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경환의 명시감상
배꼽
박성우
살구꽃자리에는 살구꽃비
자두꽃자리에는 자두꽃비
복사꽃자리에는 복사꽃비
아그배꽃자리에는 아그배꽃비 온다
분홍 하양 분홍 하양 하냥다짐 온다
살구꽃비는 살구배꼽
자두꽃비는 자두배꼽
복사꽃비는 복숭배꼽
아그배꽃비는 아기배꼽 달고 간다
아내랑 아기랑
배꼽마당에 나와 배꼽비 본다
꽃비 배꼽 본다
----박성우[배꼽]({애지}, 2008년) 전문
박성우 시인은 전북 정읍에서 태어났고, 원광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2000년도에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고, 시집으로는 {거미}와 {가뜬한 잠]을 출간한 바가 있다. 박성우 시인의 [배꼽]은 동화적 상상력에 의
해서 씌어진 시이기는 하지만, ‘배꼽’이라는 말이 시사해주고 있듯이, ‘우주창생 신화’에 맞닿아 있다고 할 수가 있다. 동화의 세계는 어린 아이의 세계이며, 어린 아이의 세계는 티없이 맑고 깨끗한 세계이다. 만일, 어린 아이의 세계가 티없이 맑고 깨끗한 세계라면 어른의 세계는 사악함과 교활함이 지배하는 세계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어린 아이는 모든 것을 사실 그대로 바라보지만, 어른들은, 다만, 자기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서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박성우 시인이 ‘동화적 상상력’으로 우주창생의 신화를 사유하고 있다는 것은 티없이 맑고 깨끗한 세계, 즉, 모든 만물들이 생성되는 그 최초의 세계를 사유하고 있다고 할 수가 있는 것이다.
배꼽이란 무엇인가? 배꼽이란,
1, (의학) 탯줄이 떨어지면서 배의 한가운데에 생긴 자리;
2, (식물) 열매의 꽃받침이 붙었던 자리;
를 말하지만, 그러나 그 배꼽은 역사 철학적으로 우주의 중심을 가리키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시 말해서, 배꼽이란 태아의 탯줄이 부착되어 있던 자리로, 어머니로부터 영양분을 섭취했던 자리를 말하지만, 그러나 중국문명, 인도문명, 페르시아문명, 이집트문명, 그리스문명 등이 시작되었던 세계의 중심, 즉, 우주의 중심을 가리키고 있다고 할 수가 있다. 내가 인터넷 백과사전에서 찾아본 결과, 김영균의 설명에 의하면,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중심지였던 바빌론에는 ‘두루--안키’와 ‘에--테멘--안키’라는 수많은 명칭들이 있었다고 한다. ‘두루--안키’란 ‘천지간의 끈’으로 인간의 탯줄에 해당되고, ‘에--테멘--안키’는 ‘천지의 받침집’이라는 뜻으로 태아의 방석 역할을 하는 태반胎盤을 뜻하게 된다. 바로, 이 지점에서, 더욱 더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면, 바빌론의 신들이 ‘밥--알라니’, 즉, ‘신들의 문’을 통해서 하늘로부터 지상으로 내려왔다는 사실일 것이다. 이 ‘신들의 문’은 ‘여성의 성기의 입구’를 의미하는 것이고, ‘신들의 입성’은 남근의 질내 삽입과 생명의 씨앗인 정자의 유입을 뜻하게 되는 것이다. 노자老子의 {도덕경}, 제6장에 나오는 ‘현빈지문시위천지근玄牝之門是謂天地根’도 마찬가지인데, 왜냐하면 ‘현빈지문’, 즉, 여성의 음부는 하늘과 땅을 낳는 생명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모든 문명의 발상지는 우주의 배꼽이며, 우주의 배꼽은 모든 생명들이 태어난 성지이기도 한 것이다.
