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2. 첫 실천
한 정거장 일찍 내리기
뇌가 뛰고 위장의 역동이 느껴진다
작년 페이스북의 첫 포스팅은 이렇게 세 줄이었다. '술자리가 있는 날은 차를 두고 다니자' 이것이 새해 목표였다. 그러나 한 정거장 걷기는 계획과는 상관없이 무심코 벌어진 일이다. 집에서 회사까지는 한번 환승해야 하는데 환승 후 이동 구간이 겨우 한 정거장이다. 그게 귀찮아서 그냥 내리고 걸은 거다.
그런데 회사에 도착할 무렵 살짝 아쉬운 느낌이 들었다. '5분 정도만 더 걸으면 좋겠는데...' 고작 15분이었지만 내겐 이례적인 경험이었다. 난 2011년부터 오롯이 차로 출퇴근하던 터라 10분 이상 걸을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상쾌한 기분이 뇌를 감돌았던 것은 분명 15분의 힘이었다.
'그 일' 이후, 다음과 같은 일들이 내게 일어났다.
1. 걷기가 습관으로 굳어졌다. 집에서 지하철까지 도보 30분. 춥지 않으면 매일 걷는다. 왕복이면 60분이다. 필 받으면 한 정거장 일찍 내리면서 하루 최대 90분까지도 걷는다.
2. 만성적인 어깨 결림이 사라졌다.
3. 소화기능이 좋아졌다. 여기까지가 걷기의 일반적인 효능일 것이다.
4. 30분 동안 걸으면서 두어 번 멈춰 선다. 메모장 앱(App)에 뭔가를 쓰기 위해서다. 걷다 보면 1차 기분이 좋아지고 2차 멍한 상태에서 뭔가 떠오른다. 걷기와 창의력에 대한 연구는 꽤 많다. 나의 기대 심리도 바로 이 지점에 있다.
5. 작년에 읽은 책이 66권이다. 이 중 반은 지하철에서 읽었다. 그 전년도까지 평균 독서량은 열 권 남짓. 여섯 배가 뛰었다.
6. 시쳇말로 술자리 벙개 참석이 늘었다. 차를 두고 나오니 심리적 여유가 생긴 게다. 사람을 많이 사귀겠다는 목표라기보다는 그저 재미다. 몰입의 대가 칙센트 미하이가 그랬다. "좋은 대화는 즉흥적으로 이루어지는 재주연주와 같다. 처음에는 원래 악보대로 연주하지만 점차 임의로 변주하면서 기가 막힌 새 작품이 탄생한다."
7. 심리적 측면에서 비교적 '정신 맑음'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걷기-책읽기-수다'가 일종의 마음 수련으로 느껴질 때가 있는데 그 에너지가 주로 어디로 가겠는가. 일이다. 그러니 우리 부장은 나에게 술값을 지원해야 마땅하다.
8. 가장 중요한 변화. 새로운 신념이 생겼다. '행동'이 계획을 이끈다. 다르게 표현하면 정교한 목표보다 '작은 실천'이 훨씬 더 중요하다. 요즘 뭘 해볼까 하는 습관이 생겼다.
이 8가지 결과가 고작 '15분 걷기'에서 시작됐다. 절대 견강부회가 아니다. 각각의 원인을 추적해보면 시작 '점'이 똑같다. 바로 이 '작은 점'에서 비롯된 결과들, 이것은 스티브 잡스가 말한 '점의 연결'과 같은 맥락이다.
점의 연결(connecting the dot)
스티브 잡스는 2005년 스탠포드 대학 연설에서 3가지를 얘기했는데 모두 통찰로 가득한 명문이다.
1. 점의 연결 : 모든 점(경험)은 10년 뒤에 연결된다.
2. 사랑과 상실 : 순간의 좌절을 이겨내면 더 큰 힘이 생긴다.
3. 죽음 : 남의 인생을 사느라 삶을 낭비하지 마라.
