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8월 11일(금)
* 시작 기도
주님...
많은 사역자들이 예수님이 하신 일을 자기도 하겠다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을 하고 귀신도 쫓아내며 병든 자를 고치는 등 권능을 행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들은 그렇게 행한 것을 자랑이라도 하는 듯 주님께 자랑삼아 말들을 합니다.
물론 사람이 볼 때 이런 일들은 대단한 선한 일이 될 수 있지만 주님 편에서 볼 때는 선한 일이 아니라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의 ‘하나님처럼’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리하여 주님께서는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이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라고 심한 책망을 한 것을 봅니다.
우리는 주님을 닮아가는 자들이 아니라 주님의 생명을 얻어 자기부인과 십자가를 지는 자들입니다.
주님을 닮아간다는 미명하에 온갖 악을 행했던 이 죄인을 주의 공의로 심판하소서.
나의 기초가 주님의 뜻에 맞게 온전히 세워질 수 있도록 나를 붙잡으소서.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이 하루도 거룩한 불구자가 되어 영적 하루살이의 삶을 살아내기를 소망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행 20:25-38
제목 : 천사도 흠모하는 복음 전하는 일에 나를 사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25. 보라 내가 여러분 중에 왕래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였으나 이제는 여러분이 다 내 얼굴을 다시 보지 못할 줄 아노라.
26. 그러므로 오늘 여러분에게 증언하거니와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내가 깨끗하니
27. 이는 내가 꺼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다 여러분에게 전하였음이라.
28.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29. 내가 떠난 후에 사나운 이리가 여러분에게 들어와서 그 양 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30. 또한 여러분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따르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라.
31. 그러므로 여러분이 일깨어 내가 3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32. 지금 내가 여러분을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여러분을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
33. 내가 아무의 은이나 금이나 의복을 탐하지 아니하였고
34. 여러분이 아는 바와 같이 이 손으로 나와 내 동행들이 쓰는 것을 충당하여
35. 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36. 이 말을 한 후 무릎을 꿇고 그 모든 사람들과 함께 기도하니
37. 다 크게 울며 바울의 목을 안고 입을 맞추고
38. 다시 그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한 말로 말미암아 더욱 근심하고 배에까지 그를 전송하니라.
* 나의 묵상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을 향한 바울의 고별설교가 계속된다.
“나는 여러분들 가운데 다니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하였소.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나를 보지 못할 것이오.
따라서 오늘 여러분에게 엄숙히 선언합니다.
나는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깨끗합니다.
왜냐하면 나는 거리낌이 없이 하나님의 뜻을 여러분에게 다 전하였기 때문이오.
여러분은 자기 자신을 잘 살펴서 삼가야 할 것은 삼가고 또 주께서 맡기신 양들을 잘 돌보고 섬겨야 할 것이오.
성령께서 여러분을 그들의 지도자로 삼고 하나님께서 피로 사신 교회를 돌보게 하셨소.
내가 여러분을 떠난 후에 사나운 이리와 같은 어떤 사람들이 교회에 들어와서 양 떼를 해치려 할 것이며 또한 여러분 중에서도 주님의 제자를 자신의 제자로 삼으려고 진리를 왜곡되게 말하는 사람이 나타날 것도 알고 있소.
따라서 여러분은 항상 깨어 있어서 내가 여러분과 함께 있던 3년 동안 쉬지 않고 눈물로 사람들을 가르치고 교훈한 것을 잊지 말고 기억하시오.
이제 나는 여러분을 주와 그의 은혜의 말씀에 부탁합니다.
주님의 말씀이 여러분을 능히 든든하게 세울 수 있고 모든 거룩한 백성들과 함께 기업을 받을 수 있게 할 것이오.
나는 지금까지 누구에게서도 물질이나 의복을 탐낸 적이 없소.
오히려 나는 여러분이 다 아는 것처럼 나의 손으로 직접 일을 해서 나와 내 일행들이 쓸 비용을 마련하였소.
내가 여러분들에게 평소에 모범을 보인 것처럼 여러분들도 열심히 일해서 연약한 자들을 도우시오.
주님께서 친히 말씀하신 것처럼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복되다는 것을 기억하시오.”
