끌려갔다가 다시 도망쳐서 뿔뿔이 숙소루 돌아왔어요. 차들이 못뜨구 난리가 나니까 나중엔 안 되겠던지 최 부장과 송 부장이 숙소에 나타나더군요. 허지만 우린 그때쯤에는 똘똘 뭉쳐서 단체행동으로 들어갔어요. 그리고 남숙일 회장으로 뽑아 회사에 정식으로 요구사항까지 내세웠어요.”
“뭔데, 요구사항이?”
“첫째, 차장들의 몸수색을 중지하고 인권을 존중할 것. 둘째, 차장들의 임금을 회사 내 일반 여사무원과 동등한 선으로 인상할 것. 셋째, 근로기준법을 준수하여 차장들의 조업시간을 단축할 것. 넷째, 공휴일과 규정 외 특수근무에는 차장들에게 특별수당을 지급할 것……”
“그걸 모두 누가 만들었어?”
“남숙이가 만들었어요. 걘 그런 걸 잘 알구 있었어요.”
“안 들어준 건 뻔한 얘기구, 그래 그다음은 어떻게 됐어?”
“첨엔 살살 달래구 얼리더니 나중엔 하나씩 둘씩 개 끌듯이 끌구갔어요. 공작실 창고 속에 잡아 처넣구는 기어쿠 공갈 협박에 주먹질까지 시작되었어요. 결국 그중에 몇몇 아이는 겁에 질려서 무릎을 꿇구 빌구 나왔어요. 허지만 걔들두 합숙소루 와서는 울면서 다시 우리 편이 되었어요. 회사 하는 짓이 더럽구 치사해서 우린 그때쯤에는 독들이 오를 대루 올라버린 거예요.”
“차부는 그럼 엉망이 됐겠군?”
“그러문요. 수십 대의 차가 발들이 묶였구 나중에는 급했던지 매표소 아이들까지 우리 대신으로 차에 태워 보냈어요.”
“그리군?”
“데몰 했어요.”
“데모? 언제?”
“바루 그날 초저녁이에요.”
“거리루 나갔나?”
“아뇨. 터미널 대합실을 점령했어요.”
“하두룩 버려둔 게 이상하군.”
“차들이 지방에서 올라오자 나갔던 아이들이 꾸역꾸역 몰려들었어요. 걔들은 모두 하루 전에 나갔다가 지방서 자구 다시 올라온 아이들예요. 새루 온 아이들을 모두 합치니까 숫자가 거진 육십 명쯤 되더군요. 누군가가 나가자구 고함을 쳐서 우린 군말 없이 우 몰려나갔어요. 헌데 이때 우리들한테 이상한 일이 벌어졌어요. 조과장패들이 우릴 보구두 구경만 하구 우두커니 섰는 거예요. 전에는 걔들이 앞장서서 우릴 잡아가구 끌구 가구 했는데, 걔들이 갑자기 팔짱을 끼구 시무룩한 얼굴루 우릴 보구만 있는 거예요.”
“조과장들두 그럼 이쪽 편이 됐나?”
“그래요. 우리 편이 된 거예요. 파업에까지 덤벼들 용기는 없지만, 우리들 하는 짓을 막지는 않겠다는 꼴들이었어요.”
문득 머리 위 천장에서 쥐 몇 마리가 소란을 피운다. 쫓기는 모양으로 방 안은 잠시 어수선한 소음에 휩싸인다. 주옥이 민망한 표정으로 쥐를 쫓을 듯 무릎을 세운다. 형섭은 그러나 고개를 내젓고 다시 차분하게 주옥을 바라본다.
“쥐는 놔두구, 하던 말이나 계속하라구.”
