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재에 대한 단상
초등학교 3학년이던 84년 여름... TV에선 당시 중공과의 청소년 농구 결승전을 생중계 해주고 있었다. 당시 웬만한 스포츠 경기는 전국으로 전파를 타던 시절이라 그리 대수롭지 않게 느껴질 수도 있었지만, 암튼 성인도 아닌 청소년 농구 결승을 중계해주는 사실은 다소 의외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었다. 당시 그렇게 철옹성으로만 느껴지던 중공을 무너뜨리면서 삽시간에 전 국민의 주목을 받게된 고교생 농구스타가 탄생하게 된다... 허.재.
당시 이충희와 김현준으로 대표되는 한국 남자농구의 쌍벽에 그의 이름은 서서히 자리매김을 해나가기 시작한다. 용산고를 거쳐 중앙대에 입학하며 재학시절동안 다른 대학팀에게 한번도 무너지지 않는 신화를 창조하며, 전통적인 대학농구의 강호인 연세대와 고려대를 완벽히 제압한다...
대학시절 쌍두마차인 연대와 고대를 무너뜨리며 중앙대 농구를 철옹성으로 이끌었던 그는 실업팀 기아산업(기아자동차)에 입단하며 마찬가지로 실업농구의 쌍두마차였던 현대와 삼성을 완벽하게 제압한다.
농구대잔치에서 기아라는 존재는 프로야구의 해태와 같은 존재였다. 상대팀은 그들과 경기를 하기 전부터 반쯤은 주눅이 들어있곤 했다. 허재, 강동희, 김유택, 한기범, 강정수 등의 중앙대 출신 멤버들로 짜여진 기아의 팀웍과 기술은 당시 농구대잔치에서 다른 팀들이 넘어서기엔 너무나도 버거운 것이었다...
88년부터 92년까지 농구판은 기아의 독무대였고, 다른 팀들은 들러리에 불과할 뿐이었다.
하지만 당시 허재는 많은 팬들만큼 안티팬들도 상당히 많았었다. 기량만 좋을뿐 '천상천하 유아독존' 식의 망나니 기질이 다분한 농구천재로 인식되기도 하였다. 기아의 독주가 길어질수록 허재에 대한 타팀의 견제는 때로는 도를 넘어선 수준이었다. 코가 깨지고 주먹세례에 코트에서 나뒹굴기도 하고...하지만 허재의 기량은 아무도 제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기아의 독주는 93년 농구대잔치 부터 서서히 금이가기 시작한다. 그것도 실업팀이 아닌 대학팀의 돌풍에... 서장훈,이상민,문경은,우지원의 연세대와 현주엽,전희철,김병철,신기성의 고려대는 패기와 체력을 앞세워 실업팀의 아성을 위협하다 못해 넘어서며 농구의 폭발적인 인기몰이에 큰 공헌을 하게된다. 또한 양경민,홍사붕,김영만,김승기 등이 주축이된 중앙대도 장기간의 침체를 벗어나며 강한 전력을 구축하게 된다.
93년 농구대잔치 예선리그에서 연세대와 연장접전 끝에 불의의 일격을 당하고, 급기야는 플레이오프 8강전에서 아우격이라 할 수 있는 중앙대에게 덜미를 잡히고야 만다. 드디어 기아의 시대는 끝났노라고 사람들은 수군대지만 바로 1년뒤 기아는 94 농구대잔치에서 삼성을 누르고 다시 한번 제왕의 자리에 등극하게 된다. 당시 챔피언 결정전 마지막 경기에서 경기 종료 5분전부터 등장하는 허재의 원맨쇼는 상대팀의 넋을 빼놓을만큼 화려함 그 자체였다.
암튼 농구대잔치 시절 그렇게도 얄밉게만 보였던 허재에게서 인간적인 면모를 보기 시작한 것은 다름아닌 프로농구가 출범된지 2년차이던 98년 챔피언 결정전에서이다. 현대와의 결승시리즈에서 그는 오른쪽 새끼 손가락이 골절되고 험한 몸싸움에 얼굴이 성할 날이 없을 만큼 수난을 당한다. 그러나 붕대를 감싸맨 그는 진정한 프로가 무엇인지를 온몸으로 여실히 보여주며 투혼의 농구를 펼친다. 두 손가락을 붕대로 감싼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열 손가락으로 농구를 하는 다른 선수들을 압도하는 플레이를 펼치는 그의 농구는 신기에 가까운 것이었다. 위에 올려놓은 당시의 사진을 보아도 알 수 있듯이 허재는 온몸에 가해지는 육탄방어를 절정의 경지에 다다른 농구 기술로서 극복한다.
