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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펜 세계한글작가대회-경주에서
일시:2017년 9월 12일 화요일~15일 금요일
장소:경북 경주시 현대호텔, 경주화백컨벤션센터, 경주문화예술전당 등
2017년 9월 12일 화요일 서울역 출발, 경주 도착, 환영식, 개회식
* 국제펜 세계한글작가대회 신경주행 KTX 서울역 출발
국제펜 세계한글작가대회가 경북 경주에서 9월 12일부터 15일까지 3박 4일간 열린다. 우리 부부는 국제펜 이사로서 함께 참석한다. 서울역 곳곳에 업무직원들이 안내 프랭카드를 들고 국제펜 회원들의 승차에 대한 안내를 하고 있다. 대합실에서 프랫홈에서 만난 문인들과 인사를 나누고, 나의 시집 [푸른 새벽 서정]도 드리고 흐뭇한 시간을 보내며 정담을 나누었다. 서울역에서 1시 30분 KTX 열차에 탑승했다. 우리 부부의 좌석은 15호차 12A, 12B로 나란히 앉았다. 국제펜 세계한글작가대회의 힘찬 출발이다.
* 신경주역 도착 국제펜 세계한글작가대회 환영식
서울역을 출발한 고속열차가 2시간 만인 오후 3시 35분에 신경주역에 도착했다. 경주시장을 비롯한 여러 경북, 경주 인사들이 나오셔서 환영식을 가졌다. 기자들도 곳곳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그만큼 우리 문인들의 사명을 충실히 해야겠다는 의식을 심어주는 것이다. 이번 행사는 특히 우리나라의 한글의 우수성을 세계에 널리 알리는 주제이기 때문에 우리 문인들의 임무가 크다. 더욱 시인의 사명에 충실하겠노라고 다짐하며 따뜻한 환영식에 감사했다.
* 경주 화백컨벤션센터 국제펜 세계한글작가대회 개회식
신경주역에서 현대호텔로 이동했다. 약 20여분 소요되었다. 산자락 아늑한 곳에 있는 행사장이며 숙소다. 먼저 방에 들어가 여장을 풀었다. 우리 부부의 방은 1018호실이다. 10층으로 발코니에 나가보니 경주를 에워싼 높은 산줄기가 비경으로 맞이한다. 로비에 다시 모여서 버스를 타고 경주 화백컨벤션센터로 갔다. 현대호텔에도, 이곳 화백컨벤션센터에도 실내외 곳곳에, 층마다 세계한글작가대회에 대한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오늘은 3층 강당에서 개회식를 한다. 국제펜 회원과 내빈들 300여명이 모여 성대한 행사의 출발을 한다. 먼저 신라고취대의 연주로 연주곡 행여락을 보고 들었다. 그리고 국민의례로 애국가를 4절까지 불렀다. 나은 교직생활할 때 학생들에게 애국가를 4절까지 가르치던 기억이 나서 그날의 추억으로 더욱 큰 목청으로 흐뭇하게 불렀다. 위대한 한글, 한글문학에 대한 영상을 보았다. 그리고 손해일 이사장님의 개회사가 선포 되었다. 최양식 경주시장님, 유안진 조직위원장님의 환영사가 있었다. 그리고 정세균국회의장 축사대독, 나종민 문화체육관광부차관님, 김관용 경북도지사님의 축사기 있었다. 다음으로는 고은 시인님의 축시 [아 세종]을 들었다. 축하공연으로 테너와 소프라노 성악가의 가곡 한글의 노래, 광야에서, 내나라 내겨계 등을 들었다. 개회식 행사를 모두 마치고 바로 그 장소 테이블에서 환영 만찬 시간을 가졌다. 이상문 전 국제펜 이사장님의 건배사를 듣고, 박승직 경주시의회장의 환영의 말씀도 들었다. 참으로 행복하고, 보람되고, 뜻깊은 행사다.
2017년 9월 13일 수요일 특별강연, 주제발표와 토론, 시낭송과 가곡의 밤
* 국제펜 세계한글작가대회 행사장 경주 현대호텔
경주 현대호텔에서 3박 4일간 머물며 국제펜 세계한글작가대회에 참여한다. 우리 문인부부는 전에 국제펜 세계문인대회 행사도 이곳 경주 현대호텔에서 유숙하며 행사에 참여하였다. 그래서 낯익은 호텔이다. 호텔의 안과 밖 곳곳에 제3회 세계한글작가대회라는 안내 프랑카드와 안내판이 설치되어 알리고 있다. 지난번에 왔을 때는 방이 보문호수변에 있었는데, 이번에는 10층의 방이 높은 산줄기와 접해있다. 비경이다. 문인들의 뜻깊은 행사에 참여한 것도 감사한 일이고, 아름다운 풍광의 호텔에 유숙하게 된 것도 감사한 일이다. 많이 보고, 많이 배우고 갈 것이다.