난 이 연설문을 2011년도에 봤는데, 한번 읽고 꽂혔다. 특히 세 번째 메시지. 이후 피디로서 가졌던, '피디는 수상 아니면 시청률 뿐'이라는 명제가 그럴듯한 착각이었다는 깨달음을 얻게 됐다. 과도한 실적주의는 남의 인생을 사는 지름길이다. 내 경험을 이십대에게 알려주고 싶다는 생각이 솟구쳤고 자연스럽게 집필로 연결됐다. 석 달 미친 듯이 썼다. 그 기분은 마치 초등학교 때 오락실 드나들던 마음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6시에 출근해서 8시까지 끄적거려서 나온 책이 <일생의 일(2013)>이다.
출판 이후 나의 관심은 첫 번째 메시지, '점의 연결'로 튀었다. 나의 실제 경험과 맞아 떨어지니까. 출판은 나에겐 '큰 점'이다. 물론 시작은 '작은 점'이었다. 다음과 같은 세 줄을 써놓고 책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10대는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수능에 매달리고,
20대는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해 스펙을 쌓지만,
정작 30대가 되면 다시 원점에서 꿈을 고민한다!
그 후에 나에게 일어난 일들을 다 열거할 수 없지만 무수히 많은 점으로 확대되고 연결되었다. 뿐만 아니라 집필 과정에서의 몰입경험과 출판을 '해냈다'는 성공경험은 지금도 나를 작가의 세계로 끌어당긴다. 이런 상태에서 작년에 또 엄청난 경험을 했다. 단지 15분 걸었을 뿐인데, 그것도 딱 한번!
저스트 두 잇 (Just Do It)
무언가를 '해냈다'는 경험은 맛본 사람만이 안다. '작은 성공경험'의 효과를 뒷받침하는 심리학 이론은 널려 있다. 자존감의 특효약이기도 하다. 작은 실천도 어쨌든 해냈으니 성공경험이다. '점의 연결'이 만들어 내는 환상적인 예술이야 내가 통제 할 수 없어도, 작은 점 하나 찍는 건 내가 충분히 할 수 있다. 작은 성공경험이라는 말이 부담스러우면 작은 실천도 좋다. 해냈을 때를 전제로 하니 결국 같은 말이다. 실천이라는 말이 부담스러우면 '○○하기(doing)' 정도도 괜찮다.
-자주 지각하는 사람이라면, 내일 한번만 한 시간 일찍 일어나기
-발표가 두렵다면, 손들고 질문 한번 하기
-다독이 새해 목표라면, 30분 책 읽어보기 혹은 하루 한 챕터 읽기
-물을 많이 마시라는 권유를 받았다면, 종이컵으로 매일 한잔씩 마시기
-사람들과 친해지고 싶으면, 일주일에 한번 먼저 안부 인사하기
이 정도의 실천이라면 할 만하지 않는가. 큰 의지력을 요구하지도 않으면서 습관으로 이끌고, 꼭 습관이 안 되더라도 예상치 못한 점으로 연결되면서 삶을 흥미진진하게 끌고 가니 말이다. 실제 유명인들의 인터뷰나 평전을 보면, 언제나 그들의 오늘을 만든 성공 사례가 나온다. 그런데 그 시작을 좇아가다보면 별 것 아닌 '작은 실천'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있다. 이게 바로 '점'이다. 나중에 어떻게 연결될지 그들도 몰랐겠지만.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은 실천의 아이콘이다. 고등학교 1학년 때 4주간의 미국어학연수(70년대 당시 일본에선 큰 유행이었다)를 마치고 유학을 결심한다. 초고속 월반을 통해 3주 만에 대입검정시험에 도전하는데, 문제는 미진한 영어실력이었다. 손정의는 시험 도중 용기를 내 감독관에게 영어 사전을 볼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한다. 외국인이 미국학생과 같은 조건으로 시험을 보는 것은 공정하지 못하다는 것이 핵심이었다. 비상식적인 행동처럼 보일 수 있지만, 당시 그는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을 했다. 결국 교육위원회를 감동시켜 요구를 관철해냈다.
