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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수원교구 오늘의 말씀
1)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살레시오회
몰입하고 헌신하는 과정에서 나를 잊고, 일상적인 고통도 잊습니다!
참 신기한 일이 한가지 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빈둥거릴 때는 어찌 그리도 밥시간이 기다려지는지? 어찌 그리 이것저것 먹고 싶은 것이 많은지? 왜 그리도 미련하게 숨도 못 쉴 정도로 과식을 하는지?
반대로 뭔가 가치있고 의미있는 일, 보람되고 누군가에게 기쁨을 주는 일을 할때에는 먹고마시는 일이 부차적인 일이 되고맙니다. 몰입하고 헌신하는 과정에서 나를 잊고, 일상적으로 겪는 고통과 우울감을 잊고, 더 나아가서 먹고 마시는 일조차 잊게 됩니다.
하루는 예수님을 가까이 따라다니느라 습관적 배고픔과 목마름에 시달려왔던 제자들이 이렇게 청합니다.
“선생님 그 빵을 늘 저희에게 주십시오.”
아직도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강조하시는 빵에 대한 참된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아직도 오븐에서 갓 구워져 나온 김이 모락모락 나는 부드럽고 맛있는 세상의 빵만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래로만 향하던 제자들의 시선을 더 높은 곳으로 향하도록 초대하십시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오늘도 예수님께서는 매일의 성체성사 안에서 쪼개지고 나누어지며 우리를 위한 생명의 빵이 되십니다.
오늘도 예수님께서는 가난하고 고통받는 백성들 안에 현존하시며, 그들을 위한 영원한 생명의 빵이 되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일상적인 헌신과 관대한 나눔으로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의 양식을 제공하라고 초대하십니다.
그런 우리의 노력은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웃들을 향한 생명의 빵이요, 동시에 우리를 향한 영원한 생명의 음료가 될 것입니다.
2)전삼용 요셉 신부님, 조원동주교좌 주임신부님
사도행전 7,51─8,1ㄱ 요한 6,30-35
외적인 표징은 내적인 표징을 앞서지 못한다
나폴레옹의 군대가 러시아에 진격했을 때, 어느 날 러시아 병사 한 명을 사로잡게 되었습니다.
나폴레옹은 그에게 자기를 황제로 섬기면 후한 대접을 해 주겠다며 전향할 것을 권유했습니다.
포로된 그 러시아의 병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러시아 황제 폐하 이외에는 그 누구에게도 나의 충성을 맹세하지 않겠소.”
거절하는 말을 들은 나폴레옹은 화를 내며 부하에게 지시했습니다.
“저 놈에게 거룩한 황제의 표시를 새겨 주어라.”
그러자 한 병사가 달려들더니 그 러시아 병사의 팔에 불 인두로 ‘N’자를 새겼습니다.
“자. 봐라. 이미 네 팔에는 이 나폴레옹의 인(印)이 있느니라.”
이 말을 듣자마자 이 러시아 병사는 옆에 서 있던 프랑스 병사의 칼집에서 칼을 꺼내어 자기의 팔을 뚝 잘라 버렸습니다.
피가 튀기며 하얀 눈밭에 떨어진 자기의 팔을 바라보면서 그는 말했습니다.
“나의 충성은 오직 한 분, 그분에게만 바칠 것이오. 나의 황제 짜르여.”
오늘 복음에서 유다인들은 5천 명을 먹이신 기적을 보고도 또 표징을 요구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무슨 표징을 일으키시어 저희가 보고 선생님을 믿게 하시겠습니까?
무슨 일을 하시렵니까?”
외적인 표징만으로는 그 사람을 구원에 이르는 믿음으로 끌어올릴 수 없습니다.
외적인 표징은 내적인 표징을 위한 준비일 뿐입니다.
외적인 표징은 그저 살에 새겨지는 인(印)에 불과합니다.
내면에 새겨진 표징이라야 구원에 이르는 표징이 됩니다.
성모 마리아께서는 ‘말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셨습니다.
이때의 믿음은 ‘도움의 은총’을 통해 열매 맺은 믿음입니다.