“첫날은 무사히 넘겼어요. 헌데 다음 날 날이 밝자 어떻게 알았는지 신문기자 두 명이 우리들을 찾아왔어요. 우린 약간 켕기긴 했지만 기자들한테 사실대루 술술 다 털어놨어요. 이왕 벌여놓은 춤이니까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끝까지 추자는 배짱들이었죠. 헌데 저녁 다섯 시쯤 되자 회사에서 별안간 엄청난 소식 이 전해 왔어요. 끝까지 우리가 이렇게 버티면 회사에서는 우릴 내몰구 새루 아이들을 모집할밖에 도리가 없대요. 신문에까지 버젓하게 파업 기사가 났으니까 이젠 회사에서두 무서울 게 없다는 얘기예요. 우린 이 소식을 전해 듣구 새파랗게 얼굴들이 질렸어요. 그예 올 것이 왔구나 하구, 눈앞이 캄캄하구 골통들이 멍해진 거예요. 헌데 이때 무슨 수작인지 남숙이 혼자 빙그레 웃었어요. 이런 때 데모를 한 번만 더하면 걘 우리가 틀림없이 이긴대요. 한 번만 더 주먹을 내지르면 회사는 틀림없이 우리한테 무릎을 꿇을 거래요. 낙심천만해서 앉아 있던 우리들은 걔 말을 듣자 다시 우 일어났어요. 그럼 좋다, 한번 해보자, 이판사판이니 악들이나 한번 실컷 써보자 한 거예요.”
주옥의 시선이 이마에 느껴져서 형섭은 무심코 고개를 든다. 그런데 눈을 들어 바라보니 주옥은 뜻밖에도 두 눈에 증오를 가득 담고 있다. 잠시 형섭을 뚫어지게 쏘아본 후 주옥이 이윽고 헐떡이듯 입을 연다.
“두 번째 데모가 시작되었어요. 헌데 이번엔 엉뚱한 자식들이 우리 앞을 막았어요. 자식들은 술들을 퍼마셔서 얼굴들이 모두 낮도깨비 같앴어요. 그중에 더러는 장난하듯이 빙글빙글 웃기도 했어요. 취해서 벌겋게 술들이 올라갖구 이빨을 까구 징그럽게 웃었어요. 누구겠어요, 이 자식들? 형섭 씬 이 새끼들 누군지 모르시죠?”
형섭은 턱을 안으로 당긴 채 주옥의 얼굴을 눈부신 듯 바라본다. 가늘게 떠진 그의 눈에 언뜻 차례차례 낯익은 얼굴들이 떠오른다. 낙표·두제·재득이·상필이, 그리고 학철이와 병 학이패들이다.
“행상·쌔리·구두닦이·뚜룩잡이,* 그리구 능글맞은 형섭 씨 친구들이었죠. 자식들은 우리가 차부까지 나가니까 세차장 고무호스루 우리한테 좌좌 찬물을 들씌웠어요. 우리는 옷이 홈빡 젖어서 모두들 물에 빠진 쌩쥐 꼴들이 되었어요. 그런데 이때 우리 등 뒤루 버스 세 대가 갑자기 나타났어요. 눈 깜짝할 사이에 그 버스들은 합숙소 정문을 꽉꽉 틀어막았어요. 말하잠 자식들은 회사하구 짜구 미리 이 일들을 빈틈없이 꾸민 거예요.”
“알 수 없군, 그 새끼들? 즈이들이 파업 하구 무슨 상관이야?”
“우린 갈 데가 없었어요. 옷은 젖어서 덜덜 떨리는데 앞뒤루 길이 막혀서 꼼짝할 수가 없었어요. 앞에두 그 새끼들, 뒤에두 그 새끼들, 우린 그 새끼들한테 겹겹으루 둘러싸인 거예요.”
“왜 그랬지, 그 새끼들이? 즈이들이 끼어들 일이 아니잖아?”
“이유는 있었어요.”
“무슨 이유?”
“회사에선 그 새끼들을 걸핏하면 내몰겠다구 위협했어요. 그 일 터지기 닷새 전에는 실지루 회사에서 그 새끼들을 깡그리 내몬 일두 있어요. 헌데 우리를 막아주는 조건으루 회사에선 그치들한테 다시는 내몰지 않겠다구 약속을 했나봐요. 우리들 데모를 막아주는 조건으루 그 새끼들을 앞으루는 벌어먹구 살두룩 눈감아준다구 말이에요.”
형섭은 갑자기 주옥을 향해 고개를 커다랗게 끄덕여 보인다. 그렇다, 그런 약속이라면 그들도 그 일에 상관이 전혀 없지 않다. 그들은 먹고살기 위해서는 이 터전이 절대로 필요하다. 만일 이곳에서 쫓겨난다면 그들은 내일부터 당장 먹고살 일이 아득하다. 내쫓지 않는다는 약속이라면 그들은 그따위 일쯤 서슴없이 해치울 수가 있는 것이다.
“알겠어. 남숙인 그런데 어쩌다가 다리를 다쳤지?”