만일, 그렇다면, 살구나무란 무엇이고, 자두나무란 무엇이란 말인가? 또한 복사나무란 무엇이고, 아그배나무란 무엇이란 말인가? 살구나무란 장미목 장미과의 낙엽소교목이며, 중국이 원산지이고, 오늘날은 미국이 최대의 생산지로 되어 있다. 꽃은 4월에 잎보다 먼저 피고 연한 붉은 색이며, 꽃자루가 거의 없고, 그 지름이 25mm~35mm가 된다. 꽃잎은 5개이고 둥근 모양이며, 수술은 많고 암술은 1개이다. 열매는 핵과이고 지름이 3cm이며, 7월에, 황색을 띤 붉은색으로 익게 된다. 살구에는 비타민 A와 천연당류가 풍부하여 한방의 약재로 쓰이는 것은 물론, 다양한 용도로 가공되기도 한다. 자두나무란 장미목 장미과의 낙엽교목이며, 자도나무와 오얏나무로 불리우기도 한다. 중국이 원산지이고, 그 키가 10m에 달한다. 꽃은 4월에 잎보다 먼저 피고 흰색이며, 열매는 달걀모양의 원형으로서 자연산은 지름이 2.2cm에 불과하지만, 개량종은 그 지름이 7cm에 달한다. 자두는 7월에 노란색, 또는 붉은색을 띤 자주색으로 익으며 과육은 노란색을 띄게 된다. 자두는 날것으로 먹기도 하고, 잼이나 파이 등으로 가공되기도 하지만, 오늘날 우리 한국에서 재배하고 있는 자두나무는 대부분이 서양의 자두나무로서, 1920년대 이후부터 재배하게 되었다고 한다. 복사나무(복숭아나무)는 장미목 장미과의 벚나무이며, 원산지는 중국이고, 사과나무와 귤나무와 감나무와 포도나무 다음으로 많이 재배하는 과일나무라고 할 수가 있다. 꽃은 4~5월에 잎보다 먼저 피고, 창방조생, 백도, 대구보, 천도 등, 전세계적으로 약 3,000종이 재배되고 있다고 한다. 아그배나무는 산에서 자생하는 배나무이며, 그 구슬크기의 작은 열매를 아그배라고 한다. 아그배는 그 맛이 시고 떫어서 식용으로는 가능하지가 않다(아그배 나무에 대해서는 국어사전에도, 백과사전에도 더 이상 자세하게 나와 있지 않다).
때는 만물이 생성하는 봄이고, “살구꽃자리에는 살구꽃비”가 내리고, “자두꽃자리에는 자두꽃비”가 내린다. 또한 “복사꽃자리에는 복사꽃비”가 내리고, “아그배꽃자리에는 아그배꽃비”가 내린다. 모든 꽃들은 수정이 끝나면 그 임무를 마치고 산산이 흩어지게 마련이지만, 그러나 그 수정이 끝나기 전에는 결코 떨어져 내리지 않는다고 한다. 인간의 본능은 두 가지로 설명할 수가 있는데, 첫 번째는 자기보존본능이고, 두 번째는 종족의 본능이다. 자기보존본능은 삶의 본능이고, 종족의 본능은 죽음의 본능이다. 삶의 본능은 자기 자신의 생명을 보존하는 본능이며, 죽음의 본능은 새로운 생명을 탄생----끝끝내 자기 자신을 희생시켜서라도----시키려는 본능이다. 꽃은 삶의 본능의 완성이며, 낙화는 죽음의 본능의 완성이다. 따라서, “살구꽃자리에는 살구꽃비/ 자두꽃자리에는 자두꽃비/ 복사꽃자리에는 복사꽃비/ 아그배꽃자리에는 아그배꽃비”가 내린다는 것은 그 종족의 명령을 완성하고 아름답고 장렬하게, 또는 아름답고 황홀하게, 그 최후를 마치는 꽃들의 생애를 말한다. 살구꽃은 분홍색이고, 자두꽃은 하얀색이다. 복사꽃은 분홍색이고, 아그배꽃은 하얀색이다. 박성우 시인은 동화적 상상력의 소유자답게 살구꽃과 자두꽃과 복사꽃과 아그배꽃이 지고 있는 과수원에서, 그 꽃들이 산화하는 장면을 “분홍 하양 분홍 하양 하냥다짐 온다”라고, 더욱 더 아름답게 시적으로 표현해놓고 있다. 이때에 살구나무와 자두나무와 복사(복숭아나무)나무와 아그배나무가 동시에 피었다가 진다는 것은 상호 모순의 말일지도 모르는 데, 왜냐하면 그 나무들이 똑같은 공간에서 다같이 자라나고 있다는 것도 보기 드문 일이기 때문이고, 더, 더군다나 그 꽃들의 피고 짐(개화와 낙화)이 그처럼 일치하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나, ‘하냥다짐’이란 도대체 무슨 말이며, 무엇을 뜻하고 있는 것이란 말인가? ‘하냥다짐’이란 명사로서 일이 잘못되었을 때는 어떤 형벌----그것이 교수형이든, 총살형이든지 간에----이라도 달게 받겠다고 하는 대쪽같은 ‘다짐’의 말이라고 한다. 살구꽃자리에서 살구꽃비가 내리는 것도 우연이 아니고, 자두꽃자리에 서 자두꽃비가 내리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복사꽃자리에서 복사꽃비가 내리는 것도 우연이 아니고, 아그배꽃자리에서 아그배꽃비가 내리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삶의 본능(자기보존본능)이 죽음의 본능(종족의 본능)으로 이어지고, 죽음의 본능이 삶의 본능으로 이어지는 윤회(순환)과정 속에서, 그 어떤 생명체도 거역할 수 없는 필연적인 과정(하늘의 섭리)일 뿐인 것이다.
