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커라인 현재(20번)게시판 7086번 '수퍼서브'님글 펌>
-----------------------------------------------
언제나 아르헨티나의 감독들은 행복한 고민에 빠지곤 했다. 어떤 전술을 구사하든 각 포지션마다 수준급의 선수가 항상 둘 이상씩 대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행복한 고민이라 할지라도 두 선수가 너무나도 뛰어나 다른 하나를 썩히기 아깝다면 감독으로서는곤혹스러울 수 밖에 없다.

아르헨티나의 대표적인 딜레마 '아이마르와 리켈메'
아르헨티나의 두 위대한 앵커맨인 레돈도와 시메오네가 바로 그러한 경우이다.레돈도와 시메오네는 이제는 축구선수로서 황혼기를 맞고 있는 선수들이지만, 90년대 초중반 한 시대를 풍미했던 앵커맨 들이다.
물론 선수로서 커리어 전체를 두고본다면 어느 한쪽이 더 뛰어나 다고 평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만약 레돈도가 AC밀란으로 이적하면서 치명적인 부상에만 빠지지 않았더라면 이라는 가정을 한다면 레돈도의 손을 들어주는게 좀 더 객관적인 평가가 아닐까 싶다.

가슴팍에 Teka가 새겨진 하얀 유니폼을 입었을때, 레돈도는 가장 '황태자' 다웠다.
레돈도는 흔히 "황태자"라는 별명으로 불리운다. 앵커맨이라고 보기 힘들정도로 우아한 테크닉과 뛰어난 패싱력, 그리고 공격형 미드필더로 착각을 불러일으킬만큼 파괴적인 공격가담능력등은 그를 피치위의 황태자로 군림하게 만들었다.
늘 "천재앵커맨"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녔으며 00-01시즌 AC밀란으로 이적하면서 치명적인 부상을 당하기 전까지 그는 여타 탑클래스 앵커맨들 중에서도 격이 다른 존재로 인정받고 있었다.
그는 94년월드컵 이후 레알마드리드로 이적해 99-00시즌까지 레알마드리드의 대표적인 프랜차이즈 스타로 발돋움했다. 레알마드리드에서 뛰는 동안 두번의 챔피언스리그 우승과 리그 우승을 일궈냈으며, 한동안 숙적 바르샤에 가려있던 레알의 중흥을 이끈 핵심멤버이자 "캡틴"이었다. 특히 99-00시즌 챔피언스리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8강전에서 보여준 "휠킥 드리블링"에 이은 라울의 골을 도운 환상적인 어시스트는 아직까지도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90년대 중.후반 레알의 거의 모든 영광은 항상 그와 함께였다.

캡틴들의 만남 (그가 레알과 함께한 마지막 챔피언스 리그 세미파이널에서의 슈테판 에펜베르크와의 만남)
그러나 이러한 화려한 클럽무대에서의 커리어와 달리 그는 유난히 월드컵 무대와는 인연이 없었다.
94년 월드컵 당시 파사렐라는 그와 시메오네를 동시에 발탁하면서 앞서 언급했던 고민에 빠지게 된다. 고민끝에 파사렐라는 시메오네를 앵커맨에 레돈도를 오른쪽윙에 기용하는 전술을 사용했다. 정통앵커맨인 레돈도에게는 이러한 전술이 달가울리 없었고, 아르헨티나 대표팀역시 가진바 재능을 모두 보여줄 수 없었다.
98년 월드컵을 앞두고 파사렐라는 레돈도를 다시금, 어쩌면 당연히도 대표팀에 선발한다. 94년의 레돈도와 98년의 레돈도는 분명 다른 선수였다. 94년의 레돈도가 이제 막 피어나는 미완의 대기였다면, 98년의 레돈도는 말 그대로 당대최고의 스타였다.
파사렐라는 당시 각지에서 모여든 스타로 구성된 아르헨티나 대표팀의 기강을 세운다는 이유로 레돈도에게 단발령을 내렸고 이에 발끈한 레돈도는 대표팀문을 박차고 나가버린다.
이후 아르헨티나 대표팀을 맡게된 비엘사는 다시한번 레돈도에게 구애를 보냈으나, 레돈도는 "이미 나는 대표팀을 떠난 몸"이라며 비엘사의 제의를 거절한다.
이후 레돈도는 클럽무대에서도 시련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 앞서 언급했듯이 바르카로부터 피구를 영입한 레알은 재정난으로 말미암아 팀의 중핵이자 프랜차이즈 스타인 레돈도를 AC밀란에 팔아넘긴다.
당시 레알마드리드 팬들의 반발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전해지는데, 레돈도와 그 가족들은 어떻게하면 마드리드를 안전하게 빠져나갈수 있을까 하고 한동안 고민했다고 한다.
AC밀란으로 이적한 레돈도는 연습경기도중 치명적인 무릎부상에 빠지게 되고 이후 근 2년여간 그라운드에 모습을 드러내지 못한다.