“걘 뭔가 독한 데가 있어요. 생각하는 거나 행동하는 게 우리하군 아주 딴판이에요. 앞뒤가 막혀 갈 데가 없어지자 걘 갑자기 보이질 않았어요. 새끼들은 그동안 우릴 에워싼 채 사방에서 왁왁 덤벼들어 우릴 어딘가루 잡아갈려구 했어요. 우린 분하구 원통해서 그때쯤엔 엉엉 큰 소리루 울었어요. 버스가 막아선 합숙소 정문까지 쫓겨 와서는, 덤벼드는 새끼들을 쥐어뜯으며 버스를 치우라구 엉엉 울며 아우성을 친 거예요. 헌데 바루 이때쯤에 엉뚱한 일이 벌어졌어요. 어디선가 째질 듯한 고함이 들리더니 새끼들이 별안간 우리들 근처에서 뒤루 주춤 물러섰어요. 모두 몇 발짝씩 물러서서는 새끼들은 고개들을 쳐들구 정비공장 지붕 위를 얼빠진 듯이 쳐다보기 시작한 거예요.
우리두 봤어요. 형섭 씨두 아시겠지만 정비공장 지붕 위는 아주 높아요. 크레인차까지 들락거릴 수 있도록 그 지붕은 까마득하게 한쪽으루만 쳐들려 있어요. 아마 쳐들린 쪽 높이만 따지자면 그 지붕은 보통 집의 삼사 층 높이만큼 될 거예요. 헌데 그 까마득한 지봉 끝에 뜻밖에두 남숙이가 아슬아슬하게 올라가 있었어요. 하늘만 보이는 그 까마득한 꼭대기에 남숙이가 우릴 굽어보며 오뚝이처럼 댈룽하게* 서 있는 거예요. 우린 그게 남숙이인 걸 알자 온몸으루 오싹 소름이 끼쳤어요. 거기서 만일 떨어지기라두 한다면 남숙인 병신이 아니라 그대루 덜컥 죽을지두 몰라요. 아니 최소한 죽지는 않더라두 몸뚱이 어딘가가 부러지거나 다칠 건 틀림 없어요. 어쩔려구 저런 델 올라갔나 싶어서 우리는 남숙일 쳐다보자 숨이 딱 멎어버린 거예요.
헌데 아래쪽이 조용해지가 남숙이가 별안간 소리를 치기 시작했어요. 버스를 치우구 물러가지 않음 걘 거기서 뛰어내리겠대요. 자기가 죽는 꼴을 보지 않을래문 정문에서 차를 치우구 모두 뒤루 물러서라는 얘기예요. 남숙이 얘기가 떨어지자 새끼들은 분명히 기가 질린 꼴들이었어요. 옆사람들 눈치를 흘금흘금 살피며 어이없다는 표정으루 지붕만 멀거니 쳐다보구 있었어요. 헌데 이때 또 누군가가 커다랗게 고함을 쳤어요. 뛰어내릴래문 얼마든지 뛰어내려라, 니가 하고 싶어하는 짓인데 우리가 네년하구 무슨 상관이냐, 저런 년 말을 들을 필요두 없다, 뭣들 하는 거냐, 어서 저년들 붙잡아 들여라…… 박 상무였어요. 찝차* 지붕 위에 올라서서 박 상문 계속 미친개처럼 짖어댔어요. 침을 튀기구 발을 구르면서 그 새낀 연거푸 꽥꽥 고함을 내질렀어요. 멀거니 서 있던 개새끼들이 다시 우리한테 덤벼들었어요. 우린 그때쯤엔 설움이 북받쳐서 반항 하나 안 했어요. 하나씩 둘씩 끌려가면서 우린 엉엉 목을 놓구 울기만 했어요. 이걸루 이젠 다 끝났다 생각하구 분하구 원통해서 엉엉 울기만 했던 거예요. 허지만 우린 끌려가면서두 남숙이 쪽을 흘끔흘끔 쳐다봤어요. 우린 왠지 남숙이가 정발루 그 위에서 뛰어내리길 바랐어요. 뛰어내림 죽는다구 생각하면서두, 걔만은 우리처럼 놈들한테 항복하지 않기를 바랐어요.
결국 일은 소원대루 됐어요. 걘 정말 우리들이 끌려가자 서슴없이 뛰어내렸어요. 그 까마득한 꼭대기에서 두말 않구 땅으루 번개처럼 뛰었어요. 어두컴 컴 한 땅바닥에서 대뜸 쿵 하는 소리가 들리더군요.