박성우 시인의 ‘하냥다짐의 정신’은 살신성인의 정신이며, 더없이 고귀하고 거룩한 희생정신이기도 한 것이다. 살구꽃도 그냥 지는 것이 아니고, 자두꽃도 그냥 지는 것이 아니다. 복사꽃도 그냥 지는 것이 아니고, 아그배꽃도 그냥 지는 것이 아니다. 살구꽃비는 살구배꼽을 달고 가고, 자두꽃비는 자두배꼽을 달고 간다. 복사꽃비는 복숭배꼽을 달고 가고, 아그배꽃비는 아기배꼽(아그배배꼽)을 달고 간다. 배꼽의 자리는 하늘과 땅, 또는 부모와 자식이 이어진 자리이며, 어느 누구도 이 배꼽의 자리를 삭제해버릴 수는 없다. 인간은 어린 아이를 통해서 자기 자신의 유한성을 극복하게 되고, 어린 아이는 그 부모를 통해서 그 생명을 부여받고 끊임없이 새로운 미래를 열어나가게 된다. 사랑은 영생의 다이아몬드라는 말도 있고, 사랑의 한탄은 종족의 한탄이라는 말도 있다. 우주창생의 신화는 배꼽의 신화이며, 이 배꼽의 신화는 모든 생명들, 즉, 모든 종족들의 영원불멸의 신화이기도 한 것이다.
지구도 둥글고, 하늘의 별들도 둥글고, 우주도 둥글다. 이 지구와 하늘의 별들과 우주에는 중심과 주변이 없다. 중심과 주변, 문명과 야만을 나누고, 가르고, 대립시킨 것은 지극히 인위적인 짓에 지나지 않으며, 타자의 주체성을 인정하지 않은 흑백의 논리, 즉,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에 지나지 않는다. 박성우 시인이 거닐고 있는 ‘배꼽마당’은 그의 고향인 전라도 정읍이거나 그가 현재 거주하고 있는 전주부근의 교외지역임이 틀림없을 것이다. 그 ‘배꼽마당’은 ‘천지간의 끈’으로 이어져 있고, 또한, 그 배꼽마당은 그들의 태반의 방석역할을 하는 ‘천지의 받침집’ 위에 있다. 이 배꼽마당, 이 우주의 중심에는 살구나무와 자두나무가 자라나고, 또한, 복사나무와 아그배나무가 자라난다. 또, 그리고, 아내와 내가 살아가고, 그 아내와 나의 자식인 어린 아기가 살아간다.
과연, 어떻게
살구꽃자리에는 살구꽃비
자두꽃자리에는 자두꽃비
복사꽃자리에는 복사꽃비
아그배꽃자리에는 아그배꽃비 온다
분홍 하양 분홍 하양 하냥다짐 온다
라는 시구에서처럼, 즐겁고 기쁘지 않을 수가 있겠으며, 또한, 어떻게
살구꽃비는 살구배꼽
자두꽃비는 자두배꼽
복사꽃비는 복숭배꼽
아그배꽃비는 아기배꼽 달고 간다
라는 시구에서처럼, 즐겁고 기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때는 만물이 생성하는 봄이고, 살구나무와 자두나무와 복사나무와 아그배나무는 모든 사물들의 총체이며, 아내와 나와 어린 아기 역시도 모든 생명들의 총체이다. 왜냐하면 모든 사물들과 모든 동식물들이 저마다 그들이 태어나고 자란 우주의 중심에서 그 종족의 명령, 또는 종의 명령을 단 한 걸음도 생략할 수 없는 발걸음으로 충실하게 실천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성우 시인은 배꼽의 역사 철학적인 의미와 우주창생의 신화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 시인이며, 따라서 이 [배꼽]이라는 시를 순수한 우리 말과 그 동화(동요)적인 색채로 제일급의 명시로 연출해놓고 있는 것이다. 아주 가볍고 경쾌하면서도 천박하지 않고, 아주 소박하고 단순해보이면서도 돌부처의 마음마저도 사로잡을 수 있는 역사 철학적인 장중한 울림이 있는 것이다.
아내랑 아기랑
배꼽마당에 나와 배꼽비 본다
꽃비 배꼽 본다
옛 세대가 가고 새 세대가 살구꽃처럼 피어난다. 새 세대가 꽃비처럼 가고, 또다른 세대가 그 배꼽자리에서 살구꽃처럼 피어난다.
어린 아이는 아버지의 아버지이고, 어머니의 어머니이다. 어린 아이는 부처의 부처이고 예수의 예수이다. 이처럼 최초의 인간이며 최후의 인간인 어린 아이들----, 우리 인간들은 그 어린 아이들의 힘으로 푸르고 푸른 빛을 잃지 않고 역사의 힘찬 수레바퀴를 몰고 갈 수가 있다. 어린 아이의 탄생은 삶의 본능의 옹호의 결과이며, 즐거운 성교의 결과이다(반경환, {행복의 깊이}, 제6장 [신생의 넋]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