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상아리도 꼼짝 못 하는 '바다의 왕' 김종민 前 국립생태원 생태조사본부장
세계 최대의 수족관 업체 '시월드'는 6일(현지 시각) 미국 플로리다주 시월드 올랜도에 살던 서른여섯 살짜리 범고래 '틸리쿰'이 숨졌다고 밝혔어요. 1983년 아이슬란드 동부 해안에서 포획되어 범고래쇼에 출연하던 틸리쿰은 2010년 관객과 대화를 나누던 조련사의 팔을 물고 물속으로 들어가 조련사를 사망하게 하는 등 3차례 인명 사고를 일으켜 '살인 고래'라고 불렸어요.
틸리쿰이 죽은 지 이틀 후 플로리다주 시월드는 범고래쇼를 폐지했어요. 시월드의 범고래쇼는 많은 인기를 누린 동시에 '범고래를 학대한다'는 비판을 끊임없이 받았습니다. 인간이 범고래를 포획해 쇼를 위해 조련하는 것 자체가 심각한 동물 학대라는 것이죠.
범고래는 고래보다 돌고래와 더 비슷한 동물이에요. 크릴 같은 작은 어류를 쓸어 먹는 고래와 달리 범고래는 튼튼한 이빨로 고래나 물범, 물고기와 바닷새를 무지막지하게 잡아먹는 육식성 동물입니다. 덩치가 큰 녀석은 몸길이 10m, 몸무게는 10t이나 되고 갓 낳은 새끼도 몸길이 2.4m, 몸무게는 160㎏에 이르죠. 보통 범고래는 털이 없지만 새끼 범고래는 털이 조금 있답니다. 큰 덩치에도 시속 13㎞로 헤엄치는데 사냥을 할 때는 순간속도가 시속 50㎞를 넘기도 합니다.
범고래는 물속에서도 50m 앞을 볼 수 있을 정도로 시력이 좋아요. 물 밖이든 물속이든 바로바로 앞을 멀리 볼 수 있어 사냥하기에 좋지요. 청력은 더 좋아요. 멀리서 들려온 작은 소리를 듣고도 소리가 난 지점을 바로 알아차릴 정도니 마치 레이더 같지요. 반면 사람의 코처럼 냄새를 맡는 감각기관은 없답니다.
범고래는 포유류 동물이기 때문에 허파로 숨을 쉬어요. 다른 고래처럼 바다 표면 가까이 살면서 몇 분마다 물 밖으로 머리를 내밀어 숨을 쉽니다. 때로는 수심 260m까지 잠수하고 15분 넘게 물속에 있기도 하는데 깊이 잠수할 때는 심장박동이 해수면 가까이 있을 때보다 반으로 줄어요. 심장 등 주요 기관에 산소 부족이 더디게 나타나도록 하기 위해서지요.
범고래는 아주 사납고 무서워 '바다의 왕'으로 불려요. 공포스러운 백상아리도 범고래를 만나면 도망쳐요. 범고래떼가 백상아리를 사냥해 잡아먹기도 한답니다. 범고래는 백상아리보다 덩치는 두 배나 크고 열 배나 센 힘으로 상대를 물어요. 이와 뼈가 더 단단해 범고래와 백상아리가 싸우면 백상아리의 이와 턱이 먼저 망가집니다. 범고래보다 덩치가 훨씬 큰 수염고래도 범고래떼의 사냥감이 되면 무사하지 못해요. 해안가에서 파도로 휩쓸려 바다에 미끄러진 물범도 범고래의 먹이가 되는데 종종 물범을 덮치러 해안가에 왔다가 물이 빠져 바다로 돌아가지 못해 죽는 범고래도 있어요.
범고래의 평균수명은 60~80세로 전 세계에 5만 마리 정도 있다고 합니다. 이 중 100마리 정도만 수족관에서 자유롭게 헤엄칠 수 있게 두고 범고래쇼는 없애는 게 바람직하지 않을까요? 갇혀 사는 범고래가 불쌍하기도 하거니와 조련사가 사고를 당하는 것보단 나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