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15:29]
바알라와 이임과 에셈과..."
유다 지파가 분배받은 기업의 경계선이 설명되었었는데, 여기에는 유다 지파가 분배받은 성읍들의 이름이 열거되어 있다. 즉 본문에는 유다 지파에게 할당된 120개의 주요 성읍들이 구체적으로 열거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유다 지파의 영토는 그 지역적 특성에 따라 다음과 같이 12구역으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다. (1) 브엘세바 중심으로 남쪽으로 치우쳐 있는 구역, (2) 남쪽의 아둘람에서 북쪽의 그데라에 이르는 평지로 현재 '예루살렘-얍바'간의 철도를 따라 남북으로 뻗어 있는 구역,
(3) 제 1, 2구역 중간 지점의 남부 평지, (4) 마레사를 중심으로 하여 제 2, 3구역 사이에 위치한 구역, (5) '애굽 시내'와 연접한 남부 해변 평야 지대 중심지인 에그론은 블레셋의 5대 도시들 중 하나였으며, 얼마 후 단 지파의 소유가 되었다; (6) 애굽과 가나안의 관문 지대에 위치한 구역 그 중심지였던 아스돗은 오랫동안 미정복 상태로 남아 있다가 웃시야 왕에 의해 공략되었다. (7) 북쪽으로 제1구역과 접한 구역(그 중심지는 드빌)이었다;
(8) 제 7구역의 북쪽과 제 3, 4구역의 동부에 위치한 남부 산지 헤브론이었다., (9) 헤브론 남부 유대 산지의 동쪽에 위치한 구역, (10) 헤브론 북쪽에 인접해 있는 산맥 지대, (11) 유다 지파의 북부 경계선 주변에 위치한 구역, (12) 베냐민 지파와의 접경 지대인 동시에 동부 경사지에 해당하는 구역 등이다. 이와 같이 유다 지파에게 할당된 성읍들은 그들이 살기에 너무 넓은 땅이었다.
나중에 시므온 지파의 기업은 유다 지파의 기업 중에서 배당되었다. 따라서 이는 '내가 그들을 야곱 중에서 나누며 이스라엘 중에서 흩으리로다'라는 시므온에 대한 야곱의 예언이 성취된 것이었다....[수 15:30]"엘돌랏과 그실과 홀마와..."[수 15:31]"시글락과 맛만나와 산산나와 르바옷과..." 본문에는 유다 지파에게 할당된 120개의 주요 성읍들이 구체적으로 열거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유다 지파의 영토는 그 지역적 특성에 따라 다음과 같이 12구역으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다.
[수 15:32]"실힘과 아인과 림몬이니 모두 이십 구 성읍이요 또 그 촌락이었으며..."[수 15:33]평지에는 에스다올과 소라와 아스나와..."[수 15:34]"사노아와 엔간님과 답부아와 에남과...."[수 15:35]"야르뭇과 아둘람과 소고와 아세가와..."[수 15:36]"사아라임과 아디다임과 그데라와 그데로다임이니 모두 십 사 성읍이요 또 그 촌락이었으며....[수 15:37]"스난과 하다사와 믹달갓과..."[수 15:38]딜르안과 미스베와 욕드엘과..."[수 15:39].."라기스와 보스갓과 에글론과..."[수 15:40]"갑본과 라맘과 기들리스와..."
[수 15:41-50]"그데롯과 벧다곤과 나아마와 막게다니 모두 십 륙 성읍이요 또 그 촌락이었으며..립나와 에델과 아산과"입다와 아스나와 느십과..그일라와 악십과 마레사니 모두 아홉 성읍이요 또 그 촌락이었으며...에그론과 그 향리와 촌락과..에그론에서부터 바다까지 아스돗 곁에 있는 모든 성읍과 그 촌락이었으며..아스돗과 그 향리와 촌락과 가사와 그 향리와 촌락이니 애굽 시내와 대해 가에 이르기까지였으며.산지는 사밀과 얏딜과 소고와.단나와 기럇 산나 곧 드빌과..아납과 에스드모와 아님과..
[수 15:51-60]"고센과 홀론과 길로니 모두 십 일 성읍이요 또 그 촌락이었으며,아랍과 두마와 에산과,야님과 벧 답부아와 아베가와,훔다와 기럇 아르바 곧 헤브론과 시올이니 모두 아홉 성읍이요 또 그 촌락이었으며,마온과 갈멜과 십과 윳다와,이스르엘과 욕드암과 사노아와, 가인과 기브아와 딤나니 모두 열 성읍이요 또 그 촌락이었으며,할훌과 벧 술과 그돌과,마아랏과 벧 아놋과 엘드곤이니 모두 여섯 성읍이요 또 그 촌락이었으며,기럇 바알 곧 기럇 여아림과 라빠니 모두 두 성읍이요 또 그 촌락이었으며..."
[수 15:61-63] "광야에는 벧 아라바와 밋딘과 스가가와, 닙산과 염성과 엔 게디니 모두 여섯 성읍이요 또 그 촌락이었더라...예루살렘 거민 여부스 사람을 유다 자손이 쫓아내지 못하였으므로 여부스 사람이 오늘날까지 유다 자손과 함께 예루살렘에 거하니라..."예루살렘 거민...여부스 사람이...예루살렘에 거하니라 - 유다 지파가 여부스 족속을 쫓아내지 않고 그들이 예루살렘에 거주하도록 내버려 둔 것은 가나안 족속과는 언약도 맺지 말고 불쌍히 여기지도 말며
모두 진멸시켜야 한다는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명백한 위반 행위였다. 이와같이 유다 지파가 여부스 족속을 쫓아내고자 최선을 다하지 아니한 것은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나태한 마음가짐에서 연유한 것으로, 가나안 정복 전쟁 때의 그들의 신앙적이며 순종적인 모습과는 뚜렷이 대조되는 현상이었다. 과거 예루살렘 왕 아도니세덱은 다른 네 왕들과 합세하여 이스라엘에게 대적하였으나 결국 모두 죽임을 당하고 말았었다.
그때 예루살렘이 정복당했다는 언급은 없으며, 그 이후 유다 지파도 이 예루살렘을 정복하지 않고 내버려 두고 있었다. 유다 자손이 예루살렘을 쳐서 성읍을 불태웠다고 하였는데, 이는 예루살렘을 부분적으로 점령한 것을 뜻할 뿐 완전히 점령한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예루살렘의 여부스 족속은 B.C. 1000년 경 다윗의 치세시가 되어서야 비로소 완전히 점령당하게 되는데, 그때까지 이들은 유다 자손들 곁에서 계속 거주하였던 것이다.
이것과 동일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 삿 1:21에서는 이들을 베냐민 지파가 쫓아내지 못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이러한 사실은 서로 모순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 예루살렘 성은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의 경계선 상에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 모두 이 여부스 족속을 쫓아내는 일을 하지 않았다는 기록은 아무런 모순이 없는 것이다.
오늘날까지 - 이는 여호수아서 저자가 본 기록을 쓸 당시까지 예루살렘 거민인 여부스 족속이 예루살렘 성에 살고 있었다는 뜻인데, 따라서 이 말은 여호수아서가 적어도 예루살렘이 완전 정복된 때인 다윗 왕 시대 이전에 기록되었다는 사실을 입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