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4일(월)
시편 65:1~13
풍성한 은혜를 주시는 구원의 하나님
하루 네 번 기도(6시, 10시, 2시, 7:30) 1일차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분이십니다. 만약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것을 모든 사람이 알게 된다면, 사람들은 기도하기 위해 주께 나아올 것입니다. 사람들이 기도하지 않는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들으신다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거나 혹 그것을 알더라도 그것을 믿지 못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의 경우만 생각해 보아도 그렇습니다. 저는 하나님이 저의 기도를 들으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그 사실을 믿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기도의 자리에 나아가는 것이 어렵게 느껴졌습니다.
전에 어느 목사님이 “나는 기도가 가장 쉽고 즐거워요.”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분의 이야기를 듣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기도하는 일이 쉽거나 즐겁게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는 오늘부터 하루 네 번 기도를 드리기로 작정하고, 하나님 앞에서 그것을 서원했습니다. 물론 주말과 주일에는 주일 준비와 사역으로 그 서원을 문자적으로 지키기는 쉽지 않겠지만, 저는 평일에 이러한 원칙을 가지고 기도의 자리에 저 자신을 매어 놓으려고 합니다.
제가 이렇게 행동하게 된 계기는 이번 가을 부흥회 때문입니다. 저는 하나님께 매어 달리는 기도의 야성이 저에게 부족한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강천 목사님은 마치 야곱이 얍복 강가에서 하나님과 씨름하며 매어 달렸던 것처럼, 6개월 동안이라도 김 목사가 하루 네 번 강단에 엎드려 하나님께 매어 달려보라고 권면하셨습니다.
이강천 목사님은 기도를 통해서 제가 성령의 충만을 경험하고, 성령 사역에 눈을 뜨도록 도전해보라고 저를 도전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거룩한 부담감을 가지고 기도의 자리에 나아가고자 합니다. 성령님께서 저를 만져 주시고, 저의 사역을 통해 성령님께서 역사해 주시기를 사모하며 기도하고자 합니다.
어제 저녁에는 교회에서 먼 지역인 유성에 사시는 권사님 두 분이 새벽기도회를 나오고 싶다며 차량운행을 요청하셨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저와 제 아내 둘이서 기도하고 있던 터라, 기꺼이 그렇게 하겠노라고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오늘 새벽에 권사님 두 분을 교회로 모시고 와서 제 아내와 함께 새벽예배를 드렸습니다.
새벽에 권사님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고, 함께 통성으로 기도하니 얼마나 제 마음이 기뻤는지 모릅니다. 그렇지 않아도 제 안에 기도의 답답함이 있었는데 기도의 동역 자들과 함께 부르짖어 기도하니 제 영혼이 한결 가벼워지고, 마음에 감사함이 생겼습니다.
저는 이제 버티고 견디는 목회를 벗어나 감격이 있고, 감사가 있는 목회를 경험하고 싶습니다. 이번 가을 부흥회를 통해서 제 안에 영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에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권사님들이 새벽에 함께 모여 기도하고자 하는 선한 마음을 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주께서 택하시고 가까이 오게 하사 주의 뜰에 살게 하신 사람은 복이 있나이다. 우리가 주의 집 곧 주의 성전의 아름다움으로 만족하리이다(4절).”
제가 주의 집 곧 주의 성전의 아름다움으로 만족하기 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허물을 사하여 주시는 분이시며(3절), 구원의 하나님이시며(5절), 권능으로 띠를 띠시는 분이십니다(6절).
제가 말씀을 묵상하며 하나님께서 저에게 베푸실 축복을 기대합니다. 하나님은 땅을 돌보시고, 그곳에 물을 대어 윤택하게 하시며, 강에 물이 가득하게 하시며, 우리에게 곡식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밭고랑에 물을 넉넉히 대시고, 이랑을 평평하게 하시고, 단비로 부드럽게 하시고, 그 싹에 복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름과 기쁨과 양 떼와 곡식을 주셔서 우리로 다 즐거이 외치고 노래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제가 이러한 하나님의 자녀로 부름 받아 하나님을 섬기며, 노래할 수 있는 것이 감사의 제목입니다. 상황이 아무리 어렵고 낙심이 되더라도, 제가 좋으신 하나님을 신뢰하며 그분을 기꺼이 따르고 기뻐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