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수의 역사 대한민국 성령의 역사 대한민국-한성감옥 이승만의 사막에서 40일
한성감옥에서 수감 된 이승만은 살인적인 독서와 5권의 책을 쓰고, 5권의 책을 번역하였으며 500편이 넘는 기사와 논설을 제국신문, 신학월보 등에기고하였다. 더하여 옥중에서 도서관과 옥중학교를 만들어 죄수들을 교육하고, 옥중전도 속에 수백권의 책을 읽었다.
하늘은 이승만에게 한성감옥을 주고 대한민국의 미래를 짊어진 선지자로서,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지도자로서 인내와 연단의 시간을 보내게 했다. 훗날 국부 이승만은 한성감옥을 복당(福堂)이라 했고, 그와 같이 감옥생활을 할 동료를 복당동지라고 불렀다. 모세가 살인자가 되어 하루아침에 왕자에서 범죄자로 전락하고, 미디안 광야로 가서 양을 치며 고난과 인내 속에 사명을 받을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과 같다.
한성감옥에서 청년 이승만은 신학월보에 무기명으로 1903년 8월 “예수교가 대한 장래의 기초”라는 제목으로 논설을 기고했다. 마지막 숨을 몰아쉬며 임종을 앞둔 유교질서는 더 이상 시대와 국가를 지탱할 가치가 되지 못하며, 크리스토교가 나라의 근본이 되어야 함과 크리스토교 세계관의 새로운 세상을 맞이 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대한에 자초로 유교가 있어 정치와 합하여 행하여 세상을 다스리기에 극히 선미한 지경에 이르러 보았은즉, 사람마다 이 교만 실상으로 행하면 다 이전같이 다시 되어 볼 줄로만 생각하여 다른 도리는 구하지 않고 다만 이 도를 사람마다 행치 않는 것만 걱정하니, 비컨대 어려서 입어 빛나던 옷을 장성한 후에 다시 입으려한즉 해져 무색할 뿐만아니라 몸에 맞지 않는 줄은 생각지 못하고 종시 입기만 하면 전같이 찬란할 줄로 여김과 같은지라(중략)
사람의 도는 악한 일을 아니하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의 도는 악한 일을 못하게 하는 것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착한 도와 옳은 교를 배워 제몸만 착하고 악이 없으면 사람의 도에 극진히 됨이니, 사람의 도는 불과 제 몸만 착하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 도는 천벌을 들어 벌하여 악을 감히 못하게 하며 한편으로 천복을 구하고자 하여 남을 또 착하게 만들 것이 그 중에 포함하였은즉, 이는 천하에 모든 사람들과 함께 착하려함이라, 온 세상을 다 착하게 하려한즉 악한 것이 물러나가고 착한 것이 성하는 까닭이라. 착한 것이 성하고 사람이 흥치 아니하는 이치가 어디 있으리오” 청년 이승만에 감화 된 간수부장 이중진과 그의 동생 이중혁은 크리스토교로 개종하였다. 이중진은 훗날 미국으로 가게 된 청년 이승만에게 여비를 마련하여 주었다. 1904년 11월 4일, 29세의 이승만은 정부의 밀사자격으로 신분을 숨긴 채 인천항에서 배에 오를 때 이중혁은 수행인으로 그를 도왔다.
고종의 후궁 엄비는 이승만 글을 읽고 열렬한 후원자가 되었다. 엄비는 자신의 측근 김영선이 한성감옥 서장으로 부임할 때 이승만이 감옥생활과 글쓰는데 특별한 배려를 할 것을 지시하였다. 한성감옥 서장 김영선과 간수장 이중진의 호의에 힘입어 청년 이승만은 감옥의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한 옥중 학교를 설립하였다. 1903년 크리스마스 때 벙커 목사가 위문차 한성감옥에 왔다가 옥중 학교에 감동해 자신도 일요일마다 찾아와 가르치겠다고 자원했다. 이승만은 정기적으로 한성감옥에 들르는 벙커선교사에게 어른 죄수들을 위한 옥중 서적실이 꼭 필요하다고 설득하였다. 벙커 목사의 적극적 도움과 감옥서장 김영선의 배려로 한성감옥에 옥중도서관이 설치 되었다. 빌립보 감옥에 갇힌 바울은 감옥서장을 전도하고 유럽의 첫 번째 교회인 빌립보 교회를 세워 유럽 전도의 포문을 연다. 그 역사함은 한성감옥으로 옮겨져 옥중학교와 옥중 도서관에서 옥중예배가 올려지고 장차 도래할 크리스토교 세계관 속의 대한민국 설계도가 그려졌다.