바울은 이렇게 설교를 마치고 무릎을 꿇어 거기에 모인 모든 사람과 함께 기도하였다.
모든 사람이 다 같이 큰 소리로 울며 바울을 끌어안고 작별의 입맞춤을 하였다.
사람들은 다시는 바울의 얼굴을 보지 못할 것이라는 말로 인하여 더욱 슬퍼하면서 배타는 곳까지 가서 그를 전송하였다.
교회를 섬기는 지도자들은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성도들이 교회의 물건을 비롯하여 공공의 물건을 아껴 쓰는 것이 몸에 습관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렇게 가르치면서 이를 목사 자신이 솔선수범 하지 않으면 안 되기에 자신도 이를 실천하면서 성도들에게도 근검절약을 강조한다.
예를 들면 교회에서는 수돗물을 아껴 써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하여 목사 자신은 수도를 틀 때 아주 찔끔찔끔 흐르도록 틀어서 쓴다.
화장실에서 휴지나 핸드타올을 쓸 때도 아껴 써야 하는 것을 강조한다.
그래서 자기 자신이 아껴 써야 성도들에게 아껴 쓰라고 말할 수 있지 않느냐면서 정말 절약하고 내핍생활을 한다.
심지어 어느 교회는 전기세를 절약하기 위하여 교회에 에어컨을 설치하지 않고 무더운 여름철에는 오전 예배만 드리고 점심식사는 집에 가서 먹도록 오후나 저녁 예배 없이 집으로 돌려보낸단다.
목양실에 에어컨을 설치하지 않고 선풍기 한 대로 무더운 여름을 나면서 자신이 이렇게 절약하는 것을 성도들이 보고 알아야 자기의 영(令)이 서서 말하는 것이 먹혀 들어간다는 것이다.
물론 그 말도 맞다.
지도자가 먼저 실천하지 않고 무엇을 성도들에게 하라고 하면 그것은 영이 서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콧방귀만 뀔 것이다.
그런데 교회는 무엇을 하는 곳인가에 대하여 분명하게 규명할 필요가 있다.
교회는 근검절약을 가르치는 곳도 아니요 부자로 살 수 있도록 경제교육을 가르치는 곳도 아니다.
나아가 세상에서 바르게 살라고 윤리와 도덕을 가르치는 곳은 더더욱 아니다.
교회는 복음을 전하여 생명을 얻어 하나님의 나라를 날마다 누리도록 하는 곳이어야 한다.
물론 근검절약을 가르칠 수도 있고, 세상을 바르게 사는 윤리와 도덕을 가르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이 본질은 아니라는 것이다.
교회의 본질은 생명이다.
따라서 교회의 지도자로 세워진 목사는 자기에게 보내어주신 양 떼들에게 복음을 전해서 그들로 하여금 아들의 생명을 얻게 하는 것이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한 본질이다.
이것을 도외시하고 본질에서 벗어나 지엽적인 것을 가르치면 교회의 사명을 벗어나도 한참 벗어난 것이다.
그런 이야기야 교회가 아니어도 어디서든지 들을 수 있는 것 아닌가?
교회는 교회만의 특수성이 있다.
그것은 세상이 나아가는 목적과 많은 부분 부딪히는 역설적인 경우를 말한다.
비록 세상과 부딪히는 역설적인 경우가 있다손 치더라도 그것은 생명과 직결되기 때문에 가르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이 하는 말이 바로 그것이다.
(행 20:20)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거리낌이 없이 여러분에게 전하여 가르치고
(26-28) 그러므로 오늘 여러분에게 증언하거니와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내가 깨끗하니 이는 내가 꺼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다 여러분에게 전하였음이니라.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바울이 거리낌 없이 전하였다는 것은 다름 아닌 복음이다.
이 복음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구분 없이 모두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이 복음 외에는 어떤 경우도 생명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그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인 이방인들에게나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이 복음을 전하였다.
(21)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언한 것이라.
나는 복음을 잘 알지 못하였을 때는 성도들에게 윤리도덕을 가르치는 목사였다.
내가 먼저 근검절약을 솔선하고 성도들에게도 그런 삶을 살라고 하였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라고 강조하면서 말이다.
