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기도: 주님, 여긴 지리산 피정의 집 이라는 곳입니다. 둘째 아이 때문에 입양가족캠프에 오늘부터 3박 4일간 참여합니다. 성당에서 하는 곳이고, 숙박시설에 책걸상이 다 있고, 아이들이 자도 이용할 수 있게끔 스탠드가 있어서 너무 행복합니다. 제가, 여행이나 캠프 등을 와서, ‘묵상할 만한 곳이 있을까?’ 하며 걱정했었는데, 딱 주님이 예비해주시니, ‘날 만나러 와’ 라는 뜻이겠지요? 아침부터 장거리로 오고, 물놀이도 하고, 저녁 일정까지 하고는, 11시 다되가서야 잠든 막둥이 덕에 이 시간에 묵상을 시작하지만, 틈틈이 오늘 읽었던 말씀을 되새기며, 자리에 앉은 이 시간이 참 좋습니다. 이 곳에서도 많은 분들이 다녀가면서 예수님을 생각하며 교제했겠다 싶은 생각이 드니, 왠지 더 아늑하니 좋은 느낌입니다. 주님, 오늘도 종일 주님의 은혜로 하루를 보냈고 하루를 마무리 하려 합니다. 육은 피곤하나 영은 주님을 만날 생각하니 잠이 조금씩 깨는 듯도 합니다. 주님을 깊이 만나는 시간이길 기도합니다.
@말씀주해:
(14-15절) 심판을 약속하시고 반드시 일어날 일이지만, 또 반드시 귀환하도록 고향 땅에 그들을 다시 데려다 놓을 것이라고 약속하신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내신 주’ 가 아니라, ‘쫓겨 살던 북녘 땅과 그 밖의 모든 나라에서 그들을 이끌어 내신 주’ 라 부르며, 그 주님이 살아 계심을 찬양하며 맹세할 것이다. 주님은 그 날, 심판의 날이 올 것을 선포하며 말씀하신다.
- 사실, 망하면 망하는 것인데, 망하게끔 하시는 이유가 있다. 징계로 파멸시키지만 영원한 파멸을 위함은 아닌 것이다. 장사복음이 딱 그렇다. 죽긴 죽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죽어 장사되어야 그 곳에서 주님의 죽음과 장사됨과 연합이 가능하다. 죽을 것 같은 것은 아닌 것이다. 그런데 자꾸 죽을 것 같은 현상과 상황과 환경에 노출만 되도 불안하고 두려워하는 나약하기 짝이 없는 이다.
(16-18절) 어부는 고기를 잡는 자들이다. 사냥꾼은 사냥할 것들을 샅샅이 살펴보고 잡는다. 어부나 사냥꾼처럼 주님께서는 이 백성을 잡아낼건데, 그 이유는 그들의 죄악 때문이다. 주님은 모든 행실을 똑똑히 지켜봤고, 주님 앞에서 숨을 수도 없거니와, 그들의 죄악도 주님의 눈 앞에서 감춰질 수가 없다. 그들이 섬기는 우상으로 주님의 땅을 더럽히고, 주님이 약속하신 땅에 역겨운 우상들로 가득 채워놓고서는 섬기니, 주님은 백성들의 죄악과 허물을 두 배로 보복할 것이다.
- 십계명의 첫 계명과 두 번째 계명에 나온 것이 바로 이것이다. (첫째,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 둘째,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이렇게 첫 번째와 두 번째로 되어 있는 것만큼 주님은 이 두 계명이 참으로 중요했고, 이에 대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간과할 뿐 아니라 완전히 어기고 있었다.
- 물론, 율법을 지키는 것은 쉬운 일이라고 말할 수도 없고, 육을 가진 인간은 완전한 율법을 지킬 수도 없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마음인데, 마음이 전심으로 하나님을 경배하며 섬길 마음이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여기지 않았기에 나타났던 죄악들이라는 것이다. 이는 내가 하나님보다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우상 숭배하는 신이 많음이 드러나는 것과 같기도 하다.
(19-21절) (서목사님 주해 참고) 시의 형태를 갖춘 단편이다. 열방의 구원에 대한 예레미야의 비전(19-20절)과 하나님의 응답(21절)으로 구성되어 있다.