* 경주 국제펜 세계한글작가대회 행사장 안내판
제3회 세계한글작가대회 행사장 안내판이 경주호텔과 화백컨벤션센터 곳곳에 설치되어 있다. 그것은 행사를 안내하는 목적도 있고, 참여한 문인들에게 기념촬영을 하도록 배려한 설치물들이기도 하다. 문인들은 3박 4일 동안 곳곳 행사장 안내판 앞에서 지인들과 또는 독사진으로 사진을 많이 촬영했다. 나도 기념사진을 많이 찍었다. 국제펜한국본부와 경주 현대호텔, 화백컨벤션센터의 배려에 감사했다.
* 경주 화백컨벤션센터 강연
오늘은 2일차로 본격적인 행사가 시작된다. 오전에는 경주 화백 컨벤션센터에서 특별강연을 들었다. 사회는 김홍신 작가가 진행하였다. 먼저 한국의 고은 시인 강연이 있었다. 고은 시인은 '모국어를 위하여'라는 제목으로 열강을 하신다. 지구상에는 언어가 4000여 종이 있고 지방어까지 합하면 6700여 종이 된단다. 100년 전만 해도 세계에서 이보다 더 많았을 것이란다. 점점 언어가 사라진다고, 한글도 죽어가고 있다고 한다. 모두 영문표기로 인하여 그런 영향이 있단다. 어느 시기에 가면 한글이 없어질 수도 있단다. 그래서 한글의 미래가 위험하고, 그래서 한글을 써야 하나다고 강조하신다.
다음으로는 독일의 본대학 명예교수인 알브레히트 후베의 강연이 있었다. 후베 교수는 '한글은 묶여있는 영웅-한글과 컴퓨터'라는 주제를 가지고 능란한 우리 말로 열강을 하셨다. 발음도 한국인과 거의 동일하고, 한국에 대하여, 한글에 대하여 대단하신 관심을 가지고 있다. 후베 교수의 스승이 1909년부터 1929년까지 한국에서 선교하며 한글을 연구했다고. 자화자찬이지만 독일에서 자기만큼 한글을 연구한 사람이 없다고. 세종에 대하여 논문을 썼는데 실패했다고. 그 이유는 독일의 한글연구 상황이 어려워서라고. 한글연구를 위해서 세운상가에도 가 보았단다. 한글에 대한 큰 관심에 고맙고 감사했다. 한글이 매우 우수한 글인데도 컴퓨터에 맞는 좌판이 없단다. 강연 후 질의 응답시간에 후베 교수는 답변도 한국어로 정확히 잘 하신다. 김홍신 사회자는 다른 나라에서 한글에 대하여 마음을 열어주어야 연구가 가능하고, 알파벳보다 한글이 우수하다고 강조했다. 독일인이 이렇게 한국어로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흔하지 않다는 것이다. 후베 교수와 고은 시인의 강연은 한글작가들에게 한글사랑에 대한 강한 메시지였다.
