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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일, 음악을 틀어놓고 청소며 빨래를 하다가 전화를 받았다. "어머니, 담인데요. 형님이 후두염이래요..." 강경에 가 있는 둘째가 부산에 있는 제 형한테서 전화를 받았던 모양이다. 이미 연락을 받아 알고 있던터라 걱정을 할 정도는 아니지만 7월부터는 유조선을 타고 1년여의 해양실습을 나가야 할텐데 형님의 건강이 걱정이 된다는 그런 얘기다.
아마 초등학교 2학년 무렵이었던 걸로 기억되는 데 "사모곡"이란 드라마가 있었다. 정보석이 악역이었던 것으로 기억되는 데... 사극이라 말투가 사뭇 달랐다. "아버님, 어머님, 형님, 그러셨어요? 알겠사옵니다..." 뭐 이런 투의 대사가 계속되는 사극 드라마 말이다. 어느 날 퇴근을 해서 집에 오니 이 녀석 말투가 갑자기 바뀌어 있다. "어머니, 잘 다녀 오셨어요? " 로 시작해서 말투가 드라마 그대로다. 그래서 물었다. "너 엄마를 왜 갑자기 어머니라고 부르는 데?" 이 녀석 왈, "형님이 의당 그렇게 불러야 하는 데 형님이 안 하니까 저부터라도 그렇게 불러드려야죠!"... 이렇게 시작된 형님 호칭이 아직 형님이다. 큰 녀석은 23살 작은 녀석은 19살인데 그 모습이 참 보기가 좋다. 저도 여름방학에는 CJ연구소에 아르바이트를 나가게 될 거라며 월급 받으면 어머니 용돈도 드리겠다니... 휴일 아침에 혼자서 미소를 짓게 한다. 자식을 기르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가끔식 가슴이 울컥하게 만들 때가 있다. 그럴 때면 힘들고 어려운 시간, 도망가지 않고 살아온 일들이 다행이다 싶은 마음이 되는 게 아닐까? 세상의 부모들이란...
문득 어린이날에 깡패님이 올리신 딸래미 얘기가 생각나 답글을 써본다.
이 녀석 2월생이라 학교를 일곱 살에 들어갔다. 그런대도 많이 엉뚱하고 조숙한 면이 있어서 재미있는 스토리가 많았다. 학교에는 이미 형님이 4학년에 재학중이었고 게다가 이름들이 백두산, 백록담인 터라 주목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거기에다 전혀 평범하지 않고 엉뚱하니 매일이 사건의 연속이다. 하루는 선생님 전화가 왔다. "록담이 어머니, 록담이가 매일 지각을 하니 어떻게 하죠?" 저녁에 아이를 붙들고 물어봤더니..."아, 뭐 학교 가는 길에 양복점도 한 번 들러보고 한복집 옷도 구경하고, 장난감 가게도 들러보고..." 뭐 이런 식이다. 다시 타일러서 며칠 잠잠해지는가 싶었더니 다시 선생님 호출이다. 선생님 왈, "록담이랑 공부를 할 수가 없으니 집에 데려가세요." 이러신다. 퇴근하고 선생님을 집에 모셔다가(아이들 아빠가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어 그 곳에) 자초지종을 들어봤다. 그랬더니... "한 마디로 어이가 없어요. 야단을 치기에도 넘 우습고 엉뚱해서요. 학교 교실앞 수족관에 있는 금붕어를 건져서는 손바닥위에 놓고 어떻게 숨을 쉬는 지 본다고 하면서 말려죽이기도 하고, 수업시간에 없어져서 찾아보면 학교 뒷뜰 아저씨가 찌꺼기 모아놓고 소각하는 곳에 가서는 앉아있기도 하고, 데리고 들어와서 벌을 세워놓으면 한참 뒤에 아이가 안보여 찾으면 바닥에 벌렁 누워 있답니다. 그래서 왜 그러고 있냐고 물어보면 천장의 무늬가 어떤지, 몇 개인지 세어보는 중이랍니다.... 아이들 발표하라고 시키면 손 번쩍들어서 시켜보면 (오늘 아침에 도쿄역에서 이시하라교주가 사린 가스를 살포해서 어쩌구, 저쩌구... 또 노태우 대통령이 비자금을 어쩌구, 저쩌구...아이들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뉴스들을 소상히 전한답니다. 그래서 하도 어이가 없어서 너 집에가서 엄마랑 공부해라, 난 힘들어서 너하고 공부 못하겠다. 이러면 책상모서리를 꼭 붙들고선 학교 급식이 맛있어서 밥먹고 갈거예요. 이런답니다" 숨도 안 쉬고 이런얘기를 하시는거다. 휴~ 이런 얘기를 들을 때 엄마 마음이란 ... 그런저런 얘기끝에 선생님이 하시는 말씀"그런데 밉지가 않아요. 아이들이 많다보니까 통제하는데 힘이 들어서 그렇지 엉뚱한 아이들이 더 큰 녀석이 되더라구요.. 잘 기르면 괜찮은 놈이 될 거예요. " 이러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왕언니를 생각케하는 40후반의 인상좋고 푸근하신 여선생님이셨는데...
