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독서
▥ 사도행전의 말씀 6,1-7
1 그 무렵 제자들이 점점 늘어나자, 그리스계 유다인들이 히브리계 유다인들에게 불평을 터뜨리게 되었다.
그들의 과부들이 매일 배급을 받을 때에 홀대를 받았기 때문이다.
2 그래서 열두 사도가 제자들의 공동체를 불러 모아 말하였다.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식탁 봉사를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3 그러니 형제 여러분,
여러분 가운데에서 평판이 좋고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 일곱을 찾아내십시오.
그들에게 이 직무를 맡기고,
4 우리는 기도와 말씀 봉사에만 전념하겠습니다.”
5 이 말에 온 공동체가 동의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인 스테파노, 그리고 필리포스, 프로코로스, 니카노르, 티몬, 파르메나스, 또 유다교로 개종한 안티오키아 출신 니콜라오스를 뽑아,
6 사도들 앞에 세웠다.
사도들은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였다.
7 하느님의 말씀은 더욱 자라나, 예루살렘 제자들의 수가 크게 늘어나고 사제들의 큰 무리도 믿음을 받아들였다.
제2독서
▥ 베드로 1서의 말씀 2,4-9
사랑하는 여러분,
4 주님께 나아가십시오.
그분은 살아 있는 돌이십니다.
사람들에게는 버림을 받았지만 하느님께는 선택된 값진 돌이십니다.
5 여러분도 살아 있는 돌로서 영적 집을 짓는 데에 쓰이도록 하십시오.
그리하여 하느님 마음에 드는 영적 제물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바치는 거룩한 사제단이 되십시오.
6 그래서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보라, 내가 시온에 돌을 놓는다.
선택된 값진 모퉁잇돌이다.
이 돌을 믿는 이는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7 그러므로 믿는 여러분에게는 이 돌이 값진 것입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 이들에게는 “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 하는 그 돌이며,
8 또한 “차여 넘어지게 하는 돌과 걸려 비틀거리게 하는 바위”입니다.
그들은 정해진 대로, 말씀에 순종하지 않아 그 돌에 차여 넘어집니다.
9 그러나 여러분은 “선택된 겨레고 임금의 사제단이며 거룩한 민족이고 그분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여러분을 어둠에서 불러내어 당신의 놀라운 빛 속으로 이끌어 주신 분의 “위업을 선포하게 되었습니다.”
복음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 14,1-12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2 내 아버지의 집에는 거처할 곳이 많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러 간다고 말하였겠느냐?
3 내가 가서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데려다가 내가 있는 곳에 너희도 같이 있게 하겠다.
4 너희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알고 있다.”
5 그러자 토마스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주님, 저희는 주님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알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알 수 있겠습니까?”
6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7 너희가 나를 알게 되었으니 내 아버지도 알게 될 것이다.
이제부터 너희는 그분을 아는 것이고, 또 그분을 이미 뵌 것이다.”
8 필립보가 예수님께, “주님,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저희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하겠습니다.” 하자,
9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필립보야,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그런데 너는 어찌하여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하느냐?
10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너는 믿지 않느냐?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은 나 스스로 하는 말이 아니다.
내 안에 머무르시는 아버지께서 당신의 일을 하시는 것이다.
11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고 한 말을 믿어라.
믿지 못하겠거든 이 일들을 보아서라도 믿어라.
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할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이다.
내가 아버지께 가기 때문이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인생행로’ 혹은 ‘인생여로’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여로’라는 텔레비전 드라마가 대단한 인기를 얻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인생이 ‘나그네 길’임을 말해줍니다.
인생이 ‘나그네살이’라는 말은 우리가 길을 걸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길을 걷는 이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어떤 길을 걷고 있느냐?’ 곧 ‘참된 길을 걷고 있느냐?’ 입니다.
그래서 물어야 합니다.
내가 걷는 길은 참된 길인가?
또한 중요한 것은 '그 길을 어떤 마음으로 걷는가?' 입니다.
간혹 길을 걸어가다 보면 묻는 이들이 있습니다.
“도(길)를 아십니까?” “참된 길을 아십니까?”
오늘 우리는 이 물음을 우리 자신에게 던져봅니다.
오늘 말씀전례는 우리에게 올바른 길을 보여주시고, 무엇이 참된 삶인지를 깨우쳐줍니다.
제1독서에서는 초대교회에서 일곱 부제를 뽑는 과정을 통해, 하느님의 말씀에 따라가는 ‘믿음의 길’을 제시해주며, 제2독서에서는 믿고 주님께 나아가는 이들, 곧 그분의 소유가 되는 백성에 대해 말해줍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이 지상을 떠나시기 전에 제자들에 하신 고별사의 시작 부분입니다.
곧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하시는 유언 말씀입니다.
유언이란 남는 이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가장 귀중한 가르침이라 하겠습니다.
이 귀중한 예수님의 유언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요한 14,1)
그러니 먼저 물어야 합니다.
나는 하느님과 예수님을 믿고 있는가?