그리스도인이 세상에서 윤리와 도덕적으로 해를 끼치거나 피해를 주면 그 자체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것은 맞다.
그러나 이런 삶을 산다고 해서 생명을 얻는 것은 아니다.
이런 삶도 물론 중요하지만 선후가 바뀐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무엇보다 중요하고 먼저 선행되어야 할 것이 생명이다.
이 생명은 복음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기 때문에 그래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복음을 통해서 생명을 얻은 이들은 그 안에 아들의 생명이 있기 때문에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게 되어 있다.
물론 살다보면 넘어질 때도 있고, 세상의 윤리와 도덕을 벗어나는 일도 있을 수 있다.
그렇지만 그 안에는 아들의 생명이 있기 때문에 그가 결코 멀리 벗어나지 않는다.
그렇더라도 다시 힘을 내어 원래의 자리로 돌아오면 된다.
나는 성도들에게 참 복음을 전하여 모두가 아들의 생명을 얻어 영생을 누리도록 하는데 열과 성을 다하고 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사명이기 때문이다.
이 사명은 나의 달려갈 길이요, 주님으로부터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는 일이다.
이 일을 위하여 나의 목숨까지도 아까워하지 않는다.
주와 그의 양 떼들을 위하여 목숨까지도 바치길 원한다.
따라서 헤어짐이 그저 단순한 육신적 연민에 의한 슬픔이라면 이런 아들의 생명을 얻어 주님 앞에 설 때는 육신적 연민이 아니라 환희의 송가를 부르며 헤어질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김해에서 목회를 하는 동안에 어떤 성도에게도 물질이나 탐욕의 손을 벌려본 적이 없다.
교회에서는 사례를 받았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지 그 사례 안에서 생활하려고 힘썼지, 교회의 재정을 축내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것이 나의 자랑이 되지 않는 것은 윤리 도덕적인 삶을 넘어서 복음으로 생명을 얻게 하는 그 일에 여전히 매진하였기 때문이다.
이 일은 내가 하는 일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시는 성령께서 하시는 일임을 믿는다.
주님이 부탁하신 일이요, 주님께서 주신 사명이기에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에 매진할 따름이다.
이 일은 얼마나 귀한 일인지 천사도 살펴보기를 원하며 흠모하는 일이라고 하였다.
(벧전 1:12) 이 섬긴 바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임이 계시로 알게 되었으니 이것은 하늘로부터 보내신 성령을 힘입어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이제 너희에게 알린 것이요 천사들도 살펴보기를 원하는 것이니라.
나는 천사도 흠모할 만한 이 일을 수종드는 자로써 긍지를 가진다.
주님과 함께 날마다 연합하여 말씀을 상고하되 그 안에서 날마다 생명으로 태어나 살 수 있음이 그저 감사요 영광일 뿐이다.
내가 잘 나서 된 것도 아니요 나의 약함을 아시는 주님께서 나를 이끄시며 인도하심이 오늘 이 자리에 있게 된 것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연약하기에 더 주님을 의지하는 것이 주님의 기쁨임을 알아 주님께 더 가까이 한 걸음씩 나아간다.
오늘 이 자리에 주의 영광이 임함을 누가 부인하랴?
* 묵상 후 기도
주님...
죽기에만 합당한 이 죄인을 주님의 십자가로 살려주시고 복음을 통하여 아들의 생명주시니 감사 외에 뭐라 할 말이 있겠나이까?
그저 두 손으로 입을 가릴 뿐입니다.
재와 티끌 가운데 앉아 주의 심판을 받아들이오니 이 무덤이 나를 생명으로 인도하는 생명의 좌소가 되게 하옵소서.
주님이 나의 전부이오니 나의 생각을 올곧게 하시고 주님을 떠나지 않도록 장악하소서.
세상의 물질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게 하시고 세상의 정욕에 빼앗긴 마음도 회복시키소서.
내 안에 완악하고 완고한 마음을 제하시고 오직 예수로 부요한 자 되게 하소서.
심령이 가난하여 주님만 바라며 찾게 하소서.
오늘도 주의 말씀 속에서 생명으로 나아가오니 이 자리에 임하는 주의 영광을 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