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의 시점은 2015년입니다.)
126. 해결사 해삼 추적대
쌍칼이 배차돌로부터 이글스파 해결사의 얘기를 전해 들은 4월 말경으로부터 약 3주일 전, 서울 신림동 이글스파 본부 ‘웰 모텔’ 7층 오야붕 윤OO 회장 집무실.
“뭐? 해결사 해삼이 사라졌다고?”
집무 테이블 의자에 앉아 보고받던 윤 오야붕이 놀란 눈으로 김 전무를 올려다봤다.
“예. 좀 전에 경리 직원이 해삼과 멍게를 퇴원시키려고 병원에 갔는데, 이틀 전부터 두 놈 다 병실에 들어오지 않았답니다.”
김 전무가 금테 사각 안경 속 날카로운 눈매를 내리며 조신하게 대답했다.
“두 놈이 함께 어딘가로 튀었단 말이가?”
윤OO이 얼굴을 구기며 눈살을 찌푸렸다.
“예. 아마도 지난번 수원 일로 문책을 당할까 봐 겁먹고 도망친 것 같습니다.”
김 전무가 오야붕의 심기를 최대한 건드리지 않으려고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2주일쯤 전에 문도와 삼봉의 활약으로 수원 북문파 오야붕과 별장을 지키던 친위대 보스와 행동대장 등 십여 명이 살인 교사와 살인 및 시체 은닉 혐의로 줄줄이 구속된 사건이 발생했다.
그 후 수원 북문파는 보스 중에 영통지구를 관장하던 장훈교 보스가 오야붕 대행 역할을 맡게 되었다.
그런데 수감 중인 북문파 오야붕이 평소 친분이 있는 이글스파 오야붕 윤OO에게 밀지를 보내서 대행인 장훈교 보스가 북문파를 제대로 관리하고 있는지 감시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래서 윤OO는 자기 조직의 해결사인 해삼과 멍게 조를 수원에 밀파해서 북문파 장훈교 오야붕 대행을 미행하게 시켰다.
장훈교를 미행하던 해삼은 북문 룸살롱에서 장훈교를 만나고 나오는 문도를 발견하였고, 전에 시흥시에서 당한 복수를 하려고 뒤를 밟았다.
그런데 수원 원천저수지에서 문도와 삼봉을 습격했던 해삼과 멍게는 오히려 문도네에게 얻어터져서 눈텡이가 밤탱이가 되어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문책당할까 봐 조직을 배신하고 도망을 쳤다? 이런 육시를 헐 놈들!”
윤OO의 미간이 있는 대로 다 구겨졌다.
“추적대를 급파해야 하는데, 간부회의를 소집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김 전무가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라 다른 보스들과 의논하자고 제안했다.
그는 자금관리 담당이면서 오야붕의 책사 노릇도 하는 인물이다.
“그래. 그놈이 어디 다른 조직에 들어가면 골치 아파진다. 얼른 추적대를 구성해서 빨리 잡아 와야지!”
윤OO의 지시로 잠시 후에 간부들이 불려 와 응접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윤OO 오야붕 왼쪽 줄에 땅굴 부본무 보스와 김 전무가 나란히 앉고, 오른쪽 줄에 똥개 길도개와 전대 노전대 실장이 배석했다.
부본무는 윤OO와 친구 사이로 이글스파 창립 멤버이고 20여 명 대원을 거느리고 본부인 ‘웰 모텔’을 관리하고 있다.
똥개는 ‘똥개 퓨전포차’ 지배인으로 대원 15명을 별도로 거느리고 구로디지털단지의 장례식장도 관리하며, 전대는 14개 대부 업소 28명을 관리하는 책임자이다.
“해삼은 고향이 전남 해남인데, 그쪽에서 혼자 놀다가 상경해서 우리 회사에 들어온 지는 5년 좀 넘었습니다. 석 달 전에 입사한 멍게는 파주 금촌 변두리 시골이 고향이고 객지 생활한 지는 10년이 넘는 걸로 보입니다. 둘 다 고졸로 서울에 학교 친구는 없는 것 같습니다.”
해삼과 멍게의 입사원서를 들여다보며 김 전무가 간략히 두 사람의 출신 배경을 설명했다.
“고약한 자식들이네! 물론 고향에 가지는 않았겠지만, 일단 추적대를 그쪽으로 보내봐야 되지 않겠소?”
부본무 보스가 윤OO의 눈치를 살피며 당연한 얘기를 했다.
항상 그렇듯 한 수 아래 위치에 있는 똥개와 노 실장은 오야붕의 눈치만 살피고 직접 물어보기 전에는 자신들의 의견은 내놓지 않는다.
“그놈들도 머리는 있는데 고향 근처로 갔겠나? 객지에서 자취생활 하던 놈들이라 모아둔 돈도 별로 없을 거 아니야? 해삼은 칼질을 잘하니까, 분명히 두 놈이 세트로 어디 다른 조직에 들어갈 확률이 높지 않겠어?”
