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쉬나 산헤드린 4장 5절 (참고: 마태복음 22:15~21, 마태복음 25:21, 야고보서 3:9)
제목: 한 영혼, 한 세상 (One Soul, One World)
주제: 인간에게 새겨진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을 깨닫고,
불타는 세상 속으로 뛰어들어 단 한 영혼을 구원하는 참된 제자도와 구조자의 사명을 감당하자.
서론: 단 한 사람의 무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유대교의 지혜 문헌인 미쉬나 산헤드린 4장 5절에는 가슴을 울리는 심오한 구절이 등장합니다.
“한 영혼을 망가뜨리는 자는 누구든지 온 세상을 망가뜨린 것과 같이 여김받을 것이며, 한 영혼을 구하는 자는 누구든지 온 세상을 구하는 것과 같이 여김을 받을 것이다.”
우리는 흔히 세상을 수치와 통계로 바라봅니다. 몇 만 명, 몇 억 명이라는 대중의 숫자 속에서 단 한 사람의 가치는 쉽게 묻히곤 합니다.
그러나 하늘의 계산법은 다릅니다.
성경과 유대 전통이 말하는 인간의 가치는 ‘1/N’이 아니라 ‘하나의 완전한 우주’입니다.
한 사람을 파괴하는 것은 그 사람의 미래와 후손,
그가 맺을 모든 관계를 파괴하는 것이기에 곧 ‘온 세상’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절망과 죄악에 빠진 단 한 사람의 영혼을 구하는 것은 그 사람을 통해 펼쳐질 미래 전체를 구하는 숭고한 역사가 됩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 안에 새겨진 하나님의 형상을 재발견하고, 주님이 맡기신 영혼 구원의 거룩한 소명을 나누고자 합니다.
본론 1: 동전에 새겨진 얼굴, 영혼에 새겨진 하나님의 형상
오늘날 우리는 왜 한 영혼을 온 세상처럼 존귀하게 여겨야 합니까?
그 이유를 예수님께서는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쳐야 합니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명쾌하게 풀어주셨습니다.
바리새인과 헤롯 당원들은 예수님을 낚기 위해 정치적 함정을 팠습니다. 세금을 내라고 하면 민족의 배신자가 되고, 내지 말라고 하면 로마에 대한 반역자가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동전(데나리온) 한 닢을 보여달라 하신 뒤 물으셨습니다.
“이 형상과 이 글이 누구의 것이냐?”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마태복음 22:20-21)
동전에 황제의 얼굴(형상)이 찍혀 있으니 하찮은 동전은 황제에게 돌려주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가르침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것’은 무엇입니까?
고대 근동에서는 오직 강력한 왕만이 ‘신의 대리자(형상)’라 불렸습니다. 그러나 창세기는 혁명적으로 선언합니다. 신분과 지위, 외모와 상관없이 모든 인간의 영혼과 삶에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이 찍혀 있다고 말입니다.
동전이 황제의 소유이듯, 인간이라는 존재 전체는 바로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이 당신의 손으로 빚어내신 최고의 자화상입니다.
2세기 랍비 엘리자르가 못생긴 농부를 멸시했을 때, 농부는 이렇게 일침을 놓았습니다.
"나를 지으신 장인(하나님)에게 가서, 당신이 만드신 도구가 정말 추하다고 한번 말해 보시오."
이웃의 외모나 신분, 조건이나 허물을 함부로 비판하고 저주하는 것은, 그 사람을 만드신 하나님의 솜씨를 비난하는 모독입니다. 누구나 가슴속에 흙(아다마)으로 돌아갈 ‘티끌’의 겸손함과 동시에,
하나님의 생기를 품은 ‘존귀함’을 지니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대하는 그 어떤 사람도 죽음으로 끝나는 평범한 사람은 없습니다.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온 세상보다 귀한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본론 2: 피쿠아크 네페쉬 — 규칙보다 우선하는 생명의 가치
모든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았기에, 유대 율법의 가장 높은 원칙은 ‘피쿠아크 네페쉬(pikuach nephesh: 생명 보존의 원칙)’가 되었습니다.
"율법을 적용할 때 최우선 순위는 언제나 인간의 생명을 구하고 보존하는 것이다."
안식일 규례나 그 어떤 엄격한 종교적 전통도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일 앞에서는 뒤로 물러나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시고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통해 강도 만난 자를 구하라 하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종교적 형식이나 교리적 우월함에 있지 않습니다.
오직 고통받고 부서져 가는 ‘한 영혼’을 살려내는 것에 하나님의 온 마음이 쏠려 있습니다.
참된 제자도는 나 혼자 거룩함을 지키는 고상함이 아니라, 타인 안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발견하고 그들의 생명과 영혼을 살려내는 실천입니다.
본론 3: 불타는 궁전으로 뛰어드신 구조대장, 예수 그리스도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바라보는 세상은 어떠합니까?
인간의 죄악과 탐욕으로 인해 이 세상은 마치 불길에 휩싸인 ‘불타는 궁전’과 같습니다.
2001년 9·11 테러 당시, 무너져 내리는 아비규환의 세계무역센터 건물에서 모든 사람이 살기 위해 계단을 뛰어 내려올 때, 오직 단 한 부류의 사람들만이 핏발 서린 눈으로 계단을 뛰어 올라갔습니다. 바로 소방관(구조대원)들이었습니다. 남들이 벗어나려는 지옥 불 속으로 타인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들어간 것입니다.
우리의 영원한 구조대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그러하셨습니다.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이 스스로 가장 낮고 하찮은 ‘티끌의 육신’을 입으셨습니다. 그리고 죄와 사망의 불길에 휩싸여 멸망해가는 인류를 구하시기 위해 친히 이 불타는 세상 속으로 뛰어드셨습니다. 십자가에서 당신의 생명을 바치심으로, 잃어버린 ‘한 영혼’들을 구원해 내셨습니다.
결론: 단 한 영혼을 향한 우리의 소명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주님은 불타는 세상 속에서 구조받은 우리에게 거룩한 구조대의 사명을 맡기십니다.
세상은 말합니다. *"너 하나 챙기기도 바쁜데 남을 위해 왜 위험과 손해를 무릅쓰느냐"*고 말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제자는 스승의 발자취를 따라 세상의 재와 절망 속으로 뛰어드는 사람입니다.
내가 오늘 마주치는 단 한 사람—낙심한 이웃, 상처받은 가족, 방황하는 영혼—을 진심으로 대하고, 그 안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보며, 주님의 사랑으로 돕는 것. 그것이 곧 세상 전체를 바꾸는 출발점이자 완성입니다.
단 한 영혼을 온 세상처럼 여기며 구하는 거룩한 위험에 동참하십시오. 세상은 우리의 수고를 몰라줄지라도, 마침내 수확의 날에 하늘의 왕이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다가와 최고의 칭찬과 상급을 건네실 것입니다.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마태복음 25:21)
온 세상보다 귀한 한 영혼을 가슴에 품고, 하나님의 모방자이자 거룩한 구조자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