우린 모두 악 소리를 내지르구 두 손뇨로 푹 열굴을 가렸어요. 너무
너무 무섭구 끔찍해서 우린 걔한테 가볼 수도 없었어요·● ….”
주옥은 말을 마치자 고개를 푹 아래로 떨군다. 문득 그녀의 무릎 사이로 물방울 한 개가 뚝 떨어진다. 두 개째 물방울이 떨어져야 형섭은 그것이 눈물임을 깨달았다. 휘파람 비슷한 숨을 내쉬고 형섭이 다시 침착하게 입을 연다.
“얼마나 다쳤어?”
“왼쪽 다리가 부러졌어요.”
“병원엔 누가?…….”
“회사에서 곧바루 입원을 시켰어요.”
“며칠이나 병원에 입원해 있었지?”
“한 달 조금 넘게 있었어요.”
“다 나았나?”
“네, 허지만 옛날 같진 않아요.”
“어떻게?”
“절어요, 약간씩…….”
쥐가 다시 머리 위 천장에서 육상경기를 시작한다. 형섭은 담배를 뽑아 물며 더 이상 주옥과는 할 말이 없음을 깨닫는다. 남숙은 아마 그의 예측이 틀림없다면 고향인 전라도로 내려갔을 것이다. 다리를 얼마나 저는지 모르지만 형섭은 어떻게 해서든 그녀를 기어코 찾아낼 작정이다. 성냥을 켜서 담뱃불을 댕긴 후 형섭은 드디어 한쪽 무릎을 불쑥 세운다.
“고마워, 주옥이. 난 그럼 가봐야겠어.”
“아니 가시다뇨? 지금 어떻게?·……”
“요 아래 껄렁한 여인숙이 하나 있더군. 그리루 내려감 하릇밤 잘 수 있을 꺼야.”
“저 땜에 그러세요? 전 이렇게 앉아서 새겠어요…….”
형섭은 고개를 가로 흔들고 두말없이 자리에서 일어선다. 이 방에 그대로 머물러 있게 되면 그는 주옥에 대해 자신의 행동을 예측할 수 없다. 아까 밖에서 후끈한 장면을 보았기 때문에, 그는 언제 머리가 돌아 그녀를 후닥닥 덮치게 될지 모르는 것이다.
“꼭 그리루 가셔야 되겠어요?”
“응, 꼭 가겠어.”
“남숙인 어쩜 고향으루 갔을 거예요.”
“나두 그런 생각이 드는군.”
“주무실 수 없음 다시 오세요.”
“그러지. 자, 그럼 잘 있으라구.
“네, 안녕히가세요.”
“잘살어 .”
8
침묵이 흐른다. 벌겋게 술들이 오른 얼굴로 네 사람은 좀체 없다. 낮술을 이렇게 마셔보기는 네 사람 모두 근래에 없었던 일이다.
“아 씨팔……”
두제가 문득 한숨을 내쉬며 다시 목을 빼고 창밖을 바라본다. 밖은 오래전에 질서가 잡혀 멋모르는 손님들만 부산하게 왕래하고 차부 앞에 세워졌던 바리케이느*도 이미 누군가에 의해 깨끗하게 치워졌다. 백차(白車)도 떠나고 형사들도 물러나서 터미널은 아무 일 없다는 듯 다시 옛날처럼 평온하게 붐비고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이 끝났다. 경찰들까지 들이닥친 판에야, 항의고 지랄이고 더 버티어볼 건덕지*가 없다. 그러나 경찰들보다도 형섭의 말 한마디가 더 결정적인 찬물이었다. 관리실에 몰려들어 왁작왁작 항의들을 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불쑥 형섭이 나타나서 ‘때려치우라’고 꽥 고함을 내지른 것이다. 형섭의 이런 태도는 전혀 예상 밖이었다. 간밤에 어디 가서 무슨 짓을 했는지 그는 얼굴이 부석부석 부어 있었다. 한참 열들이 올라 있던 판이라 형섭의 이런 고함은, 처음엔 아이들한테 씨알도 안 먹혀들어갔다. 밀고 당기는 험악한 드잡이* 중에 몇 아이가 이미 코피가 터졌고 멱살을 잡혀 손찌검까지 당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형 섭의 태도는 확고하고 냉정했다. 회사에서 이미 내몰기로 방침을 세웠다면, 그것으로 일은 벌써 ‘시마이’라는 이야기였다. 이곳에 빌붙어 살려는 주제에 회사와 맞붙어 싸워봤자 승부는 이미 결정이 났다는 것이었다. 생각하고 보니 옳은 말이었다. ‘약속’을 내세우고 항의를 해봤지만 그것은 이미 떼거지에 불과하다. 너희들 이제 필요 없다는 데야 그 하찮은 옛날 약속이 무슨 맥을 추겠는가? 멀거니 서로의 얼굴을 쳐다본 후 아이들은 하나둘씩 맥이 빠져 물러나온 것이다.
