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가르침의 숲을 보는 안목을 생각합니다.
숲속의 8만4천개의 크고 작은 나무들을 보는 것이 아닌,
숲 전체를 보는 안목을 생각합니다.
신은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셨다.
선(善)을 좋아하면 선(善)을 하게 하여 주시고
그 댓가를 받게 하셨다.
악(惡)을 좋아하면 악(惡)을 하게 하여 주시고,
그 댓가를 받게 하셨다.
부처님께서 이것을 연꽃의 비유로 설명하셨다.
연못속의 좋고 나쁜 것들 중에서 좋은 성분을 취하면,
그 댓가는 향기좋은
연꽃이 핀다고,
악취나는 것을 취하면
그 댓가는 악취나는
연꽃을 피운다고,
그리고 그 방법을
팔정도로 가르쳐 주셨다.
부드럽고 자비로운 말을 하면
그 댓가는 행복한 삶을 산다고,
거칠고 난폭한 말을 하면
그 댓가는 불행하고 괴로운 삶을 산다고,
바로 고집멸도의 가르침이다.
괴로움을 멸하는 방법은 팔정도이다라고,
사람들이여,
고(苦)가 무엇인지 생각하지 말라.
부처님께 고(苦)가 무엇인지 물어보면
뭐라고 대답하실까....
분명히 이렇게 대답하실 것이다.
"어리석은 중생아!
이 세상에는 사람의 머리수만큼 많은 것이 고(苦)이다.
나는 그것을 가르치러 온 것이 아니다.
고(苦)를 없애는 방법을 가르치러 온 것이다.
네가 해결하지 못하는 괴로움은 무엇이냐...."
라고 하실 것이 분명하다...
“ 네 부처님 알았습니다. 팔정도를 실천하겠습니다.”
라고 하는 것이 가르침을 배우는 제자로서의 자세가 아닐까.
그리고 올바른 기준에 대해서 반야심경으로 가르쳐 주셨다.
반야심경으로 빛의 세계인,
보살의 세계를 설명하셨다.
흘러가는 물질의 그림자인 육신에 현혹된 기준은 아수라계의 삶의 기준이다.
어두운 암흑의 세계인 아수라의 세계를 기준으로 하지 말고,
밝은 광명으로 가득찬 보살의 세계의 삶을 팔정도의 기준으로 삼아라,
육신만이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하고 아수라계의 삶을 살면,
가는 곳은 아수라계이다.
육신은 흘러가는 물질의 그림자라고 생각하고 양심에 따라 보살의 삶을 살면,
가는 곳은 광명으로 가득 찬 보살의 세계이다..
육신만이 자기자신이라고 생각하고 물질을 따라 사는 아수라계의 삶을 살면,
가는 곳은 아수라의 세계이다.
육신은 훌러가는 그림자라고 생각하고 양심을 따라 사는 보살의 삶을 살면,
가는 곳은 보살의 세계이다.
자기 마음속에 물질에 대한 집착과 노여움, 시기, 질투의 마음이 있는 자는
보살의 세계에서 살 수 없는 법이다.
또한 역설적이게도
물질세계의 지식을 많이 알면 알수록,
영의 세계에서는
불필요한 것으로서
오히려 짐만 될 뿐이다.
원문 : 다카하시신지님의 실천! 팔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