벙커 선교사의 적극적 후원으로 한성감옥의 감방 한 칸을 서적실로 개조되어 1903년 1월 옥중 도서관이 탄생했다. 개관 당시 서적실에는 성경과 크리스토교 관계 서적들 250여권이 비치됐고, 도서관은 확장 되어 1904년에는 500여권에 이른다. 수감자들은 누구나 서적실에서 자유롭게 대출 받을 수 있었고, 이동녕 같은 외부 인사들까지도 와서 도서대출을 받았다. 그만큼 도서관의 수준이 높았다. 선교사들이 옥중 도서관에 넣어주는 책은 성경과 성서과 같은 종교서적 역사서, 정치 사회, 지리서, 위인서, 인문서 등 수준이 높았고 , 세계를 선도하는 최신서적이 망라 되었다. 감옥서장과 간수장의 배려를 받게 된 이승만은 옥중학교와 옥중 도서관의 책임자가 되어 엄청난 독서와 번역, 저술활동을 한다. 하다못해 남미국가 정치인 이름까지 꿰차고 있을 정도로 많은 독서를 하였다.
철없는 고종은 러시아 세력을 한반도로 불러 들였다. 어쩌면 러일전쟁의 도화선은 고종이 지핀 것이다. 러일전쟁의 결과 승전국이 한반도의 지배자가 될 것이라는 것은 거스를수 없는 대세였다.
그때 이승만은 한성감옥에서 영한사전을 집필하고 있었다. F 항목까지 진행 된 영한사전 집필은 한창 탄력을 받고 있었다. 러일전쟁 발발 소식을 전해 들은 이승만은 영한사전 집필을 중단하고 한성감옥에서 공부하며 구상한 자유대한민국의 설계도인 “독립정신” 집필을 시작하였다. 국부 이승만의 독립정신의 핵심은 3가지 이다. 첫째 자유민주주의, 둘째 세계화, 셋째 크리스토교 입국이다. 한성감옥에서 이승만은 1903년 9월 신학월보에 무기명으로 “두가지 편벽됨”이라는 제목으로 논설을 기고하며 크리스토교 입국을 역설하였다. “정치는 항상 교회 본의로서 딸려나는 고로 교회에서 감화한 사람이 많이 생길수록 정치의 근본이 스스로 바로잡히나니 이럼으로 교화로써 나라를 변혁하는 것이 제일 순편하고 순리된 바로다. 이것을 생각지 않고 다만 정치만 고치고자 하면 정치를 바로잡을 만날 사람도 없으려니와 설령 우연히 발 잡는다 할지라도 썩은 백성 위에 맑은 정부가 어찌 일을 할 수 있으리오. 반드시 백성을 감화시켜 새 사람이 되게 한 후에야 정부가 스스로 맑아질지니 이 어찌 교회가 정부의 근원이 아니리요.” 청년 이승만은 생사가 넘나들던 학성감옥 그 죽음의 골짜기에서 살인적인 독서와 집필을 하며 당대의 지성으로 태어났다. 국부 이승만이 여전히 깨어지지 않을 기록으로 남아 있을 것으로 추측 되는 워싱턴대학교, 하버드대학, 프린스턴대학을 단 5년만에 수학하고 박사학위를 받은 것은 혹독한 한성감옥의 수학이 바탕이었다. 독립정신을 통해 크리스토교 세계관의 도래 및 그 시대 지배 이념인 유교는 공허한 쓸모없는 이론이었음을 비판했다. 즉 “유교 망국론”과 대안으로 한국인의 새로운 종교로 크리스토를 제시했다. 이는 융합 또는 수정, 보완이 아닌 국가 정체성을 송두리째 바꾸어야 함을 역설한 것이다. 지금 시대에 볼 수 있는 새뮤얼 헌팅턴의 문명충돌을 그 시대 간파하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역사 변혁 요인을 국가 또는 민족으로 보지 않고 삶의 주체인 개인이 속한 문화와 문명 즉, 세계관에 두고 있다. 