그러자 태중에 말씀께서 사람이 되셔 잉태되셨습니다.
이때 생기는 믿음은 ‘생명의 은총’을 통해 얻게 되는 믿음입니다.
하느님 자신이 생명의 은총이고 그 생명의 은총을 받도록 마음을 여는 힘이 도움의 은총입니다.
도움의 은총까지 이끄는 표징이 외적인 표징입니다.
그다음엔 내적인 변화를 통해 생명의 믿음이 생기게 해야 합니다.
유다인들은 이 과정을 통과하기를 거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독서에서 스테파노가 유다인들에게 “목이 뻣뻣하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이여, 여러분은 줄곧 성령을 거역하고 있습니다.”(사도 7,51)라고 말한 것이 그것입니다.
도움의 은총은 원죄의 원인이 된 자아가 죽을 때 비로소 그 사람 안에서 열매를 맺게 합니다.
그러나 아직 자신의 영광을 추구하는 이들은 믿지 못하는 것이 하느님 탓으로 여깁니다.
그래서 합당한 표징을 달라고 요구하는 것입니다.
외부에서 일어나는 기적이나 이적은 자신에게 큰 영향을 주지 못합니다.
물론 그것으로 도움의 은총을 받아들일 마음이 열리기는 하나 참 구원에 이르려면 그리스도를 받아들여 자신이 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제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하기 직전 겨울, 어머니와 밤샘 성령 기도회에 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놀라운 표징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기도회를 주도하는 회장님의 손 방향에 따라 사람들이 차례로 쓰러지고 걷는 동선에 따라 사람들이 줄지어 쓰러졌습니다.
백합의 향기를 맡게 해 주겠다고 했는데 사람들은 그 향기에 취해 탄성을 질렀습니다.
천상의 음악 소리를 들려주겠다고 하니 사람들은 비명을 질러대기 시작했습니다.
병이 치유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방언하고 그것을 해석하는 사람이 일어나 확신 있게 번역하였습니다.
끝나고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천상의 소리는 정말 기가 막혔다고 말했습니다.
저도 놀라웠습니다.
그러나 그런 체험들은 금방 잊혔습니다.
내가 직접 체험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회장님이란 분이 안 좋은 것과 연관되었다는 이상한 소문도 들려왔습니다.
표징을 보는 것은 이와 같습니다.
외부로부터 오는 표징은 그저 그분께 나의 마음을 열어 들일 힘이 되지만 더는 큰 작용은 하지 못합니다.
내가 자신을 버리고 그분을 받아들여 변하게 될 때 가장 확실하게 믿게 됩니다.
성모 마리아께서 믿음으로 예수님을 받아들여 동정의 몸으로 잉태하게 되었을 때 그것보다 더 확실한 표징은 없을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참 구원에 이르는 믿음을 가지려면 표징을 요구하지 말고 말씀을 받아들여 그대로 해보면 됩니다.
그러면 표징을 몸으로 느끼게 되고 그것이 외적인 표징들을 훨씬 앞선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 일이 있은 후로 5년 동안 ‘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라는 10권짜리 책을 읽기 시작하였습니다.
저의 삶의 목표이자 좌우명은 ‘행복’이었습니다.
25살까지는 세상에서의 성공이 행복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책을 읽고 나서는 세상을 버리고 주님을 따름이 참 행복일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이것이 도움의 은총이 된 것입니다.
이 도움의 은총으로 이끌기까지 외적인 표징이 필요하였던 것입니다.
책을 통해 오시는 주님의 뜻을 믿고 신학교에 들어갔더니 그 이후로 단 한 순간도 후회한 적이 없었습니다.
조금씩 더 행복해졌기 때문입니다.
이것만큼 저에게 큰 표징은 없습니다.
하늘이 변하고 바다가 갈라지는 표징이 눈앞에 나타난다고 해도 내 안에서 일어난 표징만큼 클 수 없습니다.
외적인 표징을 구하지 말고 그리스도를 받아들여 자신 안에서 표징이 일어나게 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표징을 요구하는 이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일단 그리스도를 먹고 마셔보십시오.