내가 믿고 있는 하느님과 예수님은 어떤 분인가?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과 자신이 참 하느님이심을 믿고서,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요한 14,1)고 하십니다.
장차 당신이 제자들 곁을 떠난다하여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이렇게 밝히십니다.
곧 당신이 가시는 곳이 어디인지, 그곳에 어떠한지, 그리고 그곳을 왜 가시는지를 밝히십니다.
그것은 당신께서 먼저 ‘아버지 집’에 가시어 ‘우리를 위한 자리’를 마련하시고, ‘우리와 함께 있기’ 위함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바로 이 세상이 ‘나그네살이’이지만 궁극에서 ‘이별이란 없다’는 말씀입니다.
참으로 벅찬 유언 말씀입니다.
“내 아버지 집에는 거처할 곳이 많다.
~ 내가 가서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데려다가 내가 있는 곳에 너희도 같이 있겠다.”
(요한 14,2-3)
여기서, “거처”(μονη)는 ‘미련해(정해진) 둔’, ‘예비된’이란 의미로, 요한묵시록에서는 “거룩한 도성 새 예루살렘”(21,2)으로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지금 그분과 함께 거처할 자리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요즈음 프란치스코 교종께서는 거의 매일 ‘시노달리따스’에 대해 말씀하신다고 합니다.
바로 이 길을 어떻게 걸어야 하는지에 대한 말씀입니다.
분명 우리는 ‘길 위에 있는 교회’(ecclesia viatrix)입니다.
‘함께 걷는 길’의 ‘여정’을 갑니다.
믿음과 사랑과 희망으로 ‘함께 가야 하는 길’입니다.
그런데 당신은 알려주시지만 알아듣지 못하는 토마스와 필립보에게 예수님께서는 알려주어도 알아듣지 못하고 보았으면서도 보지 못함은 믿지 않는 까닭임을 깨우쳐 주십니다.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고 한 말을 믿어라.”
(요한 14,11)
그렇습니다.
참으로 믿음이 ‘도’입니다.
‘도’는 진리를 ‘아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진리를 ‘믿는 데’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이 ‘믿음의 길’이 ‘참된 길’ 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요한 14,6)
사실 당신께서 “길”이라는 이 말씀은 황당하고 당혹스러운 발언이요, 혁명적인 발언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길”의 표상은 본디 이집트 탈출의 상징이요, 해방의 길을 표상했으며, 점차 주님께서 당신 백성에게 영원한 보상을 위해 제시하는 삶의 방향을 가리켜주는 “율법”에 적용에 적용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길”이라고 선언함으로써, “길”의 의미가 ‘율법’에서 ‘예수님의 인격’으로 옮겨졌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진리란 무엇이오.?”(요한 18,38)라는 빌라도의 질문에 예수님께서는 이론이나 이념, 혹은 진리에 대한 개념으로 대답하지 않으셨습니다.
당신께서는 모든 교리나 이념을 초원하는 진리를 증언하셨습니다.
곧 현재 일어나고 있는 살아있는 인격적인 진리를 증언하셨습니다.
바로 당신 자신 스스로를 두고서,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요한 14,6)라고 증언하신 것입니다.
당신이 “진리”(áληθεια)라 함은 원어의 뜻이 ‘감추어진 보물을 드러내는 것’을 의미하듯이, 예수님께서는 성부를 완전히 드러내 보여주시는 분이심을 드러내며, “생명”이라 함은 당신은 단순히 구원에 인도하는 분이 아니라, 당신 자체가 구원의 원천인 살아있는 생명이심을 말해줍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지금 우리와 함께 살아있는 인격적인 진리를 증언하십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진리를 알고자 하면서도 막상 그 진리를 따르고자 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진리를 아는 것은 우리의 지적 호기심과 만족과 허영심을 채워주지만, 그 진리를 따르려면 자신을 버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신을 버리는 데는 믿음이 따릅니다.
그렇게 믿는 바를 따라 몸소 살 때라야 자유는 옵니다.
그렇습니다.
진리는 알게 될 때가 아니라 그 진리를 믿음으로 따를 때 자유롭습니다.
곧 예수님의 인격을 받아들이고 지금 여기에 인격으로 살아계시는 진리이신 생명을 믿고 받아들여 함께 살아가는 데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이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약속하십니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할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이다.”
(요한 14,12)
오늘 여러분이 하는 일에 그리스도의 권능이 이루어지도록 믿음으로 실행하는 일이 되길 바랍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요한 14,1)
주님!
마음이 산란해지지 않게 하소서.
당신을 믿고 아버지를 믿게 하소서,
알면서도 안다는 사실을 모르는 어리석음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
믿고 의탁하게 하소서.
제 자신이 아니라 당신을 믿고 당신께 의탁하게 하소서.
당신의 사랑을 믿고 그 믿음 안에서 당신의 한결같은 사랑을 알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첫댓글 아멘~!
감사합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아멘~♡감사합니다
아멘 신부님 푸른잎새님 고맙습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아멘!
아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