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테란의 추억: “이 성전을 허물어라.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리라.”
- 신앙의 지동설: 성전 중심 신앙에서 부활 중심 신앙으로!
에제 47,1-2.8-9.12; 요한 2,13-22 /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 2024.11.9
오늘은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입니다. 라테라노 대성전은 로마 제국으로부터 박해를 받던 그리스도교를 황제 콘스탄티누스가 공인하면서 로마 교구의 주교좌 성전으로 봉헌한 성전으로서, 박해의 종식과 신앙의 승리를 상징하는 건축물이자 그리스도교 역사상 첫 성전입니다.
박해 시대에는 성전을 지을 수도 없었거니와, 예수님 당시에는 더욱이 예루살렘 성전을 장악한 사두가이들과의 적대적 관계로 인해 신앙의 모든 모임과 활동과 행위는 성전 밖에서 이루어 졌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길이나 산의 언덕 또는 들판에서, 심지어 바닷가에서나 때로는 지지자들의 집을 빌려서 잔치를 벌이시기도 하고, 기적을 행하시기도 하셨으며, 가르치시기도 하셨습니다. 한 마디로, 일상생활이 이루어지는 모든 시간과 공간이 하느님께서 현존하시는 신앙의 시공간이었고, 이것이 당시 지배적인 유다교의 제사종교를 대체하여 하느님을 새롭게 영적으로 예배하는 방식이자 신앙문화였습니다. 결정적으로 예수님께서 수난과 죽임을 당하시고 부활하신 뒤, 이 새로운 예배방식과 신앙문화는 로마 제국의 박해 속에서도 그리고 이스라엘을 벗어나 소아시아와 그리스와 로마로까지 전파되어 자리를 잡았습니다. 대성전이 봉헌되기 전까지에는 신앙을 증거하는 대표적인 행위가 순교였고, 이들을 부르는 ‘martyr’의 뜻은 증거자였습니다.
그런데 라테라노 대성전이 로마 교구의 주교좌 성전으로 봉헌된 후에는, 신앙이 전파되는 곳마다 신앙의 상징으로서 곳곳에 성전이 지어졌습니다. 그러다가 16세기에 로마에 라테라노 대성전보다 더 웅장한 베드로 대성전을 짓는 과정에서 예루살렘 성전 정화사건과 비슷한 사태가 벌어졌고, 이에 대해 항의하던 그리스도인들이 갈라져 나갔습니다. 그 후에도 성전 중심의 그리스도교 역사는 지속되었지만 부활 신앙을 중심으로 하는 역사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열리고 나서야 수면 위로 떠오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도입 초기부터 백 년 동안 박해를 겪은 한국천주교회는 박해가 종식된 직후 라테라노 대성전처럼 명동대성당을 신앙의 승리를 상징하는 건축물로 짓고 나서 일제강점기와 해방 직후와 한국전쟁 직후까지 간헐적으로 성전을 짓다가, 경제가 성장하고 신자들이 늘어나던 1970년대와 80년대에 우후죽순처럼 전국 방방곡곡에 세웠습니다. 부동산 가격이 치솟은 데다가 더욱이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미사 참례자가 줄어든 후에서야 비로소 성전신축 붐이 잦아든 상황입니다. 그러는 동안에 냉담자들이 급증하고 새 영세자는 급감하는 바람에 이미 지어 놓은 성전에도 빈 자리가 더 많은 지경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을 정화시키시려고 채찍끈으로 상인들과 환전꾼들을 쫓아내시는 예수님을 향해서 성전을 관할하던 사제들은 이렇게 따졌습니다: “당신이 이런 일을 해도 된다는 표징을 보여줄 수 있소?”(요한 2,18) 기껏해야 나자렛이라는 촌 동네의 시골 목수 주제에, 게다가 나이도 겨우 30대에 지나지 않는 젊은이가 70대를 바라보는 원로들이자 예루살렘의 고위 성직자들 앞에서 이 무슨 행패냐 하는 비아냥이었습니다. 그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요한 2,19)고 응수하셨습니다. 그 당시에는 성전 사제들은 물론 제자들까지도 이 말씀을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아마 베드로 대성전 건축 문제로 유럽 그리스도교를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로 분열시키게 된 장본인들도 알아듣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뒤에야 스승께서 부활 신앙으로 하느님께 나아가는 길을 새로이 여셨음을 깨달았는데(요한 2,22), 다행히도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모인 주교들도 이 깨달음을 회복하고는 성전이 아니라 성전에서 거행되는 전례가 그리스도교 신앙의 정점임을 전례헌장에서 선언하였습니다.(전례헌장, 10항) 당연히 전례란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지금 여기에 현존하심을 알아보는 기회이고 세상 도처에로 나가서 그 현존을 증거하도록 재촉하는 성사입니다. 이제 하느님의 성전은 제사 기능을 위한 건물에서 부활 신앙의 장으로 전환되었으며, 전례에 참여하는 그리스도인 전체의 삶을 부르는 새 이름을 얻었습니다. 부활 신앙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삶이야말로 성령께서 사시는 성전입니다.(1코린 6,19)
이 부활 신앙이 평신도들로 하여금 보편 사제직으로 온 누리에 퍼져 나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엔진이 교계제도이며, 그 상징으로서 라테라노 대성전과 교황청 그리고 이와 연결된 전 세계의 주교좌 성전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공동합의성>에 관한 최근 교황청 국제신학위원회 문서에 따르면, 부활 신앙에 관한 신자들의 신앙 감각을 존중하기 위하여 하느님 백성의 교회가 공동으로 책임을 지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고 강조하였습니다.(79항) 이를 위하여 ‘모든 사람’의 목소리가 반영되어야 하며, 이를 반영하여 대변할 ‘몇몇 사람’은 모든 계층과 출신에서 고르게 선출되어 ‘모든 사람’의 다양성을 대표해야 하고, ‘한 사람’은 ‘몇몇 사람’이 봉사하여 반영한 ‘모든 사람’의 목소리를 통해 성령의 이끄심을 식별함에 있어서 일치와 지도의 직무를 행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공동합의성의 구조를 실현하는 일에 교회의 본질이 달려있다고 그 시급성과 중대성을 그 문서가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야말로 살아있는 성전을 세우는 중차대한 일입니다.
성전에서 올려지는 기도와 전례는 이러한 공동합의성을 실현함으로써 하느님 백성 전체가 부활 신앙을 살아있게 만드는 데 기여해야 합니다. 성전을 중심으로 삼았던 교회의 흐름이 부활 신앙을 중심으로 삼을 때, 세상을 생기 넘치게 하는 생명의 기운이 성전에서 흘러나오게 될 것입니다. 신앙의 지동설입니다.
박해시대 교우촌의 자랑스럽고 빛나는 전통으로 세워진 한국 천주교회는 이 교우촌의 역사를 말씀과 성찬과 사랑이라는 그리스도 현존의 표지를 세상의 빛으로 비추기 위해서, 말씀의 교우촌을 세우고, 성찬 실천의 교우촌을 세우며, 사랑 실천의 교우촌을 전국 방방곡곡에 세워야 합니다. 신앙의 지동설을 진리로 증거하기 위해서입니다.
교우 여러분, 그리하여 부활 신앙을 증거하는 진리의 신앙인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