'그라운드의 전사' 디에고 시메오네
시메오네는 레돈도와 사뭇 다른 플레이 스타일을 보여준다. "황태자"로 불리우는 레돈도와 달리 시메오네는 흔히 "그라운드의 전사"로 불리운다.
레돈도만큼 우아하고 정교한 테크닉을 보여주지는 않지만, 지치지 않는 체력과 강인한 투지 그리고 과감한 플레이로 중원을 장악하는 또하나의 위대한 앵커맨이다.
시메오네를 이렇게 묘사하고도 앵커맨이라고 한데에 많은 분들이 의문을 가지실거라고 믿는다. 시메오네는 분명히 홀더였지만 때로는 분명히 앵커맨 이었다. 팀이 어려울때 무서운 헤딩과 중거리슛으로 득점을 해주었고 레돈도 만큼 창의적이진 않지만 정확한 패스로 공격의 활로를 찾기도한 홀더이면서 앵커맨이었던, 그래서 더 위대하다고 말하고 싶은 시메오네이다.
특히 아르헨티나 대표로 A매치 100경기이상 출전한 베테랑인 그는 소속팀에서 뿐만 아니라 대표팀에서도 축구선수로서 누릴 모든 영예를 다 누렸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아르헨티나 대표로 월드컵을 제패하지 못한것이 아쉬움으로 남기는 하지만 94년 부터 98년 2002년에 이르기까지 아르헨티나의 주요경기 스쿼드에는 그의 이름이 빠짐없이 올라 있었다.
특히 98년 월드컵 16강전에서 베컴과 신경전을 벌여 베컴을 퇴장하게 만든 사건은 유명한 화제거리로 남아있다.

4년만의 재회. 2002월드컵에서 다시 만난 시메오네와 베컴
시메오네는 90년 월드컵 당시 예비엔트리에 올라있었지만, 실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이탈리아땅을 밟지 못했다.
이후 그는 절치부심했고 94년 월드컵부터는 명실공히 아르헨 대표팀의 엔진이 될 수 있었다.
세리에A 라치오 소속으로 프로무대에서도 뛰어난 활약을 보인 그는 라치오가 99-00시즌 스쿠데토를 제패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라치오의 부흥을 이끌었던 두 아르젠틴. 크레스포와 시메오네
시메오네와 레돈도는 90년대를 대표하는 아르헨티나의 앵커맨들이자 라이벌이다. 하지만 둘이 동시에 더블볼렌테로 나선 경기는 거의 없었다. 물론 당시 감독이었던 파사렐라도 나름대로의 전술을 가지고 있었겠지만, 둘이 나란히 아르헨티나의 중원을 지휘하는 모습은 축구팬으로서 상상해 봄직한 스펙터클이다.
(당시 시메오네의 파트너는 떠오르는 신예였던 베론이었다. 베론은 94년 월드컵까지만 해도수비형 미드필더였지만 이후 공격형 미드필더로 변신한다.)
90년대를 풍미했던 아르헨의 엔진들.
지금은 모두 자신들의 축구인생의 마지막을 불태우고 있지만 한때 그들은 정말 세계 최고였다.
물론 플레이 스타일 자체가 틀린 이 둘을 자주 비교하는 사람들은 없지만 이 둘은 서로는 물론 다른 선수들과 절대 비교될 수 없다.
실력은 물론이거니와 이 둘은 절대 비교될 수 없는 이 시대의 "franchised star" 이기 때문이다.

레돈도와 베론
첫댓글 아르헨티나 내 사랑
me too
레돈도 아직도 ac밀란? 시메오네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 있던데.. 아직도 있을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