윤OO이 나름 노련한 통박을 굴려 당연히 다른 조직 쪽을 살펴보는 것이 나을 거라고 말했다.
“저, 회장님. 일단 고향에 사람도 보내고, 다른 조직도 수소문해 보기는 하겠습니다. 그보다 우리 회사 내부에 그놈들의 동향을 알면서도 귀찮거나 야단맞을까 봐 섣불리 입을 열지 못하는 대원들도 있을지 모릅니다.”
김 전무가 조심스럽게 다른 얘기를 꺼냈다.
“음..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러면 그놈들과 업무적으로 가까운 대원들을 전부 족치면 안 되겠나?”
윤OO이 그럴듯한 얘기다 싶은지 해삼과 멍게 주변에 있던 대원들을 당장 불러들이라고 했다.
“이런 경우는 채찍보다 당근이 더 나을 것 같습니다. 잘못하면 괜히 어문 대원들을 다그쳐서 전체 직원들 사기를 떨어뜨릴 수도 있으니까요.”
김 전무가 다른 간부들도 둘러보며 동의를 구했다.
“채찍보다 당근이라고? 포상하잔 말이가? 음, 흠. 그렇지. 상금을 걸면 긴가민가 싶고, 애매모호해 보이는 것도 다 미주알고주알 밝히고 나오겠지. 그래, 그래라!”
“아, 그거 좋은 생각이요. 상금을 너무 적게 걸지 말고, 좀 넉넉히 걸면 의외의 소득이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하찮은 것도 접수되면 10만 원쯤 준다고 하고,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하는 사람한테는 한 달 치 봉급보다 조금 많게, 한 이삼백만 원쯤 포상한다고 하면 어떻겠습니까?”
부본무 보스가 찬성하며 친구이자 오야붕인 윤OO를 설득했다.
“그래, 그렇게 해라. 당장 그놈들 잡는 일이 급하니까, 최대 5백만 원 걸어라! 그러고, 말 안 했다가 나중에 발각되는 놈들은 심한 벌을 받게 될 거라고 덧붙여라.”
윤OO도 해결사 해삼이 다른 데서 자기들 비밀을 까발리면 큰일이니까 그까짓 5백만 원쯤은 아깝지도 않은 모양이다.
그렇게 이글스파 수뇌부의 회의 결과는 해삼과 멍게의 사진과 함께 ‘조금이라도 이상했던 점을 부본무 보스에게 직접 보고하라’고 전 직원들에게 문자 메시지로 공고되었다.
동시에 대원 중에 해남과 금촌에 연고지가 있는 빠릿빠릿한 녀석들로 추려서 추적대 두 팀 열 명도 별도로 구성되었다.
그러자 공고문이 뜬지 한 시간도 안 지나서 한 명이 부본무 보스 방문을 조심스럽게 노크하고 들어왔다.
그는 바로 해삼과 멍게가 수원에 갔을 때 탔던 검은색 트라제 운전수인 장발머리였다.
“응. 무슨 일인가?”
부본무가 혹시나 하며 물었다.
“저.. 해삼과 멍게 대원에 대해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장발머리가 죄인처럼 주저주저하며 모깃소리를 내었다.
“아, 그래? 거기 좀 앉아라.”
부본무가 반색하며 응접 소파를 가리키고 일어섰다.
“그래. 마음 턱 놓고, 차분히 말해 보거라.”
소파 상석에 앉은 부본무가 부드러운 미소로 주눅이 든 장발머리를 안심시켰다.
“예. 저는 지난번에 해삼과 멍게 대원을 태우고 수원에 갔던 운전사입니다. 그날 두 사람이 수원 원천 저수지에서 괴한 두 명과 싸우다가 다치지 않았습니까?”
“그랬지. 해삼 말로는 북문파 보스와 접선하던 놈들이라 뒤를 밟다가 기습당했다고 했는데?”
이미 해삼에게서 부상당한 경위를 들어 알고 있는 부본무가 그런데? 하고 물었다.
“그날 해삼을 부축해서 차에까지 데리고 온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래. 광교공원 경비원들이 호각을 불고 달려오니까, 산책 나왔던 두 사람이 도와줬다고 했었잖아?”
“그게요, 지금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그중 한 사람을 전에 시흥시에서 한번 봤던 것 같습니다.”
“뭐? 전에 시흥시에서 본 적이 있다고? 언제 말이야?”
“전에 대전공동구 사건으로 우리가 원주민파 요청을 받고 출동한 적이 있잖습니까? 그때 그 납치해오던 마해송이가 도망쳐서 잡으러 갔는데, 어떤 놈이 나타나서 방해하는 바람에 해삼이 시흥경찰서까지 잡혀갔다 왔지 않습니까?”
“아, 그때 그놈이 이번에 수원에서 해삼을 부축한 놈과 같은 놈이란 말이야?”
