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에 한국의 10대기업인을 뽑으라면 나는 김한수 회장님을 톱-시트에 놓고싶다 1969년 당시 내가 제조부 조직밑에 기획관리 과를 맡고 사무실이 마산총무부 2층에 있을때 회장님 비서가 테렉스(telex)쪽지를 비밀리에 주면서 내일(일요일)10시경에 출근하여 보고 준비를 하라는 전언을 주고갔다 테렉스 내용이 일본어를 영어 알파벳으로 쓴 (일본 상사는 각사마다 만든 책이있음)것인데 나도 일본어가 그당시에는 서툴렀지만 "AN모노마 사용량을 2개년분을 알려주면 조치 하겠다"는 것이였다. 내가 원단위를 잘알고 있어서 2개월분으로 생각하고 2년분도 즉시 계산을 할수있는 준비를하고 다음날 일요일 10시에 마산총무부2층 회의실에 출근하니 정운직이사(당시)가 출근하였고 회장님이 들어 오면서 3사람이 앉았다 내가 칠판에 2개월분을 기록하고나니 회장님 얼굴에 노기가 서리며 파카(parker)만년필을 내동댕이 쳐버렸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너무 놀랬으나 먼저 만년필을 주워보니 운좋게도 전혀 이상이 없어서 회장님 좌석에 놓아드리고 2년분을 칠판에 기록했다 정운직이사가 사용량은모르지만 계산은맞다고 하니까 회장님 안색이 풀리며 특유의 응•응• 하시면서 글자 한자도 정확히 확인하라 한 후 "5년분을 장기계약하고 2년분을 L/C개설준비 하라는 명령이였다" 그후 마산탱크장이 만들어지고 2년분의원료를 저장했는데 1970년대초 전세계의 오일쇼크가 오면서 납사(naptha)가격이 뛰고 AN가격도 급상승하며 돈을주고도 살수가 없을때 우리한일합섬은 감산(減産)없이 생산하였고 1973년 대한민국 총수출액33억불중에 개인 기업으로는 처음으로 1억불을 돌파하는 시대적 기록을 남겼다 내가 일본동경주재시 일본종합상사에서는 한국 기업인과 사업 파트너로 일을 한다면 김한수 회장님이 1~2위에 꼽힌다고 했으니 그 능력을 충분히 인정받았다고 본다 특히 몇년후에 오일쇼크가 올것을 일본종합상사 도 예측못한것을 선견지명(先見之明)으로 예지 (叡智)한 혜안(慧眼)에 모두들 감탄했다는 얘기가 귀에 쟁쟁하다 이번 세월호 사건도 채마무리가 되기전에 5월 2일 서울지하철 2호선의 상왕리역에서 추돌 사고가 또 났으니 업친데겹친사고로 240여명이 중경상을 당하는걸보고 여당이나 야당이나 정치 행정수준이 입버릇 빼고는 아무것도없다는 증명밖에 찾을것이 없었다 "누가 누구를 원망할 자격도없다" 김한수회장님의 말한마듸가 너무나 생각납니다 "거러지 발새 때만치도 못한 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