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이공계 엘리트 육성의 산실인 카이스트(KAIST)는 ‘실패할 수 있는 자유’를 모토로 2021년에 설립된 실패연구소가 있다. 이는 실패로부터 배우는 카이스트의 이색적인 도전을 상징한다.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경직된 사회 분위기와 맞물려 학교에서 한때 극단적 선택의 사례가 빈번해짐에 따라 대학으로서 이에 대한 대책을 마련한 역발상의 산물이다.
카이스트 실패연구소는 지난 11월 8일부터 2주간을 ‘실패 주간’으로 정하고 ‘망한 과제 자랑대회’와 ‘실패 에세이 공모전’ 등 실패 사례를 공유하는 다양한 행사를 열었다. 각자의 실패 사례를 숨김없이 드러내고 그에 따른 고통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서로의 경험담을 공유하면서 ‘실패는 누구라도 피할 수 없는 것’이며 ‘실패야말로 성공의 첫 걸음’이란 인생의 진리를 자연스럽게 깨닫게 하자는 취지에서 해마다 실패학회 행사를 이어오고 있다.
중앙선데이(2024.11.16.)의 심층기획 기사에 의하면 실패연구소가 설립된 뒤 학생들은 ‘실패’라는 단어를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자리가 만들어지자 변화의 움직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금년에 2회 째 열린 ‘망한 과제 자랑대회’는 성황리에 개최되고 학생들의 반응은 예상보다 뜨거웠다. 학생들은 동료들과 실패 경험을 공유하며 ‘한 번 실패는 곧 나락’이란 두려움을 떨쳐내기 시작했으며 이런 계기를 통해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란 사실을 받아들이게 됐다.
“실패는 넘어지는 것이 아니라 일어나는 것을 포기하는 것이다.” 이는 중국 춘추시대의 사상가이자 호학(好學)의 성인이라 불리는 공자가 실패를 정의한 말이다. 이 말을 보면 그는 주어진 삶을 지혜롭게 개척해 나갔을 것 같지만 그의 인생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사실 그는 끊임없는 도전에도 벼슬길이 번번이 막혔고 13년 동안 천하를 주유하면서 제자들과 함께 했다. 그는 결코 실패에 굴하지 않았고 끝내 성공을 이룬 배경엔 실패를 딛고 일어선 힘이 원동력이었다. 카이스트가 성공보다 ‘실패할 수 있는 자유’를 강조하는 것도 같은 이와 같은 맥락이다.
오늘의 우리 학생들은 꿈꾸기를 주저하고 설령 꿈을 꾼다 해도 이룰 수 없음에 좌절하고 주저하는 경향이 강하다. 안타깝게도 자신의 잠재력에 대해서 쉽게 포기한다. 이는 한번 실패하면 모든 것을 잃는다고 생각하여 감히 도전하기를 꺼려하기 때문이다. 대학의 실패연구소가 2022년 말 카이스트 학생과 교직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어떤 일을 해내지 못했을 때 자신에게 충분한 재능이 없는 게 아닐지 두려운가’라는 질문에 학부생 10명 중 8명, 대학원생 10명 중 7명이 ‘두렵다’고 답했다. ‘실패가 자신의 미래 계획을 망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도 절반 이상이 ‘그렇다’고 답했다.
이는 국내의 수재들의 집합소인 카이스트에만 국한 된 것이 아니다. 이는 오직 객관식 선다형에서 정답을 찾는 데만 익숙한 중고등학생들에게서 시작된다. 세상사에는 명확한 정답이 반드시 정해져 있는 것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우리의 교육은 이미 청소년 사고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하나만 실수해도 대학 선택과 미래의 운명이 바뀐다고 생각하니 자연히 신중 모드로 돌입하고 이는 지나친 웅크림과 돌다리도 두드리는 신중함을 낳는다. 과감한 행동으로 도전하고 여기서 겪는 수많은 실패 경험으로 성숙하고 성장하는 젊은이의 도전 정신과 호연지기는 아예 처음부터 차단당하는 것이다.
세상사엔 ‘한번 실수는 병가지상사’란 정신 자세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특히 어린 학생들은 실패의 경험으로부터 배우고 성장하기 마련이다. 이제 우리 사회는 국내의 유수한 기업 중에 실패를 많이 한 사람을 우선 채용하는 전략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실패를 많이 한 사람은 앞으로 실패할 확률이 그만큼 적어진다는 논리적 경영철학이다. 이는 과학계의 ‘엔티로피 법칙’ 즉, 총합 에너지 법칙과도 상통한다. 세상 에너지의 총량은 정해져 있는데 이를 구성하는 에너지는 긍정과 부정의 에너지가 모두 합쳐져 구성된다는 원리다.
우리 교육의 시급한 과제는 얼마나 실패를 딛고 빨리 회복하느냐 하는 회복탄력성을 기르는 것이다. 오뚜기처럼 순간의 실패를 딛고 즉시 일어서는 사람과 한 번의 실패에 모든 동력을 상실하고 좌절과 포기로 쉽게 절망하는 것은 하늘과 땅의 차이만큼 엄청난 결과를 가른다. 어린 나이에 가급적 많은 경험을 하고 이를 바탕으로 강력한 삶의 힘을 키우는 것은 교육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카이스트처럼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인재들이 실패하는 것을 북돋우고 실패를 성공의 기반으로 만드는 포용의 힘을 우리 초중고에서부터 앞서 실천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는 후에 대학과 사회로 연계되어 기업에서 실패를 많이 한 인재를 선발하는 사례처럼 실패야말로 성공의 필요충분조건이라는 긍정적인 인식을 널리 확산시킬 수 있는 우리 교육이 되기를 소망한다.
한국교육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