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 부처님은 다시 부루나에게 말씀하셨다.
"부루나여, 그대가 유마힐에게 가서 문병하라."
부루나는 부처님께 여쭈었다.
"저는 거기 가서 문병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옛날 제가 큰 숲 속 한 나무 밑에서, 모든 새로 배우는 비구들을 위하여 법을 설할 때에, 유마힐은 제게 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부루나님, 먼저 마땅히 정에 들어, 이 사람들의 마음을 관한 뒤에 설법하고, 더러운 음식을 깨끗한 그릇에 담지 마시오. 그대는 중생의 근원도 알지 못하고 소승법으로서 발기하지 마시오. 저들은 본래 부스럼도 없는데 상처 낼 것이 무엇이오? 큰 길로 가려 하는데 작은 길을 보이지 마시오. 큰 바닷물을 발자국에 넣으려 하지 말고, 햇빛을 반딧불에 비기지 마시오. 이 비구들은 대승심을 발한 지 오래였으나 중간에 잊었거늘, 어째서 소승법으로 교화하려 하시오? 내가 보기에는 소승들은 지혜가 적고 옅어서, 마치 눈 먼 사람같이 일체 중생의 근기가 날카로운지 둔한지도 능히 분별하지 못하오.' 하고, 유마힐은 곧 삼매에 들어, 이 비구들로 하여금 스스로 자기들의 숙명을 알게 하니, 모두 일찍이 오백 부처님 처소에서 여러 가지 덕본을 심고 보리로 회향한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곧 마음이 열려 본심을 얻고는, 유마힐의 발치에 정례했습니다. 유마힐은 이내 설법하여 다시 그들로 하여금 보리에서 퇴전하지 않게 하였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남의 근기를 관하지 못하고는 설법도 하지 못할 것이니, 그러므로 저는 거기 가서 문병할 수 없습니다."
6 부처님은 가전연에게 말씀하셨다.
"가전연이여, 그대가 유마힐에게 가서 문병하여라."
가전연은 부처님께 사뢰었다.
"부처님이시여, 저는 거기 가서 문병하지 못하겠나이다. 왜냐하면, 옛날에 부처님께서 모든 비구를 위하여 간단히 법을 설하시고, 제가 그 다음에 그 뜻을 늘려 펴면서 무상ㆍ고ㆍ공ㆍ무아ㆍ적멸의 뜻이라 하였더니, 유마힐은 제게 와서 말했습니다. '생멸하는 심행으로 실상법을 설하지 마시오. 모든 법이 필경에 불생불멸하는 것이니, 그것이 무상의 뜻이요, 오수음을 통달하여 공해서 일어나는 것이 없으니, 그것이 고의 뜻이요, 모든 법이 구경에 있는 바가 없으니, 그것이 공의 뜻이요, 아와 무아가 둘이 아니니 그것이 무아의 뜻이요, 법이 본래도 그런 것이 아니요 이제도 멸함이 없으니, 그것이 적멸의 뜻이오' 라고 하였습니다. 그 법을 설할 때에 모든 비구들은 마음에 해탈을 얻었으니, 그러므로 저는 거기 가서 문병할 수 없습니다."
7 부처님은 다시 아나율에게 말씀하셨다.
"아나율이여, 네가 유마힐에게 가서 문병하라."
아나율은 부처님께 사뢰었다.
