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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3월19일(목), 조선왕릉 도장깨기 3탄, 서오릉을 갑니다. 개인적으로는 숙종의 여인천하를 볼 수 있는 곳으로 숙종을 위한 공간으로 기억되는 곳입니다.
10시30분에 지하철6호선 역촌역 2번출구 지하에 모여 707번 버스를 타고 10여분을 가면 서오릉에 도착합니다. 5개의 능(정릉, 창릉, 익릉, 영릉, 홍릉)과 원, 묘를 및 외곽의 서어나무길 등의 숲길산책로를 약3시간 동안 천천히 둘러보고 1시30분경에 나옵니다. 인근에 맛집이 많은데 주막보리밥서오릉본점에서 식사를 한 후 다시 역촌역에서 해산합니다.
▣ 서오릉(西五陵)은 ‘서쪽에 있는 5기의 능’이라는 뜻으로 구리 동구릉 다음으로 규모가 큰 조선왕실의 왕릉군이다. 1457년(세조 3) 세조의 첫째 아들 의경세자(추존 덕종)의 의묘(懿墓, 경릉)가 처음 조성되었고, 1470년(성종 1) 예종의 창릉(昌陵)이 왕릉으로서 최초로 조성되었다. 이후 순회세자의 순창원(順昌園), 인경왕후의 익릉(翼陵), 숙종의 명릉(明陵), 정성왕후의 홍릉( 弘陵)이 차례로 조성되어 조선시대에는 5기의 능과 1기의 원이 조성되었다.
그러다가 1970년대 영빈 이씨의 수경원(綏慶園)과 옥산부대빈 장씨의 대빈묘(大嬪墓)가 옮겨져 지금의 서오릉이 되었다.
▶ 경릉(敬陵) 이야기
경릉은 왕으로 추존된 덕종과 소혜왕후 한씨의 능이다. 경릉은 같은 능역에 하나의 정자각을 두고 서로 다른 언덕에 능침을 조성한 동원이강릉(同原異岡陵)의 형식이다. 정자각 앞에서 바라보았을 때 오른쪽 언덕(동쪽)이 덕종, 왼쪽 언덕(서쪽)이 소혜왕후의 능이다.
1457년(세조 3) 덕종이 세상을 떠나자 고양현 치소 동쪽(현재의 자리)에 묘(의묘(懿墓))를 조성하였다. 원래 이 자리는 태종의 둘째 아들 효령대군의 장인 정역(鄭易)의 묘가 있던 자리였으나, 의묘가 조성되면서 정역의 묘역은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 이후 덕종의 둘째 아들 성종이 왕위에 오른 후 경릉(敬陵)으로 높여졌다. 이후 1504년(연산군 10) 소혜왕후가 세상을 떠나자, 소혜왕후의 유교(遺敎)에 따라 경릉 근처에 소혜왕후의 능을 조성하였다.
일반적인 왕릉은 우상좌하(右上左下)의 원칙에 따라 앞에서 바라보았을 때 왕이 왼쪽, 왕비가 오른쪽에 모셔지지만, 경릉은 반대로 모셔져 있다. 덕종의 능은 왕세자묘로 조성되어 간소한 형식이고 소혜왕후의 능은 왕릉의 형식을 갖추고 있다. 이는 세상을 떠날 당시 신분이 덕종은 왕세자, 소혜왕후는 대왕대비였기 때문으로 보인다.
▶ 창릉(昌陵) 이야기
창릉은 조선 8대 예종과 두 번째 왕비 안순왕후 한씨의 능이다. 창릉은 서오릉에서 왕릉으로 조성된 최초의 능으로, 같은 능역에 하나의 정자각을 두고 서로 다른 언덕에 능침을 조성한 동원이강릉(同原異岡陵)의 형식이다. 정자각 앞에서 바라보았을 때 왼쪽 언덕(동쪽)이 예종, 오른쪽 언덕(서쪽)이 안순왕후의 능이다.
창릉은 1469년(예종 1) 예종이 세상을 떠나자 다음 해 의경세자의 의묘(경릉) 북쪽에 조성되었고, 1498년(연산군 4) 안순왕후가 세상을 떠나자 다음 해 창릉 동쪽 언덕에 능을 조성하였다.
창릉의 두 능침 봉분은 병풍석을 생략하고 난간석만 둘렀으며, 석물의 상설은 예종과 안순왕후의 능이 비슷하다. 예종의 능침 석상(혼유석)을 받치는 고석(鼓石)의 무늬는 일반 조선왕릉의 도깨비 무늬가 아닌 북고리가 조각되어 있는데 이는 조선왕릉 중 유일하다.