“아 씨팔!……”
그러나 두제에게는 아직도 그 일은 미련이 컸다. 차부에의 통행이 막혀버렸으니 갸바이도 이제는 오늘부터 휴업이다. 놀 수는 없고 딴 곳에서라도 뛰어야겠는데, 재득과 형섭 두 사람은 한술 더 떠서 이곳을 아주 뜨겠다는 이야기다. 어디로 뜨겠느냐는 물음에는 두 사람 모두 대꾸가 없다. 결국 두 사람이 떠버리면 이곳에는 자기를 포함하여 낙표와 상필 세 사람만이 남는 셈이다. 꿩 놓치고 매까지 떨구는* 기분이어서 두제는 술을 마셔도 심사만 점점 울적해질 뿐이다. 다시 한번 한숨처럼 “씨팔”을 찾고 두제가 드디어 형섭을 뚫어지게 쏘아본다.
“새끼야, 너 꼭 가야겠니?”
“응.”
“뭐야, 이유가?”
“돈두 벌어보구 연애두 해보구 빵살이까지 다 해봤어. 그만험 이젠 앵간허다 싶어서 밥벌이를 한번 바꿔보자는 이야기야.”
“뭘루 바꿀래?”
“몰라, 아직.”
“회사 새끼들 지금은 빡빡하게 놀지만 조금만 있음 다시 옛날처럼 풀린다구. 너두 겪어봐서 잘 알잖아? 갸바인 뭐니뭐니 해두 여기처럼 좋은 데가 없어.”
“좋은 건 알아.”
“그런데 왜 뜨려는 거야? 뜨는 이유가 뭐냐 말야.”
술잔을 집어 드는 형섭의 눈에 낙표와 재득의 붉은 시선이 느껴진다. 어쩌면 그들도 자기에게 두제와 똑같은 질문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형섭은 그 이유를 선뜻 그들에게 말하기가 어렵다. 자기도 아직은 그 이유가 무엇인지 확실히 잡히지 않는 것이다.
“이유는 없어. 그냥 싫증이 났다구나 할까?…….”
“싫증은 너 혼자 나냐?”
이번에는 낙표다. 그는 어제부터 오늘까지 가장 회사 측에 끈덕진 항의를 해온 친구다. 따라서 그는 형섭의 태도에 적지 않은 유감을 품고 있다. 자기들을 거들지는 못할망정 형섭은 그들에게 오히려 찬물을 끼얹은 것이다.
“난 너희들이 더 이상하다. 뭐가 무서워서 여길 못 뜨구 낑낑 대는 거냐?”
“낑낑 대긴 누가 낑낑 대?”
“우린 지금까지 주둥이 하나루 살아왔어. 걸거칠* 것 가릴 것 하나 없는 발가벗은 맨몸으루 말이야. 어디 감 이만큼 못살 것 같으냐? 싫증이 나면 한번쯤 바꿔보는 것도 괜찮지 않아?”
“싫증이 나면 너나 뜰 일이지 우리 일엔 왜 찬물을 끼얹었냐?”
“되지두 않을 일은 얼른 손 떼는 게 상수라구.”
“니가 모르는 약속이 있었어. 우린 그걸 따질려구 했던 거야.”
형섭의 담담하던 표정이 문득 험악하게 일그러진다. 잠시 세 사람을 차례차례 둘러본 후 형섭이 곧 밀어내듯이 입을 연다.
“나두 알아.”
이번에는 형섭 대신에 세 사람의 표정이 딱딱하게 긴장된다. 잠시 매캐한 침묵이 흐르자 재득이 문득 조심스레 입을 연다.