대학에 가서는 경제적으로 독립하기 위해 특허를 통해 돈 벌 생각을 하게 된다. 그 때 목표가 하루에 발명 한 가지다. 굉장히 높은 목표지만 그는 이렇게 실천했다. 발명 노트에 하루에 하나씩 쓰기. 일 년이 되자 200개가 넘는 생각들이 채워졌다. 그 중 음성 전자번역기는 훗날 샤프사에서 상품화해 전자수첩의 원형이 됐다.
손정의의 이런 '닥치고 실천' 정신은 자연스레 소프트뱅크의 사풍으로 이어졌다. '일단 부딪쳐라.' 수익 모델 따지다가 기회를 놓치면 엄청난 문책을 받지만, 과감하게 사업을 추진하다 실패하면 인정을 받는 문화가 소프트뱅크의 힘이다.
1984년, 나이키는 리복(Reebok)에게 빼앗긴 1위를 탈환하기 위해 농구계의 파워 루키 마이클 조던을 후원하기 시작했다. 이듬해 조던은 신인왕의 자리에 오를 만큼 승승장구하고 나이키의 매출 곡선도 꾸준히 올라갔다. 그러다 결정적인 한 방을 날리는데, 1988년에 나온 'Just Do It(일단 해봐)' 슬로건이다. 이 캠페인성 광고 이후 나이키는 명실상부한 스포츠 브랜드 업계 1위로 등극한다. 그 일등 공신 역시 조던이다. 그는 광고 모델이 아닌 실생활에서도 광고 카피를 직접 실천해보였다. 이제 저스트 두잇 하면 조던이 떠오른다.
가장 유명한 일화가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야구 선수 생활을 시작한 것이다. 그 이유가 야구를 하고 있으면 어렸을 때 아버지와의 추억이 생각난다는 것. 아버지의 꿈도 야구선수였을 뿐만 아니라 못 이룬 꿈을 조던에게 기대하기도 했었다. 이런 낭만 효자가 또 없다. 조던은 마이너리그에서도 신통치 못한 선수로 활약하다 일 년 만에 다시 농구코트로 돌아왔다.
그는 시간을 허비한 걸까. 자신의 지난 행동을 성공으로 볼 것이냐 실패로 볼 것이냐는 어떤 관점이냐에 따라 달라진다. 조던은 분명 성공을 경험했다. 야구 선수가 꿈이었고 실제 야구선수를 했으니까. 성적을 연동시키는 것은 타인의 시각이다. 이 시기 가장 큰 소득이라면 조던 자신이 누군가의 꿈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점이다. 이후 행보 역시 범상치 않다. 시카고 불스로 복귀해서 3년 연속 우승을 이끌다가 구단주가 되는가 하면 다시 농구선수로 컴백하기도 했다.
조던이 점점 유명해지고 다양한 뉴스를 만들어 내면서 그의 어릴 때 에피소드도 주목을 받게 된다. '에어 조던'이라는 명성을 가져다 준 점프력의 비밀도 사실 한 번의 높이뛰기에서 비롯됐다. 조던은 고등학교에 들어갈 때만 해도 180센티가 안 될 정도로 키가 작았지만 농구에 대한 열의만큼은 그 누구보다 컸다. 중학교 시절 핸디캡을 극복하기 위한 아버지의 조언은 "높이뛰기 한번 해봐라"였다. 아버지 역시 "시도하지 않으면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할 만큼 대단한 실천가였다. 한 번의 높이뛰기 그리고 매일 매일의 연습 결과가 나중에 환상적인 점프력으로 나타난 것이다.
아쉽게도 조던의 어린 시절을 비디오로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상상해보는 건 어렵지 않을 거다. 높이뛰기의 바를 조금씩 올릴 때마다 흥분하며 좋아하던 소년 조던. 그는 한번만 하고 그만두기도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자나 깨나 머릿속엔 온통 높이뛰기로 채워졌을 테니 말이다. 이것이 바로 '작은 것 한번 하기'의 힘이다. 2015년, 반드시 해낼 수 있는 작은 목표 하나 정도는 어떨까? 억지로라도 말이다.
첫댓글 정교한 목표보다 작은 실천이 더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