▶ 명릉(明陵) 이야기
명릉은 조선 19대 숙종과 두 번째 왕비 인현왕후 민씨, 세 번째 왕비 인원왕후 김씨의 능이다. 명릉은 같은 능역에 하나의 정자각을 세우고 서로 다른 언덕에 쌍릉과 단릉으로 조성한 동원이강릉(同原異岡陵)의 형식이다. 정자각 앞에서 바라보았을 때 오른쪽 언덕이 숙종과 인현왕후의 쌍릉이고 왼쪽 언덕이 인원왕후의 단릉이다.
명릉이 이곳으로 정해진 것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설화가 있다. 숙종이 하루는 평상복을 입고 민심을 살피기 위해 궁궐을 벗어나 어느 냇가를 지나가고 있었다. 그때 냇가에서 한 젊은이가 울고 있는 것이 보여 연유를 물으니, 갈처사(葛處士)라는 유명한 지관이 이곳에 무덤을 쓰면 좋다고 해서 땅을 파는데, 아무리 파도 물이 나와 어쩔 줄을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숙종은 그 지관이 장난을 쳤다고 여기고, 젊은이를 불쌍히 여겨 관청에 가서 쌀 300석을 받아올 수 있도록 적은 서신을 주었다. 그리고 지관이 살고 있는 허름한 오두막집을 찾아가 청년의 일을 따져 물었다. 그러자 지관은 “모르면 잠자코 계시오. 저 땅은 무덤자리로 들어가기도 전에 쌀 300석을 받고 명당자리로 들어가는 자리라오!”라며 따져 묻는 숙종에게 오히려 핀잔을 주었다. 그의 신통함에 놀라 자신이 국왕인 것을 밝히고, 훗날 본인이 묻힐 자리를 골라달라고 부탁하였다. 전해지는 설화에 따르면, 지금의 명릉 자리가 바로 신통한 지관 갈처사가 택한 입지라고 한다.
그런데 『숙종실록』에 1680년(숙종 6) 숙종의 첫 번째 왕비 인경왕후의 익릉을 공사할 때 숙종이 본인 능 자리를 지금의 명릉 자리로 미리 정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1701년(숙종 27) 인현왕후가 먼저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숙종은 허우(虛右, 오른쪽 자리를 비우게 함)제도를 참고하여 인현왕후의 능과 숙종 본인의 능 자리를 미리 공사하였고, 1720년에 숙종의 능을 이곳에 조성하였다.
명릉을 조성한 지 37년이 지난 1757년(영조 33)에 인원왕후가 세상을 떠났다. 인원왕후의 능자리에 대해서는 『숙종실록』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1713년(숙종 39) ‘명릉과 익릉 사이에 간좌곤향(艮坐坤向) 언덕이 있는데 후에 내상(왕비의 상)이 있을 경우 이 언덕을 쓰되, 명릉과 가까우니 정자각을 같이 쓰라’라는 내용이다. 이 내용은 명릉에서 400여보 떨어진 곳에 숙종이 미리 살아있는 왕비의 능 자리를 정한 것이고, 인원왕후 본인도 이와 같은 사실을 알고 명릉 곁에 묻히기는 원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1757년(영조 33) 인원왕후가 세상을 떠나기 한 달 전에 영조의 첫 번째 왕비 정성왕후가 먼저 세상을 떠나게 되었고, 영조는 정성왕후의 능(홍릉)과 영조 본인의 능 자리를 미리 공사하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영조는 또 다른 왕릉 공사에 대한 부담이 커지자, 명릉 바로 오른쪽 언덕인 지금의 자리가 길지(吉地)라는 대신들의 의견에 따라 지금의 자리에 인원왕후의 능을 조성하여 왕릉 공사에 드는 인력과 국고를 줄였다.
명릉의 능침 봉분은 병풍석을 생략하고 난간석만 둘렀으며, 석물의 상설은 숙종과 인현왕후의 쌍릉과 인원왕후의 단릉 모두 비슷한 모습이다. 능침 아래의 비각 안에는 2개의 표석이 있는데 왼쪽이 숙종과 인현왕후의 표석이고, 오른쪽이 인원왕후의 표석이다. 홍살문부터 정자각까지 이어진 향로와 어로 양옆에는 제향 때 제관이 걷는 변로(邊路)가 남아있다.
▶ 익릉(翼陵) 이야기
익릉은 조선 19대 숙종의 첫 번째 왕비 인경왕후 김씨의 능이다. 익릉은 1680년(숙종 6) 인경왕후가 세상을 떠난 후 이듬해인 1681년(숙종 7)에 고양 경릉(敬陵) 근처인 현재의 자리에 조성되었다. 능침 봉분은 병풍석을 생략하고 난간석만 둘렀으며, 숙종 초기에 조성된 능이기 때문에 석물의 크기가 크다. 정자각은 서오릉 내에 있는 정자각 중 유일하게 정전 양옆에 벽 없이 기둥을 세운 익랑(翼廊)을 설치하여 규모를 키웠다. 홍살문에서 정자각까지 이어진 향로와 어로는 직선으로 경사가 졌으며, 지형에 따라 중간에 계단을 설치하였다.
