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정산 고당봉(801m)
1.산행구간 : 범어사-갑오봉-장군봉-고당봉-북문-원효봉-동문-산성고개
2.산행일자 : 2022. 12.17(토요일)
3.산행거리 : 12.32 km
4.산행참가자 : 아내
◎ 범어사 (09:20)
◎ 사베고개(09:40)
◎ 갑오봉/x720m /질메쉼터3.2km,장군봉0.5km(10:30)
◎ 장군봉/734.5m(10:40)
◎ 옹달샘(10:50)
◎ 금정산 고당봉/801m(11:30)
◎ 금샘(11:45)
◎ 북문/식사(12:30)
◎ 원효봉/687m/언양25(12:45)
◎ 의상봉/x620m/용호봉(13:00)
◎ 3망루(13:20)
◎ 동문/동문고개0.3km,고당봉5km,남문2.6km(13:40)
◎ 산성고개(13:50)
금.토 휴일이다.
금요일은 미뤄 놓았던 집안일 처리하느라 하루가 다 모지랄정도의 바쁜 날......
그리고 토요일 산에 가자 되었다.
오랜만의 산행이다.
그런데 어딜 가느냐가 문제이다.
모처름 휴일인데 아내와 갈 산행지를 이리 저리 머리를 굴러도 별 뽀족한 수가 나오질 않는다.
그만큼 산엘 가지 않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영하의 기온에서도 늘 밖에서 일하느라 올 겨울을 몸소 마음껏 누리는(?) 지경이라 밖에 나가기 싫은건 어찌 할수 없다지만 그래도 휴일인데 싶다.
그리고 저녁에 동생부부와 저녁 먹기로 했으니 가급적 일찍 하산해야한다는......엄명이기도하고....
바람과 함께 추운 날씨라 게으름도 피울수 있는 조건이기도 하고..
어째튼 다녀오기는와야겠다 싶어 금정산 가자 되었다.
그리고 산성고개에서 하산 버스로 온천장역으로 이동 지하철로 환승후 돌아오는 일정이다.
조금 일찍 출발하면 시간내 돌아올수 있기에....
하여 08시 40분 노포동 가는 버스를 30분 일찍 08시 10분 출발하기로 한다.
그러니 아침 부터 바쁘다.
점심은 빵조각과 숭늉....
그리고 간식으로 커피와 팥빵...
따뜻한물...
이게 모두지만 산에 갈수 있는 그행복만이라도 좋다 싶다.
09시 노포동에서 90번 버스로 범어사에 올라선다.
차가운 바람이 엄습해온다.
겨울은 추워야 한다지만 사실 추운게 요즘은 싫다.
이것도 나이탓인지 몰라도...
꼰대말을 빌리지면 옛날에는 추위를 즐기곤 했었는데
해서 여름보다 오히려 겨을을 더좋아하고 했었는데...
이제는...
범어사 올라가는길
주차비 징수(3000원)
범어사 들어가는길
금정산 범어사/ 선찰대본산
천왕문
불이문
보제루
범어사를 둘러보자 되었다.
삼국유사를 UNSCO에 등재된다며 현수막을 걸어 두었다.
부산 범어사 소장본 삼국유사로 고대사회 문화예술 중심의 불교문화를 생생하게 기록 했다고 한다.
자료를 보면
삼국유사는 5권 2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모두 9개의 편으로 구분되는데, ①왕력(王曆), ②기이(紀異), ③흥법(興法), ④탑상(塔像), ⑤의해(義解), ⑥신주(神呪), ⑦감통(感通), ⑧피은(避隱), ⑨효선(孝善)으로 제목이 나누어져 담겨져 있다.
왕력은 고구려·백제·신라의 삼국을 비롯하여, 가락국·후고구려·후백제 등의 연표를 정리하였고,
기이는 고조선부터 후삼국까지의 역사를 서술했다.
