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팔순
2023년 8월 6일은 아내의 팔순 생일이다.
아들, 딸 내외와 손자 손녀들이 모두 우리 집에 모여 조촐한 생일 파티를 열었다.
다행히 딸이 하루 전에 찾아와 숙식을 하면서 생일 상을 차렸기에 별 부담 없이 가족 모두가 한 자리에 모여
만찬을 같이 할 수 있었다.
물론 식사를 하기 전에 내가 대표 기도를 했다.
기도의 내용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은 아내의 지병이 완쾌되길 소구 하는 것이었다.
아내의 팔순은 사실 지난해였다.
그런데 당시 아내가 파킨슨 판정을 받았고 병세가 갑자기 나빠지기 시작해 팔순을 축하하는 가족 모임을
가질 수 없었다. 다행히 올해는 병세가 안정적인 데다 치료 병원도 내 모교 병원으로 옮긴 뒤여서 한 해
뒤인 올해를 팔순으로 삼았던 것이다.
모이는 날이 주일이라 가족들은 각자 1부 예배를 드리고 왔다.
공무로 베트남에 가 있던 사위도 일정에 맞게 귀국해 찾아왔다.
외 손자와 친 손자 친 손녀 등 세 명의 손주들도 모두 모이니 모처럼 집안이 사람 사는 것 같았다.
아내는 손주들이 하나씩 현관문을 들어설 때마다 활짝 웃으며 반갑게 맞이한다.
평소엔 웃음 기 하나 없던 아내였다. 그런데 아내는 자신이 환자라는 것을 잊은 듯했다.
보기 좋았다.
여름 무더위는 오늘도 서울이 섭씨 37도까지 올라가는 찜통 더위였다. 바람 한 점 없는 날이다.
정오쯤이었다. 갑자기 검은 구름이 몰려오더니 하늘에서 천둥이 친다.
창밖에 쏟아지는 빗줄기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아내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한 마디 한다.
“여보, 비가 너무 많이 오네요.”
“그러게요. 소나기 같아요. 왜 무슨 걱정거리라도 있어요?”
“손자들이 오잖아요. 비 맞으면 어떻게 해요.”
“지나가는 비예요. 제 엄마나 아빠 차 타고 올 테니 걱정 마세요.”
내 말에 아내는 안도하는 모양이다. 아내는 이내 안방 침대로 가서 운동을 해야겠단다.
휠체어를 밀어 안방으로 데려다 주니 침대에 옮겨 달란다. 침대에 누워 양 발을 번갈아 들어 올리는 운동을
한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오늘은 평소보다 10 여분 정도 더 운동을 한다.
내가 그 까닭을 물어봤다.
“여보, 오늘은 왜 운동을 더 많이 해요? ”
“손주들이 오잖아요, 녀석들에게 건강한 모습을 보여주려면 힘들어도 조금 더 하려고요.”
아내는 운동을 하고는 낮잠을 자겠단다. 나는 잠자리를 봐주고 에어컨 바람 방향을 안방 쪽으로 해 놓고
서재로 돌아왔다.
언론인 회에서 발행하는 ‘언론 계 거물’ 등 두 권의 신간 출판물의 발간 사와 오는 10월에 여는 두 건의
세미나에서 할 인사 말씀을 쓰기 위해 책상에 앉았다. 그러나 눈꺼풀이 바위처럼 짓눌러 댄다.
나도 모르게 의자에 앉아 깊은 잠이 들었다. 어제 밤엔 딸이 미리 와서 안방에서 아내와 같이 자면서
간병을 했기 때문에 오랜만에 잠을 잘 잤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가 않았나 보다.
하기야 늘 그렇지만 잠이 부족해서 아무 데서 자리에 앉기만 하면 눈이 감기곤 한다.
얼마를 눈을 붙였는지 모르지만 아내가 부르는 소리에 눈이 번쩍 떴다. 얼른 안방으로 달려갔다.
아내는 왜 손주들이 이렇게 빨리 오지 않느냐고 묻는다. 그 때다.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고 외 손자와
사위가 도착했다. 조금 있다가 아들 네가 들이 닥친다. 막내 손자 윤준이가 큰 소리로
“할머니, 저 왔어요” 하고 외치며 안방으로 달려갔다.
다른 손주들은 할머니에게 인사하고 거실로 나와 의자에 앉는데 역시 윤준이는 달랐다.
녀석은 안방에서 나오지 않고 할머니의 어깨와 다리를 주물러 드린다.
