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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8월 8일(화)
* 시작 기도
주님...
대상포진인줄 알고 몸을 피곤하게 하지 않으려고 최대한 몸을 아끼며 조심했었는데, 얼굴에 수포는 생기지 않고 여전히 계속 아파서 뭔가 이상하다 생각하고 다시 진료를 받았습니다.
그랬더니 대상포진이 아니라 부비동염으로 진단이 나왔습니다.
얼굴에 빈 공간이 몇 군데 있는데 그곳에 염증이 차게 되면 그렇게 통증이 심하게 된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염증을 잡는 약을 받아서 왔습니다.
이처럼 육신의 질병에 대한 진단을 잘못하면 육신이 고생하는 것처럼 영에 대한 잘못된 진단이야 두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영에 대한 진단은 영원의 문제이오니 더 각별히 주의 하게 하소서.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따라서 나는 죽고 예수로 부요한 자 되기를 원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행 19:23-41
제목 : 내가 바로 데메드리오입니다.
23 그 때쯤 되어 이 도로 말미암아 적지 않은 소동이 있었으니
24 즉 데메드리오라 하는 어떤 은장색이 은으로 아데미의 신상 모형을 만들어 직공들에게 적지 않은 벌이를 하게 하더니
25 그가 그 직공들과 그러한 영업하는 자들을 모아 이르되 여러분도 알거니와 우리의 풍족한 생활이 이 생업에 있는데
26 이 바울이 에베소뿐 아니라 거의 전 아시아를 통하여 수많은 사람을 권유하여 말하되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들은 신이 아니라 하니 이는 그대들도 보고 들은 것이라.
27 우리의 이 영업이 천하여질 위험이 있을 뿐 아니라 큰 여신 아데미의 신전도 무시당하게 되고 온 아시아와 천하가 위하는 그의 위엄도 떨어질까 하노라 하더라.
28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분노가 가득하여 외쳐 이르되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 하니
29 온 시내가 요란하여 바울과 같이 다니는 마게도냐 사람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붙들어 일제히 연극장으로 달려 들어가는지라.
30 바울이 백성 가운데로 들어가고자 하나 제자들이 말리고
31 또 아시아 관리 중에 바울의 친구된 어떤 이들이 그에게 통지하여 연극장에 들어가지 말라 권하더라.
32 사람들이 외쳐 어떤 이는 이런 말을, 어떤 이는 저런 말을 하니 모인 무리가 분란하여 태반이나 어찌하여 모였는지 알지 못하더라.
33 유대인들이 무리 가운데서 알렉산더를 권하여 앞으로 밀어내니 알렉산더가 손짓하며 백성에게 변명하려 하나
34 그들은 그가 유대인인 줄 알고 다 한 소리로 외쳐 이르되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 하기를 두 시간이나 하더니
35 서기장이 무리를 진정시키고 이르되 에베소 사람들아 베세소 시가 큰 아데미와 제우스에게서 내려온 우상의 신전지기가 된 줄을 누가 알지 못하겠느냐?
36 이 일이 그렇지 않다 할 수 없으니 너희가 가만히 있어서 무엇이든지 경솔히 아니하여야 하리라.
37 신전의 물건을 도둑질하지도 아니하였고 우리 여신을 비방하지도 아니한 이 사람들을 너희가 붙잡아 왔으니
38 만일 데메드리오와 그와 함께 있는 직공들이 누구에게 고발할 것이 있으면 재판 날도 있고 총독들도 있으니 피차 고소할 것이요
39 만일 그 외에 무엇을 원하면 정식으로 민회에서 결정할지라.
40 오늘 아무 까닭도 없는 이 일에 우리가 소요 사건으로 책망 받을 위험이 있고 우리는 이 불법 집회에 관하여 보고할 자료가 없다 하고
41 이에 그 모임을 흩어지게 하니라.
* 나의 묵상
그 무렵 에베소에서는 바울이 전한 예수 그리스도의 도로 인하여 적지 않은 소란이 일어났다.
데메드리오라는 은 세공업자가 있었다.
그는 은으로 아데미 여신을 모시는 신전 모형을 만드는 사람이었다.
이 일을 통해서 그는 여러 직공들에게 많은 돈을 벌게 해주었다.
