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9월 28일 연중 제26주간 월요일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사람이야말로 가장 큰 사람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9,46-50 그때에 46 제자들 가운데 누가 가장 큰 사람이냐 하는 문제로 그들 사이에 논쟁이 일어났다. 47 예수님께서는 그들 마음속의 생각을 아시고 어린이 하나를 데려다가 곁에 세우신 다음, 48 그들에게 이르셨다. “누구든지 이 어린이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사람이야말로 가장 큰 사람이다.” 49 요한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어떤 사람이 스승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것을 저희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저희와 함께 스승님을 따르는 사람이 아니므로, 저희는 그가 그런 일을 못 하게 막아 보려고 하였습니다.” 50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막지 마라.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이는 너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
인격 교육
요즘 인격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내가 인격이 부족한 탓도 있고, 우리 사회가 너무 인격적으로 피폐한 사람들이 많은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도 그렇습니다. 가정교육과 학교교육이 잘못되어서 인격수양이 잘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격이 갖춰지지 않은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격이란 [①사람으로서의 됨됨이, 사람의 품격(品格). 자격(資格). 개인(個人)의 지(知), 정(情), 의(意) 및 육체적 측면을 총괄하는 전체적(全體的) 통일체(統一體) ②도덕적(道德的) 행위의 주체(主體) ③법률(法律) 관계 특히 권리(權利), 의무(義務)의 주체(主體). 신(神)에 대하여 인성(人性)을 갖춘 품격(品格)]이라고 사전에서는 정의하고 있습니다.
원래 한자의 인격(人格)이란 말은 사람의 격(格)을 말합니다. 격(格)은 고정(固定) 또는 고정된 중심의 뜻으로서, 자기 자신을 유일한 지속적(持續的) 자아(自我)라고 생각하는 개체로 설명됩니다. 설명이 더 어려워졌을지도 모릅니다. 나무로 된 책상을 예로 들어봅니다. 각각(各各)의 나무(木)가 합해져서 책상이라는 형상을 만듭니다. 현재의 책상은 각각의 나무가 책상이라는 요건에 통합된 것입니다. 그 각각의 나무가 그 자리에서 그 책임을 다하지 아니하면 책상은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인격은 의식의 현재의 단면에서의 통일성, 시간상의 변화를 통하여서도 유지되는 통일성을 요건으로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도 각자가 현재의 위치에서 그 책임을 다하여 전체에 통일성을 가질 때 인격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윤리학에서는 여기에 진위(眞僞)와 선악을 판단하는 능력 및 자유로운 의사결정 능력이 더해집니다. 칸트는 물건(物件:동물도 포함된다)과 구별되는 자아의식으로서의 인격을 말했고, 토마스 아퀴나스는 성령·신격(神格)과 함께 이성적 성질을 가진 불가분의 실체로서의 인격을 신학적으로 체계화하였습니다.
새무얼 스마일스(Samuel Smiles, 1812 – 1904 : 영국의 정치 개혁가)는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인격이다!’라고 그의 저서 ‘인격론’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세상과 인간을 변화시키는 동력은 바로 인격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개인과 조직의 인격적 고결성이 ‘성공으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의 정치적 개혁을 부르짖고 있습니다. 정치개혁만이 사회악을 타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새무얼 스마일스는 정치 개혁만으로 사회악을 타파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회 구성원 개개인의 개혁이 동반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개혁의 방향을 정치에서 개인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는 “천재성은 감탄을 불러일으키지만 존경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바로 인격”이라고 주장하면서 사람들에게 천재는 찬미의 대상일 뿐이지만 인격적인 사람은 신뢰하고 존경하게 된다는 얘기합니다. 인격을 수양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자아를 관찰하고 단련하며 컨트롤하는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특히 스마일즈는 노동을 통해서 자제력, 주의력, 적응력, 인내심을 키우게 되는 만큼 노동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루어낼 수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인간에 내려진 저주는 노동이 아니라 게으름이며 녹이 철을 좀 먹듯, 게으름은 사람과 국가를 좀먹는다고까지 했습니다.
재주가 있어도 이용하지 않으면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없습니다. 재주를 이용하고 유용하게 활용할 때 진정한 행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지치는 것은 움직일 때가 아니라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격의 최고의 스승은 일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인격의 최고의 지침은 습관과 의지가 올바른지 그렇지 않은지에 따라 인격을 달리한다고 하였습니다. 인격을 단련시키는 데 가장 중요한 곳은 가정과 학교이기 때문에 가정교육과 학교교육을 통해서 정치개혁도 이루어지고 사회개혁도 이루어진다고 역설하였습니다.
우리 죄인이며 종인 인간을 하느님의 자녀로까지 격상시키신 예수님은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에 합당하도록 항상 하느님나라에 대해서 설명해 주십니다. 그래야 하느님의 신격에 걸 맞는 사람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신격에 걸 맞는 사람은 인격을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인격을 갖추기 위해서는 가정교육과 학교교육이 잘 되어야 합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습관을 잘 키워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의지를 튼튼하게 길러줘야 합니다. 어려서부터 노동의 신성함을 교육시키고 맡은 바 책임을 잘 수행하도록 길러줘야 합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작지만 큰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인격적인 사람을 기르는 데 더 헌신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사회는 인격적인 교육면에 있어서는 백척간두(百尺竿頭)에 서 있는 형국입니다. 자녀교육을 소홀히 하고 자녀들에게 일하는 것을 가르치지 않는다면 자손만대를 망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게으름을 부리면 하느님을 받아들일 수도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