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벌국(沙伐國)’은 ‘사량벌국(沙梁伐國)’이라고도 하며 <삼국사기>에 경상북도 상주지방에 있었던 소국(小國)이라 기록되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사벌국 고성(古城)이 병풍산 아래에 있다’라고도 하였다.
낙동강을 낀 비산비야(非山非野)의 구릉성 산지에서 보이는 성터의 흔적은 살아남기 위한 생존 방법이었으리라.
상산지(商山誌 v1)에 「沙伐國古城 … 欣國村西北數里有古山城傳稱吏部谷山城 州北石嶽山麓有山城傳稱子山山城 屛風山有古城世傳沙伐王所築中有一池三井東城外有懸崖百丈世傳城內水乏則以水車輓江水入城 又其南數里有鹽倉基 …」적혀있다.
<사벌국 고성은 ··· 흔국촌 서북 편 수리에 옛 산성이 있으니 이부곡토성이라 전한다. 주북 석악 산록에 산성이 있어 자산 산성이라 전해 오고 있다. 병풍산에 고성이 있으니 사벌 왕이 쌓은 성이라 전해 오는데, 성중에 하나의 못과 세 개의 우물이 있고, 동쪽 성 밖에 백 장이나 되는 현애가 있어, 성내에 물이 마르면 수차로 강물을 달아 올렸다 하며, 남쪽 수리에 염창의 터가 있다>라고 적고 있는데, 이를 상주의 옛 사벌국 관련 3대 고성(三大古城)이라 한다.
병풍산(屛風山 365.8m)은 삼한시대 사벌국의 주요한 단서가 되는 토석 혼축의 ‘병풍산성(또는 아자개성)’이 축조되어 있고, 산 곳곳에는 삼한시대 사벌국의 고분군(古墳群)이 널려있다.
‘상주 병풍산 고분군(경북기념물 125)’이다.
나는 3~4년 전 병풍산 고분군으로 올라 ☞병풍산-화산-식산-백원산을 이어탄 적이 있다.
‘석산(石山 295.8)’은 지형도에서는 보이지 않는 이름이지만 주위에 고만고만한 작은 바위(岩石) 너댓 개가 자리잡고 있었다.
‘낙상산(洛上山 154.3)’은 병풍산과 함께 지형도에서 보이는 유이(唯二)한 산으로 낙동강 위에 있는 산이라는 이름.
정상에는 묘 한 기가 자리잡고 있었고, 낙동강 지류인 병성천이 훤히 내려다 보였다.
‘성안산(城內山 △171.4)’은 ‘금흔리 이부곡 토성’ 안(內)에 있는 산이라고 불리는 이름이지만 지형도엔 보이지 않는 이름.
‘금흔리 이부곡 토성(吏部谷土城 경북 기념물 제127호)’은 성안산 비탈과 계곡에 있는 흙으로 만든 성이지만 흔적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둔진산(屯陣山 △117.8)’은 진을 치고 주둔한 산이라는 이름이지만 ‘傳사벌왕릉’ 자료에는 ‘屯鎭山’으로 기록되어 있다.
참고한 자료인 ‘상산지’의 기록에 '屯陣山'이 있음을 그대로 옮긴다.
<···在古沙伐村西數百步屯陣山下丘陵突亢壇場頹廢傍有石塔古老···>
그 옆의 ‘우기산(104.3)’은 아무리 찾아보아도 유래를 찾을 수 없었다.
‘거기도 진을 친 산’이라는 뜻으로 ‘又其山’이라 하였을까?
아니면 ‘우로(于老)’가 군대를 거느리고 백제에 귀속한 사벌국을 토벌하였으니 ‘우로(于)’가 터(基)를 잡았다하여 ‘于基山’이 되었을까?
‘상주시 은척면’에는 ‘우기리(于基里)’라는 마을이 있기도 하다.
문화재로는 ‘상주 화달리 삼층석탑(尙州 化達里 三層石塔 보물 117)’과 ‘정기룡 장군 유물(鄭起龍將軍遺物 보물 669)’, 정기룡장군 유적(경북기념물 13), 전사벌왕릉(傳沙伐王陵:경북기념물 25), 사벌왕 신도비, 영사각(永思閣), 충의사 등이 있다.
산행코스: 상주시 덕담교(상주시 사벌국면 덕담리 1172-9)-중부고속도로밑 굴다리-임도-고개-성안산-이부동토성-금흔1리마을회관-이부동토성 안내판-굴다리-낙상산-굴다리-충의사-둔진산-傳사벌왕릉(상주 화달리 삼층석탑)-병성교-병성마을-석산-안부-병풍산 성터-병풍산-병성동마을회관(등로수정 포함, 약 14km,5.5h)
산행일시: 2024년 5월 1일
◇ 따로 올린 ☞ 화달리삼층석탑·전사벌왕릉,정기룡장군유적·충의사·신도비·묘소
궤적.
등로수정 포함 약 14km에 5.5h.
고도표.
미리 준비한 표지기.