그러면 의심할 수 없는 표징은 자신 안에서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을 믿으면 더는 외적인 표징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3)조욱현 토마스 신부님, 왕곡 주임신부님
복음: 요한 6,30-35: 하느님께서 주시는 빵
예수님께서 “하느님께서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는 것”(29절)이 하느님의 일을 하는 것이라고 하시자, 군중들은 “무슨 표징을 일으키시어 저희가 보고 선생님을 믿게 하시겠습니까?”(30절) 말한다. “우리의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습니다.”(31절)고 한다. 유대인들은 예수께서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이라면, 그것을 증명해 보이라고 요구하고 있다. 즉 모세보다 더 위대한 기적을 해보라고 하는 것이다. 그들은 아직도 오천 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먹이신 기적이 하느님께로부터 온 그분의 능력으로 이루어진 일임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참된 빵’에 대해 말씀하신다. “하늘에서 너희에게 빵을 내려 준 이는 모세가 아니다. 하늘에서 너희에게 참된 빵을 내려 주시는 분은 내 아버지시다.”(32절) 그 말씀을 듣자 그들은 “선생님, 그 빵을 저희에게 주십시오.”라고 한다. 그들은 아직도 그 빵을 우리가 먹는 빵으로 생각하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첫 번째 기적을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는 기적을 행하셨다. 그리고 광야에서 빵의 기적을 일으키셨다. 그분은 당신의 몸과 피를 그들에게 주시기 전에 그들의 입을 당신의 빵과 포도주에 익숙하게 하려 하셨다. 그들에게 당신의 살아 있는 몸과 피를 충만히 누리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썩어 없어질 빵과 포도주를 충분히 맛보도록 허락하신 것이다. 성체성사라고 하는 최고의 선물을 주시려고 작은 것들을 공짜로 주셨다. 빵과 포도주의 기적 의미를 알아들어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생명이시기에 우리의 일용할 양식이시다. 그분은 우리의 생명의 빵이시다. 그 “빵은 하늘에서 내려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빵이다.”(33절) 하셨다. 그러므로 ‘일용할 양식’을 청하는 기도는 그리스도 안에 영원히 있으면서 그분의 몸과 떨어지지 않기를 청하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필요한 유일한 양식으로서의 빵을 청하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든 사람을 확실히 배불리 먹이고 완전하게 생명을 줄 수 있는 것을 선택하여야 한다. 하느님의 아들이야말로 아버지 하느님께서 주신 참된 만나,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시다. (베들레헴: 빵의 집)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35절)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 성인은 이렇게 말했다. “제가 바라는 것은 하느님의 빵, 곧 다윗의 후손이신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피, 곧 썩어 없어지지 않을 사랑을 음료로 마시기를 원합니다.”(로마 7) 이 빵은 그분의 신성을 가리킨다. 성찬례의 빵이 거기에 내리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거룩한 빵이 되듯이 이 신성은 말씀이신 하느님으로 말미암은 ‘빵’이다. 그래서 이 빵은 삶 전체를 영원한 생명으로 바꾸어 놓을 빵이라는 뜻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오늘도 그 빵을 우리에게 주신다. 그분은 사제로서 매일 당신의 말씀으로 그것을 축성하시기 때문이다. 이 빵은 그래서 신자들의 양식이 되었다. 이 빵으로 참 생명을 약속하신 주님의 말씀을 따라 이 세상을 살아가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4)조명연 마태오 신부님, 인천가톨릭대학교 성김대건 주임신부님
인도에서 기도를 배우는 한 수련자가 스승에게 달려와 외쳤습니다.
“스승님! 제가 드디어 물 위를 걸어 갠지스 강을 건너게 되었습니다. 기도의 응답이 온 것입니다.”
그러자 스승이 “그래, 몇 년이나 수련했나?”라고 물었고, 제자는 18년이 걸렸다고 대답했습니다. 이에 스승은 이상한 질문을 합니다.
“갠지스 강을 건너는 뱃삯이 얼마인가?”