흥법’에서 효선’까지는 불교의 수용과정, 당시 산재해 있는 불교미술에 관한 내용, 고승들의 행적, 불교의 신화와 설화, 불교적인 선행에 관한 내용이 실려 있다.
특히
삼국유사를 편찬한 일연스님은 고려가 국가적인 위기와 혼란에 처했을 때 민족의 자긍심과 자존감을 찾기 위해 삼국유사를 집필했다고 한다.
일연스님은 청도 운문사(雲門寺)에 주석하면서부터 삼국유사 편찬을 시작했고,
84세로 군위 인각사(麟角寺)에서 입적하기까지 만년의 일생을 삼국유사 집필에 몰두했다.
범어사에는 우리나라에 몇 남아 있지 않은 삼국유사가 현전한다.
이 책은 범어사 초대 주지를 역임한 오성월(吳惺月, 1865∼1943)스님의 옛 소장본으로 1907년 범어사에 기증된 것으로 전해진다고 한다.
범어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4교구 본사라고 한다.
1700년(숙종 26) 동계가 편찬한 범어사창건사적 (梵魚寺創建事蹟)에는 신라 흥덕왕(826~835 재위) 때 의상이 화엄신중기도로 왜구의 침입을 막아내자 왕이 매우 기뻐해 의상을 예공대사로 삼고 범어사를 창건했다고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그리고 또 다른 기록에 의하면 신라 문무왕 678년에 의상 대사가 세웠다고 한다는 기록이다.
또 흥덕왕(826~835년) 때에는 절에 딸린 방만 하여도 360개나 되었다고하는 대가람이었다고 하는데 임진왜란 때 불탄 이후 10여 년이 지난 1602년에 다시 세웠으나 또다시 불에 탔다고 한다는 기록이다.
그리고 1613년에 묘전 화상을 비롯한 여러 고승들이 힘을 합하여 다시 세워 현재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보물 제250호로 지정된 범어사 삼층 석탑을 비롯하여 보물 제434호인 범어사 대웅전
관음전
관음전은 자비로 중생을 구제하는 관세음보살을 모신 전각이다.
한없이 눈과 손을 가진 관세음보살은 고난에 빠진 중생을 끝없는 자비로 구제한다고 하여 널리 신앙되었다.
광해군 6년에 묘전화상이 창건했으며, 지금 건물은 익공식 맞배집으로서 1800년대 건립으로 추정된다.
범어사 경내
은행나무
임진왜란후 노승 묘전스님께서 옮겨 심은것이라고 한다.
수령 580년인데 300년전에 은행이 열리지 않아 맞은편에 수나무 한그루를 심었는데 그이후 30여가마의 은행을 수확했디고 한다.
또 은행나무를 소원 성취를 위해 비는 수호목으로로 알려져 왔다고 한다.
청련암
청련암 계명암, 내원임을 지나 계명봉과 갑오봉 안부에 올라선다.
차가운 바람이 넘어 온다.
이런날 따스한 구들목에 배깔고 누워 고구마나 구워 먹었으면 싶은 그런 날...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지만 추위와 맞짱을 뜨고 있는건 사실이다.
잠시 쉬면서 ....방풍의을 벗고...
장산과 해운대 조망
갑오봉 올라가는 가파른 길은 땀을 흘리게는 하지만 가급적 땀을 내지 않게 천천히...
x720m의 갑오봉..
갑오봉과 장군봉 안부
낙동강과 신어산
x735m의 장군봉.....
카메라에 담고 안부로 내려서서 고당봉으로 향한다.
차다친 바람이 갈길을 막지만 그렇다고 물러설 우리가 이니지 싶다.
양산 물금
고당봉과 김해공항 강서구
해운대
장굼봉 옹달샘
길
하늘릿지
오봉산과 양산 물금
하늘릿지
고당봉 계단길
고당봉
800m의 금정산 고당봉이다.
역시나 명산답게 많은 산객들로 떠들석 하다.
정상석과의 지나친 사랑은 자칫 기다리는 사람들로 짜증스런 인상이지만 그래도 좋은 곳임에는 틀림 없다.
