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여름에 프랑스에 여행가서 당연히 루브르박물관을 들리고, 그 박물관 2층 외벽에 세
운 석상(?)들이 어떠한 인물들인지 궁금하였다. 몇몇만 피상적으로 알뿐 태반이 모르는 인물
들이었다. 그때 시간이 나면 알아보리라 하고 내 직접 사진을 찍어 왔다. 여태 잊고 있다가
이제야 알아본다. 앞으로 8회에 걸쳐 소개하고자 한다.
(인물 설명에 대한 출전은 제1편에 명기했다)
21. 장 르포트르(Jean Lepautre, 1618 ~ 1682)
프랑스 판화가. 앙투안 르 포트르의 형. 매우 다작가인 판화가로 2200점 이상의 작품이 알려
져 있고, 그중 약 반수는 건축물과 정원에 관계있는 감식적 모티브를 취급한 것들이다. 이것
에 의하여 루이 14세식의 제 측면이 유럽에 전파되었다.
22. 앙주 자크 가브리엘(Ange Jacques Gabriel, 1698 ~ 1782)
프랑스의 건축가. 자크 가브리엘 5세(Jacques Gabriel V, 1667 ~ 1742)의 아들로 아버지의
뒤를 이어 왕실 수석건축가로 재직했다.
퐁텐블로, 베르사유, 콩피에뉴 등 여러 궁전의 증개축 개장공사를 시행하였으며, 뮤에트, 샹
튀벨, 슈와지이 등 소이궁(小離宮)을 신축한 외에 파리의 콩코르드 광장(1772)과 군사학교
(1751 ~ 1756), 베르사유궁 안의 프티 트리아농(1762 ~ 1768) 등 18세기를 대표하는 우수
한 건축물을 남겼다. 그는 순수한 형태와 조화로운 비율을 중시하면서 신고전주의로의 길을
열었다.
23. 제르멘 필롱(Germain Pilon, 1525 ~ 1590)
프랑스의 조각가. 대리석과 브론즈에 의해 사실적인 동시에 유려한 작품을 남기고 있다. 퐁
텐블로에 있는 프리마티치오의 마니에리슴 풍인 작풍에서 시작하여 미켈란젤로와 폰토르모
를 연구해서 극적인 역동감을 가미했다. 1568년부터 궁정 조각가로 임명되어, 왕족의 묘비
상이나 초상 메달, 혹은 흉상을 제작했다. 국왕 앙리 2세(Henri Ⅱ, 재위 1547~59)를 위한
작품 『삼미신(三美神)』(1561, 루브르 박물관) 등이 있다.
24. 클로디옹(Claude Michel, dit Clodion, 1738 ~ 1814)
본명 클로드 미셀(Claude Michel). 프랑스의 조각가. 낭시에서 출생, 파리에서 사망. 1755년
파리에 가서 숙부 랑벨시지스벨 아담과 피가르에게 배움. 1759년 로마상 수상, 62~71년 로
마에 체재. 귀국 후 한때 낭시에서 살았으나 주로 파리에서 활약하였다. 『님프와 사티로
스』(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등,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제재를 따온 사랑스런 로코코풍의 작
품을 다수 제작했다.
25. 앙드레 르노트르(André Lenôtre, 1613 ~ 1700)
프랑스의 조경예술가. 튈르리 궁전 주임 조경사의 아들로 1637년 그 직위를 이어받아 왕궁
정원장이 되었다. 이탈리아식 정원을 좀 더 기하학적으로 정비하는 것과 동시에 유기적으로
구성하여, 궁전과 저택을 정원의 주축상의 1단으로 하는 장대한 스케일의 프랑스식 정원을
창조하였다.
튈르리 궁정원에 이어서 볼 르 비콘드 저택의 정원(1656 ~ 1661)을 설계하여 신기원을 이
루었다. 베르사유 궁전의 대정원(1662 ~ 1690)을 비롯, 생 제르맹 앙 레, 소, 샹티이 등 왕
실 별궁과 대저택 정원의 설계에 종사하였다.
26. 장 쿠생(Jean Cousin, 1490 ~ 1561)
프랑스의 화가. 동명의 장 쿠생의 아들로 퐁텐블로파 주변에서 활약했다. 부자(父子)가 스테
인드글라스 그림전문가로 일컬어져, 1563년의 국왕, 샤를 9세의(Charles Ⅸ, 재위 1560~
1574) 산스 방문시의 장식에 종사했다. 초상화나 『최후의 심판』(루브르 박물관)의 유채
화, 『변신담』(變身譚)(1570), 『이솝우화』(1582)의 동판화 삽화를 제작했다.
27. 앙투안 코와스보(Antoine Coysevox, 1640 ~ 1720)
프랑스의 조각가. 18세 때부터 궁정부 고미술감독관 밑에서 수업, 1666년 궁정 조각가가
됨. 1666~1671년 스트라스부르에서 제작, 1676년 이전에 파리에 정주, 동년 아카데미 회
원. 베르사유 궁의 그랑 갤러리 부조 장식이나, 『마자랭의 묘』(1689~1693, 파리 학사원)
등, 수많은 공적인 일을 남겼다. 작풍은 고전주의적이고 조각가 크스투 형제는 그의 생질이
된다.
28. 켈러(Gottfried Keller, 1819 ~ 1890)
스위스(독일계)의 시인ㆍ작가. 빈곤한 가정에서 태어나 1825년 빈민 학교에서 배우다가 퇴
학, 뮌헨에 나가 그림을 독학(1840~42) 뒤에 고향 취리히 정부의 장학금을 받고(1848~50)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문학ㆍ역사ㆍ철학 등을 배웠는데, 포이에르 바하의 감화를 받아 정
치에 관심을 보였으며, 한편 연애를 체험한 뒤 문학으로 전환했다. 19세기 독일 문학의 보옥
적 존재이며, 서정시인으로도 뛰어났다.
29. 앙드레 세니에(André Chénier, 1762 ~ 1794)
18세기 프랑스 최대의 시인이다. 관능적이고 정감 풍부한 시는 낭만주의 문학 운동의 선구
자의 한사람으로 자리 매김하고 있다. 공포정치가 끝나기 불과 3일전에, "국가 반역죄"을 선
고받고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오페라 작품 『안드레아 세니에』등에 거론되고 있다.
30. 아베르 프랑수아 포와송(Abel François Poisson, marquis de Menars et de Marigny,
1727 ~ 1781)
본명 아베르 프랑수아 포와송(Abel Francois Poisson). 프랑스 궁정 고관. 퐁파두르 부인의
동생으로 누님에 의해 궁정인이 되어 1749년에 건축가 스프로나, 판화가 코샹과 함께 이탈
리아를 여행하며 미술교육을 받았다. 1751년 귀국하여 숙부 르 노르망 드 투르느앙의 뒤를
이어 왕가 건조물 감독관이 되고, 로코코 풍조를 거슬러 역사화의 중요성을 주장했다.
또한 샤르댕, 비앙, 피가르 등의 예술가를 지지하고 루브르궁 개 · 증축과 고블랭직 공장발전
에도 힘쓰며, 1773년까지 재직했다. 미술품수집가이기도 했다.
첫댓글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네요....^^
저는 아는 사람이 앙드레 르노트르(Andr? Len?tre, 1613 ~ 1700) 뿐입니다.
직업훈련학교 조경과 다닐 때 알았죠.
조경사(시험에도 자주 출제되는)에서 반드시 거론되는 르노트르는 세계 조경계의 거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