네비에 '상주시 사벌국면 덕담리 1172-9'를 입력하여 '사벌국면'이라 새겨진 커다란 표석 앞 '덕담교' 삼거리에 버스를 댄다.
대강 채비를 한 뒤 2~30m 뒤...
굴다리를 건너는 임도로 진입을 한다.
입구에 있는 '단양 우씨 문희공파' 비석.
굴다리 앞에 '가선대부 단양우씨 추모비'가 세워져 있다.
굴다리를 지나...
임도를 따르다 고갯마루에서 우측 가파른 산길을 올라선다.
이후 무덤이 있는 유순한 산길에서...
낙엽 깔린 길을 지나자...
금세 성안산(城內山)에 닿는다.
일행들은 모두 곧바로 능선을 따라 내려갔지만 우리는 좌측으로 휘어져 '이부곡토성'의 흔적을 더듬어 보기로 하였다.
두리번거리며...
사방을 둘러보아도...
문외한(門外漢)의 눈에는...
아무런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무덤과 밭이 있는 곳으로 내려선 뒤 농로를 따르자...
노거수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마을 한복판에 들어서게 된다.
영세불망비와 새마을건립기념비가 있어 뒷면을 살펴 보았더니 마을 발전에 공이 있는 사람을 기리고 있다.
노거수들이 그늘을 드리우는 '금흔1리마을회관' 앞 너른 공터엔 대형버스도 주차 가능할 것이다.
조금 아래 새로 세워진 정자엔 여러 기문들이 걸려있다. 정자 이름은 '이부정(吏部亭)'. 글쓴이는 '갑술 청명절 해주 오의환'
* 이부(吏部)란 고려 때 상서성(尙書省) 소속의 6부(六部)중 하나로, 관리의 인사관계와 지방의 관청을 감독했다.
지금의 내무부와 총무처와 같은 관청.
'衾欣里의 來歷(금흔리의 내력)'과...
금보정(錦寶亭) 오언율시. 단기 4323년 해주 오의환.
“淸風明月不用一錢買(청풍명월불용일전매) 玉山自倒非人推(옥산자도비인추) 李太白(이태백)”
'청풍명월은 일전도 주고 살 필요없으니 옥산이 절로 무너졌고 사람이 떠민 것 아니라오.'
吏部谷亭記文(이부곡정기문). 해주 오세만.
금흔1리마을회관을 벗어나 '이부곡 토성' 안내판을 찾아간다. 토성으로 들어가는 입구의...
'상주 금흔리 이부곡 토성' 안내판.
지형도에는 '비단 錦'자를 써서 '錦欣里'이나 예전부터 '이불 衾'자, '衾欣里'가 맞는 듯.
안내판에서 올려다 보는 이부곡 토성이 있는 성안산.
마을회관 입구의 연자방아.
이제 못자리는 이양기의 용도에 맞게 재배된다. "♪ 모야, 모야~ 노랑 모야~니 언제 커서 열매 열래 ♬"
낙상산을 찾아가는 길은 남의 밭으로 들어가는 듯해서 위로 올라갔으나 길이 없어 되돌아 내려섰다.
다시 찾아든 농로. 좌측 소나무 숲이 보이는 곳으로 올라서게 된다.
농로는 묵어있고, 또 도로 높은 턱이 앞을 막아섰지만 좌측으로 살짝 비켜돌자...
노송 몇 그루가 서있는 포장도로에 올라서게 되고...
곧 굴다리를 건너게 된다.
굴다리를 건너저마자 좌측 임도가 낙상산 진입로.
다니는 사람 없어 풀숲이 웃자란 임도에서...
공룡알 바위가 있는 '상산 박씨 묘'를 지나면...
다시 묘 한 기가 자리한 낙상산에 올라선다.
표지기를 건 뒤...
아래를 내려다 보았더니 병성천 너머로 스카이라인을 긋는 산줄기는 3~4년 전 병풍산과 이어탄 식산·화산·백원산 줄기(?)인 듯.
낙상산에서 내려가는 길은 우측으로 비틀어...
농로를 지나...
굴다리를 건너면서...
충의사를 찾아든다.
담장 옆을 돌아...
충의사 외삼문으로 올라선다.
※ 충의사 답사는 '傳사벌왕릉과 삼층석탑, 정기룡 장군 유적(신도비·묘소)'과 함께 따로 올렸다.
충의사 답사를 마친 뒤 주차장에서...
아스팔트를 따른다. 여긴 '금흔2리'.
이정표의 '전사벌왕릉'이 진로.
마주 보이는 둥그스름한 봉우리가 둔진산이고, 우측 잘록이 건너 살짝 솟은 봉이 우기산이다.
둔진산 아래 중간쯤에 '傳사벌왕릉'과 '화달리 삼층석탑'이 있다.
'←화달1리' 표지판에서 좌측 골목이 둔진산 진입로.
화달1리 마을회관 직전의 볼록거울 앞 골목.
골목에선 다시 '화달2길'표지판 방향.
농가 마당을 가로질러 능선 끝자락으로 올라선다.
사박사박...
금세 둔진산에 올라 표지기를 걸었다.
