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은 낙엽
비가 내리더니 공원(公園)이나 산책길에 낙엽(落葉)이 많이 깔려있습니다.
비가 오지 않았으면 바람에 날려갔겠지만, 비에 젖은 낙엽(落葉)들은
길바닥에 붙어있거나 자기들 끼리 붙어있어 산책길을 풍성하게 하고 있습니다.
日本의 주부들은 직장(職場)에서 정년퇴직(停年退職)하고 집 안에만 죽치고
들어앉아 있는 늙은 남편을 ‘누레 오치바 (濡れ 落ち葉)’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우리 말로 ‘젖은 落葉’이라는 뜻입니다.
마른 낙엽(落葉)은 산들바람에도 잘 날아가지만, 물에 젖은 낙엽(落葉)은
눌어붙으면 빗자루로 쓸어도 땅바닥에서 떨어질 줄 모릅니다.
‘누레 오치바’라는 말은 停年退職한 후의 늙은 남편을 夫人이 밖으로 쓸어내려 해도
착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으니 부담스러운 存在라는 뜻이나, 당사자인 男子들에게는
심히 모욕적(侮辱的)인 표현(表現) 입니다.
더 이상 경제 活動을 하지 못하는 男性이 사회에서 어떤 대접을 받고 있는지를
현실적으로 표현(表現)한 單語입니다.
물질이 신분의 가치를 평가하는 시대에서 어쩌면 당연한 表現일지도 모릅니다.
모두가 다 비에 젖은 存在는 아니겠지만 그런 신조어(新造語)가 만들어지는 社會를
보면 人間의 가치는 날이 갈수록 쓰레기처럼 처량한 모습으로 전락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돈이 사람을 만들고 길들이는 시대에서 늙어 생산력(生産力)을 잃어버린
젖은 낙엽(落葉)과 같은 사람들, 會社를 위해, 家族을 위해 젊음을 다 바친 그들은
바로 우리의 아버지입니다.
그들이 이제 기대고 쉬어야 할 곳은 가정(家庭)입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社會, 더불어 사는 社會는 신분을 떠나 사람을 소중한 가치로
바라보는 시선이 필요(必要)합니다.
극장에서 대체로 사람들은 영화를 보고 영화가 끝나자마자 일어서기 때문에 주목하지
않지만, 맨 마지막에 음악과 함께 오르는 자막이 엔딩 크레디트(Ending Credit)입니다.
나는 감동적(感動的)인 영화를 보면 끝까지 자리에 남아 그 영화(映畫)를 만든 사람들의
이름을 보면서 마지막 여운(餘韻)을 더 음미(吟味)합니다.
映畫에 출연한 배우(俳優)만이 아니라 감독, 시나리오, 조명, 촬영, 소품, 의상, 음악….
수없이 많은 이들이 배후에서 수고했음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아름다운 영화를 만든 이들에게 나는 마음으로부터 박수를 보냅니다.
그들이 없었다면 이런 훌륭한 영화(映畫)가 없었을 것이니까요.
우리의 삶도 꼭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오늘이 있기까지 나의 오늘을 만들어준 사람들, 우리의 오늘의 삶을 복되게 해준
사람들의 엔딩 크레디트가 반드시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오늘의 삶의 엔딩 크레디트에는 우리 父母 세대가, 우리의 잘 사는 오늘 위에는
우리가 귀찮게 보고 있는 비에 젖은 낙엽(落葉) 그 老人들이 있습니다.
나의 삶에도 부모님, 선생님들, 親舊들의 이름이 올려질 것입니다.
이렇게 늙어가는 우리도 다른 누군가 삶의 엔딩 크레디트에 올려지기를 바라지요.
그리고 지금 老人들이 누레 오치바가 아니라, 이 社會의 엔딩크레디트의 대상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떨어지는 낙엽(落葉)과 뉘엿뉘엿 노을 녘의 지는 해는 무척 아름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