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2년 08월 27일 '코미디 황제' 이주일씨 별세
1940년 10월 24일 강원도 고성(高城)
에서 태어나 춘천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경원대학교 경영대학원을 수료하였다. 본명은 정주일이다.
1965년 샛별악극단 사회자로 연예계에 몸담은 뒤,
1979년 텔레비전 방송에 뛰어들면서 희극배우로 이름을 얻기 시작하였다.
이후 '못생겨서 죄송합니다'
'뭔가 보여드리겠습니다' 등의 유행어로 인기를 끌면서 '코미디의 황제'라는
별칭을 얻었다.
1992년에는 경기도 구리에서 제14대 국회의원 총선거 때 후보로 출마해 당선되어 교청위원회 상임위원을
지냈다.
1996년 '코미디 공부 많이 하고 떠난다'는 말을 남기고 제15대 국회의원 총선거 불출마를 선언한 뒤,
같은 해 4월 방송에 복귀하였다.
1982년 연예인축구단 단장,
1988년 한국코미디연구회 창립 회장,
연예인협회 연기분과 명예위원장,
한국 BBS 중앙연맹 부총재 등을 지냈고,
폐암 투병 중이던 2002년 1월부터 금연 명예교사, 범국민금연운동추진위원회 공동대표 등으로 활동하다 같은 해 8월 27일 사망하였다.
<평양 맨발> <얼굴이 아니고 마음입니다> 등 여러 편의 영화에도 출연하였고, 저서로 <뭔가 말되네요>
<이주일 평전, 삐딱한 광대> 등의 칼럼집이 있으며,
사후에 회고록 <인생은 코미디가 아닙니다> 가 출간되었다.
대통령 표창(1984), MBC연기대상 최우수상 (코미디:1986)을 받았고, 범국민금연운동에 이바지한 공로로 국민훈장 모란장이 추서되었다.
▶ 2013년 오늘,
경기도 연천군 서부전선 육군 최전방
GOP초소 수류탄폭발 사고
▶ 2003년 화성, 기원전 5만 7617년 이래 처음으로 5576만km까지 지구에 근접
▶ 2003년 베이징에서 남한-북한-미국-일본-영국-러시아 6자회담 첫 개막
▶ 2002년 '코미디 황제' 이주일씨 별세
▶ 1999년 미국 마이클 존슨, 11년 만에 남자 육상400m에서 세계신기록(43초18)수립
▶ 1992년 선경그룹,제2이동통신사업권을
포기하겠다고 공식 발표
▶ 1992년 한국주재 중국대사관 개관
▶ 1983년 한국, 국제기능올림픽 5연패
▶ 1980년 통일주체국민회의 선거, 제11대 대통령에 전두환 선출
▶ 1980년 이디오피아군 소말리아 국경침공
▶ 1976년 미국 메사추세츠 공대,
최초로 유전자 합성에 성공
▶ 1970년 관세청 발족
▶ 1966년 문화대혁명 기간 중 집단 학살 사건 발생
▶ 1965년 프랑스의 건축가 르코르뷔지에 사망
코르뷔지에 [Le Corbusier, 1887.10.6~1965.8.27] 스위스 태생의 프랑스 건축가.
스위스의 라쇼드퐁 출생. 본명 Charles- Edouard Jeanneret. 스위스의 미술학교에서 공부하고 펠레와 베렌스의 건축사무소에서 얼마 동안 일하였으나 20대 전반은 주로 유럽과 중근동 각지를 여행하면서 그곳의 도시건축을 연구하였다. 본격적인 활동이 시작된 것은 1920년대 이후로, 잡지 《에스프리 누보:L’Esprit Nouveau》와 많은 저서, 도시계획과 실제 작품을 통해서 마침내 국제적인 합리주의 건축사상의 기수가 되었다. ‘집은 살기 위한 기계’라고 하는 그의 유명한 아포리즘으로 상징되는 신선한 기계미학이 이 시기의 모든 제작에 일관되어 있고, 이와 같은 건축사상은 《건축을 향하여》 《도시계획:Urbanisme》 등, 이 시기의 저서에 잘 나타나 있다. 또한 같은 사상이 구체적인 도시의 스케일로 나타난 것이 《현대도시》(1922)와 《플랑 부아쟁》(1995) 등이다.
