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적 폭력성이 다시 표면화되는 분위기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정말 숱한 폭력을 경험하게 됩니다. 스스로 폭력을 행사할 수도 있고 폭력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생활속에서도 숱한 폭력이 존재합니다. 한 가정속에서도 폭력은 너무 싫지만 아주 중요한 자리에 위치해 있습니다. 사사로운 언어폭력에서부터 시작해서 물질적인 폭력까지 다양합니다. 폭력성이 사라진 아주 평화로운 상태속에 바라보면 정말 폭력의 대 평원이 우리네 가정집일 지도 모릅니다. 물론 요즘은 1인가구가 급증하니 가정적 폭력행위는 줄어들었을 것입니다. 달리 생각해 보면 인간들은 원래 폭력적이었을 것입니다. 현존하는 인간의 조상인 모호 사피언스도 대단한 폭력적인 집단임이 분명합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생존할 가능성이 적었을테지요. 환경생태학자들은 말합니다. 현 인류의 조상인 호모사피언스가 활동했을 당시 다른 부류의 원시 인류가 여럿 존재했다는 것입니다.하지만 태생이 평화롭고 깔끔하고 비폭력적인 부류는 폭력적이고 이기적인 성향을 지닌 호모 사피언스를 당할 수 없어 도태되었고 살아남은 호모 사피언스의 그런 유전자가 아직 현 인류에 그대로 전해져 폭력적인 세상이 형성되었을 것이라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습니다.
폭력은 우리 주변에 널리 퍼져 있습니다. 주변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정신세계에도 깊게 잠식해 있습니다. 폭력은 분노라는 상황에 도달하면 밖으로 도출됩니다. 친구간에 이웃간에 아니 가족내에서도 그 폭력은 갖가지 방법으로 포진하고 있습니다. 이런 폭력을 우리는 개인적인 폭력이라고 부릅니다. 조금 범위를 확대하면 학교 폭력이나 사회폭력으로 변합니다. 뭔가 자신보다 신체적 정신적 그리고 성적면서에 뒤진 학생들을 집단으로 아니면 개인적으로 폭행하는 사회적 폭력말입니다. 폭력으로 생활을 영위해 나가는 조폭들도 이런 부류에 속합니다. 사회적인 문제가 되는 폭력을 사회적 폭력이라고 칭합니다.
더욱 범위를 넓혀보면 국가적 폭력행위가 가능합니다. 체제에 저항하는 무리들을 국가라는 이름으로 가하는 폭력행위가 대표적입니다. 그런 폭력세력들은 저항세력을 폭도들이라고 칭합니다. 폭도들이 사회질서를 해치고 파괴하는 행위를 저지르니 국가가 나서서 진압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45년 전 바로 오늘 (10월 16일) 일어난 부마항쟁이 대표적입니다. 부마항쟁후 10일후 박정희 군사독재 정권은 총탄속에 사라지고 맙니다. 10.26 대통령 저격사건 후 12.12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 군부세력은 다음해 광주와 전라남도 도민들이 중심이 되어 신군부독재체제의 퇴진과 민주 정부 수립을 요구하는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강력한 군사력을 동원해 무자비하게 진압합니다. 5.18 민주화운동은 10일 동안 지속되었고 무력 진압으로 인해 수백명의 사망자와 수천 명의 부상자가 발생했습니다. 바로 국가적 폭력의 대표적인 사건입니다.
국가적 폭력보다 더욱 잔인하고 희생자가 큰 것이 바로 국가간의 폭력입니다. 이른바 전쟁이라는 명분으로 저지르는 인간 살생 놀이입니다. 지금 자행되는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이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하마스 그리고 레바논 헤즈볼라 더 나아가 이란과의 일촉즉발 폭력놀이가 대표적인 국가간 폭력행위입니다. 국가간 폭력행위의 피해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히틀러에 의한 세계 2차대전에서 인명희생은 수천만 명에 이릅니다. 그야말로 특정 인간들이 자행하는 폭력행위로 인해 지구상 수많은 나라와 그 국민들이 영문도 모른 채 국가간의 폭력에 희생당하고 맙니다.
지금도 제 2의 제 3의 히틀러를 꿈꾸는 세계의 폭력자들은 제 3 제 4의 세계대전을 머리속에 그리고 있을 지도 모릅니다. 아니 그럴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중동지역을 제패해 자기들이 숭배하는 하느님의 세계로 만들겠다는 이스라엘의 네타냐후도 그런 인물일 가능성이 높으며 대만을 장악해 중국몽을 반드시 실현시키고 말겠다는 중국의 시진핑도 유사한 인물로 분류됩니다. 어떤 희생을 치르고라도 오로지 미국만이 세계의 정상자리에 당당하게 군림하게 만들겠다며 전세계를 향해 거대한 철책을 세우려는 미국의 공화당 트럼프 후보도 마찬가지 성향의 사람이라고 평가됩니다. 전세계적으로 폭력이 더욱 난무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지는 것이 바로 지금의 지구가 처한 현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폭력이 난무하는 세상에 이번 스웨덴 한림원이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한국의 한강 작가를 선정한 것은 매우 뜻깊은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한림원은 "한강 작가의 작품은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 생의 연약함을 드러낸 강렬한 시적 산문이다"라며 선정 이유를 밝힌 것에서도 잘 나타납니다. 역사적 트라우마는 개인적 폭력에서부터 사회적 폭력 그리고 국가적 폭력 나아가 국가간 폭력이 남긴 그 트라우마일 것입니다. 인간의 폭력적 행위에 맞섰다는 의미가 담긴 것으로 풀이됩니다. 특히 한반도 내부에서 민족끼리 칼을 마구 휘둘렀던 그 과거와 북방민족과 남방민족이 끊임없이 침략해 남긴 폭력적 트라우마 그리고 근 현대사에서 한반도인들이 당한 4.3사건 ,여순사건 그리고 한국전쟁, 한반도의 분단, 5.18 광주민주화운동 등등 그 폭력적 역사적 트라우마가 한반도인을 얼마나 피폐하게 했고 육체적 정신적인 고통을 남겼는지 모릅니다. 스웨덴 한림원은 상대적으로 어린 여성작가가 그 험한 폭력적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선 그 용기와 작품성에 찬사를 보낸 것입니다
노벨 문학상을 접한 한강 작가의 자세가 또 한 번 깊은 인상을 남깁니다. 수상 소감을 대신 전한 한강 작가의 부친인 소설가 한승원 선생은 "날마다 주검이 실려나가는데 무슨 잔치를 하고 기자회견을 하겠습니까"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국가간 폭력으로 지금 이 지구상에는 매일 수많은 인명이 희생당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가진 그 폭력성을 작품화했지만 한강 작가는 그런 인간의 잔혹한 폭력성이 제발 소설속에만 존재하는 그런 상황이 되기를 바라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채식주의자> ,4.3사건을 다룬 <작별하지 않는다>, 5.18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소년이 온다>라는 작품을 다시는 쓰지 않아도 되는 그런 폭력이 없는 세상을 희구하고 있을 것으로 저는 생각합니다.
2024년 10월 16일 화야산방에서 정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