* 경주 화백컨벤션센터 주제발표 1
오후에는 경주 화백컨벤션센터 2층 소강당 201호와 202호에서 두 파트로 나누어 주제발표 시간을 가졌다. 우리 부부는 201호 분과 1에 참석했다. 두 파트의 큰 주제는 '사람과 글이 함께하는 세계화 전략'이다. 분과 1의 주제는 '세계한글문학, 걸작들의 징검다리-주요 작가, 작품론'이다. 좌장은 경희대 김종회 교수가 맡았다. 발표자 1은 송명희 부경대 교수로 미국 서부 한글문학의 대표 작가와 그들의 작품을 소개했다. 이주민들의 애환을 담은 작품들이다. 이주와 영이주를 넘나드는 노마디즘의 세계를 그린 송상옥 작가의 소설집 <소리>에 수록된 [도서관에 가는 아이]와 [돋아나는 말]을 소개한다. 그리고 소설집 <광화문과 햄버거와 파파꽃>에 수록된 [말과 아픔으로 시작되었다] 등을 소개한다. 민족정체성의 문제를 언어의 문제로 인식했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일상성의 세계와 소외의식을 그림 이언호 작가의 작품을 소개한다. 연작장편 <꽈리멸매 세탁공장>, <길 가는 사람들>의 소설집 등이다. 그의 작품 꽈리열매 세탁공장은 이주생활의 증언이자 이민자로서의 삶에 대한 성찰의 의미를 담고 있단다. 아웃사이더의 타자의식과 여성작가인 전상미, 김혜령, 박경숙, 최유혜의 작품도 소개한다. 또한 이주민들은 자녀인 2세들의 한글교육에 대하서도 많은 노력을 하고 있음도 알려주신다. 감명 깊은 강연이었다. 토론은 한국문학번역가인 이탈리아의 스테파노 버찌아가 맡았다. 그는 한국에 와서 이름을 오씨의 성을 넣어 스테판 오로 지었단다. 질의로는 이주민 중에 성공자는 없는지에 대하여 물었다. 답변은 성공했어도 이주민으로서의 애환은 있다고 한다. 그외 발표 2로는 미국 동부 시인인 황광자의 발표와 토론으로는 미동부 한인문인협회 회장, 발표 3으로는 한양대 교수인 이재복의 동아시아 한글문학 대표작가들의 작품을 발표했고 토론은 카자흐스탄 고려극장 학예부장인 최영근이 맡았다. 발표 4로는 고려대 교수인 오형근의 세계한글문학의 소통과 연대에 대하여 발표했고 토론은 미국 시카고문인회장인 김영숙이 맡았다. 종합토론으로는 한국의 임병호 시인, 오경자 작가, 투르크메니스탄의 박 크세니아, 인도네시아의 루스피아라민 안니사가 맡았다. 강연도 대단하고, 토론과 답변도 대단했다. 한글작가인 우리들도 그에 몰입하여 많은 것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더욱 한글을 사랑하고, 더욱 많은 작품을 써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 경주 현대호텔 시낭송과 가곡의 밤
저녁시간에는 석식을 마치고 시낭송과 가곡의 밤 시간을 가졌다. 문인들에게 시낭송은 자주 접하고, 자주 시낭송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오늘 이곳 세계한글작가대회에서의 시낭송은 한글에 대한 우수성을 느끼며 가슴 깊이 한글사랑으로 벅차오르는 감성이다. 그 어떤 세계의 언어도 한글만큼 셈세하게 표현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자랑스런 내 조국의 언어 한글이다. 가곡을 들으며, 시낭송을 들으며 참으로 뜻깊고, 흐뭇하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2017년 9월 14일 목요일 주제발표 2, 문학강연, 한글문학축제
* 국제펜 세계한글작가대회 행사장 경주 현대호텔 앞 보문호수와 호텔정원
우리들이 유숙한 경주 현대호텔 바로 앞에는 보문호수가 있다. 인공으로 조성한 호수지만 매우 넓고 수려하고 아름다운 풍경을 자아낸다. 우리 부부는 아침 식사 후 호텔 뒤편으로나와 호수를 산책했다. 수변의 산책로는 나무 터널로 싱그러운 길이 길게 나 있다. 동녘 서광이 더욱 찬란한 조명으로 내려와 눈부신 ㅂ비경이다. 호텔 정원은 적송과 바위림으로 조경하여 참으로 빼어난 경관이다. 이번 행사에 참여함으로써 편안한 쉼과 열열한 한글공부를 병행하며 문인으로서의 큰 자부심과 사명의식을 더욱 확고히 다졌다.
* 경주 화백컨벤션센터 주제발표 2
오늘은 3일차로 오전에는 주제발표와 토론시간을 갖고, 오후에는 알브레히트 후베 교수의 강연을 첫날에 이어 듣는다. 두 파트로 나누어 경주 화백컨벤션센터 2층 201호와 202호에서 진행된다. 오전의 주제발표 2의 큰 주제는 '한글문학의 새로운 지편과 그 확산'이다. 우리 부부는 201호에서 참석했다. 우리 호실의 분과 3으로는 '한글교육, 미래 세대로의 길-한글의 전파와 방향'이다. 좌장은 서울대 장소원 교수다. 발표자 1은 한국어 교육기관 대표자협의회 회장의 세계한글교육의 꿈과 길이고, 토론은 미국 이승희 시인이 맡았다. 발표자 2는 배제대 이영조 교수의 문학을 통한 한국어교육이고 토론은 중국 시안위남사범대 왕립군 교수가 맡았다. 발표자 3은 일본 도쿄외대 남윤진 교수의 상호문화관점에서 한국어교육-일본대학의 경우이고, 토론은 권택민 시인이 맡았다. 권택민 시인은 수필가인 남편과 학교 동기로 나도 함께 인사를 나누었다. 같이 한국시인협회 회원이기도 하다. 발표자 4는 박상재 작가의 세계로 웅비하는 한국아동문학이고, 토론은 정용원 작가가 맡았다. 종합토론은 미국작가 김영중, 미국시인 최정자, 캐나다 시인 이정순, 독일시인 쾨펠연숙, 한국의 김윤승 작가가 이끌어 갔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매우 알치고 유익한 주제발표와 토론시간이었다. 새로운 것들을 많이 배우며, 작가인 우리들에게도 새로운 한글문학의 지평을 열어주는 뜻깊은 시간이었다.