예레미야는 뭇 민족이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비전을 선포한다. “나의 힘, 나의 요새가 되시는 여호와여. 재난을 만났을 때 피난처가 되시는 이여. 땅 끝에서부터 뭇 민족들이 당신께 와서 아뢸 것입니다. ‘우리가 조상 적부터 모시던 것은 아무 데도 쓸모없는 엉터리 허수아비였습니다.’ ‘사람이 어찌 신들을 만들 수 있겠습니까?’ ‘사람이 만든 것이 어찌 신이 되겠습니까?’”(19-20절).
예레미야의 비전에 대해 하나님이 응답하신다. “보라, 내가 그들에게 가르쳐주겠다. 내 힘이 얼마나 큰가를 지금 당장 가르쳐주겠다. 그제야 그들은 내 이름이 여호와인 줄 알 것이다”(21절).
그들이 애굽에서 나와 들어간 약속의 땅은 궁극적으로 하나님 나라를 예시한다. 그들이 쫓겨났다가 다시 들어간 약속의 땅 역시 궁극적으로 하나님 나라를 예시한다.
- 아버지 집에서 아들에게 주신 이 영광을 보는 자! 그는 비로소 우상의 실체를 알고 거기에서 벗어난다. 사람이 만든 우상은 아무 쓸데없는 엉터리 허수아비임을 알게 된다. 하나님의 영광으로 충만할 때 우리가 부여잡고 섬긴 우상들이 사망으로 이끄는 썩은 밧줄임을 알게 된다. “아, 생명이 없는 존재물들이 어떻게 신이 될 수 있겠는가? 어떻게 그것을 신으로 섬기겠는가?”라고 하며 탄식한다. 오직 하나님만이 참 신이며 여호와임을 알게 된다. “오직 여호와는 참 하나님이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이시요 영원한 왕이시라”(10:10).
@나의 묵상 및 기도: 끝까지 샅샅이 뒤져서라도 반드시 심판하여 죄악을 멸하셔야하는 하나님의 마음과 내가 부여잡고 섬긴 우상들이 사망으로 이끄는 썩은 밧줄인 줄을 알면서도 놓지 못하는 마음. 나는 이 사이에서 언제까지 갈등하고, 언제까지 힘들어하려나?
이는 마치, 주님이 심판의 자리인 무덤으로 부르셨는데도, 내가 내 무덤을 파고, 주님과 연합하지 않으려 아등바등하는 것과도 같고, 무덤 안에서 장사하려고 무덤 안에 누웠지만 죽기는 싫어해서 발버둥 치는 것과도 같다.
이는 내가 ‘복음에서 생명으로’ 라고 고백하지만, 실상은 아직도 묵상의 자리보다는 다른 것을 선택하는 것을 보면 알고, 핸드폰 볼 시간은 있어도 말씀 보는 것에는 온전히 집중하기 싫어하는 것을 보면 알고, 내 마음이 주님을 두려워하는 것보다는 사람의 어떤 반응들을 살피고 걱정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으며, 주님을 어찌하면 더 잘 믿고 사랑할까의 생각보다는 지금에 당면한 문제들이나 어려움들을 어찌하면 잘 처리할까를 더 많이 생각하는 것을 보면 알 수가 있다.
그러니 이스라엘 백성들을 심판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된 민족들에게도 주님은 기회를 주시는데, 이방인인 나와 우릴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아버지를 바라보며 아버지의 은혜에 감사하는 것만이 내가 할 일이다. 그리고 주님이 마련해주신 고난의 무덤, 관계나 물질의 무덤 등등에서 주님과 함께 죽어 장사되는 일인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연합되어 장사될 때, 함께 연합되어 부활되어 새생명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 담대하게 아버지께 나갈 수 있는 새롭고 산 길을 주셔서 감사를 드린다. 매일 매일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을 수 있어서 감사하고, 매일 하나님 품 안에 거할 수 있는 것도 은혜인 것이다.
주님, 주님과 함께 연합됨으로 장사되어 부활하는 것이 저에게는 아직 애매합니다. 복음이 애매한 것보다 저의 신앙의 수준이 아직 어리고, 애매성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성령님께서 환하게 빛으로 오셔서 복음에서 생명으로 누리게 인도하여 주십시오. 주님 안에 내가, 내가 주님 안에 거하는 자로 살아가길 소망합니다. 늦은 밤입니다. 피곤한 육체가 충분한 쉼을 얻도록 인도하여 주시고, 입양가족캠프 안에서 교제하는 모든 일정과 관계 속에서 주님을 만나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