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새 날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태풍이 지나가고 기온이 뚝 떨어졌습니다.
자다가 선풍기를 끄면서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주님을 생각합니다.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십자가 보혈을 의지합니다.
오염된 영혼을 정결케 하여 주옵소서.
성령님, 말씀을 조명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25. 보라 내가 여러분 중에 왕래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였으나 이제는 여러분이 다 내 얼굴을 다시 보지 못할 줄 아노라
26. 그러므로 오늘 여러분에게 증언하거니와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내가 깨끗하니
27. 이는 내가 꺼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다 여러분에게 전하였음이라
28.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29. 내가 떠난 후에 사나운 이리가 여러분에게 들어와서 그 양 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30. 또한 여러분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따르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라
31. 그러므로 여러분이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32. 지금 내가 여러분을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여러분을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
33. 내가 아무의 은이나 금이나 의복을 탐하지 아니하였고
34. 여러분이 아는 바와 같이 이 손으로 나와 내 동행들이 쓰는 것을 충당하여
35. 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36. 이 말을 한 후 무릎을 꿇고 그 모든 사람들과 함께 기도하니
37. 다 크게 울며 바울의 목을 안고 입을 맞추고
38. 다시 그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한 말로 말미암아 더욱 근심하고 배에까지 그를 전송하니라
(본문 주해)
바울사도가 예루살렘으로 가면서 밀레도에서 에베소 교회 장로들을 불러서 마지막 유언처럼 말하는 고별 설교가 계속된다.
25~27절 : 바울은 이제 그들과 서로 얼굴을 볼 수 없을 것을 예견하며, 하나님의 뜻을 다 전했기에 그들의 구원에 자신의 책임이 없다고 한다.
이는 바울 사도가 복음 전하는 일에 최선을 다했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나는 오늘 여러분에게 엄숙하게 증언합니다. 여러분 가운데서 누가 구원을 받지 못하는 일이 있더라도, 내게는 아무런 책임이 없습니다.
그것은, 내가 주저하지 않고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의 모든 경륜을 전해 주었기 때문입니다.”(26~27절, 새번역)
28~32절 : 바울 사도가 3년 동안이나 눈물로 전한 말씀, 최선을 다해서 증거 되어진 말씀을 기억하고 깨어 있는 삶을 살 것을 부탁한다.
‘삼가라’(28절)는 말은 자기와 양떼를 위하여 잘 살피라는 말이다.
무엇을 살펴야 하는가?
교회에 예수님의 피의 공로가 제대로 드러나고 있는가를 늘 살피고 감독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주님의 피로 값 주고 사신 성도들, 즉 피로 사신 교회를 돌보는 일로 그들을 불렀기 때문이다.
‘어그러진 말’(30절)이란 ‘감언이설, 유사 복음 또는 거짓 가르침 등’으로서, 이리가 들어와 양떼를 꾀는 말을 가리킨다.
바울은 지금 이 에베소 교회의 지도자들에게 여러 가지 부탁과 권면을 하고 있지만 사람은 불완전하고 변할 수 있음을 알고 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말씀만이 불변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므로 그들을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한다’고 한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에베소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안전할 수 있으며, 하나님의 말씀만이 그들을 온전히 세워갈 수 있다는 것이다.
31~35절 : 바울 사도는 오늘날 선교사들처럼 교회의 후원과 사랑, 관심을 받으면서 선교활동을 한 것이 아니었다.
선교에 관한 모든 경비와 심지어 동역자들의 필요까지 스스로 감당하여 연약한 사람들을 도와 모범을 보였다는 바울의 고백이다.
그래서 바울은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는 주님의 말씀을 인용한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는 말씀을 직접하신 적은 없다.
그럼에도 바울이 이렇게 말한 것은 그가 부활하신 주를 만난 후 예수의 가르침을 알았고 그것을 성실하게 지켰음을 보여준다.
36~38절 : 바울과 에베소 장로들의 상세한 이별 장면이다.
그들은 무릎을 끊고 기도하고, 울고, 목을 안고, 입을 맞춘다. 바울에 대한 그들의 존경과 이별의 슬픔을 보여주는, 매우 아름다운 모습이다.
그들은 출항하는 배에까지 따라 나와 전송을 하며 작별을 고한다.
이렇게 마치 눈에 보이는 것처럼 생생하게 기술된 것은 저자인 누가가 바울과 동행했기 때문이다.
(나의 묵상)
오늘 본문에서 두 가지를 생각한다.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28절)와 그 교회를 지키는 것은 ‘말씀’(32절)이라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공동체들이 여러 조직으로 이루어진 것처럼 교회에도 조직이 있고, 그에 따른 질서가 있다.