아내는 “더운데 오느라고 수고했으니 그만 하라”고 하면서도 눈을 지그시 감고 만면에 웃음이 가득하다.
그런 모습을 본 손녀 윤정이가 윤준이에게 한 마디 한다.
“너 반칙이야,” 하더니 할머니 다리를 주무르기 시작한다.
부엌에서 일하던 딸이 상을 다 차렸으니 식사하자고 한다.
모처럼 세 집 식구들이 한 자리에 모이니 북적대면서 식사를 했다.
아내는 수저를 들고도 손주들이 식사하는 모습을 바라 만 본다. 보다 못한 내가
“여보, 무엇 해요. 식사하지 않고 ”하니 그제야 식사를 한다.
식사 후 나는 아들과 딸 내외에게 아내의 병세에 대해 이야기해 주면서 호전되기는커녕 점점 나빠지는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하다고 말해 주었다. 아내는 밤이 케어에 더 힘이 많이 든다.
보통 9 시쯤 잠이 들면 아침 5시까지 잠을 자는데 그 사이 서너 번은 화장실에 가야 한다.
심할 때는 최고 8번까지 가야 한다. 잠자다가 거의 한 시간마다 일어나 화장실에 가는 셈이다.
그때마다 잠에서 깨어나 시중을 들어야 한다. 그런 때는 잠을 거의 자지 못한다.
그런데 내가 잠을 한숨도 못 자는 게 문제가 아니다. 아내가 화장실에 갈 때마다 의식을 잃는다는 것이다.
오래전 처음으로 그런 경우를 당했을 때는 너무나 당황한 나머지 119를 불러 응급실로 데리고 갈 까도
생각했다. 그러나 이젠 몇 달을 같은 상황을 겪다 보니 의례 그러려니 하고 놀라지 않는다.
그럴 때마다 아내의 혈압을 재보면 위험 수위까지 떨어진다.
그럴 때는 응급 혈압 상승 제를 들게 하고 머리와 어깨를 계속 마사지해준다.
그리고 한 10 여분쯤 지나면 아내에게 정신이 돌아온다.
아이들은 아무 말도 못한다. 모두 근심스러운 얼굴로 나를 처다 본다. 어떻게 해야 될지 묻는 것 같다.
많은 돈이 드니 요양 보호사를 24시간 쓰자고 말은 못 하고 그렇다고 자기들이 와서 아버지가 하는 일을
대신 할 수도 없는 일이니 아무 말도 못 하고 바라만 보는 거다.
개중에는 아버지가 먼저 쓰러진다고 생각하고 제 어머니를 요양 병원이나 요양 원에 옮기자고 말하고 싶은
아이도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차 제에 못을 박기로 했다.
나는 아이들에게 단호하게 말했다.
“너의 어머니가 병세가 깊어져 내가 간호하기가 아무리 어렵다 해도 너의 어머니는 절대로 요양 원에 보내지
않는다. 아주 편찮으시면 병원에 입원 시킬 것이다. 알겠느냐?”
아이들이 일제히 “네 ”하고 대답 한다. 아내를 바라봤더니 만족한 표정이다.
내 마음 속으로 다짐했다.
" 내가 죽기 전엔 당신을 절대로 내 옆에서 멀리 가게 안 할 겁니다. “
그래서 아내 팔순 만찬은 즐겁게 치를 수 있었다.
장석영 2024 08 25
※장석영 1942년 생 서울신문 논설 위원 (現) 한국 언론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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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나의, 아니 우리 이야기였다.
읽으며 가슴이 먹먹해 왔다. 누구나 겪을 이야기인지 모른다.
사회적으로 가정적으로 성공하신 분의 이야기이시다.
이 글을 읽으며 나를 더욱 감동시키고 가슴을 먹먹하게 한 말씀은
“너의 어머니가 병세가 깊어져 내가 간호하기가 아무리 어렵다 해도 너의 어머니는
절대로 요양 원에 보내지 않는다. 아주 편찮으시면 병원에 입원시킬 것이다. 알겠느냐?”였다.
요양원, 요양 병원 이야기 많이 들었다.
송강 정철의 부부 말씀이 생각난다.
"한 몸 둘에 나눠 부부를 만드시니 있을 제 함께 늙고 죽으면 같이 간다.
어디서 망령의 것이 눈 흘기려 하느뇨?"
쾌유를 빕니다.
<쇠뭉치>
<카톡으로 받은 글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