그가 그의 직공들과 또 이런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불러 놓고 말하였다.
여러분들도 알다시피 우리는 이 일로 인하여 제법 많은 돈을 벌어 풍족한 생활을 하였다.
그런데 바울이라는 사람이 우리가 사는 에베소만 아니라 거의 아시아 전 지역을 통틀어 말하기를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은 신이 아니라고 전하였기 때문에 이미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돌아선 것을 여러분들도 보고 들었다.
이러다가는 우리의 생업만 위협 받을 뿐 아니라 사람들이 위대한 아데미 여신을 우습게 여길 위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아시아와 온 세계가 높이 섬기는 아데미 여신의 위엄 또한 땅에 떨어질 것이다.
데메드리오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분노가 차올라서 큰 소리로 외치기를 “에베소의 여신 아데미는 크고 위대하다.”고 하였다.
이 일로 인하여 온 시내가 소란스러워졌다.
군중들은 바울과 함께 다니는 마게도냐 사람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잡아서 한꺼번에 극장으로 끌고갔다.
그 때 바울이 그 소식을 듣고 군중 속으로 들어가려고 하였다.
하지만 제자들이 이를 말렸고 또한 아시아의 관리 중에 바울과 친하게 지내는 한 사람 역시 바울더러 극장에 들어가지 말라고 권하였다.
극장 안에서는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는데 어떤 사람은 이렇게, 다른 사람은 저렇게 외쳐대는 바람에 극장 안은 완전히 난장판이 되고 말았다.
모인 사람들 중에는 심지어 자기가 왜 그곳에 모였는지조차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태반이었다.
한편 유대인들이 알렉산더라고 하는 사람을 군중들 앞으로 밀쳐내자 군중들 중 몇 사람이 그를 다그쳤다.
그러자 알렉산더가 손짓으로 사람들을 조용히 시킨 후에 변명을 하려고 하였다.
그러자 군중들은 알렉산더가 유대인인 것을 알고 한 목소리로 ‘에베소의 여신 아데미는 크고 위대하다’라고 두 시간씩이나 외쳐댔다.
마침내 에베소 시의 서기관이 나와서 군중을 진정시키면서 말하였다.
“에베소 시민 여러분, 에베소가 위대한 아데미 여신의 신전과 하늘에서 내려온 그 신상을 지키는 곳이라는 것은 온 세상이 다 아는 주지의 사실이다.
이것을 부인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경솔한 행동을 삼가야 한다.
여러분이 이 사람들을 이리로 끌고 왔지만, 정작 이 사람들은 우리 여신을 모욕하지도 않았고, 신전에서 무엇을 훔치지도 않았소.
우리에게는 재판정도 있고 재판관도 있소.
그러니 만약 데메드리오와 그의 직공들이 누구를 고소할 일이 있거든 당사자들이 재판정으로 가서 옳고 그름을 가려야 할 것이오.
그 밖에 다른 무엇을 해결해야 한다면 공식적으로 민회에서 다루어야 하오.
만약 아무런 이유 없이 이런 소동을 일으킨다면 그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고 비난받을 위험이 있을 뿐이오.
다만 이 소동에 대해서 변명할 말이 없기 때문에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오.”
서기관은 이렇게 말을 하고 그 모임을 해산시켰다.
바울이 전했던 ‘사람이 손으로 만든 것들은 신이 아니며 오직 예수가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복음을 들은 사람들의 반응이 전혀 극과 극으로 나타난다.
에베소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이 두려워하며 주 예수의 이름을 찬양하면서 자신의 죄를 자복하였다.
그리고 수많은 마술쟁이들이 자기들의 목숨과도 같은 마술책을 가져다가 불에 살랐는데 이처럼 불에 태운 책을 값으로 따져보니까 은 5만이나 되었다.
이처럼 주의 말씀이 날이 갈수록 힘 있게 퍼져나갔다.
그런데 에베소에서 아데미 신상모형을 조각하여 파는 사업을 하는 데메드리오는 이와는 전혀 다른 반응을 보였다.
그는 자기와 함께 일하는 직원들로 하여금 적잖은 돈을 벌게 해주는 사장이었다.