▶ 홍릉(弘陵) 이야기
홍릉은 조선 21대 영조의 첫 번째 왕비 정성왕후 서씨의 능이다. 정성왕후의 단릉이지만 석물의 배치는 쌍릉의 형식이다. 1757년(영조 33) 정성왕후가 세상을 떠나자 영조는 정성왕후의 능을 조성할 때 숙종의 명릉(明陵)의 예를 따라, 영조 자신의 능 자리를 미리 만들어 둔 허우제(虛右制)로 조성하였다. 석물 배치 역시 쌍릉의 형식으로 배치하였고, 비어있는 자리 정혈(正穴)에 십자(十字) 모형을 새겨 묻었다. 그러나 1776년 영조가 세상을 떠난 후 영조의 능 자리에 대한 대신들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아, 여러 차례 논의 끝에 정조는 효종의 옛 영릉 자리인 지금의 동구릉 내 원릉(元陵) 자리로 결정하였다. 이로 인해 앞에서 봤을 때 홍릉의 왼쪽 자리가 지금도 비어있는 모습으로 남아있게 되었다.
홍릉 능침의 봉분은 병풍석을 생략하고 난간석만 둘렀으며, 난간석에는 능의 방향(을 ‘乙’, 신 ‘辛’)만 새겨져 있다. 홍릉의 무석인은 투구와 등에 장식이 많이 되어 있다. 뒷면에는 문양이 촘촘히 넣어져 있는 목 가리개를 위로 올렸다. 갑옷의 등 부분에는 물고기 비늘무늬가 조각되어 있고, 가슴 부분은 구름 모양을 새겼다.
▷ 순창원(順昌園) 이야기
순창원은 조선 13대 명종의 첫째 아들 순회세자와 공회빈 윤씨의 원이다. 순창원은 한 봉분에 왕세자와 왕세자빈을 같이 모신 합장의 형식이다.
1563년(명종 18) 순회세자가 세상을 떠나자, 고양 경릉(敬陵) 근처인 현재의 자리에 묘를 조성하고 순회묘(順懷墓)라 불렀다. 1592년(선조 25) 공회빈 윤씨가 세상을 떠나자 장례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임진왜란이 일어나면서 장례를 치르지 못하였다. 선조는 궁궐 후원에 시신을 임시로 묻으라는 명을 내렸고, 다시 시신을 찾으려 하였으나 찾지 못하였다. 이후 공회빈은 유의장(遺衣葬, 의복으로 장례를 치름)으로 순회묘에 합장되었고, 임진왜란이 끝난 후 순회세자와 같이 신주를 만들어 사당에 모셨다. 1870년(고종 7) 묘를 원으로 높여 이름을 순창원(順昌園)이라 하였다.
순창원은 추존 덕종의 경릉의 예로 조성되었으며, 봉분은 병풍석과 난간석을 모두 생략하였고 봉분 주변에는 문석인, 석마, 장명등, 석상(혼유석)과 석양과 석호 각 1쌍씩 배치하였다.
▷ 수경원(綏慶園) 이야기
수경원은 조선 21대 영조의 후궁이자 황제로 추존된 장조의 생모인 영빈 이씨의 원이다. 1764년(영조 40) 영빈 이씨가 세상을 떠나자 양주 연희궁 대야동(현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 연세대학교)에 의열묘(義烈墓)라는 이름으로 묘를 조성하였다. 1788년(정조 12) 무덤의 이름을 선희묘(宣禧墓)로 고쳤고, 1899년(광무 3) 사도세자가 장조로 추존되자 영빈 이씨는 황제의 어머니 지위(궁원제의 예)에 맞게 무덤을 원으로 높여 이름을 수경원이라 하였다. 이후 수경원은 1970년 현재의 자리로 옮겼다.
원침 봉분은 병풍석과 난간석을 생략하였고 봉분 주변에는 문석인, 석마, 장명등, 상석, 석상(혼유석), 망주석, 표석을 배치하였다. 봉분 앞에 있는 표석에는 ‘영빈전의이씨지묘’라 쓰여있다. 입구에는 대한제국 때 세운 표석(대한 소유영빈 수경원)이 있다.