* 경주 화백컨벤션센터 강연
오후에는 오전과 동일한 2층 201호에서 독일의 일브레히트 후베 교수의 강연과 한국의 유안진 교수의 강연을 들었다. 큰 주제는 '한글문학 세계화의 꿈과 길'이다. 사회자는 경희대 김종회 교수다. 원래는 신경림 교수의 강연이 순서상으로 맨처음 들어있었는데 병원에 입원하셔서 참석을 못하셨다. 전일에 이어 후베 교수는 '한글은 묶여있는 영웅-한글과 컴퓨터'라는 주제로 한글창제의 기본 원리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한글발전상에 대하여 자세히 연구한 것들을 강연했다. 한글은 15세기에 만든 문자로 한글에 대한 철학은 우주적공리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1940년에 한글맞춤법 책이 발간되었단다. 그런데 '밥을 먹어요'가 '바블 머거요'로 혼돈되어 고민이란다. 한글은 반드시 모아 쓰기로 해야 된단다. 한글 차제시 세계관은 성리학이었다고 강연한다. 훈민정음의 원리는 음양오행이라고 강연하다. 음양의 한글이 이진법인 것처럼 컴퓨터도 이진법이라고. 한글은 200년 전에 벌써 컴퓨터와 같은 원리로 만들어졌다고. 한글은 소우주와 연결되었다는 것이다. 독일인인데 대단한 연구의 강연이다. 독일 교수인 그가 지금 세종좌판을 만들고 있단다. 임시로 음양좌판이라고 한단다. 복잡해서 소개는 못 한다고. 한글로만 거의 4백억이나 되는 글자조합이 생긴다고 전한다. 이것을 다 쓰려면 100만 년이나 걸린다고. 한글은 이토록 광범한 표현의 자유가 있다고 외친다. 그는 한국인이 아니고 독일인이다. 놀라운 강연이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약 400억 개의 한글다발이 컴퓨터상에서는 11172개 밖에 못 쓴다는 것이다. 이거은 한국어 학습에 엄청난 브레이크란다. 왜 그렇게 되었냐 하면 타자기로 잘 치기 위해서 컴퓨터를 그렇게 만들었단다. 원래 훈민정음은 28자였다고. 이 28자의 조합은 끝이 없다고. 한문과 거의 비슷하다고. 오행은 온 우주와 관련된 것인데 한글은 오행의 원리로 창제된 글이므로 세계화 되어야 한다는 결롬으로 강연을 마쳤다. 독일인으로서 우리의 한글에 대하여 우리보다 더 깊은 연구를 하심에 깊은 감사드렸다. 큰 박수로 강연에 보답했다.