어느 날 그는 직원들과 함께 이런 일을 하는 사장들을 불러 모아놓고 자기의 주장을 이야기한다.
바울이라는 사람이 전한 말로 인하여 에베소만 아니라 아시아 전역에 걸쳐 사람들이 바뀌고 있다.
그런데 이런 일로 인해서 지금 우리의 일이 아주 위협을 받고 있다.
이렇게 되면 에베소의 여신 아데미의 위엄도 땅에 떨어질 것이고 그와 함께 우리의 사업 역시 문을 닫아야 할 지경에 이를 것이다.
데메드리오의 말을 들은 직원들과 사장들은 속에서 분노가 치밀어 올라 견디지 못하고 큰 소리로 외쳐 말하기 시작하였다.
“에베소의 여신 아데미는 크고 위대하다.”
그들의 이런 반응은 그들의 생업이 위협을 받기 때문에 어쩌면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것이다.
바울 당시만 아니라 오늘날 역시 자기들의 생업이나 직장이 위협을 받아 소득이 떨어지거나 손해를 볼라 치면 사람들은 목숨을 걸고 시위를 하거나 집단행동을 한다.
그렇게 해서 자기들의 주장을 관철시키거나 더 많은 사람들의 동의를 구해서 세력을 확장시키고 그것이 그들의 힘이 되어 그들의 반대 세력에 대하여 힘으로 밀어붙이는 것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런 일은 쉽게 볼 수 있다.
정부가 노동자 위주의 정책을 펼치면서 사업을 하는 사람들의 입지가 점점 좁아진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사업가라고 하면 적어도 수십 명에서 수백 수천 명의 직원을 거느리고 사업을 하는 사람들을 일컬을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편의점이나 1-2명의 직원을 데리고 일하는 그야말로 소상공인들까지 다 사업가의 위치에 놓고 동일한 법을 적용하다 보니까 이들은 생업을 잃어버리기 일보 직전에 놓였었고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은 실정이다.
1-2명의 직원을 데리고 일하는 소상공인들은 사주(社主)라기보다는 사업자노동자라고 하는 것이 정확하다.
이런 사람들은 한 달 간 회사를 운영해도 직원들보다 더 적은 수익을 가져가는 것이 허다하다고 한다.
그래서 얼마 전까지만 해도 편의점을 비롯한 소상공인들이 모여 시위를 벌이고 자기들의 유익을 위하여 목숨을 걸고 단체행동에 나서는 것을 흔히 볼 수 있었다.
이것을 두고 어느 누가 그들에게 돌을 던질 수 있겠는가?
그들의 생업이 달린 문제요, 그들의 가족까지 생계가 달린 문제인데 말이다.
그러나 이런 일련의 예들처럼 이 땅에서 정부와 소상공인들, 사업자와 노동자들 간의 문제라고 한다면 이는 대화와 타협을 통하여 얼마든지 풀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위에서 언급한 생업이 달린 문제 앞에 부닥치면 그리스도인이라도 거기서 결코 자유하지 못하다.
아무리 예수를 잘 믿는 사람이라도 자기의 손해 앞에서 가만히 있지 못하고 분연히 일어나거나 손을 들어 대적할 것이다.
더 나아가 함께 할 수 있는 사람들과 연합하여 힘과 세력을 키우며 자신들의 요구를 어필할 것이다.
그런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생명의 문제가 아닌가?
생명이라 함은 단순히 육신에 붙어 있는 목숨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말한다.
다시 말하면 아담의 생명이 아니라 아들의 생명이다.
아들의 생명은 아무나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땅에 태어나는 모든 사람은 아담의 생명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것은 육신의 생명이며 자연적인 생명이다.
이는 예수를 믿는 자나 믿지 않는 자나 동일하다.
이처럼 아담의 생명으로 태어나서 그 생명으로 살아가다가 예수를 믿게 된다.
믿는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영생을 주신다.
(요 6:47)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그렇다면 믿는 것 곧 믿음이란 무엇인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단순히 교회에 나가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주님의 구속사건에 동참하여 그와 함께 연합하는 것을 의미한다.
(요 6:54)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위의 두 구절은 병행구절이다.
믿는 자는 영생을 얻는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얻었다.