제자는 이 질문에 18루피(한화 300원) 정도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스승은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자네는 18년 동안 18루피를 벌었군.”
물 위를 걷게 해 달라는 기도는 과연 필요한 기도였을까요? 배를 타고 가면 그만이니 필요한 기도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저 자기만족만을 위한 기도였던 것입니다. 어쩌면 자기 성취를 위한 기도 모두가 그렇지 않을까요? 그러나 많은 이가 자기 성취에 도달해야 기도의 응답을 받았다고 착각합니다.
자기 기도를 세상 기준에 맞춰서는 안 되었습니다. 그보다 하느님 기준에 맞출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의 구원을 위해 사랑하는 아들까지 내어주셨던 하느님의 사랑에 기준을 둘 수 있어야 합니다. 하느님 기준에 맞추는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실망하지 않고, 절망도 또 좌절도 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순간만 바라보면서 진리를 향해 나아가게 됩니다. 이것이 진짜 행복의 길이 아닐까요?
군중이 예수님께서 “무슨 표징을 일으키시어 저희가 보고 선생님을 믿게 하시겠습니까?”라고 말합니다. 그들이 예수님께 청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자기들의 성취, 자기들의 만족을 위한 기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과연 진정한 행복의 길로 이끌어 줄까요? 아닙니다. 그들은 계속해서 청하기만 할 것입니다. 삶 안에서 이루어지는 하느님의 뜻을 보려 하지 않고, 자기만족을 채워야 진정한 하느님이라면서 엉뚱한 곳에서만 하느님을 찾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 뜻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온갖 불평과 원망 속에서 스스로 포기하고 좌절에 빠지게 됩니다. 실제로 과거 광야에서 떠돌이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러했습니다.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지만, 그들은 계속해서 하느님의 뜻을 거부했습니다. 그 결과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까지 40년이나 걸렸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생명의 빵이다.”라고 하시면서, 오로지 하느님께 기준을 맞추는 삶을 살 것을 명하십니다. 그래야 결코 배고프지 않고, 결코 목마르지 않습니다.
오늘의 명언: 주거지를 선택할 때는 그 마을 사람의 따뜻한 인정이 있는지를 봐야 한다(공자).
5)김혜선 아녜스 - 출처 : 바오로딸콘텐츠, 묵상-말씀이 시가 되어
“내가 생명의 빵이다.”(요한 6,35)
그 빵은
육신의 배고픔을 없애주는
평범한 빵이 아니라
고난과 갈등 속에서
길을 찾지 못하고
오래 오래 방황하던 이들의
영혼을 울려주는
회개의 빵이라네.
그 빵은
육을 살리는
세상의 빵이 아니라
영을 살리는
천상의 빵이라네.
6)김경진베드로 신부님 - 의정부교구 한마음청소년수련원
“선생님, 그 빵을 늘 저희에게 주십시오.”
저는 직접 가본 적이 없지만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곳이
‘베틀레헴’이라고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바로 ‘빵집’이라는뜻입니다.
벳트(집) 레헴(빵)!
밀가루로 먼든 세상의 빵은 대형 베이커리 빵집에 가면 있고
영원히 배고프지 않을 영적인 말씀의 빵은 한마음에 있습니다.
비록 새벽부터 기다리는
유명 빵집에 밀리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저는 새벽부터 손님맞이를 위해
오천 명을 먹일 영적인 빵을 굽겠습니다.
“신부님, 그 빵을 늘 저희에게 주십시오.”하고 청할
손님 한 분을 정성스럽게 맞이하기 위해
오늘도 말씀으로 무장하고
맑은 정신으로 정갈하게 준비하렵니다.
오늘 하루도 나를 구워 ‘생명의 빵’을 먹고 주님의 힘으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7)한상우 바오로 신부님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다."(요한 6, 35)
꽃잎을
다 떨구어도
여전히
꽃나무로
존재하는
신비입니다.
배고픔을
채워주어야
생명의
빵입니다.
받아들여야 할
생명의 빵입니다.