그러나 교회는 세상 조직과 질서로 되어지는 그런 공동체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왜냐하면 세상의 공동체는 다 자기의 이익을 위해 모여진 집합체이지만, 교회는 예수님을 믿는 자들로 모인 공동체이며, 그렇게 모인 교회는 다 예수님의 보혈을 의지하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교회의 장로의 책무는 자기 교회에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잘 흐르고 있는가를 살피는 것’이라고 말씀을 들은 적이 있다.
장로도 아니면서 이 말씀에 너무도 감동이 되었다.
오늘 바울 사도가 에베소 지도자들에게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라고 표현한 것과 통하는 말씀이다.
교회의 모든 양떼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를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아무리 선하고 착한 일을 행한다 할지라도 십자가의 피를 뒤로 한 채 행한다면 이미 교회로서의 생명력을 잃은 것이다.
주님의 피가 잘 흐르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바울 사도가 이미 말했다.
지금 에베소 장로들에게 여러 말로 부탁하고 권면하고 있지만 그들-사람-을 믿는 것이 아니라, 에베소 교회를 주와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한다고 말한다.
“나는 이제 하나님과 그의 은혜로운 말씀에 여러분을 맡깁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여러분을 튼튼히 세울 수 있고, 거룩하게 된 모든 사람들 가운데서 여러분으로 하여금 유업을 차지하게 할 수 있습니다.”(32절, 새번역)
우리 영지 교회는 좋은 전통이 많다.
그래서 작지만 칭찬 받는 교회 중의 하나이다.
나도 이런 우리 교회를 사랑하고 늘 자랑하는 마음이다.
어떤 일에 대해 불만을 내세우는 것보다는 잠잠한 자들이 많고, 교회 사역에 협조적이며, 어른들을 잘 모시고, 단합이 잘 되는 등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우리 교회의 장점이 많다.
그런데 복음을 알고 난 뒤에는 내 마음에는 거룩한 염려가 뒤따른다.
‘우리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잘 흐르는 교회인가?’
이 질문 앞에 뭐라고 단언할 수 없는 머뭇거림이 있기 때문이다.
복음을 몰랐을 때,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구원을 받았다는 것을 입으로는 앵무새처럼 말하였지만, 내게는 참 무미건조한 고백이었다.
그러니 교회 사역을 해도 모두 내 힘으로 한다고 생각했고, 결과가 좋으면 자기의로 한껏 교만해지고, 결과가 좋지 않으면 자존심이 상하여 낙심에 빠지곤 했다.
나는 예수님의 피로 구원받았다고 했지만, 그 혈관이 자기의의 지방으로 꽉 막힌 자였던 것이다.
복음을 알고 매일 말씀 앞으로 나아가니 내게 주님의 보혈이 흐르기 시작한다.
나의 죄를 사해 주신 것이 보혈의 은혜요, 옛 사람의 본성과 자기주장의지를 십자가에 못 박으니 내게 보혈의 은혜가 흘러 넘치게 된 것이다.
착한 우리 영지 교회 교인들에게도 이 보혈의 은혜가 마구 흘러넘치길 기도한다.
그래서 매일 말씀 앞으로 나아가도록 지체들을 권면하고 있다.
아직도 ‘그것만이 제일인가? 나하고는 맞지 않아.’하는 뜻을 비추는 사람들도 있다.
너무도 답답하다.
아무리 기도를 많이 해도, 아무리 봉사를 많이 해도, 아무리 헌금을 많이 해도 말씀의 은혜 위에 서지 않으면, 그것은 오로지 자기의로 달려가는 길일 뿐이다.
말씀의 빛에 자신을 비추어 보지 않으면, 주님의 보혈이 흐르지 못하고 꽉 막혀 있음을 깨닫지 못한다.
누구 못지 않은 열심을 내어 자비량으로 마다가스카르로 선교하러 떠나던 그때조차 나는 보혈의 은혜를 몰랐으니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그런 나를 주님께서 불쌍히 여기셔서 막힌 혈관을 뚫어 주시니 내 온몸이 보혈의 은혜로 덮임에 감사가 넘친다.
이제 점점 더 많은 지체들이 말씀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하니,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우리 영지 교회에 주님의 보혈이 흘러넘치길 기대하고 기도한다.
“주의 보혈 흐르는데 믿고 뛰어 나아가 주의 은혜 내가 입어 깨끗하게 되었네!”(찬423)
(묵상 기도)
주님,
바울의 고별 설교에 가슴이 울컥합니다.
이별이라는 인간적인 정 때문이기도 하지만
주님의 보혈로 사신 교회에 대한 그의 깊은 애정을 보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 모든 교회에
주님의 보혈이 흘러넘치길 기도합니다.
인간의 자랑과 힘과 노력을 부추겨 보혈을 막는 사탄의 술수에 넘어가지 않고
진정 말씀으로 깨어있어
보혈이 흘러넘치는 교회들이 다 되게 하옵소서.
그 가운데 우리 영지 교회가 있길 기도합니다.
성령님, 의지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