따라서 믿는 것은 곧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하면 주님을 믿는 것은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것이다.
그렇다면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신다는 것은 무엇인가?
주님의 살과 피는 다름 아니라 참된 양식이며 참된 음료이다.
그것을 날마다 먹고 마시는 것이 영생 얻은 자의 모습이다.
그래서 주님의 살과 피 곧 생명의 말씀을 날마다 먹고 마시는 자는 주님 안에 거하고 주님은 그 안에 거하여 둘이 함께 아버지 안에 거하게 되는 것이다.
이로써 창세전 삼위 하나님이 거하시는 내재적 삼위일체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 자리는 현재적으로 임하는 영생이며 또한 하나님 나라이다.
이것이야말로 주님의 구속사건에 동참하여 주님과 연합하는 것이다.
이를 통하여 아들의 생명을 얻게 되는 것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벧전 1:23) 너희가 거듭난 것(위로부터 태어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이는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사람을 자연적인 생명인 아담의 생명에서 아들의 생명으로 거듭나게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참된 양식이요 참된 음료인 생명의 말씀이요 하나님의 말씀 곧 복음이다.
사람은 누구나 이 땅에 태어나서 반드시 죽는다.
그러나 아담의 생명으로 태어나서 죽는 것이야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이렇게 죽는 것은 얼마나 무가치하고 허망한가?
그래서 사람들은 이 땅에 사는 동안 자기 나름대로 가치 있는 일을 하고자 선을 행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위하여 행동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아무리 그런 선을 행하고 타인을 위하여 자기의 목숨을 내어주는 그런 사랑을 할지라도 거기에는 아들의 생명이 있을 수 없다.
아들의 생명은 오직 말씀과 성령으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나는 복음을 알기 전까지는 육신으로 살아가는 생업에 관심이 많았다.
나 자신이야 직장을 다니든 사업을 하든지 무조건 잘 되어야 한다는 마음에 열심히도 했지만,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면서 내 사업이 잘 되도록 구하였다.
목회를 시작했을 때도 나의 목회가 반드시 성공해야 하고, 내가 목양하는 성도들이 반드시 부자로 살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를 위하여 얼마나 부르짖으며 기도했는지 모른다.
여기에서, 내가 바로 데메드리오라는 명제가 성립된다.
자기에게 속해 있는 사람들의 생업이 위기에 몰리자 그것을 막기 위하여 단체행동 하는 것을 서슴지 않는다.
어떻게든 자기들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서는 물리적인 행동도 마다하지 않는 것이다.
예전에 나는 장사복음을 몰랐기 때문에 사업을 하는 성도가 어떤 사람에 의해서 억울하게 손해를 보게 되면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백방으로 돌아다니면서 함께 하였다.
이것이 해결되지 않을지라도 목사가 그것을 위하여 애쓰는 것을 보면 사람들은 감동을 받기도 한다.
그래서 그 사람은 내 사람 곧 목사의 사람이 된다고 생각하였다.
그런 나는 어떻게든지 성도들의 생업이 잘 되기를 위하여 기도하였고 또한 그렇게 되도록 옆에서 돕기도 하였다.
그런데 목사는 그런 사람이 아니란 것을 나중에 복음을 깨달으면서 알게 되었다.
먼저 목사에게 필요한 것은 복음이라는 총알이며 언제든지 이 총알을 발사할 수 있도록 장전하고 있는 것이 중요하였다.
그런데 나는 복음이라는 총알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였고 또한 그것을 가지지 못하였기 때문에 쏠 수 있도록 장전한다는 것은 언감생심이었다.
그런 나에게 통합복음이 찾아왔다.
정말 하나님의 은혜가 아닐 수 없었다.
그로부터 나는 이 복음의 총알을 장전하여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하였다.
듣는 사람들의 경우 처음에는 생소한 복음이며 들어보지 못한 복음이기 때문에 청량감도 있었고 신선하였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는 것은 곧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것은 내게 일어나는 어떤 일이든지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주시는 것임을 믿어야 함을 가르쳤다.
비록 내가 당하는 고난이 내 뜻에 맞지 않고 이해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그것이야 말로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며 그 심판을 받아들이는 것이 주님이 들어가신 무덤임을 선포하고 있다.