▷ 대빈묘(大嬪墓) 이야기
대빈묘는 조선 19대 숙종의 후궁이자 20대 경종의 생모인 옥산부대빈 장씨의 묘이다. 1701년(숙종 27) 옥산부대빈이 세상을 떠나자, 이듬해인 1702년(숙종 28) 양주 인장리(현 구리 인창동)에 묘가 조성되었다. 그러나 묘소 자리가 불길하다 하여 1719년(숙종 45) 광주 진해촌(현 광주시 오포읍 문형리)으로 옮겼다가 1970년 이후 현재의 자리로 옮겼다.
대빈묘는 일반 후궁묘의 형식에 맞게 조성되었다. 봉분은 병풍석과 난간석을 생략하고 봉분 주변에 문석인, 망주석, 장명등, 상석, 향로석, 석상(혼유석) 등을 배치하였다. 봉분 앞에는 표석이 있는데 ‘유명조선국 옥산부대빈장씨지묘(有明朝鮮國玉山府大嬪張氏之墓)’라고 쓰여있다.
| 세부 일정 및 내용 | |
| ▶일 시 | 2026년 3월19일(목요일) 10 시 30 분 |
| ▶도보 코스 | ▷걷는 코스 : 서오릉 ▷걷는 거리 : 8 km ▷걷는 시간 : 3시간 내외 (휴식 포함) ▷걷기난이도 : 쉬움 ▷속도 - 초급 ▷ 고도 - 초급 ▷거리 - 초급 |
| ▶모임 장소 | ▷만나는 곳 : 전철 6호선 역촌 역 2번 출구 지하 ▷헤어지는 곳 : 역촌역 |
| ▶회 비 | ▷카페 찬조금 1천원(진행자 제외 모든 참가자) *찬조금은 참석 당일 출발지에서 내시면 됩니다 *발도행 리본 2천원 입니다. |
| ▶식 사 | ▷점심 : 걷기 후 매식 (주먹보리밥 서오릉본점) |
| ▶준비물 | * 약간의 간식(취식이 금지되어있으므로 간단히 당을 보충할 간식)과 식수 * 걷기와 계절에 알맞은 복장/ 동.하절기 대비 * 일기 불순 예보가 있으면 우의나 우산 * 오프로드 트레킹화나 등산화 착용. * 위생수칙 철저실천 * 스틱 및 장비는 필요없음 |
| ▶주의 사항 | * 도보중 일어나는 어떠한 안전사고에대해서도 카페나 카페지기.운영자및 진행자는 민.형사상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 개인의 안전은 각자에게 있음을 인지하고, 이에 동의하는 사람만 참가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참가신청한 분은 이에 동의하는 것으로 간주됩니다 * 이 프로그램은 여행자보험을 들지 않습니다. 필요하신 분은 개별적으로 가입하시기 바랍니다. ** 발도행의 걷기진행자는 모두 자원봉사자입니다. 늘 예의를 갖춰주시기 바랍니다 |
| ▶기 타 | * 참가신청 하신 분은 카페 내의 본인 개인정보 전화번호가 맞는 지 확인해주세요. * 개인정보는 운영자만 볼 수 있으며, 특별한 일이 있을 시 비상연락망이 됩니다. * 가급적 일회용품 사용을 줄여주시기 바랍니다. * 걷기 후 비공식행사인 식사(뒷풀이)가 있으면 ,1차에 한하여 진행자 비용을 참석자가 n/1로 나누어 부담합니다. * 발도행 표식과 단체걷기 주의사항 보기 : http://cafe.daum.net/way./bx08/4 |
| ▶진행 | 재터리 010 8769 6712, 총무 탱큐 010 5910 2234 |
| 참가 신청 방법과 순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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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참가1번/엘사/리수유/감사히 참석합니다~
참가1/엘사/환영합니다🤗
참가2/ 수니별 / 리수유 / 감사한 마음으로 함께 합니다
참가2/수니별/환영합니다 🤗
참가/마도로스/리수유/즐건맘으로 참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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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가4/레분/환영합니다.🤗
참가/배짱/감사합니다~
참가5/배짱/환영합니다.🤗
참가/ 보니/ 리수유/ 감사히 참가합니다.
참가6/보니/환영합니다.🤗
참가합니다. 감사합니다
참가7/옆집아저씨/환영합니다.🤗
참가합니다/소소행/감사합니다
참가8/소소행/환영합니다.🤗
참가/헬멧/리수유/오랜만에 참석 합니다
참가9/헬멧/환영합니다.🤗
참가/바람한점/리수유/서오릉 걸으러갑니다
참가10/바람한점/환영합니다.🤗
참가11/윤소/처음 함께합니다
참가11/윤소/ 어머. 반갑습니다. 환영합니다.🤗
🍀 재터리님 진행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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