실제 작업은 주택 중심으로, 페사크 주택단지(1926), 슈투트가르트 주택박람회의 집(1927), 가르셰의 주택(1927), 그리고 필로티 위에 떠 있는 명확한 원초적 형태라고 하는 푸아시의 사보이관(1930) 등을 완성하였다. 1927년 제네바 국제연맹 회관의 현상설계에서 그의 응모작이 최후 단계에서 심사원단에게 거부된 것을 계기로, 근대건축가의 국제적 조직의 필요성을 느끼고 이듬해 근대건축국제회의(Congr s Internationaux d’Architecture Moderne:CIAM)를 주재하였다. 1930년대에는 파리 구세군회관, 파리의 스위스학생회관(1932), 파리교외 주말의 집(1935), 그리고 광대한 브리즈솔레유(차일)가 있는 브라질의 문교보건부(1935) 외에는 경제불황과 정치적 불안으로 인해 실제 작품은 적으며, 그래서 근대건축국제회의의 이념에 바탕을 둔 도시계획의 제안에 몰두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국제연합의 회의 사무시설을 위한 일(1946∼1947)을 맡았으나 중도에서 물러나고, 이어 마르세유의 《유니테》라는 거대한 아파트(1952)를 설계하였다. 모뒤롤에 의한 이 건축은 그의 오랫동안의 도시주거 연구의 집대성이었다. 이어 자유분방한 롱샹의 교회당(1955), 리옹 근교의 라툴레트수도원(1957), 아마다바트의 미술관, 그리고 만년에 가장 정성을 기울인 인도 찬디가르의 신도시 건설이 있으며, 그곳에 최고재판소 등의 청사건축을 남겼다. 1920년대에 시작되는 근대합리주의 건축의 국제적 양식 속에 서양건축의 기조인 고전주의 미학을 조화시켜, 철근콘크리트 건축의 새로운 국면을 개척한 점에서 그의 위대성을 발견할 수 있다. 한국인 제자로 김중업(金重業)이 있다.
▶ 1963년 캄보디아, 월남과 단교
▶ 1962년 미국 마리너 2호 발사 성공
▶ 1962년 새나라자동차 공장 완공
https://m.blog.naver.com/jym9675/220952461729
▶ 1958년 소련, 두 마리의 개를 태운 우주선 `스푸트닉 3호` 발사
▶ 1958년 미국의 물리학자 어니스트 로렌스 사망
▶ 1958년 국제우주여행회의서 로켓의 평화적 이용 결의
▶ 1956년 정읍 부정투표 사실폭로
▶ 1953년 클라크 유엔군사령관 한국지역 방위선 `클라크라인` 철폐 발표
▶ 1939년 독일 세계최초의 제트기 하인겔 178 실험 비행성공
독일 세계최초의 제트기 하인켈 178 실험 비행성공
독일의 항공기 설계자인 하인켈(Ernst Heinrich Heinkel)이 1939년 8월 27일 세계 최초의 단발 제트기 하인켈 178(He 178)형의 시험비행에 성공했다.
하인켈은 제1차 세계대전 전 알바트로스 비행기회사에서 설계를 담당했다. 1922년 독립하여 하인켈 항공기제작회사를 설립하고 독일 공군에 전투기·폭격기·연락기 등 여러 기종의 항공기를 공급했다. 1939년 로켓추진 항공기 하인켈 176형을 제작하였으며, 같은해 세계 최초의 제트기와 하인켈178형 시험제작과 비행에 성공한 것이다.
그는 1930년대에 속도에 있어 8개의 기록을 수립한 He70, 반동기관으로 비행하는 데 성공한 최초의 항공기인 He 176, 그리고 세계대전 중에 독일 공군에 의해 널리 이용된 He111 과 He162를 제작했다.
▶ 1936년 동아일보 일장기말소사건으로 제4차 무기정간
▶ 1934년 한강 인도교(신교) 기공
▶ 1928년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 등
15개국 파리서 조약체결. 전쟁포기선언
▶ 1928년 부전조약(不戰條約) 체결
▶ 1921년 독립운동가 서일 자결
▶ 1921년 상해서 첫 극동올림픽대회
▶ 1920년 조선일보 제1차 정간
▶ 1919년 회령전기 설립
▶ 1910년 테레사 수녀 출생
▶ 1908년 단재 신채호 선생,
대한매일신보에 `독사신론` 연재 시작
▶ 1908년 제36대 미국 대통령 존슨 출생
▶ 1907년 럭키금성그룹의 창업자 구인회 출생
▶ 1907년 순종황제, 경운궁에서 즉위
▶ 1906년 학제개혁(각급학교령 공포)
▶ 1883년 인도네시아 크라카토아 화산 폭발
▶ 1871년 미국 소설가 드라이저 출생
▶ 1792년 우루과이의 제2대 대통령(1835~38)
오리베 출생
▶ 1784년 첫 풍선기구가 에든버러에서
제임스 타일러에 의해 만들어짐
▶ 1770년 독일 철학자 헤겔 출생
헤겔 [Hegel, Georg Wilhelm Friedrich, 1770.8.27~1831.11.14]
독일의 철학자. 칸트 철학을 계승한 독일 관념론의 대성자이다.
