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별곡 Ⅱ-3]첫날밤에…첫날밤에…우리는…
세상에나, 첫날밤에 이런 부부가 있었답니다. 저로선 듣느니 처음이니, 지인들께서도 함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때는 바야흐로 조선 정조임금대 18세기 후반입니다. 춘향과 이몽룡의 '사랑의 도시'로 유명한 전라도 남원골 처봉마을(현 유천마을)에서 한 날 한 시에 태어난(同年同月同日生) 처녀총각이 곱게 자라 열여덟살에 혼인을 하였습니다. 남녀가 유별했던 당시, 첫날밤은 그들에게 얼마나 짜릿한 순간이었을지 짐작이 가는지요? 옷고름을 풀기도 전에 신랑이 떠억허니 한시 한 수를 이렇게 읊조립니다.
“우리 모두 광한전(광한루) 신선으로 만나(相逢俱足廣寒仙)/오늘밤 분명 전생의 인연을 잇는구려(今夜分明續舊緣)/우리의 만남은 원래 하늘이 정해준 듯하니(配合元來天所定)/속세의 중매는 그저 꾸며진 일이겠지요(世間媒妁摠紛然)”
이럴 수는 있겠으나, 신부의 행위가 놀랍습니다. 곧바로 화답시를 이렇게 씁니다.
“열여덟살 신랑과 열여덟살 선녀가(十八仙郞十八仙)/신방에 화촉을 밝히니 기막힌 인연입니다 (洞房華燭好因緣)/같은 해 같은 달에 태어나 같은 마을에서 자랐으니(生同年月居同閑)/오늘밤 우리의 만남이 어찌 우연이겠습니까?(此夜相逢豈偶然)”
부창부수夫唱婦隨는 바로 이럴 때 쓰는 말이겠지요. 첫날밤부터 신부에게 질 수야 없었겠지요. 즉석에서 또 한 편의 한시를 들이댔다고 합니다.
“부부간의 도리는 인륜의 시작으로(夫婦之道人倫始)/온갖 복이 여기에서 비롯된다고 하더군요(所以萬福原於此)/시험삼아 시경의 도요편을 살펴보니(試看桃夭詩一篇)/우리 집안 화목이 당신에게 달렸군요(宜室宜家在之子)”
고작 열여덟 살인 아내가 또 답합니다.
“부부의 만남에서 백성(국민)이 생겨나며(配匹之際生民始)/군자의 도리도 여기에서 비롯된다지요(君子所以造端此)/공경하고 순종함이 아내의 도리이니(必敬必順惟婦道)/이 몸 다하도록 당신 뜻 어기지 않겠어요(終身不可違夫子)”
빨리 불을 끄고 옷고름을 풀어줘도 부족할 판인데 '한시놀이'를 한 후 이제 진지한 얘기들을 나눕니다. 이들은 또 그 얘기들을 시시콜콜 산문으로 남겼습니다. 도대체 '첫날밤'(the bridal night)이 어떤 날입니까? 이들의 수작이 도저히 상상이 안됩니다. 이 당돌한 여인이 ‘삼의당三宜堂 김씨(1769-1823)’이고 남편이 하립河립(삼수 변+昱,1769-1830) )인데, 이들은 죽을 때까지 그날밤처럼 살았다는군요. 절과 한양에서 10년을 넘게 공부했지만 과거科擧에 판판이 떨어지는 남편을 내조하느라 그녀는 머리카락을 자르고 비녀를 팔았다지요. 금슬이 좋았으니 젊은 나이에 떨어져 사는 게 수십 년, 그녀는 그리움에 애가 타는 시를 많이 남겼습니다. 신사임당, 허난설헌을 비롯하여 황진이나 매창을 뺨칩니다. 우리에게 낯선 까닭은 그녀의 남편과 아들, 하다못해 사위라도 현달顯達하지 못한 때문일 것입니다. 260여편의 한시와 30여편의 산문이 그녀가 얼마나 뛰어난 시인이고 문장가인지를 증명하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부부는 가세가 빈곤해지자 남원을 떠나 선산이 있는 진안으로 이거해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지요. 그러길레 진안 금당사에서 마이산 탑사 가는 도중에 <부부공원>이 있고, 그들의 시비와 제각이 있습니다. 물론 지금은 그들의 생가가 흔적도 없지만 남원 유천마을에도 시비가 있습니다. 일제강점기인 1933년 처음으로 <삼의당김부인유고>가 세상에 선을 보였다합니다. 최근에야 삼의당 연구논문도 간혹 보이지만, 대부분 그녀의 당호조차 아시는 분이 적을 것입니다. 그녀도 난설헌처럼 불우한 ‘여자의 일생’을 산 듯합니다. 딸 셋, 아들 하나를 낳았는데, 딸 둘이 일찍 죽고, 아들도 이름을 날리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그녀는 ‘글이 통하는’일편단심 남편이 있었습니다. 사랑시도, 화답시和答詩도, 전원시도 많이 남겼습니다. 2018년에야 <삼의당김부인유고> 국역판이 나와, 그녀의 시와 산문의 세계를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난 금요일 오후, <부부공원>를 아내와 거닐면서 돌에 새겨진 삼의당 김씨의 작품을 감상했습니다. 남편은 아내보다 7년 더 살다가 저승에서 만났겠지요. ‘우리 젊은 날은 어땠을까? 우리도 저렇게 사랑하며 살아왔을까? 우리도 저렇게 노년을 같이 사랑하며 보낼 수 있을까?’ 되돌아보기도 하고 자문도 해보는 귀한 시간을 가졌으나, 돌아오는 답은 궁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어림짝도 없었기에, 우리는 마주보며 그저 웃었습니다. 하하.
전라고6회 동창회 | [찬샘별곡 86]삼의당三宜堂 부부와 미암眉巖 부부 - Daum 카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