바람에도 추위에도 기다리는 배려가 참 보기 좋다.
금샘이다.
얼음이 얼어 있다.
고당봉 옹달샘
번개를 맞은 고당봉 정상석이다.
뒷부분이 깨어져 아크릴 박스안에 가둬 버린 정상석
소원을 빌어라는 현수막이 바람에 나부낀다.
1994년 12월 설치한 정상석이 2016년 8월1일 천둥번개를 동반한 집중호우때 낙뇌로 파손되어 이곳에 옮겨 보존한다는 펫말이다.
북문까지 성터길따라 내려서는데 여진히 차디찬 바람이라 어디한곳 따스한곳을 고를수가 없다.
그러니 자동 북문주변까지 하산 하는데 연신 배고프다며 투덜거린다....
어쩌라고...
벤치에 앉아 준비한 숭융과 빵으로 끼니를 떼운다.
그리고 다시 출발한다.
금정산성 북문이다.
1703년 금정산성을 축조하면서 설치되었다는 북문
길
원효봉이다.
687m.....
젊은 친구 둘이서 뭘하는지몰라도 휴대폰 삼매경이다.
이 추위에도....
안내판을 보면은 원효봉은 금정산동쪽 가장 높은 봉우리로 먼저 어둠을 헤치고 동해에 떠오르는 햇빛을 받아 갓 피워난 매화처름 화려한 자태의 빛깔로 수놓아 으뜸의 새벽 원효봉이라 불렀다고 한다.
금정산성 제4망루위쪽에 자리하고 있다 하며 김유신 장군이 원효봉에서 낭도들을 훈련시킬때 바위에서 부동자세로 오래 서 있어 선채로 소변을 보는데 어느낭도가 그자리에 소나무 한그루를 심었다라고 한다.
이 땅달보 소나무는 오랜세월동안 비바람을 이기고 그푸르름을 뽐내고 있어 사람들은 이소나무를 김유신솔바위라고 불렀다 하나 정확한 위치를 알수 없다는 설명이다.
김유신솔바위
용호듬 이라한다.
용과 호랑이의 모습을 한......
의상봉
의상봉(620m)은 금정산성 제4망루가 있는 윗쪽 봉우리로 동해의 망망대해를 한눈에 바라보는 망대의 역활을 할수 있는 봉우리라 설명히고 있다.
전설에 따라면 용이 여의주를 물고 승천을 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금정산 산신령 호랑이가 나타나 승천을 저지하기 위해 한참 격렬한 몸싸움을 하게 되는데...
마침내 무승부가 되어 두봉우리로 변해 위쪽은 용을 저지하는 형상의 호봉이,
그리고 아래에는용을 닮은 용봉이 되었다고 한다.
해서 이를 합쳐 용호듬이라 부르게 되었는데 1970년 산악인들사이에 의상봉이라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는 안내이다.
제4망루이다.
제3망루이다.
아스라이 절벽에 세워져 있는 망루...
이런 자리에 이런 망루를 세웠다는게 신기할정도로 조망이 뛰어 난곳이다.
동문이다.
조선후기의 성문으로 1703년(숙종29)금정산성을 축조하면서 설치 되었다고 한다.
금정산성 4성문 중의 하나로 일제 강점기에 방치되어 훼손되었으나, 1972년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되어 조선 시대 산성의 문루를 잘 보여 주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고 한다.
14시 못된 시각.....
북문에서 식사후 1시간 30분만에 산성고개에 내려선다.
쉼없이 달린 까닭이다.
아내는 아내대로 난 나대로 팔을 흔들며.....
그리고 산행은 산성고개에서 끝이난다..
먼지털이로 먼지를 터는 와중에 203번 버스는 도착하고 부랴부랴 버스를 타는데
버스는 15분 간격(평일)으로, 그리고 공휴일에는 8~10분간격으로 다닌다는 203번 버스....
산성마을과 온천장을 오가는 버스이다.