이런 십자가와 장사됨 그리고 부활이라는 통합복음을 전한 지 4년여가 지날 무렵 성도들 안에 복음에 대한 충돌이 오기 시작하였다.
그 충돌은 현실과 신앙의 괴리였다.
몸으로는 이 땅에서 고난 가운데 사는데, 목사인 나는 그것이 주님이 주신 심판이자 선물이며 그것을 받아들이고 무덤인 그 안에서 말씀을 묵상하며 날마다 주님과 함께 연합하면 그 안에서 반드시 생명을 얻는다는 것을 선포하였다.
성도들의 생각에는 문제가 생기면 기도해서라도 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신앙이며 기도 응답을 받는 것이 신앙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목사는 해결이 능사가 아니라 그 고난이라는 무덤 안에 들어가서 내가 죽어야 주님의 생명으로 다시 산다고 하니 선뜻 이해가 되지도 않았고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이런 이유로 교회에 큰 풍파가 왔다.
목사인 나는 그 풍파를 하나님의 심판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교회를 사임하였다.
복음을 알아버렸기 때문에 그 복음을 통해서만 영원한 생명이 있다는 사실을 이미 알아버렸기 때문에 그 무엇과도 타협하거나 바꿀 수 없었다.
나는 그 이후로 선교사로 나갔다.
그리고 베트남에서 지금도 이 복음을 전한다.
왜냐하면 복음 안에서만 생명이 나오기 때문이다.
나는 주님께 계속해서 질문한다.
주님, 제가 가는 길이 좁은 길이 맞지요?
사람들이 외면하고 떠나갈지라도 이 길이 주님이 원하시는 좁은 길 맞지요 하고 말이다.
나는 넓은 길을 원치 않는다.
비록 찾는 이가 적을지라도 진짜 생명의 길을 나누어주고 싶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비록 고난의 길이라 할지라도 주님과 함께라면 여기가 바로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나에게 주님이 말씀하신다.
그래, 종수야... 그 길이 내가 원하는 좁은 길이란다.
모두가 너를 떠날지라도 나는 너와 함께 한다.
주님이 주시는 감동에 내 마음은 깃털처럼 가벼워진다.
무덤 안에 있으면 가까운 친구들까지 다 떠나간다.
시편 88편의 시인이 그랬고, 욥이 그랬다.
욥의 경우 아내마저도 떠나갔다.
그리고 그를 위로한답시고 찾아온 친구들은 오히려 그의 복장을 긁어놓는 자들이었다.
나 비록 지은 죄가 많아 내게 주신 심판임을 믿기에 오늘도 겸손히 이 심판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언제일지 모를 길고긴 무덤의 터널을 지나고 있다.
그러나 그 어두운 길이 결코 나 혼자가 아닌 주님이 함께하심을 믿기에 외롭지 않다.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기에.....
* 묵상 후 기도
주님...
내 죄를 압니다.
결코 나로서는 씻을 수 없는 죄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 나아가오니 이 죄인을 불쌍히 여기사 주의 보혈로 날 씻어 정하게 하소서
주의 품으로 나아가오니 나를 받아주소서.
그곳으로 가기까지 걸림돌도 많고 낙심되는 일 많사오나 그것까지도 주의 은혜임을 알아 주님의 주권을 믿으며 담대히 주의 품으로 나아갑니다.
죄의 더러운 냄새가 나지만 먼저 주님의 보혈로 씻어 정하게 하시어 기꺼이 날 받아 주소서.
세상의 일들에는 대화와 타협을 통하여 풀어갈 수 있사오나 주님이 주신 복음에는 타협이 아니라 생명으로 나아감을 아오니 오직 주만 바라보게 하소서.
썩어질 이 몸뚱아리라도 주님께 드려 주님의 뜻을 이룰 수 있다면 나를 받아주소서.
주님, 사랑합니다.
주님을 찬양합니다.
내 영혼을 받아주소서.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첫댓글 정확한 진단을 통해 회복의 길로 가게 하신 주의 은혜에 감사하게 됩니다.
더욱 건강하셔서 주와 교제함의 은혜를 나누시고 영적으로 풍성한 삶 누리시길 기도합니다. ^^
감사합니다. 목사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