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순간에 터진 홈런과 시원한 끝내기 안타가 참 보기 좋았지만, 제 경기 잡담이 언제나 그렇듯 (그리고 개인적인 야구 취향에 따라) 오늘도 김재영 얘기 먼저 합니다. 오늘 승리투수는 정우람이고 위기에 빠진 팀을 구한 건 중심타선이지만, 승리의 밑바탕에는 김재영의 호투가 있었습니다. 리그 최강팀과의 경기, 본인에게 강한 좌타라인과의 어려운 승부, 초반에 빼앗긴 선취점...어려운 요소가 많았는데 7회 2사까지 던진 93개의 공 중 61개를 스트라이크존에 넣으며 버텼습니다. 맞습니다. 선발은 그렇게 던져야죠.
양현종 김광현같은 공을 던질 수 있는 투수는 많지 않습니다. 모든 투수는 약점이 있고 기복도 있어서 늘 제구가 흔들리고 구위가 약해지죠. 주자가 나가면 흔들리기도 하고, 본인이 어려워하는 성향의 타자와 만나면 필요 이상으로 어깨에 힘을 넣다 제 풀에 무너지곤 합니다. 에이스가 아닌 <그저 그런> 수많은 투수들이 그 벽을 넘지 못하고 프로에서 사라집니다. 하지만 오늘 김재영은 그 벽을 넘었네요. 본인의 약점대로 좌타자에게 안타도 맞고 출루도 허용했지만 경기 초반의 부진을 극복하고 종반까지 자기 공을 던졌습니다. 그게 바로 선발투수죠. 앞으로도 계속 그런 공을 던져주기 바랍니다.
안영명-서균-송은범으로 1.1이닝 4실점을 기록했습니다. 매우 강력했던 최근 우리 불펜 모습을 감안하면 충격적인 결과처럼 보이죠. 하지만 사실 그렇게 큰 일은 아닙니다. 두산 타선이 원래 강하고 시즌 치르다 보면 필승조가 불지르거나 마무리가 블론하는 게임은 늘 나옵니다. 특히 올해는 리그 전체적으로 불펜 방화가 마치 유행처럼 번지고 있기도 하고요. 괜찮습니다. 그럴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불펜의 방화 과정이 어떠했는지 돌아보고, 그 실패가 팀에 혹시라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인지 파악하는 것인데, 아직 그런 조짐은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투수진을 쥐어짜지도 않았고 순서나 간격을 어겨가며 로테이션을 흔들지도 않았으니까요. 오늘 경기 빨리 잊고 내일 경기를 평소와 같은 마음으로 치르면 됩니다. 안영명도 송은범도 모두 경험 많은 선수들이니 서균까지 잘 챙겨서 내일을 준비하면 좋겠네요.
저는 동점상황에서 마무리 투수가 올라오는 것은 기본적으로 반대합니다. 다만 이미 경기가 연장으로 넘어간 상황이고 투수 소모가 많았다면, 그리고 우리가 말공격이어서 득점시 경기를 바로 끝낼 수 있다면 가끔씩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경기가 바로 그랬죠. 정우람을 아웃카운트 한개 남긴 상황에 등판시켜 5구만에 수비를 끝내고 피로가 쌓이지 않은 상태로 다음 이닝을 준비한 덕분에 이길 수 있었네요. 다만, 이런 선택을 자주 하면 안 되죠. 화요일 경기부터 투수들이 많이 등판했는데, (비록 투구수는 많지 않았으나) 내일과 모레 경기에서 이 부분을 잘 감안하기 바랍니다.