다음으로는 한국의 유안진 교수 강연이 이어졌다. '한글, 모든 언어가 꿈꾸는 최고의 알파벳'이라는 주제다. 우리 같은 소수민족의 언어는 없어질수 있단다. 70년대 이후 산아제한으로 인구가 감소하고 있다고. 인구 1억 명은 되어야 모든 문인들의 책이 판매되어 그 직업으로 살 수 있다고. 영어에 밀려서 한글은 소외되는 세태라서 안타깝단다. 작가 중에도 이름을 영어로 고쳐쓴 자도 있다고. 문인은 오로지 한글이 있어야만 살 수 있다고. 설총의 이두문자가 한글의 모체라고. 신라시대에 이곳 경주에서 나왔으므로, 이곳 경주에서 이 세계한글작가대회를 여는 것이라고. 이 뜻을 받들어서 경주시장이 행사를 수용했으니 감사한 일이라고. 원래 경주는 반월성이라고. 그래서 달 그림이 있다고.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 언어가 없으면 개념이 없다고고 강조한다. 작가는 반드시 책을 남기라 한다. 후손들이 사진 대신 책을 놓고 제사를 지내도록 하란다. 시인들은 언어 창제자라고. 창조자는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 써도 된다고. 가장 아름다운 한글은 하늘이라고. 그런데 문단에 글을 낼 때 '오도커니'라는 단어를 쓰면 '우두커니'로 바꿔 싣더라고. 어휘수가 많아야 국가의 언어가 발전한다고. 표준어가 어휘수를 줄였다고. 토속어를 존중해야한다고 강조한다. 우리는 김치 항아리가 30개인 국가다. 미각이 발전된 나라다. 작은 항아리에 김치를 나누어 보관하는 민족이다. 우스개 소리로 캐나다 지명을 작명한 것에 대하여-세종에게 우리나라의 이름을 뭐라고 지을까요? 하니 세종이 너희가 가나다를 아느냐...그래서 캐나다가 되었다고. 미국인 아메리카는 아무렇게나 지어라...그래서 아메리카가 되었다고. 우리 모두 함께 큰 소리로 웃었다. 한국이 강국이 된 것은 한글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글은 세계최고의 문화재라고.어휘수가 많을수록 문화언어라고. 한글이 세계언어이길 빈다고. 세계인이 와서 한글을 배우길 바란다고. '붉다'라고만 쓰지말고 '붉으스레하다' 등으로 쓰라고. 시인은 한국의 한글과 미국의 영어 번역 등을 공부하라고. 결론으로 어휘를 새롭게 만드는 일을 작가들이 해야 한다고 힘주어 외치며 강연을 마쳤다. 나는 시인이다. 나도 가끔씩 아름다운 단어를 검색해보지 않고 사용할 때가 있다. 설사 그 단어가 한글백과사전에 없다고 해도 그냥 쓰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러나 대부분 문단에서는 그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런 현실을 작가는 겪고 있는데 오늘 유안진 교수의 강연을 들으며 그 매듭이 풀리며 해소되었다. 멋진 한글단어를 파생시켜서 어휘수를 확산시켜서 한글발전에 이바지 하리라 다짐했다.
독일 알브레히트 후베 교수 강연
* 국제펜 세계한글대회 행사장 경주 현대호텔
경주 현대호텔은 이번 행사에 참여한 한글작가들에게 참으로 고마운 호텔이다. 최고의 식사와 최고의 잠자리, 최고의 안내원을 제공해 주었다. 한 가지 불편없이 머문 고맙고 감사하나 숙소다. 주변 자연환경도 아름다워서 시간 날 때마다 주변을 산책하며, 발코니에서 우람한 산줄기를 조망하며 낭만의 추억도 쌓았다. 오늘은 마지막 밤을 보내는 날이어서 경주 현대호텔과 경주 화백컨벤션센터에서의 일정을 모두 마치고 경주 예술의전당으로 이동한다. 이동하기 전에 현대 호텔 앞에서 국제펜 문인들의 단체기념 사진을 촬영했다. 호텔은 아득한 높이로 우리의 대회를 예찬하는 듯하다. 분수와 그 주변의 꽃정원이 매우 아름답게 자리하여 우리 국제펜 회원들의 기념사진을 더욱 아름답게 빛내준다. 모두 잊지 못한 소중한 추억이 될 것이다.
국제펜 세계한글작가대회 행사장 현대호텔 앞에서 국제펜회원 단체사진
* 경주 예술의전당 한글문학 축제의 밤
저녁시간에는 버스로 나누어 타고 경주 예술의전당으로 이동했다. 경주시장이 마중나와 친절히 안내한다. 경주 예술의전당 건물이 현대풍의 건축구조로 매우 웅장하고 수려하다. 그 앞에는 색상조명이 드리워진 고운 분수가 있다. 공연장 실내로 입장하여 지정된 좌석에 착석하였다. 이 자리에는 경주시민들도 함께 있어서 경주시민들과 국제펜 회원 간의 아름다운 융합의 시간이다. 한글문학축제와 폐회식이 거행될 것이다. 먼저 1부 여는 공연으로 앙상블 피날레 피아노 4중주가 연주되었다. 경과보고로 김성곤 집행위원의 말을 들었다. 그리고 손해일 이사장의 폐회사가 있었다. 2부 공연으로는 안숙선 국악명창의 단가 '사철가'와 판소리 '흥부가 중 박타는 대목'이 있었다. 우렁우렁하게 울리는 목청이 공연장을 가득채우고 그 열기는 참으로 훈훈하여서 함께 동요되어 추임새로 부추기며 흥를 돋구었다. 석상근 성악가의 '오페라 카르멘 중 투우사의 노래'와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아리랑'을 들었다. 앵콜송으로 다른 가곡도 들었다. 김원중 음악인의 '바위섬', '내가 사랑하는 사람(정호승 시)'과 앵콜송으로 총 4곡을 들었다. 세계한글작가대회의 마지막 밤은 이토록 아름답고, 낭만 가득한 경주예술의전당에서 성대하게 마무리 되었다. 아쉽고 가슴 설레는 환희로 밤길을 달려 경주 현대호텔로 돌아와서 고맙고 감사한 마음으로 편안한 잠자리에 들었다.
