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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정욱의 남다른 시선] 헌법재판소의 시계
자유일보
남정욱
모든 불행
한 가정은 엇비슷하지만 모든 행복한 가정은 제 각각의 이유로 행복하다. 반대로 말한 분도 계시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게 더 맞는 거 같다. 불행한 가정의 공통분모는 가난과 질병이다. 질병은 누구도 피해갈 수 없지만 가난하지 않으면 직격탄은 안 맞는다. 가난에 질병이 겹치면 원자폭탄이다. 20세기 중반까지도 한국은 절대빈곤을 전 국민이 공유했다.
다행히 이제는 결핍이 상대적 빈곤이라는 말로 대체됐다. 시인 박노해는 가난이라는 단어가 사어(死語)가 됐다고 했다. 지금은 농촌에 가도 집집마다 안 입는 옷이 몇 벌씩은 있다면서. 나는 또 다른 물건에서 사어의 근거를 본다. 예전에는 가족 머릿수와 신발 숫자가 얼추 비슷했다. 지금은 인당 최소 열 켤레다. 인생이 열 배 행복해졌는지는 모르겠다.
흔해진다는 것은 가치가 없어진다는 의미다. 그런 면에서 시계는 좀 더 복잡하게 재미있는 물건이다. 옷이나 신발은 그 자체가 목적이다. 그러나 시간을 기계에 담은 시계는 그 자체만 가지고는 별 의미가 없다. 시간이라는 추상적 가치와 함께 가는 게 시계다.
5·16 혁명 정부는 농촌 근대화를 개시하면서 아침마다 정해진 시간에 확성기로 농민들을 깨웠다. 해뜰 무렵 일어나고 낙조 때 집으로 돌아오던 태양 친화형 생활 대신 시간이 일상을 통제하기 시작한 것이다. 각자 시계 보고 일어나면 되지, 가 안 됐던 이유는 시계가 없었기 때문이다.
1980년대 초반까지도 시계는 금은방에서 팔았다. 시계 찬 사람에게 지금 몇 시나 됐어요? 묻는 장면이 흔했다. 길에서 예쁜 여학생에게 시간 물어보는 것을 핑계로 말을 붙이는 남학생도 있었다. 반대인 경우도 있었는데 그런 날은 잠을 설쳤다. 몇 년 후 시간이 숫자로 표시되는 디지털시계가 저렴한 가격에 보급되면서 대한민국 시계 빈곤의 시대는 끝난다.
시간은 균일하게 흐르지 않는다. 한반도 북쪽의 시간은 남쪽보다 한참 느리게 갔다. 80년대 초중반, 북한에서는 남한의 혁명적 분위기를 전달한답시고 5·18 영상을 텔레비전에 자주 내보냈다. 어느 날부터인가 그 영상이 사라졌다. 북한 인민들이 보라는 혁명 열기는 안 보고 시위하는 광주 사람들의 팔목에 찬 시계만 쳐다보았기 때문이다.
도시 빈민, 노동자들이 벌인 시위라는데 이들이 시계를 차고 있다는 사실에 북한 인민들은 당혹감을 느꼈고 북한 당국은 불안감을 느꼈다. 북한에서도 시계 빈곤의 시대는 끝났지만 요즘은 배터리가 없어 멈춘 시계를 차고 다닌다고 한다.
서양에서 시계 빈곤의 시대가 끝난 것은 우리보다 최소 150년 전이다. 청바지 오른쪽 포켓 위에는 작은 주머니가 하나 붙어있다. 어떤 용도일까. 1848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사금이 발견되면서 30만 명 가까운 개척민들이 서부로 몰려간다. 골드 러시다. 금 캐서 돈 번 사람은 별로 없었다. 오히려 돈을 번 것은 금을 캐러 온 사람들을 상대로 한 숙박, 매식 업소들이다. 그리고 그보다 더 많은 돈을 번 것은 천막업자들이다.
그 중에서도 떼돈을 번 사람은 질기고 튼튼한 천막을 활용해 작업용 청바지를 만든 사람들이다. 리바이스 청바지가 이때 탄생했는데 리바이스는 바지 디자인을 하면서 회중시계를 넣으라고 오른쪽 포켓 위에 작은 주머니를 달았다. 부자들이 금을 캐러 다녔을 리는 없고 인생에 대책이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을 것이니 이미 시계 대중화 시대였다는 얘기다.
뜬금없이 시간, 시계 이야기를 한 것은 한없이 느리게 가는 헌재의 시계 때문이다. 재판관들이 각자 다른 나라에서 공부해 법관이 되었을 리도 없고 같은 책 보고 그 자리까지 갔을 테니 결국 이 재판이 법리 재판이 아니라 ‘정치 재판’이라는 증거다. 어느 쪽을 ‘선택’해도 뜨거울 수밖에 없는 재판관들이 안쓰럽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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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정욱 한국군사문제연구원 객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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