“너한테 몇 번 말할려구 별렸어. 알구 있다니 면목이 없다…….”
“고만두자, 지난 얘긴. 허지만 한 가지 물어볼 게 있다.”
세 사람이 입을 다물고 묵묵히 형섭의 입을 바라본다. 입술을 몇 번 씰룩거리더니 형섭이 이윽고 빠르게 입을 연다.
“너들 남숙이란 아이 어떤 아이라구 생각하냐?
“어떤 아이라니?”
“걔가 왜 지붕에서 뛰었지? 독해설까, 얼간이였기 때문일까?”
“얼간인 아니야.”
두제다.
“그럼 독해서?”
“독한 덴 있었지……”
“낙표 넌 어떻게 생각하냐?”
“그땐 사정이 뛸 수밖에 없었어. 뛴다는 공갈이 멕혀들 줄 알았는데 박 상무가 팩 내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어서 뛴 것 같아.”
“재득이 넌?”
“난 잘 모르겠어…….”
“뛰어내리는 걸 보구 기분들은 어땠냐?”
대답이 없다. 형섭은 그러나 상체를 기울이고 세 사람의 입들을 끈덕지게 바라본다. 그는 왠지는 알 수 없지만 어제부터 줄곧 그때의 그들의 기분을 알고 싶다. 남숙은 얼뜨지도 않고 독하다고도 할 수 없는 보통의 아이다. 그 애가 지붕에서 뛰어내린 것은 분명히 그 애로서는 대단한 용기와 각오가 필요한 일이었다. 영화나 소설 따위에서는 이런 일들은 보통 감동적으로 그려지게 마련이다. 주인공의 고민과 생각까지를 보여줘가며 얼마나 그가 만난(萬難) 을 무릅쓰고 그와 같이 감동적인 일을 해냈는가를 실감 있게 그려주는 것이다. 그런데 남숙의 경우에는 바로 이 실감이 없다. 그녀가 지붕에서 뛰어내린 일은 오로지 정신 나간 어이없는 짓일 뿐이다. 형섭을 비롯한 잡상인 일당과 버스회사는 차장들의 일이라면 모르는 것이 거의 없다. 사납고 난잡하고 엉큼하고 더러워서 그들의 배창자 속까지 훤하게 알고 있는 것이다. 남숙이 내건 요구사항이라는 것들도 그녀가 처음으로 내건 것은 아니다. 몸 뒤짐이 있고, 임금이 낮고, 일이 고되다는 것은 이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다. 남숙이 그 일을 터뜨리기 전에도 그런 항의와 시위 따위는 심심찮게 있어왔다. 허지만 전에 있었던 그들의 시위는 남숙이처럼은 요란하지도 않았고 독하지도 않았다. 하루나 이틀쯤 소리나 꽥꽥 내지르다가 회사에서 슬슬 어르고 달래면 제물에 스스로 풀어지곤 했던 것이다.
그런데 남숙이는 되지도 않을 일을 왜 다리까지 분질러가며 그렇게 독하게 해야 했는지 알 수가 없다. 물론 그녀가 내건 사건 사항들은 공적으로 생각하면 백번 당연한 요구조건이다. 그러나 그것이 시정되지 않을 것두 백번 뻔한 일인 것이다. 시정되지 않을 일이라면 그녀는 지붕 위에까지는 올라가지 말았어야 옳다. 그녀가 지봉에서 뛰어내린 일은, 아무리 거푸 생각해도 실감 안 나는 허황한 만용인 것이다. 그러나 형섭에게는 또 하나의 의문이 있다. 바보가 아닌 남숙이기 때문에 그녀는 자기 행동이 남들에게 만용으로 보일 것까지도 알았을 것이다. 만용으로 보일 것까지 계산에 넣었다면, 이건 또 예측하지 못한 엉뚱한 그녀의 일면이다. 그러나 형섭에게는 그 일면을 확인할 길이 없다. 그것은 대개 허위의 영역과 진실의 영역의 한계점과 같은 것이다. 저쪽의 진실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나도 문을 밀고 진실 쪽으로 넘어가야 한다. 이쪽에서 문만 만져보아서는 이쪽은 끝내 저쪽의 정체를 가려낼 길이 없는 것이다.
“몇 시냐, 지금?”
“어, 시간 됐다. 어서 나가자.”
