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08-02 12:06
기아 김성한 감독이 후반기 5게임만에 중도 하차했다. '예고된 수순이었다, 아니다'로 말도 많다.
세상사가 다 그렇듯이 잘 나갈 때 사장과 감독의 밀월 관계는 무척이나 달콤하다. 그러나 한번 엇나가면 시끄럽고, 고약하다. 간섭이 심해지고, 반발도 강해진다. 그러면서도 돌고 돈다. 결국 먼저 떠나는 쪽은 감독. 인사권은 구단에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프런트는 구단을 떠나면 일반인으로 돌아가고, 감독이나 코치들은 야구인으로 늘 남아 있다.
▶ 사장은 월급쟁이.
프로야구단 사장은 오너가 아니다. 모 그룹의 임원으로서 책임 경영을 하는 CEO다. 경영 성과에 따라 웃고 울 수 밖에 없다. 성과는 성적과 관중. 먼저 성적이 좋으면 투자액을 따지지 않고 모든 능력을 인정받는다. 어차피 적자 기업인 만큼 관중은 그 다음. 운영 자금을 지원하는 그룹 오너나 계열사 임원진의 관심 역시 수입과 직결된 관중이 아니라 성적이다.
연간 예산은 보통 150억원 정도. 80% 가까이 지원금으로 꾸려 나간다. 성적이 나쁠 때 그룹 임원회의를 하면 야구단 사장은 쥐구멍을 찾아야 한다.
"요즘 성적이 왜 그래요,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돈 대주는 계열사 사장이 한마디 툭 던지면, 지나가는 말이라도 가슴이 뜨끔하다. 결국 인사권을 행사한다. 코치의 보직 변경으로 1차 경고를 하고, 그래도 안되면 감독 경질의 칼을 든다. 월급쟁이에게 '인내(忍耐)'란 참 어려운 덕목이다.
▶ 감독은 유행을 탄다.
구단은 사장-단장이 중심축인 프런트와 감독-코치로 구성된 선수단으로 구성된다. 서열은 사장-단장-감독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관계는 애매하다.
프로야구 1세대 감독들은 20대 후반부터 40대 초반까지 아마에서 지도자 수업을 거친 뒤 40대 중반이던 82년 출범과 함께 지휘봉을 잡았다. 이들은 91년 OB가 처음으로 프로 선수 출신 윤동균 감독을 사령탑에 앉힐 때까지 10년 이상 주류의 위치를 지켜 왔다. 그 사이 각 구단은 뚜렷한 대안이 없다는 이유로 1세대 감독들을 돌아가며 모셔갔다. 1세대 감독들은 프런트 수장들과 비슷한 연배였던 탓에 늘 껄끄러운 존재로 인식됐다. 요구 사항이 많았고, 구단의 충고나 제언을 지나친 간섭이라며 반발했다.
95년 11월 지휘봉을 잡은 현대 김재박 감독은 선수 출신 2세대 지도자로서 성공 사례를 만들었고, 각 구단은 본격적으로 2세대에게 눈을 돌렸다. LG는 96년 천보성 감독에 이어 99년 이광은 감독, 삼성은 97년 서정환 감독에 이어 99년 김용희 감독, 쌍방울은 99년 김준환 감독을 차례로 영입했다. 2세대 지도자들은 '나이를 따지는 한국적 풍토'에 맞춰 큰 잡음은 없었지만 결과는 기대 이하였다. 결국 천보성 감독은 KBO 감독관을 거쳐 한양대, 이광은 감독은 연세대, 김준환 감독은 원광대를 맡아 아마로 돌아갔다. 서정환 감독과 김용희 감독은 각각 기아와 롯데의 2군에 남아있을 뿐이다.
2세대가 지나간 자리는 다시 김인식(두산), 김응용(삼성), 김성근-이광환(LG), 백인천(롯데), 강병철(SK) 감독이 차지했다가 올해 김경문(두산), 이순철(LG), 양상문(롯데) 감독이 기존의 3세대 김성한(기아), 조범현(SK)과 함께 40대 신주류를 형성했다.
프런트가 강(强)하면 감독은 유(柔)해 보이고, 감독이 강하면 프런트는 연(軟)해 보이기 마련이다. 이런 시류에 따라 감독들도 유행을 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