오늘날 민족의 정의가 인종적, 지역적, 국가적 개념에 두지 않고 같은 문화와 문명을 향유하는 개인에 두고 있는 것을 이미 그 시대 간파하고 있었다. 이는 썩은 냄새 풍기는 유교적 질서를 혁파하고크리스토교적 세계관으로 새로운 문명을 한반도에 이식시켜야 함을 설파하고 있는 것이다. 독립정신의 대미를 장식하고 있는 크리스토교 입국론이 오늘의 한반도 번영을 불러 온 알파요 오메가 인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가 쓰러진 데서 일어나려 하며 썩은 데서 싹이 나고자 할진대, 이 크리스토로써 근본을 삼지 않고는 세계와 상통하여도 참 이익을 얻지 못할 것이요... 마땅히 크리스토교로써 만사에 근원을 삼아, 나의 몸을 잊어버리고 남을 위하여 일하는 자 되어야 나라를 일심으로 받들어 영, 미 각국과 동등이 되리라” 과연 한반도가 크리스토교적 세계관의 도래 없이, 크리스토교적 세계질서와 그로부터 파생 된 자유민주주의 진영의 일원이 되지 않았다면 오늘의 번영은 없었을 것은 부인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유교 공산주의 국가, 국경을 맞댄 북한과 몇백리 바닷길 옆 중국을 보면 간단하게 증거 될 것이다. 마지막의 “영, 미 각국과 동등이 되리라”라는 예언은 오늘날 정확하게 현실화 되어 가고 있다. 국부 이승만을 생각할 때마다, 그가 남긴 주옥 같은 기록을 볼 때 마다 그는 사사시대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선지자와 같다. “자유”라는 개념 조차 생소했을 그 시대 감옥에서 이승만은 자유주의와 공화주의 이념을 토대로 미국식 민주국가 나라빌딩을 설계하였다. 삼권, 조세와 예산, 관료 월급책정까지 모두 틀어 쥐고 단군이래 가장 강력한 권력을 가진 대한제국의 고종황제의 세도에 자유민주국가 건설을 직실적으로 표현할 수 없어 미국의 정치와 사회, 제도를 자세하게 설명하는 것으로서 자유민주국가 건설을 역설했다.
독립정신에는 1776년의 미국 ‘독립선언서’를 자세하게 소개하고 ‘자연권’과 같은 그 시대 들어 본적이 없는 용어가 언급된다. 독립선언서에는 "모든 인간이 동등하게 창조되었으며, 창조주에게 생명, 자유 그리고 행복을 추구할 권리와 같은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수여 받았다" 라고 명시 되어 있다. 자연권은 국가 형성 이전부터 창조주가 인간에게 부여한 즉 개인에게 주어진 절대권리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말하는 것이다. 즉 신이 내린 권리를 인간이 인위적으로 조직한 국가에서 침탈 할 수 없다는 신본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다. “민심은 천심이다”라는 실체 없는 현학의 바다 유교적 세계관으로서는 이해 될 수 없는 가치인 것이다. 나는 아직도 “민심은 천심이다”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민심이 천심인데 그래서 뭘 했고, 뭘 어쩌라는 것인지 도무지 모르겠다.