둔진산의 삼각점.
다시 내려서는 길은 '전사벌왕릉'이 가깝도록 좌측으로 조금 휘어서 좌측 골목을 따랐다.
고풍스런 담장을 두른 한옥이 배열되어 있는 곳.
이곳에는 후사벌왕이자 상산 박씨의 시조 박언창의 무덤으로 전해지는 '전(傳)사벌왕릉(沙伐王陵)'이 있고, '화달리 삼층석탑'이 있다.
※ '사벌왕릉과 삼층석탑' 답사는 충의사와 함께 따로 올렸다.
둔진산은 두리봉산으로도 불린다는 마을 유래비.
정기룡 장군 신도비·묘소로 향하면서 뒤돌아보는 둔진산과 삼층석탑이 있는 사벌왕릉.
그 우측에 나즈막한 우기산.
함께 걸었던 '류찬선' 님은 식사를 한 뒤 우기산을 간다며 혼자 떠나버렸다. 이렇듯 산을 타는 사람들은 너나할 것 없이 개성들이 강하다.
정기룡 장군 묘소와 신도비는 가까이에 있다.
신도비가 있는 종합안내도에서 올려다 보는 정기룡 장군 묘소.
안내판을 확대.
신도비각과...
정기룡 장군 묘소를 답사한 뒤 병풍산을 향한다. ※ 신도비와 묘소도 충의사와 함께 따로 올렸다.
도로를 걸어 굴다리를 통과한 뒤 병성교를 건넌다.
정면에 뽕긋 솟은 봉이 병풍산이고, 좌측 잘록이 건너에 있는 산이 석산이다.
병성교를 건너...
병성동마을회관으로 들어간다.
마을회관 앞 너른 공터에 대기 중인 우리 버스.
나는 병성동마을회관을 지나...
석산을 가기 위해 좌측 마을로 들어간다.
'한덤'님은 병풍산을 먼저 오르기 위해 고분군이 있는 곳으로 진행하였고, 나는 지난 산행 때 오른 적이 있어 석산 방향을 먼저 택했다.
이는 여차하면 병풍산을 제외하기 위한 것.
마을 골목을 지나 산길 입구에 들어서자...
여기도 고분군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곧 만나는 신설된 시멘트 포장길을 외면하고 우측 골짜기로 들어가는 옛길.
의외로 고도 평이한 뚜렷한 산길이 이어져 주위 둘러볼 새 없이 그대로 따랐더니...
'MRF 이야기 길' 표지판이 길을 안내한다.
'MRF 이야기 길'이란 '산(Mountain), 강(River), 들(Field)'을 이어 만든 걷기 길이라는 말.
어디쯤에서 좌측 능선으로 붙어 석산을 오를려고 하였으나 길이 너무 좋은 바람에 계속 오르다보니...
너른 평지에서 분지를 지난다.
오래전 군사적 용도로 사용했을 법하였고, 화전민들의 삶의 터전이었을 법도 하였다.
조금 더 오르자 두 산의 중간 지점인 안부에 이르게 된다.
안부에서 좌측 석산부터 올랐더니 고만고만한 암석 몇개가 박혀있는 곳.
그래서 석산인가 보다하며 표지기를 걸었다. 참 싱거운 이름이다.
'MRF 이야기길'은 계속되더니...
안부를 지나 병풍산으로 오르자 무너져내린 성곽의 흔적들이 나타난다.
사벌 왕이 쌓았다고 전해오는 토석 혼축의 ‘병풍산성(또는 아자개성)’이다.
능선에서 만난 성동리 방향(병성동 반대 방향) 이정표에서 나는 그만 방향감각을 잃고 말았다. 씌인 듯 이곳으로 내려갔으니 하는 말이다.
드러누운 이정표에 엄연히 병성동을 가리키고 있었지만...ㅉㅉ
병풍산 정상에서 3~4년 전 걸어두었던 표지기를 찾아 보았으나 보이지 않는다.
새로 바삐 표지기를 매달고...
삼각점을 확인한 뒤...
삼각점 안내판도 담았다.
그리고는 누가 성동리에서 이마에 손얹고 기다리는 사람 있는 듯, 그렇게 귀신 씌인 듯 신질로 뛰어 내려갔다.
그런 뒤 알바임을 직감, 고도 110m를 극복하며 왕복 600m를 되올라 오는 데 20여분을 오롯이 소비한 셈이었다.
하산시간이 15:00이니 30여분 지체될 것 같다.
솔밭을 지나...
시멘트 임도에 내려서...
골목을 벗어나자 대기중인 우리 버스를 만나고, 화장실로 직행 간단세수만 하였다.
당나라 시인 유우석(劉禹錫)이 누실명(陋室銘)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山不在高 有僊則名(산불재고 유선즉명)/ 산은 높지 않아도 신선이 있으면 명산이요
水不在深 有龍則靈(수불재심 유룡즉령)/ 물이 깊지 않아도 용이 살면 신령스럽다"
첫댓글 함께해서 즐거웠습니다.
수고했습니다.
행복한 일요일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