모르긴 해도, 3회 순식간에 5점을 뽑으며 경기를 뒤집어준 것이 김재영에게는 큰 힘이 됐을겁니다. 상대 수비의 실수를 놓치지 않았고 어부지리로 얻은 동점에만 그친 게 아니라 역전 적시타와 도망가는 홈런, 그리고 추가점을 올려주는 장타까지 한순간에 나왔습니다. 타자들이 이런 공격을 해주면 참 좋죠. 한동안 타선이 터지지 않아 고생했는데, 오늘 경기를 계기로 당분간 타선이 좀 원활하게 터져주면 얼마나 좋을까요. 문제는. 타자들이 그렇게 매번 필요한 순간마다 점수를 펑펑 내주지는 않죠. 그게 되면 맨날 이기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도 상대 에이스는 공략했지만 중반 이후 타자들이 갑자기 다른 선수가 됐죠. 워래 야구가 그렇습니다. 그 와중에 팀이 할 수 있는 건, 그저 잘 칠 확률 높은 선수들을 최대한 가깝게 붙여두는 것 뿐이죠. 모쪼록 내일도, 모레도 그 결과가 좋기를 바랍니다.
시즌 초 임팩트가 워낙 강렬했고 수비와 주루에서도 매우 좋은 활약을 보이는 선수여서 차마 대놓고 말은 못했지만, 호잉의 최근 경기는 확실히 예전같지 않았습니다. 멀티히트도 없었고 거의 매경기 안타 하나씩만 추가하는데 그쳤으며 (물론 안타를 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죠) 타점도 없었죠. 그런데 이틀 푹 쉬고 오늘은 아주 좋은 모습을 보여줬네요. 3회에 쳐낸 홈런도 반갑지만, 옆구리 투수에게 쳐낸 9회 동점홈런이 특히 더 기쁩니다. 치기 좋은 높이로 들어오긴 했지만, 어쨌든 그걸 놓치지 않고 쳐낸 건 호잉이니까요. 호잉의 여권을 빼앗을 것이 아니라, 그의 부모님을 대전에 오래 머무시게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김태균이 역대 298번째 홈런을 쏘아 올렸습니다. 85경기 연속 출루 기록을 세울때도, 4할에 도전할때도, 올스타전 홈런왕을 차지했을때도....매번 "제 기록보다는 앞으로 팀이 더 잘 되도록 하겠다"고 말하는 선수인데 이상하게 "개인 스탯만 관리한다"는 악플을 많이 받는 선수죠. 어제 쉬는 날인데도 타격감 안 좋은 후배 최진행과 단둘이 야구장에 나와 타격연습을 한 선수, 그리고 수년 전부터 한화이글스 선수들 아무나 붙잡고 "누가 훈련 제일 많이 하냐"고 물어보면 한상훈과 더불어 꼭 이름이 함께 언급되던 선수이기도 합니다. 그만큼 팀을 앞세우는데다, 무엇보다 타격 실력도 역대급인 선수죠. 이 선수가 아직 힘이 남아있을 때, 부디 팀이 다시 한번 가을야구를 치렀으면 좋겠습니다. 300홈런이야 넘기겠지만, 400~500홈런 칠 때까지 유니폼 입고 뛰어주지는 못할테니까 말입니다.
2008년 이후 처음으로 단독 2위가 됐습니다. 베이징올림픽 직전까지 단독 2위에 오르며 그 시즌 한국시리지를 꿈꾸던 팀인데 순식간에 무너진 것이 벌써 10년째네요. 아직 100경기 가까이 남았고, 한여름 장마철을 지나면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르지만, 부디 올해부터는 그 동안의 부진한 기억들을 조금씩 없앴으면 좋겠네요. 저는 아직도 한화이글스가 <원래 약했으니까 내려갈 팀>이 아니라 <원래 강했으니까 다시 그 시절로 가야 할 팀>이라고 믿으니까요.
첫댓글 마지막 문장.... 지립니다.
오랜만인거 같아요..
오늘 경기 잡담....
늘.. 잘 보고 있고..
경기 후 기다립니다
지난 몇년동안 상식밖의 경기운영과 배경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이제 정상적인 진짜 자리를 찾아가고 있는듯한 느낌입니다.
