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좋아한다. 신작로도 좋고 구불구불한 꼬부랑 길은 더 좋고. 가을추석 뒷날의 시골 길을 좋아한다.
명절 뒤 시골 길에는 남은 정들이 있다. 남겨진 포근한 쓸쓸함도 있다. 늙은 아버지와 엄마도 있다. 오천원짜리 바지를 입고 양지녘에서 이른 해바라기를 하며 입에 문 담배 한 개비가 다 탈 때까지 입술이 뜨거워질 때까지 손 한번 대지않고 재를 떨군다. 무슨 생각에.
벗어둔 수건을 둘러쓴 엄마는 마대를 타서 만든 멍석에다 희나리고추를 말린다. 긴 장대는 힘이부쳐 작은 작대기로 해를 고른다. 희끗희끗 거무티티한 희나리에는 가을쬐러 잠깐 날개 쉬는 된장잠자리가 앉는다. 작은 고추잠자리는 작아도 붉은 고추잠자리라고 자존심이 있는지 희나리고추에는 앉지도 않는다. 고추잠자리도 앉지않는 희나리는 말려서 엄마가 먹는다.
이번에도 나갔다. 꼬부라진 길로! 명절뒤 시골 길의 그 예쁜 모습을 보러.
조그마한 보퉁이에 올망 졸망 챙겨넣은 추석 음식들을 엄마는 하나라도 더 챙겨 주려고 차 트렁크를 두 손으로 끌어안고 통 사정이고, 자식은 사양하며 옥신각신하는 모습을 먼 발치에서 흐뭇하게 보며 해 마다 이 시골 길을 달렸었다.
해 마다 보는 그 집이었다. 양지 마당에는 빨간 고추가 마르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아무 것도 볼 수 없었고 엄마가 보이지를 않고, 집 모퉁이 풀 밭에 놓여있던 검정색 자동차도 보이지 않았다. 울컥 눈물이 난다. 엄마가 돌아 가셨다.
그렇게도 정 겨루기를 하던 쭈그러진 엄마는 그 날의 나의 할머니였고 나의 엄마였는데 명절끝 시골 길은 그래서 정겨웠는데!
이제 내년 추석 훗날은 이 곳에 쓰러진 석가래만 덩그러니 남아 주인잃은 길고양이가 먹이를 뒤지고 있겠지. 엄마의 늙은 유해처럼!
슬픈 그 엄마를 보러 올 수는 없을 것같다. 나도 새로운 길을 찾아 만들어야 하려나 보다. 그래도 또 있겠지. 그 엄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