"부처님이시여, 저는 거기 가서 문병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옛날 어떤 곳에서 경행하고 있을 때에 엄정 범천이 일만 범천과 더불어 제게 와서 깨끗한 광명을 놓으며 정례하고 묻기를 '하늘눈으로 얼마나 보느냐?' 하기에 저는 '석가모니의 삼천 대천세계를 손바닥 위의 과실 보듯 하노라.' 하였더니, 유마힐이 저에게 와서 말하기를 '아나율님, 하늘눈으로 보는 것이 상을 짓는 것입니까, 짓는 상이 없는 것입니까? 만일 상을 짓는다면 외도들의 오통과 같고, 짓는 상이 없다면 그것은 곧 무위라, 보는 것이 없는 것이오.' 했습니다. 저는 그때 잠자코 말이 없었더니, 저 모든 범천들은 그 말을 듣고, 매우 기뻐해 정례하고 묻기를 '세상에 누가 참으로 천안을 가졌습니까?' 하니, 유마힐은 '부처님이 참으로 천안을 얻었으니, 항상 삼매에 계시며 모든 불국토를 다 보시되, 두 가지 상이 없다.'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거기 가서 문병하는 것을 감당하지 못하겠습니다."
8 부처님은 다시 우바리에게 말씀하셨다.
"우바리여, 네가 유마힐에게 가서 문병하라."
우바리는 부처님께 사뢰었다.
"부처님이시여, 저는 거기 가서 문병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옛날에 두 비구가 율행을 범하고 부끄럽다 하여, 감히 부처님께는 묻지 못하고 제게 와서 묻기를 '우바리여, 우리들이 율을 범하고, 감히 부처님께는 묻지 못하겠으니, 원컨대 우리의 의심과 뉘우침을 풀어서 이 허물을 면하게 하소서.' 하므로, 저는 곧 그들을 위하여 법다이 해설했더니, 유마힐이 내게 와서 말하기를 '우바리님, 이 두 비구의 죄를 더 무겁게 보태지 마시오. 마땅히 바로 없애 주고 그 마음을 요란하게 마시오. 무슨 까닭이냐 하면, 그 죄의 성은 안에도 있지 않고 밖에도 있지 않고 중간에도 있지 않아서, 부처님의 말씀하신 바와 같소. 마음이 더러우므로 중생이 더럽고 마음이 조촐하므로 중생이 조촐한 것이오. 마음은 안에도 있지 않고 밖에도 있지 않고 중간에도 있지 않으니, 마음이 그러하므로 죄의 때도 또한 그러하고, 모든 법도 또한 그러하여 여에 나지 않는 것이오. 만일 우바리가 심상으로 해탈을 얻는다면 무슨 때가 있겠소?' 하기에, '저는 때가 없습니다.' 하였더니, 유마힐은 다시 '일체 중생의 마음에 때가 없는 것도 또한 그러하오. 우바리님, 망상이 때이므로 망상만 없으면 조촐하고, 거꾸로 된 생각이 때이므로 거꾸로 된 생각만 없으면 조촐하며, 나를 취하는 것이 때이므로 나를 취하지 않으면 조촐한 것이오. 일체 법이 생멸하여 머물지 않는 것이 환과 같고 번개와 같소. 모든 법은 서로 기다리지 않고 일 년 동안도 머물지 않으며, 모든 법은 망견이라, 꿈과 같고 아지랑이와 같으며, 물속의 달과 같고 거울 속의 물상과 같아, 모두 망상으로 나는 것이니, 이것을 아는 것을 이름하여 계율을 받든다는 것이며, 이것을 아는 것을 이름하여 잘 해탈한다는 것이오.' 했습니다. 그때 두 비구는 '참으로 상지입니다.' 하고 찬탄했습니다. 부처님을 제하고는 성문이나 보살은 능히 그 변재를 꺾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거기 가서 문병할 수 없습니다."
9 부처님은 다시 라후라에게 말씀하셨다.
"라후라야, 네가 유마힐에게 가서 문병하라."
라후라는 부처님께 사뢰었다.