당시 그의 플레이는 보는 모든 이로 하여금 경외감 이상의 것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하였다... 그 때부터 허재에게는 '농구 대통령' 이라는 칭호가 따라붙게 된다. 사상 최초로 준우승팀에서 챔피언 결정전 최우수 선수가 선정될 만큼 허재의 플레이는 감동적이었다.
이듬해 나래(현 TG 삼보의 전신)로 트레이드된 그는 그 후 몇년동안 우승과는 지독하게도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2002-2003 시즌 김주성이라는 슈퍼 신인과 짝을 이루어 멋들어진 콤비를 이루어내며 소속팀으로 하여금 창단 첫 우승의 기쁨을 선사한다.
우리나라 농구 역사상 이렇게 화려한 테크니션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많은 팬들의 아쉬움을 뒤로 하고 미국으로 선진 농구 유학을 떠났던 그는 지난 해 자신의 등번호를 영구 결번 시켜준 소속팀 (현 동부)이 아닌 KCC의 사령탑으로 깜짝 복귀를 하게 된다.
초보 감독으로서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지만 4강까지 오르는 나름대로의 성과를 거둔다. 올해 감독 2년차로서 본격적인 기량을 검증받게 될 그가 선수 시절에 이어 지도자로서도 '농구의 제왕'에 등극할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
저 초등학교때 농구대잔치부터 해서
중학교때 프로농구 출범이후 몇년동안은 농구가 정말 인기 많았는데..
요즘도 물론 골수팬들은 경기장 많이 찾는것 같긴 하지만
제가 변해서 인지 어쩐건지 요즘 농구인기는 시들한것 같아요.
전 연대 우지원 팬이었지만 사실 연대 고대 기아 선수들 다 멋졌었거든요.
어린맘에도 지금 나이먹어서 연예인들 보는것마냥 나 혼자 고심하며 한명고르고 있고..ㅋㅋㅋㅋ
아무튼 옛날일들 떠오르게 하는 기사를 보니까 괜히 마음이 울컥! 한게
나이를 먹긴 먹었나봐요.
농구 외에 다른 스포츠종목들도 지금 열심히 뛰고 있는 현역선수들이
먼 훗날에 프로감독팀을 맡았다 국가대표 코치가 됐다 뭐 그런기사가 나온다면
지금처럼 또 캬..옛날에 저놈이 내 마음 좀 휩쓸고 다녔었지...하면서 감상에 젖을것 같아요.
아침부터 기분이 므흥~한게 좋네요.
첫댓글 난 허이재로 보고 들어왔네-_-;;
난 하체에 대한 단상으로 보고 들어왓다규.,.
음..감독으로서는 모르겠지만 선수로서는 대한민국 최고의 선수!!
22222
이상민 문경운 좋아하는 나에겐 허재는 정말 적이고 남동생은 허재 팬이여서 농구대잔치시즌만 돌아오면 티비앞에 동생과 나란히 앉아 각자 좋아하는 팀응원했었는데...아 옛날이여
옛날에 나오기만 하면 싸우는것 보고 성격 정말 뭐 같다 하니까 오빠가 옆에서 '너무 잘해서 타팀에서 경계하는거다'라고 하는 말 듣고 난 다음부터 왜? 하는 궁금증에 경기를 자세히 보니 정말... 대단하더군요... 괜히 농구천재 농구9단 이라는 소리가 나오는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 옛날이여~ ㅜㅜ 농구대잔치 좋았죠...
허재 넘 좋아,, 몇년동안 한결같이 좋아했었삼,, 요즘 KCC 씨엪도 잘보고 있어요~ "자연이 좋다고 집 떠나 살지는 마세요~" ㅋ
선수로서는 정말 훌륭한데, 감독으로서는 잘 모르겠네요... 허감독님 나 요즘 맘이 마이 불편해~ 그것만 알아죠 ㅠ
허재..중고등학교때...너무 좋아했는데...^^ 농구대잔치....
몇년돈지는 모르겠지만 허재가 감기 몸살(?)에 걸렸는데 팀이 위기에 처해지자 나와서 정말 대단한 원맨쇼를 보여줬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요 ㅋㅋ 진짜 대단했는데
선수로서는 모르겠지만..사생활면에서는; 아무튼 대단한 선수~
선수때는 인정,,감독으로는 ,,,아 제발 kcc에서 물러서줘,,,,,,,,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