경주 예술의전당 건물 앞에서
2017년 9월 15일 금요일 경주 탐방, 황룡원, 황룡사역사문화관, 분황사, 국립박물관
* 경주 황룡원
오늘은 행사의 마지막 날이다. 모든 행사 일정을 마무리 짓고 경주를 탐방한다. 먼저 간 곳은 황룡원이다. 황룡원(皇龍院)은 역사속 유물인 신라시대 황룡사 구층탑 양식의 중도(中道)탑을 중심으로 정신 문화, 의식교육 공간으로 사용되는 연수원이다. 우리 선조들의 뛰어난 예술성과 건축기술을 볼 수 있다. 고대 건축물을 현대의 과학기술과 건축 공법으로 재해석하여 완공하였다. 경주 보문관광단지의 새로운 상징 건물로 자리하고 있다. 황룡원에 들어서자마자 아득한 탑이 신라시대의 웅장한 혼으로 솟구치고 있다. 실내로 입장하여 1층에서 전시된 유물을 보고 설명을 들었다. 그리고 바깥 정원에서 단체기념사진을 찍었다.
경주 황룡원 정원 황룡사9층목탑 앞에서 국제펜회원 단체사진(맨앞줄 중앙 주황색상옷이 김윤자 본인, 그바로뒤 흰모자가 남편 유기섭수필가)
* 경주 황룡사 역사문화관
황룡사 역사문화관은 터만 남은 황룡사지 곁에 있다. 넓은 초원이 황룡사의 옛 숨결만 머금고 있다. 황룡사지는 사적 제6호다. 삼국시대 가장 큰 절로 대표적 왕실사찰이었다. 신라3보인 장륙존상과 9층목탑이 있었던 곳이다. 장륙존상은 몽골 침입 때 완전히 소실되었지만 두 다리와 신광을 꽂았던 구멍이 남아 있다. 3개의 자연석 대좌로 보아 장륙상은 5m 정도의 거불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목탑은 718년(성덕왕 17)에 벼락을 맞아 불에 탄 이래 여러 차례 중수되었다. 그러나 1238년 몽골 침입으로 완전히 소실되었다. 삼국사와 삼국유에 553년(진흥왕 14) 월성 동쪽에 새로운 궁궐을 지으려고 할 때 황룡이 나타나자 그곳에다 황룡사라는 절을 짓기 시작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584년(진평왕 6)에는 금당을 건립했하고 몇 차례 중건되면서 고려시대까지 국가왕실의 보호 아래 호국사찰로서 숭앙되었다. 황룡사지 터를 지나 문화관 안으로 입장하여 신라시대의 유물들을 관람하였다. 맨처음 본 것은 황룡사를 10분1크기로 축소하여 세워놓은 9층 목탑의 황룡사 모형탑이다. 신라의 장엄한 위용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황룡사는 신라 진흥왕 대에서 선덕여왕 대까지 8년간 경주에 세운 대규모의 사원이다. 부처의 힘으로 주변 이민족을 물리치기 위해 황룡사 9층 목탑도 세웠지만 고려 시대 몽골의 침입으로 소실되어 절의 터만 남아있다. 황룡사는 신라 진흥왕 대에 수도 경주의 2500여 평의 터에 세워진 대규모 사원이다. 고려 시대까지 왕실의 보호 아래 호국 사찰로 숭앙되었는데, 고려 시대 몽골이 침입했을 때 불에 타서 현재는 터만 남아 있다. 특히 황룡사 9층 목탑은 부처의 힘으로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세운 것으로, 각 층은 주변 이민족에 대항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탑의 각 층은 아래에서부터 일본, 중화, 오월, 탁라, 응유, 말갈, 단국, 여적, 예맥의 아홉 나라를 상징한다. 인도에서 창시된 불교는 동아시아로 전파되면서 인도 불교와 다른 특징을 지니게 되었다. 동아시아의 불교는 인도 불교와 달리 호국 불교적인 성격을 강하게 띠어 불교가 국가의 안녕을 지키는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동아시아의 각 나라에서는 불교를 군주권을 강화하고 사회를 안정시키기 위한 이데올로기로서 지배층이 먼저 수용하였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각국의 군주를 부처와 동일하게 보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나는 경주 김씨다. 나의 조상이 건설한 신라 천년 고도 경주다. 그래서 신라시대의 유물에 더 애정이 간다. 여러가지 전시한 유물과 유적사진 등을 보고 나오려는데 황룡사 9층 목탑을 재현한 그래픽 사진을 선물로 찍어준다. 자동으로 찍고, 이메일 주소를 입력하면 전송해준단다. 시간 관계상 두 명씩 찍었다. 나의 메일주소를 입력해서 받았다. 문화관을 나오니 황룡사지의 발굴터가 아득하게 전개된다. 신라시대의 드넓은 웅혼이 깃든 터전이다.