생명의 방향은
생명의 빵이
되는 소중한
생명의
삶입니다.
생명의 삶은
생명의
나눔으로
풍요롭습니다.
우리가
가야할 길 위에
생명의 빵이
있습니다.
끊어진 길을
이어주는
생명의 빵입니다.
생명의 빵을
벗어난 삶은
하느님을
벗어나는
우리의
교만입니다.
교만의
반대방향에
생명의 빵이
있습니다.
생명의 빵을
먹으며
알게 되는
하느님의
구체적인
사랑입니다.
생명의 빵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삶을 좌우하는
생명의 빵이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생명의 빵이
되어 오시는
예수님께
방향을 틀어
아멘이라
응답합니다.
그 어떤 것도
생명의 빵을
이기지 못합니다.
생명의 빵에서
살아갈 힘을
얻습니다.
생명의 빵에서
생명의 문(門)이
활짝 열립니다.
영원히
남는 것은
언제나
생명의 빵입니다.
생명의 빵으로
눈에 보이지 않던
하느님 나라를
우리가
보게됩니다.
생명의 빵은
하느님 나라와
다르지 않습니다.
생명으로
나가는
생명의 빵을
받아모시는
생명의 기쁨
되시길
기도드립니다.
8)이병우 루카 신부님
<부활 제3주간 화요일>(4.16) -세월호 10주기-
"내가 생명의 빵이다."(요한6,35)
'정화와 기억!'
오늘 복음은 '요한복음 6장 30절에서 35절의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하느님의 일은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시자, 군중이 예수님께 묻습니다. "그러면 무슨 표징을 일으키시어 저희가 보고 선생님을 믿게 하시겠습니까? 무슨 일을 하시렵니까?"(요한6,30)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하늘에서 내려오는 하느님의 빵, 세상에 생명을 주는 빵'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군중이 예수님께 "선생님, 그 빵을 늘 저희에게 주십시오."(요한6,34) 하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십니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요한6,35)
그렇습니다.
믿는 이들이 받아모시는 '성체(聖體)는 보이지 않는 영을 살리는 영적 양식'입니다. 그렇게 되려면 생명의 빵인 성체를 받아모시기에 합당한 마음의 상태가 되어야 합니다. 곧 나의 마음이 깨끗한 마음이어야 합니다.
만약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성체를 받아모시면, 내 영에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며, 오히려 성체를 모독하는 모령성체(冒領聖體)의 죄를 짓게 됩니다. 그래서 믿는 이들은 성체를 받아모시기에 합당한 영혼이 되기 위해서, 성체를 받아모시기 전에 꼭 '고해성사와 자비기도를 통한 정화(淨化)의 시간'을 갖습니다.
'나는 얼마나 정화의 시간을 잘 갖고 있는가?'
오늘은 '세월호 참사 10주기'입니다.
한국 천주교회 모든 교구는 오늘 304명의 불쌍한 세월호 희생자들과 아직도 고통 중에 있는 유가족들을 기억하며 기도합니다. 그리고 하루빨리 제대로 된 진상규명이 이루어지기를 촉구합니다.
"주님, 세월호 희생자들과 어제 세상을 떠난 박남분(세실리아) 자매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영원한 빛을 그들에게 비추소서. 아멘."
복음 말씀
<하늘에서 너희에게 참된 빵을 내려 주시는 분은 모세가 아니라 내 아버지시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6,30-35
그때에 군중이 예수님께 30물었다. “그러면 무슨 표징을 일으키시어
저희가 보고 선생님을 믿게 하시겠습니까? 무슨 일을 하시렵니까?
31 ‘그분께서는 하늘에서 그들에게 빵을 내리시어 먹게 하셨다.’는 성경 말씀대로,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습니다.”
3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에서 너희에게 빵을 내려 준 이는 모세가 아니다.
하늘에서 너희에게 참된 빵을 내려 주시는 분은 내 아버지시다.
33 하느님의 빵은 하늘에서 내려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빵이다.”
34 그들이 예수님께, “선생님, 그 빵을 늘 저희에게 주십시오.” 하자,
35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