"부처님이시여, 저는 유마힐에게 가서 문병할 수 없습니다. 어째서냐 하면, 옛날에 비사리성 여러 장자의 아들들이 저에게 와서 묻기를 '라후라여, 그대는 부처님의 아들로서, 전륜왕의 위를 버리고 집을 떠나 도를 닦으니, 집을 나오는 것이 무슨 이익이 있느냐?' 하기에 저는 그들을 위하여 법다이 스님이 된 공덕의 이익을 설명했습니다. 그때에 유마힐은 저에게 와서 '라후라님, 마땅히 집을 나온 공덕ㆍ이익을 설하지 마시오. 왜냐하면, 이익도 없고 공덕도 없는 그것이 출가요, 유위법으로는 공덕이 있고 이익이 있다고 설하겠지마는, 대저 출가라는 것은 무위법이니, 무위법에는 이익도 없고 공덕도 없는 것이오. 출가한 것은 저쪽도 없고 이쪽도 없고 중간도 없으며, 육십이견을 여의어 열반에 처하는 것이니, 그것이 지혜 있는 자가 받는 것이며, 성인이 행하는 바이오. 여러 마군을 항복받고 오도를 도탈하며, 오안이 조촐하고 오력이 생기며, 오근을 세워서 거기에 번뇌하지 않고 모든 악을 여의며, 모든 외도를 꺾고 거짓 이름을 초월하여 얽매임이 없으며, 아소도 없고 받을 바도 없고 요란도 없어서, 선정을 따라 여러 가지 허물을 여의는 것이니, 이것이 참으로 출가라 하는 것이오.' 하고, 다시 여러 장자의 아들에게 말하기를 '너희들은 마땅히 이 바른 법에서 출가하라. 부처님의 세상을 만나기는 어려우니라'고 할 때에, 장자의 아들들은 말하기를 '우리는 들으니, 부처님 말씀이, 부모가 허락하지 않으면 출가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유마힐은 대답하기를 '그렇다. 너희들은 보리심만 발하라. 그것이 출가요, 그것이 구족계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거기에 가서 문병하지 못하겠습니다."
10 부처님은 다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아난이여, 네가 유마힐에게 가서 문병하라."
아난은 부처님께 여쭈었다.
"부처님이시여, 저는 거기 가서 문병하지 못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옛날에 부처님께서 조금 병환이 계실 때에, 마땅히 우유를 써야 하겠으므로, 제가 바리때를 가지고 큰 바라문의 집 문 앞에 섰더니, 유마힐은 저에게 와서 말하기를 '아난 존자님, 어째서 이른 새벽에 바리때를 들고 여기에 있소?' 하기에, 저는 '부처님께서 병환이 계시는데, 우유를 써야하므로 여기에 왔습니다'라고 대답했더니, 유마힐은 '아서시오. 그런 말을 하지 마시오. 여래의 몸은 금강체라 모든 악을 이미 끊었으며, 여러 선이 모두 모이었는데, 무슨 병이 있으며 무슨 번뇌가 있겠소? 아난 존자님, 아무 말 마시오. 여래를 비방하지 말고,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이런 말을 듣지 못하게 하며, 큰 덕이 있는 모든 하늘 및 다른 정토에서 온 모든 보살로 하여금 이런 말을 듣지 말게 하시오. 전륜성왕은 조그마한 복으로도 오히려 병이 없거든, 하물며 여래는 무량한 복이 모이어 가장 뛰어나심이라. 아난님, 어서 가시오. 우리들로 하여금 부끄러움을 받게 하지 마시오. 외도나 바라문들이 만일 이런 말을 들으면, 필연 이렇게 생각할 것이오. '어째서 스승이라 하면서 자기의 병도 구원하지 못하며, 또 어떻게 남의 병을 구하겠는가?'고. 어서 빨리 가시오.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듣게 하지 마시오. 아난님, 마땅히 아시오. 모든 여래의 몸은 법의 몸이요, 더러운 욕심의 몸이 아니오. 부처님은 세상에 높아서 삼계를 지나가고, 부처님 몸은 누가 없어 모든 번뇌가 다했소. 부처님 몸은 함이 없어서 모든 수에 들지 않소. 이런 몸으로 무슨 병이 있겠소?' 했습니다. 그때 저는 실로 부끄러웠습니다. 부처님이시여, 유마힐의 지혜ㆍ변재가 이러하므로, 저는 거기 가서 문병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