슈투트가르트 출생. 뷔르템베르크 공국의 재무관 아들로 1788년 뒤빙겐대학교 신학과에 입학 J.C.F.휠데를린 및 F.W.셸링과 교우하였다. 졸업 후 7년간 베른 ·프랑크푸르트에서 가정교사를 한 뒤 1801년 예나로 옮겨 예나대학교 강사가 되었다.
처음에는 이미 예나대학의 교수로 활약 중이던 셸링의 사상에 동조하여 잇달아 논문을 발표하였으나, 차차 셸링적 입장을 벗어나 1807년에 최초의 주저 《정신현상학(精神現象學) Ph nomenologie desGeistes》을 내놓아 독자적 입장을 굳혔다. 이 무렵 나폴레옹군의 침공으로 예나대학이 폐쇄되자 밤베르크로 가서 신문 편집에 종사하였으며, 이어 뉘른베르크의 김나지움 교장이 되었고, 이곳에서 둘째 주저 《논리학 Wissenschaft der Logik》(1812∼1816)을 저술하였다.
1816년 하이델베르크대학 교수로 취임, 그 동안 《엔치클로페디 Enzyklop die der Philosophischen Wissenschaften im Grundrisse》(1817)를 발표하였으며, 1818년에는 프로이센 정부의 초청으로 베를린대학 교수가 되었고 곧 마지막 주저 《법철학 강요 Grundlinien der Philosophie des Rechts》(1821)를 내놓았다.
베를린 시절은 헤겔의 가장 화려한 시절로서 유력한 헤겔학파가 형성되었으며, 그의 철학은 국내외에 널리 전파되었으나 1831년 콜레라에 걸려 사망하였다. 헤겔 철학의 역사적 의의는 18세기의 합리주의적 계몽사상의 한계를 통찰하고 ‘역사’가 지니는 의미에 눈을 돌린 데 있다. 계몽사상이 일반적으로 역사를 고려하지 않고 오직 머리 속에서 생각한 이상에 치중, 이 이상을 현실로 실현해야 하며 또 실현할 수 있다고 생각한 데 반하여, 헤겔은 현실이란 그처럼 인간이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역사의 과정은 그 자신의 법칙에 의하여 필연적으로 정해졌다고 생각하였다. ...
헤겔은 이러한 근본사상을 바탕으로 장대한 철학체계를 수립하였는데 그 체계는 논리학 ·자연철학 ·정신철학의 3부로 되었으며, 이 전체계를 일관하는 방법이 모든 사물의 전개(展開)를 정(正) ·반(反) ·합(合)의 3단계로 나누는 변증법(辨證法)이었다. 헤겔에 의하면 정신이야말로 절대자이며 반면 자연은 절대자가 자기를 외화(外化)한 것에 불과하다. 그리고 논리학에서는 자연 및 정신에 대하여 고루 타당한 규정이 다루어졌다.
그의 철학은 그 관념론적 형이상학으로 인하여 많은 비판과 반발을 받기도 하였지만, 역사를 중시하였다는 점에서는 19세기 역사주의적 경향의 첫걸음을 내디딘 것으로 평가할 수 있으며, 또 변증법이라는 사상으로도 후세에 다대한 의의를 가진다 하겠다. 1995년 기독교한국루터회가 선정한 ‘세계를 빛낸 10인의 루터란’의 한 사람이다.
▶ 1747년 정철의 송강가사 간행
▶ 1611년 스페인 작곡가 빅토리아 사망
▶ 1597년 8월 27일.
칠천량 해전에서 조선 수군이 궤멸되다.
(날짜는 음력)부산포에서 대패하고 거제도 서쪽의 칠천량으로 도주했다가 조선 수군 대부분이 궤멸당하고 만다. [동아일보]
http://naver.me/IMir0QXh
▶ 1590년 교황 식스투스 5세 사망
▶ 1434년 전라도 전주 등지에 지진 발생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솦트리종려나무,반가운의hi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