경주 황룡사역사문화관 입구
* 경주 분황사
거대한 황룡사지터를 지나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분황사다. 분황사 앞에도 황료사지 터가 아득한 초원으로 남아 외객을 반긴다. 메밀꽃이 하얗게 핀 신라의 품에서 사람들은 그날의 향수에 젖기도 한다. 나 역시 경주 김씨, 신라의 후손으로 잠시 그날의 찬란했던 향수에 젖어 보았다. 분황사 안으로 입장하여 석탑을 둘러보았다. 분황사는 신라의 고승인 원효대사가 머물렀던 절이다. 앞마당에는 다른 절에서는 보기 어려운 모전석탑이 있다. 634년(선덕여왕 3)에 창건되었다. 국보 제30호로 지정된 모전석탑을 비롯하여, 화쟁국사비 비석, 석정, 석조, 초석, 석등, 대석과 사경 이외에 당간지주가 남아 있어 보존되고 있다. 이 절에는 775년(경덕왕 14) 본피부의 강고내미가 구리 30만 6700근을 들여 만들었다는 약사여래동상이 있었는데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 원효가 이곳에서 화엄경소를 썼고, 솔거가 그린 관음보살상은 신화로 전해졌다. 또한 절의 좌전에 있었던 천수대비 벽화는 매우 영험이 있어서 눈 먼 여자 아이가 노래를 지어 빌었더니 눈을 뜨게 되었다고 전한다. 원효대사는 한국 불교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는 인물 중의 한 사람이다. 의상과 함께 당나라 유학길에 올랐다. 그러던 잠든 어느 날 저녁 목이 말라 해골에 든 물을 마신 것을 계기로 모든 진리는 자신에게 있음을 깨닫고 다시 돌아왔다. 이후 신라로 돌아온 원효는 요석공주와의 사이에서 아들 설총을 낳았다. 그는 시대의 위대한 설법가요 이론가로 이름을 떨치게 되었다. 무엇보다 그의 가장 큰 업적은 당시 귀족 중심의 불교를 대중화시켰다는 것과 교조적인 해석으로 나뉘어져 있던 불교의 통합을 위한 이론인 화쟁사상을 제시한 것이다. 원효를 기리기 위해 고려 숙종이 ‘대성화쟁국사’라는 시호를 내리며 비석을 세웠는데, 지금은 우물가에 받침대만 남아 있다. 이후 방치되었던 것을 조선 후기에 추사 김정희가 찾아서 ‘차신라화쟁국사비적’이라 새겨놓았다. 벽돌을 쌓아 만든 모전석탑은 3층까지만 남아 있다. 원래는 7층 또는 9층이었을 것이라 추정한다. 1층에는 각 방향으로 문을 만들고 안으로 감실을 만들어 놓았다. 감실을 지키고 있는 인왕상은 모두 모양이 다른데 7세기경 신라 조각의 진수를 보여준다. 또한 석탑을 지키며 당당하게 서 있는 돌사자도 있다. 분황사 뜨락의 나무 그늘 아래에 모여서 설명을 듣고, 이곳에서 국제펜 세계한글작가대회 해단식을 했다. 손해일 이사장님의 말씀도 듣고 그 동안 이 대회를 준비하느라 수고한 국제펜 김경식 사무총장 외 김율희 편집국장, 이애정 간사의 인사에 박수로 보답했다. 청명한 하늘이 우리의 마지막 해단식까지도 축하해준다. 좀더 분황사 경내를 둘러보고 서둘러 중식식당으로 향했다.