“예, 이번에는 어둡기도 하고 해삼이랑 멍게가 다쳐서 부축해 데려오느라고 별다른 생각을 못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해삼과 멍게가 배신하고 도망갔다고 하니까, 문득 그 사람이 그때 시흥에서 본 그놈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시흥에서는 멀리 전봇대 뒤에 숨어서 보느라고 얼굴을 정확히 기억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놈 인상착의는 어땠어?”
“예, 머리는 스포츠 스타일인데, 지금 기억을 더듬어 보니까, 두 번 다 오토바이용 가죽점퍼를 입고 있었습니다.”
“아, 그래? 음.. 그러면 혹시 해삼이 그놈을 우연히 수원에서 발견하고 복수하려고 원천 저수지까지 미행했던 게 아닐까?”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마는, 그 두 놈이 분명히 북문파 장훈교 보스가 들어간 북문 근처 요정에서 나온 것 같았습니다. 저는 계속 요정 근처 차 안에만 있었지만, 요정 앞에 갔던 해삼과 멍게가 부랴부랴 돌아와서 그놈들 뒤를 미행하기 시작했거든요.”
장발머리는 오로지 운전만 하는 대원이라 해삼과 멍게의 임무 수행 과정에 대해 자세히 물어볼 수는 없다.
“음.. 그랬단 말이지. 그러면 그 해삼을 부축해 준 놈이 북문파 장훈교 보스와 무슨 관계가 있는지도 모른다는 얘기구나? 그리고 시흥 원주민 이주단지 골목에서 해삼과 한번 크게 싸워 이긴 적도 있고! 그렇다면 그 스포츠머리에 가죽점퍼 입은 놈의 솜씨가 보통이 아니라는 뜻이네?”
엄청난 사실을 전해 들은 부본무가 머리를 굴리며 그 스포츠머리 가죽점퍼가 어떤 놈인지 파악하려고 애를 쓴다.
“그러고 말입니다, 그놈들이 시흥에서 서로 얘기하는 걸 엿들은 게 있습니다.”
장발머리가 아주 중요한 기억을 조심스럽게 끄집어내었다.
“응? 그놈들 얘기라니, 어떤 놈들?”
머릿속에 집중해있던 부본무가 무슨 놈들 말이냐고 되물었다.
“그 가죽점퍼가 형사들한테 자기는 마해송이와 같은 회사 다닌다는 그 최근상 대리라는 사람 친구 된다고 했습니다.”
“뭐? 가죽점퍼가 마해송이 회사 최근상 대리 친구라고?”
부본무가 뭔가 단서를 잡았다 싶은지, 눈을 크게 뜨고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미간을 찌푸리고 고민하던 부본무가 어딘가 전화를 걸더니 잠시 후 김 전무가 황급히 부본무 방문을 열고 들어와 합석했다.
“이 친구가 해삼과 관계있는 놈을 알아냈다고요?”
김 전무의 사각 금테 안경 속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그렇다요. 뭔가 단초가 있는 것 같은데 직접 한번 자세히 들어보소.”
부본무가 혼자 판단하기 어려우니까 머리 좋은 김 전무를 불러들인 것이다.
장발 머리의 진술이 리바이벌되었고, 검사가 피고인을 심문하는 것 같은 김 전무의 예리한 질문이 쏟아지더니, 결국 김 전무도 매우 확실한 증거를 잡은 듯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아주 강력한 라이벌들은 서로 싸우다가 어떤 경우에 매우 절친한 사이가 되기도 하지 않습니까? 해삼과 그 가죽점퍼가 그런 경우에 해당된 것 같습니다. 부 보스님 말씀대로 한 번 당했던 해삼이 그 가죽점퍼에게 복수하려고 덤볐다가 다시 된통 터졌는데, 경비원에게 붙잡힐 위기에서 오히려 자기를 도와주니까, 크게 감동 먹었던 모양입니다. 그러다 문책당할 일이 걱정되어 아예 그 가죽점퍼에게 구해달라고 손을 내민 것 같습니다.”
역시 김 전무의 날카롭고 예리한 판단력은 사실을 매우 근사하게 파헤치고 해삼의 행방을 적중시켰다.
“아, 그렇게 된 거구먼. 그러면 이제 어떻게 그 가죽점퍼를 잡지요?”
“그 최근상 대리와 가죽점퍼가 친구 사이라니까, 그 최 대리 뒤를 조사해보면 예상외로 쉽게 추적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최 대리가 근무하는 회사는 알고 있으니까, 지금 당장 추적대를 시흥으로 내려보내도록 하시지요.”
그리하여 최근상이 근무하는 시흥시 반월공단 우주통신을 통해 최근상의 고향이 경남 함안인 것까지 알아낸 이글스파는 함안과 진주, 창원 일대를 샅샅이 뒤졌다.
그러고도 해삼과 멍게의 흔적을 찾을 수 없자, 자기들의 우호 조직인 부산 서면파에 협조 요청까지 하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