네 사람은 서둘러 자리를 인 후 부산하게 술집을 나간다. 형섭은 전라도, 재득은 충청도여서 그들은 천안까지는 한 버스를 타고 갈 예정이다.
일행 네 명이 차부에 들어서자, 안내계 직원들이 긴장된 눈빛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두 사람이 차표를 내보이자 그들은 멋쩍은 표정으로 막았던 앞길을 황급히 열어준다.
“먼 데들 가는군?”
“잘들 계시우.”
“아주 뜨는 건가?”
“우리 둘은 아니우.”
대기한 버스 앞에 도착하자 형섭과 재득은 두제와 낙표에게 손을 내민다. 그러나 손을 잡을 듯하다가 두제가 갑자기 두 사람의 어깨를 가볍게 떼민다.
“여기서 이대룬 못 보내겠다. 영등포까지라두 바래주지.”
두 사람이 낙표를 바라보니 낙표는 그대로 헤어지고 싶은 눈치를 하고 있다. 낙표 하나만을 차부에 남겨둔 채 세 사람은 곧 차례차례 버스를 오른다.
차 안에는 손님이 꼭꼭 차서 좌석은 고사하고 통로조차 빽빽하다. 뒤쪽 비상구 앞에 스페어타이어가 누워 있어서 세 사람은 사람을 헤집고 타이어 위에 둥그렇게 엉덩이를 걸친다.
술이 오른다. 원래 말수가 적긴 하지만 재득은 시뻘건 얼굴로 시종 아무런 말이 없다. 두제가 마침 어딘가로 사라져서 형섭은 조심스레 재득의 옆 얼굴을 돌아본다.
“넌 어디까지 가냐?”
“서산.”
“서산이 고향이가?”
“응―.”
“누가 있어, 고향에?”
“마누라.”
“마누라?”
차가 클랙슨을 길게 울리더니 미끄러지듯 구르기 시작한다. 두제는 훌쩍 앞쪽으로 가더니 차가 떠나도록 돌아오지를 않는다. 형섭이 다시 의외라는 듯 재득의 옆얼굴을 찬찬히 바라본다.
“속였구나, 지금까지?”
“그렇게 됐어 .”
“그래 고향 가면 뭘 해볼래?”
“몰라, 아직.”
“아이는 없냐?”
“없어.”
“다행 이다, 애가 없으니.”
차가 속력을 내는가 싶더니 드디어 G동 로터리다. 형섭이 담배를 재득에게 권하자 이번에는 재득이 입을 연다.
“넌 전라도 어디냐?”
“임실.”
“누가 있어, 거기?”
“남숙이.”
재득이 벌겋게 술 오른 얼굴로 살피듯이 형섭을 돌아본다. 형섭이 곧 눈길을 피하며 담담하게 입을 연다.
“거기가 걔 고향이야. 허지만 있을지 없을지는 가봐야 알겠어.”
침묵이 흐른다. 잔뜩 찌푸린 재득의 표정은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이다. 다시 입을 열려 하자 느닷없이 차 안에서 두제의 음성이 쨍쨍하게 들려온다.
“번잡한 차중에 대단히 죄송합니다.
여기 크라운공업사에서 자신을 가지고 권해드리는 크라운 빗을 가지고 잠시 소개말씀 올리겠습니다.
본 제품은 특수라이온을 혼합하여 만들었기 때문에 이와 같이 좌우로 아무리 구부려도 부러지지 않으며 사용하시는 도중에 빗살이 한쪽으로 몰린다든가 우그러지는 폐단이 절대로 없습니다.
가격을 말씀드린다면, 이와 같은 대빗 한 개를 상점을 통해서 사시게 되면 백 원 한 장은 주셔야 하겠습니다만…….”
두제의 단까가 계속된다. 그러나 형섭과 재득은 여전히 묵묵히 말이 없다. 단까가 거의 끝날 무렵에야 재득이 다시 조심스레 입을 연다.
“너 아까 날더러 그때 기분이 어땠느냐구 물었지?”
“응―.”
“말루 잘 설명이 안 된다. 아마 지금 네 기분하구 같을 꺼야.”
“어떤 건데, 내 기분이?”
“여태까지 우린 헛고생 했어…… 걔가 지붕에서 뛰어내리는 순간, 난 숨 막히두룩 걔가 예쁘구 거룩하게 보였어……
『문학과 지성』 19호(1975년 봄); 『혼들리는 땅』 (문학과지성사 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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