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자 수필 문득.900 --- 대청댐 수몰지역을 돌아보며
오월로 접어들면서 봄이 무르익어가는 동안 자연은 일 년 중 가장 분주하면서 변화가 많은 계절이기도 하다. 움트던 새싹이 더위와 함께 온 세상을 초록으로 물들였다. 그로도 부족해 울창하게 녹음으로 뒤덮었다. 다랑이논에도 모내기를 하고 감자밭에는 자주감자인지 흰 감자인지 알 수 있는 꽃이 피게 된다. 고추를 심고 채소를 가꾸고 풀이 무성하게 돋아나면서 산하가 한 치도 빈틈없다. 통통해진 매실이 알알이 여물어가고 뽕나무도 오디를 매달았다. 산딸기는 다음 차례를 준비하며 복숭아밭에 봉지를 씌우고 있다. 벚꽃을 대신하려는 듯 아카시아 꽃이 활짝 피어나 벌들이 찾아들어 잉잉거린다. 다소 수줍은 양 찔레꽃이 허여멀겋고 개망초꽃도 얼굴을 드러냈다. 나무마다 치맛자락처럼 펄렁펄렁 혈기왕성하다. 참나무숲은 더 무성하여 조금도 틈새를 드러내지 않으려고 한다. 인가조차 없는 도로는 활주로처럼 길게 드러났는가 하면 빠끔하게 새끼줄처럼 이어지면서 호젓하기도 하다. 길가에 울타리를 치고 있는 잣나무와 하늘을 찌를 듯싶은 메타스퀘이어다. 물 건너로 청남대다. 삼백여 년 괴목은 몸통 반쯤을 외과수술 받았다. 한때는 혈기왕성한 성황당 당산나무로 이곳 원주민의 애환을 꿰고 경외감에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할 터지만 화려하거나 당당함은 없고 허전하여 안쓰럽고 측은하다. 흘러간 뒤안길이 된 30여 년, 수몰 전 이곳에도 옹기종기 마을이 있었고 오순도순 살아갔으리라. 이제는 수몰민이라는 이름으로 모두 뿔뿔이 떠나가고 오로지 그들의 조상들만 묘로 남아 고향을 붙들고 있는가. 문전옥답은 저 시퍼런 물속에서 한마디 말이 없다. 이제 산 자의 고향이기보다 죽은 자의 고향이지 싶도록 적막하다. 한가로움에 잠기고 여유가 깃들어 멋들어져 보이기도 한다. 굽이굽이 돌다 보면 닥나무도 있고 호수 너머로 그림 같은 빨간 집, 저곳이 한때는 한지마을로 불렸단다. 피를 멈추게 한다는 피막이풀에 금세 나팔 소리라도 들려올 성싶은 연분홍 메꽃을 천연덕스럽게 바라보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