분황사 석탑
* 경주 시가지 무덤
중식식당으로 가는 버스에서 첨성대, 반월성, 무덤 등을 보았다. 도로변에 커다란 신라시대의 무덤군이 장엄ㅁ한 풍경이다. 중식식당은 바로 그 무덤군 앞에 있다. 식사를 마치고 무덤군 안으로 들어가서 둘러보았다. 나는 경주 김씨다. 저 무덤 속에 나의 조상님이 잠들어 있다고 생각하니 남다른 애정으로 다가온다. 신라의 훌륭한 조상들의 무덤 앞에서 다시금 내 조국의 깊은 사랑과 시인으로서의 사명의식이 가슴속에서 붉게 솟는다. 오늘 내가 선 대한민국, 과거와 현재의 내 조국 모든 것들에 대하여 감사하다.
경주시내 중식 식당 앞에서 본 무덤(경주 김씨 나의 조상님들 무덤)
* 국립경주박물관
경주의 마지막 탐방은 국립경주박물관이다. 경주 및 경상북도 지역에서 출토된 유물을 전시하는 박물관이다. 주로 신라시대의 유물을 중심으로 전시하고 있다. 잘 조성된 정원 안으로 들어서니 먼저 에밀레종이 반긴다. 나의 두 아들이 어렸을 때 찾아왔고, 그 이후에도 문학탐방으로 왔던 곳이다. 올 때마다 새로운 감회로 다가온다. 에밀레종은 국보 제 29호로 정식명칭은 성덕대왕신종이다. 옛날에는 종을 직접 쳤는데, 지금은 종의 보존을 위해 녹음 한 소리를 들려주고 있다. 덩그러니 울려퍼지는 에밀레 종소리가 '엄마 때문에...엄마 때문에...'라고 그 전설의 울음이 가슴에 박혀온다. 에밀레종 앞에서 단체기념사진을 찍고 박물관으로 입장하여 전시된 유물을 관람했다. 국립경주박물관에는 크게 신라역사관과 신라미술관, 월지관(구 안압지관)과 옥외전시장으로 나뉘어 있다. 소장된 유물은 8만여 점으로 그 중 3천여 점을 상설 전시중이다. 엄청난 규모의 전시물이다. 전시장에서 관람 중 독일 교수로 특별강연을 했던 알브레히트 하베 교수를 만나 기념사진도 촬영했다. 아주 유창한 한국어로 한글연구에 대한 깊은 관심의 강연응 해주어서 큰 감동을 준 분이다. 감사한 마음으로 사진 속에 담아 오랜 기억으로 저장시키고자 한다. 특벽전시관까지 둘러보고 뒤뜰 정원으로 갔다. 불국사의 석가탑과 다보탑의 모형이 있다. 고선사 터 삼층석탑(국보 제38호)도 있다. 그외 경주 전역에서 출토된 조각이나 건축 부재, 흥선대원군시대의 척화비 등을 전시하고 있다. 신라의 진면모를 보여주는 박물관 건물과 함께 매우 유익하고 뜻깊은 공간이다.
이것을 끝으로 모든 행사의 일정이 마무리 되었다. 버스에 몸을 싣고 신경주역으로 왔다. 도로변의 무덤군을 다시 보며 나의 조상 경주 김씨가 이끌었던 신라의 천년 고도 경주와 이별을 고했다. 흐뭇한 순간이다. 그리고 신경주역에서 3박 4일간 함께 지냈던 국제펜 회원들과 작별을 고하고 오후 2시 50분 KTX를 타고 귀가했다. 세계의 문학에 대하여, 한글문학에 대하여, 한글에 대하여 참으로 많은 것을 배우고 간다. 경주가 베풀어준 후의에도 깊은 감사를 전한다. 기차 안에서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강산을 조망하며 서울역에 오후 5시경 도착했다. 나는 시인이고, 남편은 수필가이어서 항상 함께 문단행사에 동참하기에 더욱 행복한 문학나들이다. 지금도 내 곁에는 남편인 유기섭 수필가가 있다. 행사 내내 함께 지내며 문학 안에서 더욱 돈독한 부부애를 쌓았다. 죽는 날까지 지금처럼만 행복하기를 빌며, 그리고 살아 숨쉬는 날까지 이런 보람되고 유익한 문학행사에 참석할 것을 기원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국립경주박물관 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