그러던게 엊그제 같은 데 벌써 다 자라 엄마를 걱정하는 아들이 되어서 늘 하는 얘기처럼 형제간에 서로 위할 줄 아는 아이들로 자라있다는 것으로 충분히 뿌듯하고 행복해지는 날입니다. 깡패님 빨리 쾌유하시구요!!
사진을 올릴 줄 몰라 보여드릴 순 없지만, 건강하고 훤칠한 대한의 남아들이랍니다.^ ^ 모두 행복한 주말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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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날씨는 흐리지만 언니의 잔잔한 글 을 읽으며 제 얼굴에 미소가 번집니다..살아가는 모습은 다 비슷비슷 한가봐요..성장하는 과정도 그렇고요...편안한 주말 보내세요~~~^^
다음번엔 산에 한 번 같이 가요. 내가 따라갈 수 있을 지 걱정이지만 좀 살살 데려가 줘요
우리애들은 어떻게 자랐나? 생각이 드는군요. 어렸을적 TV는 어린이 프로외에는 못보게 했고 그 흔한 학원은 문턱에도 못가게 했으며 하다못해 부인과의 대화도 꼭 존대를 했었지요. 따라서 아이들이 반말이 뭔지 몰라 한동안 골치아프기도 했던 아득한 시절같습니다. 이제 어엿한 성인이 되었으니 스스로 모든걸 결정하고 해결해 나아가도록 해라. 아빠의 자녀됨을 잊지 말고 부디 가문의 명예를 드날리거라. 따라서 학비도 첫 등록금만 대주고 나머지는 다 스스로 해결할 수 밖에 없는 그런 교육방침이었지요.그저 평범하게 자라온 아이들이건만 세상이 평범하지 않으니,마치 이 문화공간에서 쓰잘데없는 글이나 올리는 저처럼 말입니다.
시키는 것보다는 스스로 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아이들이건 어른이건... 자기 몫만큼 사는 거겠죠. 천성이든 노력이든...
에구 울 아들 생각하면 님 애덜은 이미 다 자란것 같네요. 그저 부럽습니다. 좋겠습니다 .록담이 어머니^^.
갑장이니 그 집 아들도 얼추 컸을 듯 한데요. 아이들이란 다 그저 그만하답니다.
후후 정말 엉뚱하고 밉지 않은 녀석이네요... 저도 록담이 같은 아이들 좋아하는데..... 든든하겠어요..... 다음엔 훤칠한 사진도 기대합니다
드뎌 보셨네요. 하루일 걱정했어요. 마니 아픈 것 같아서
걱정마세요... 소도 때려잡게 생긴 깡팬데 뭘 걱정하세여....
저번에 달무리 언니 가게에서 꺼내든 약봉지에 놀라서리~ 곧 나아서 여행간다 그럴줄 알았는데 여행신청도 안하고 그래서요
아이들 이야기를 하자면 한도 끝도 없지
맞아맞아! 끄집어 내자면 한이 없지. 정여에서 봐
ㅎㅎ나중에 손주들 앞에서 아비의 어릴적 얘기 들려주면 눈을 반짝이며 신기해하고 즐거워할것 같네요..엉뚱한짓 하는 사람이 나중에 크게된다는 말이 있으니 이거 시사랑님 한테 잘보여야 겠군요~~ㅎㅎ
지금도 이름 하나는 대따 크지요 백두산과 백록담.
아들없는 이들에겐 오늘밤에 이루어 지리라
거 맘대로 잘 안되는 얘기지요. 제겐 딸래미 얘기지만~
나의 어린시절을 보는것 같네요...
우리 막내아들 같네요. 엄마 생일선물에 빨간 고무장갑을 사다 주어서 이유를 물었더니 선물은 그사람에게 꼭 필요한것을 꼭사주는 것이 좋다고 엄마가 그랬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