독립정신에는 실천 6대강령을 정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압축한다면 “세계화(globalization)”이다. 1. 우리는 세계(世界)에 대해 개방(開放)해야 한다. 1) 우리는 세계와 반드시 교류해야 한다. 2) 통상은 서로에게 이익이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3) 오늘날 통상(通商)은 나라를 부강(富强)하게 하는 근본이다. 4) 외국인(外國人)들이 우리나라에 오는 것은 우리를 해치려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이롭게 하기 위한 것이다. 5) 외국인들을 원수(怨讐)같이 여기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2. 새로운 문물(文物)을 자신과 집안과 나라를 보전(保全)하는 근본으로 삼아야 한다. 1) 외국인들이 들어와 우리가 함께 살 때 우리 것을 보전하면서 또한 우리에게 균등(均等)한 이익(利益)이 돌아오도록 해야 한다. 2) 새로운 학문에 대해 공부해야 한다. 3) 신학문(新學問)을 열심히 배워 경제적(經濟的) 이익(利益)을 외국인들에게 뺏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 4) 신학문(新學問)을 열심히 공부하여 그 혜택을 누려야 할 것이다.
3. 외교(外交)를 잘해야 한다. 1) 외교가 나라를 유지하는데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2) 다른 나라들과 친밀한 관계를 갖고자 한다면 모든 나라를 공평하게 대해야 한다. 3) 다른 나라들과 친밀한 관계를 발전시키려면 그 나라들과 공통된 특성을 갖도록 노력해야 한다. 4) 진실(眞實)을 외교의 근본(根本)으로 삼아야 한다. 5) 우리나라에 온 외국인들의 잘못은 시시비비(是是非非)를 분명(分明)하게 가려야 한다.
4. 나라의 주권(主權)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1) 모두가 외국인들에게 치외법권(治外法權)을 허용한 것을 수치(羞恥)로 알고,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이것을 우리 생전에 회복(回復)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이다. 2) 모든 사람은 무슨 일을 하든지 부지런히 배우고 일해야 한다. 3) 우리나라 사람이든 물건이든 다른 나라 사람들로부터 수치(羞恥)를 당하는 것을 보면 어떤 일이 있더라도 이를 막아내야 한다. 4) 국기(國旗)를 존중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5) 어떤 일이 있더라도 외국(外國) 국적(國籍)을 갖지 말아야 한다. 6) 우리는 외채(外債) 빌리는 것을 삼가야 한다.
5. 도덕적(道德的) 의무(義務)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 1) 뜻이 같은 사람에게 감정을 표현할 줄 알아야 한다. 2) 우리는 공적(公的)인 의무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 3) 나라에 충성(忠誠)함에는 용기(勇氣)를 가지고 행동(行動)해야 한다.
6. 자유(自由)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 1) 자유를 자기 목숨처럼 여기며 남에게 의지하지 말아야 한다. 2) 다른 사람의 권리(權利)를 존중해야 한다.
러일전쟁으로 무당의 지시를 받고 경복궁 기둥에 무쇠 솥단지를 묻는 고종 그 시대 개방화, 문명개화, 외교입국, 국가안보, 정치결사의 자유, 국민 의무, 자유를 설하고 있다. 국부 이승만과 고종은 같은 시대를 살았던 사람인가 의심스럽다.
6개월만에 완성한 독립정신 원고는 감옥 밖으로 몰래 빼내져 보관 되었다. 그러나 권력욕에 미친 고종시대 출간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 먼저 출옥한 감옥 동료 박용만은 1905년에 여행용 트렁크 밑바닥에 숨겨 미국으로 가져가 1910년 1월이 되어 로스앤젤레스에서 “독립정신”으로 출간되었다. 옥고의 산물, 독립정신은 대한민국 건국의 기초가 되었고, 크리스토교적 세계관이 함축 된 “독립정신”은 영원한 대한민국 자유 우파의 신앙고백서가 될 것이다.
[출처] 성령의 역사 대한민국(41) -한성감옥 이승만의 사막에서 40일|작성자 마라나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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