감동적인 멘트네요. 2008년 그 때의 분위기를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잘 되길 바랄 뿐입니다..
재영선수를 비롯해서 불펜진들 타자들 모두모두 고생많은 경기였네요! 승리하게 되어 정말 다행입니다.
남은 경기도 똘똘뭉쳐 지금처럼 잘 해나갔음 좋겠어요 ~~~
야구빼고 다 잘하는팀 에서 야구까지 잘하는 팀이란 말을 올시즌 부터 들었으면 합니다 사실 훈련이야 불펜 포수가 젤 많이하긴 하죠..농담입니다
그시절과 비슷한게.. 또 아시안게임 브레이크가 있을예정이라.. 그게 맘에 걸리네요. 그래도 그때랑 다른 점이라면 선수층이 훨씬 젊어졌다는거죠.
마지막 문장 ㅎㄷㄷㄷ
오늘 잡담은 읽으면서 소름이 조금씩 돋네요. 최애 태균이부터 마지막 마무리까지요~ 선수들도 행복하겠지만 함께 고생했던 팬들이 행복해하니 너무 기쁜 요즘입니다.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아몰랑 단독 2위 ㅎㅎ
항상잘보고 있습니다
이런 순위가 믿기지는 않지만
너무 행복하네요 ^^
언제나 믿고보는 1번선발님
호잉이 오랜 침묵을 깨고
홈런포 가동했네요.
14개 중 10개가
화요일!
호잉 화오잉 ♡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저는 일희일비하는 성격이라 아까 역전됐을때 또 기분이 마니 다운됐죠ㅡㅡ 근데 웬지 질거 같지는 않더군요 ㅎ 앞으로는 참을 인자를 더욱 새기면서 보도록 노력하려구요ㅎ 많이 배웁니다. 감사용~^^
아구 전 직관후 이제 집에 도착해서 선댓글 후에 조금이따 글읽을께요 너무 기다렸던 잡담이니까요^^
뒤지고 있던 경기를 9회 극적인 동점 홈런을 통해 연장으로 끌고 갔던 적은 최근 2~3년동안 몇번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다만, 결국 그렇게 연장가서 이기지는 못했었죠. 그런데 오늘은 달랐네요. 여유있게 이기다가 우리가 그토록 자랑하던 필승조가 처참하게 무너지며 역전을 당했지만 아웃카운트 1개 남기고 극적으로 동점을 만들며 결국 그 기세를 몰아 리그 선두 팀을 무너뜨리는 모습. 확실히 팀에 강력한 힘이 생긴 듯 합니다.
오늘 경기 잡담 잘 보고 있습니다.
매번 경기 끝나면 찾아보게 되는데.. 매일 글을 기대하는 건 너무 욕심이겠죠? ^^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여기서질문!!1번선발님은 아직도 울팀이 가을야구 어렵다보시나요?
네 저는 아직 가능성 높게 보지 않습니다. 우리는 (선발투수 또는 주전야수의) 부상이나 부진에 대응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물론, 가을야구를 보고 싶다는 팬심은 당연히 있습니다.
@1번선발 팬심은 숭고하고 그 팬심이 울팀이 날아오르는 원동력이라 믿어요 저는 올해 설사 실패할지언정 그 어느때보다 지금 행복했었다 말할수 있을꺼같아요^^
잘 읽었습니다 오늘 우리 불펜들 걱정안해도 되겠네요~~~~
2008년 기억나네요 베이징후에 류현진 승,패패패패, 류현진승,패패패패...올해는 아시안게임후에 더 힘내길 바래봅니다
호잉 부모님 기사를 봤는데, 이분들의 야구에 대한 시각이 무척 깊다고 느겼졌습니다. 응원은 하되 부담주지 않고, 그날의 경기 결과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어렵게 온 1군에서 다시 2군으로 내려가는 것도 야구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하시고...정말 멋지신 분들인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